엡 3:14-2113-07-07 주후날자: 2013년 7월 7일 주후
제목: 표리부동(表裏不同) 신앙(바울의 기도)
본문: 에베소서 3장 14절 - 21절
1. 나의 신앙은 표리부동(表裏不同)한가? 아닌가?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말은 겉과 속이 같지 않다는 의미로,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을 일컬을 때 사용된다. 이는 예수님께 책망을 받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장로들과 같은 모습이다. 겉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도 있고, 지식도 있고, 법도를 따르는 것 같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3, 15)라고 책망하셨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마 23:23)
우리의 유일한 신앙 모델이신 예수님은 겉과 속이 같으셨다. 그 제자의 길을 가는 우리도 우리 성도의 신앙생활도 믿는 것(속)과 사는 것(겉)이 같아야 한다. 그러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을 통해서 그 길을 찾아보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2. 바울의 기도
2.1. 성령으로 강건해지도록(14-16)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엡 4:14-16)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일반적으로 금세와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결 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를 많이 하는 자들이 아닌가?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사도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내용은 우리가 우리 자신과 다른 지체들과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제시 해 주는 핵심교훈이다.
C.S. 루이스는 우리의 문제는 너무 많은 것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적은 것을 욕망하는 데 있다고 했다. 하나님은 훨씬 더 영광스럽고 보배로운 선물을 주려고 준비 중이신데 우리는 너무 하찮은 일상의 필요들만을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것들은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알아서 챙겨주실 텐데 말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우리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선물은 외적인 데 있지 않고 내적인 데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람다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보고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불러주셨다고 말한 후(3:1-13),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감옥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를 ‘편지’로 보냈다. 그는 성도들을 위해서 세 가지를 기도했다.
첫째,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전사로서 악한 영들과 싸우고 마지막 날에 믿음으로 서기 위해서 마음을 강건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는 전 인격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과 동행하는 자들은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닮아가게 된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오순절 성령 강림을 체험한 사도들이 얼마나 담대했는지를 알고 있다. 성령을 받으면 성령과 함께 권능을 받게 된다. 성령을 받기 전에 그들은 어떠했는가? 예수 믿는 것에 대한 핍박이 두려워 다락방에 숨어야 할 정도로 간이 작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 난 다음에는 누구든지 핍박에 전혀 굴하지 않고 목숨 내 놓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 특공대가 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사람들이 180도로 바뀌었을까? 그것은 성령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심으로 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도와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 둘은 별개가 아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령님을 항상 모신 성전이 되었다. 그럼에도, 문제는 그 성령님이 우리 육, 즉 마음과 몸에 강력하게 임하실 때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뿌리를 내리고 견고해질 수 있다. 성령은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영이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초대교회 성령받았던 자들처럼 우리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다. 나를 주장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왕 노릇 하시도록 맡길 수 있다. 그러면 땅 속에 깊이 뿌리내린 나무 보다 반석 위에 세워진 든든한 성보다 더욱 강력하고도 견고하게 설 수 있다.
성령께서 우리를 강건케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지속적으로 나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 안에 뿌리를 내리고 더욱 견고하게 설 수 있다. 그래서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지거나 시련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거룩한 삶을 견지하며 악한 영들과 맞서 싸울 수 있고 승리하는 십자가의 군병이 될 수 있다(4~6장). 아멘!!
2.2.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도록(17-19)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7-19)
바울은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으로 강건한 성도들이 되기를 구한 다음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성도들이 깨닫게 해달라고 구했다. 이 사랑은 한없이 넓고, 깊고, 높아서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시지 않고서는 도저히 깨달을 수 없다. 그래서 바울은 특별히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 높이와 깊이를 깨닫도록 구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위대함을 깨닫게 해 달라는 간구이다. 어찌 우리 인간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겠습니까?
왜 바울이 이 기도를 했을까? 그것은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한다면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고, 진정한 성숙에 이를 수도 없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울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 한없는 사랑이 우리가 받은 구원의 근거이자,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의 토양이고 토대이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유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자격 없는 우리를 먼저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있다.
