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5:55-582010111402날자: 2010년 11월 14일 주일오후
제목: 대속의 은혜를 무한(無限) 감사하라
본문:고린도전서 15장 55절∼58절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1. 세상에서 가장 감사할 것은?
우리는 살아가면서 감사할 제목이 많은 것 같다. 예수 믿어서 감사, 몸이 건강해도 감사, 자식이 잘 자라도 감사, 성공하는 일을 해도 감사, 돈을 많이 벌어도 감사, 볼 수 있어서 감사, 들을 수 있어서 감사, 말할 수 있어서 감사, 걸을 수 있어서 감사, 사업이 잘되어서 감사, 스승은 제자가 잘되면 감사, 북한에 사는 것보다 남한에 사는 것이 감사, 지금처럼 평안한 나라와 환경을 주셔서 감사, 교통사고가 안 나서 감사, 좋은 사람과 책을 만나서 감사,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어서 감사 등 많은 감사 제목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 감사 제목 중에서 우리가 가장 감사할 제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그 제목을 찾아보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우리의 주인이시오.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을 슬프게 하는 자들이 되지 말고 기쁘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다.
2. 예수 그리스도는?
2.1. 사랑, 지혜, 능력의 완전을 책임지신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57절)
“우리 주”라 말은 우리를 책임졌다는 말이다. “우리 주” “예수” 예수는 우리를 대형 대행 대생 대화친을 하신 이 대속하신 주님을 가리켜 말한다. 그래서 주님이 이 대속을 하셔서 무한한 공로로 자본을 마련했다.
“그리스도로 이김을 주신다.”라는 그리스도는 사랑의 완전, 지혜 지식의 완전, 능력의 완전 이 세 가지 완전을 일으키는 책임을 지신 하나님을 말한다. 그리스도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의 이 대속 공로로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출해 놓으시고 우리를 어디까지 온전케 하시느냐? 사랑과 지혜 지식과 능력에 온전케 하시기를 하나님처럼 온전케 하시는 이 일을 책임맡으신 분이 그리스도시다.
2.2. 구원과 모든 자원을 마련해 주신 분.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죄와 사망과 마귀, 지옥의 감옥에서 우리를 구출해 내신 일을 하셨다. 또 우리의 몸이나 생애에 모든 면에 충족한 그 자원을 마련해 주신 이가 예수님이시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냐? 예수님이 마련해 놓은 그 자본으로 그 사람을 완전케 치료하고 또 그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완전히 마련해 준 그것이 그리스도이다. 마련해 주시려고 책임을 지고 나선 분이 그리스도라 그 말이요.
예수님의 죽으심은 어데까지냐? 예수님의 죽으심은 감옥에서 모든 것을 다 대신해서 우리를 감옥에서 해방 시켰다. 해방했지만 해방시켜 놓았지만, 아무 대책이 없다. 대책이 없는데 그 대책을 세우시기 위해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사흘 만에 하나님이 사람을 입고 다시 부활하신 것이다. 이래서 “죽은 가운데 다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라고 말씀했다.
2.3. 무한한 대속의 대가를 치러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근본 대속하신 그 공로를 베푸셨다. 그리스도는 예수님이 이 공로를 베풀어서 우리를 해방시켜 놓은 우리를 실질적으로 성화시켜서 온전케 해서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하게 이렇게 하실 이 책임을 지고하시는 것을 가리켜서 여게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에게”라고 말씀하셨다. ‘이김을 주신’이라고 한 것은 이미 다 주셔