부모의 사랑을 자식이 다 알고 죽는 자식도 드문 것 같다. 혹시 “아, 저 사람은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온전히 다 갚고 간 효자 중에 효자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을 본적이 있나요? 철들자 죽는 것이 일반적인 인생이 아닌가? 하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을 대로 깨닫고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성도가 얼마나 될까? 처음 사랑의 가치를 깨달을 대로 깨닫고 그 사랑을 간직하고 그 사랑에 반대되는 길을 가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요한계시록의 서머나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깨달음이 있었고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았다. 주님의 이름을 그들은 배반치 않았다. 그래서 주님에게 칭찬을 받았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 높이와 깊이를 깨닫는 것은 더더욱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깨달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어떤 구체적인 필요들을 구하기보다 자기를 버려 나를 용서하시고 살려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안다면, 그래서 나를 제대로 볼 수 있고, 그 사랑에 나를 맡길 수 있다면 삶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 사랑을 알면 우리 진광교회 공동체가 지금보다 더 성숙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빌라델비아 교회와 서머나교회처럼 처음사랑에 합당한 복음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칭찬받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아멘!!
2.3. 하나님의 충만한 역사하심이 충만하도록(19-21)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20-21)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수준까지 충만하게 해달라고 구했다. 이 기도는 바울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도 다 채워주시기를 기도한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부요함으로 충만(充滿)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완전한 수준까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게 해달라고 구한 것이다(4:13). 참 대담한 기도요 마땅히 구할 것은 구한 기도이다. 그렇다. 우리의 영적 성숙의 목표는 눈에 보이는 어떤 재물의 많음이나, 고위 공직, 명예, 기술, 탁월한 사람이나, 목회자, 성도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아야 한다(5:1-2).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5:1-2)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그에게까지 자라가기를 기대하신다(4:15).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고 선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기도했나요? 아니면 너무 적은 것을 구했나요?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의 경륜을 시작하고 완성하시면서 자신의 무한한 능력과 사랑을 나타내셨다. 이 땅의 교회도 그분의 능력과 은혜의 작품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지금까지 숱한 시련과 역경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연약한 우리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시고 이렇게 주의 말씀 앞에 조아릴 만큼 우리의 심령을 지켜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
문제는 하나님은 이런 진실한 기도자의 기도를 들어주셨지만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그러나 우리 진광교회 지체들만큼이라도 바울이 기도한 세 가지 제목의 기도를 하도록 하라. 한 사람이라도 이 기도를 통하여 응답을 받고 살아간다면 우리 교회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못할 것도 없다.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기초가 되고, 하나님의 충만의 역사가 임하면 역사는 일어나는 것이다. 아멘!!
3. 기도와 믿음을 통하여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신앙인이 아니라 표리동일(表裏同一)한 신앙인이 되라!!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사람들 앞에서 잘 믿는 척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다. 내 속사람은 어떤 상태인가? 속사람이 튼튼해지기 위해 나는 오늘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할까요? 상상할 수도 없이 놀라운 일들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우리고 이제 기도에 착수 합시다.
나와 우리 지체들이 성령으로 강건해 져서 어떤 악한 세력들과도 싸워 이기고, 그것에게 피동되지 않는 강건한 십자가의 군병이 되도록.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 길이를 깨달아서 그 사랑에 감격하여 죽도록 충성할 수 있는 무익한 종이 되도록.
모든 지체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도록. 이제는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외식쟁이 신앙인이 아니라 겉과 속이 하나인 진실한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어야 한다. 표리동일(表裏同一)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진광교회 모든 지체가 현실에 피동 되지 않고 밥으로 이용하는 장성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람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강력히 드러내는 빛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일학생들에게 이 세 가지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중고등부 학생에게 이 세 가지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권찰님들에게 이 세 가지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집사님들에게 이 세 가지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우리 교회 주변 사람들에게 이 세 가지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성령님이 일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가 일하시면 우리 교회는 반드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아멘!!
착한 행실과 나눔, 섬김을 통하여 많은 택한 백성을 주님의 품으로 인도하는 복 있는 사람이 되도록 바울처럼 강력히 기도에 착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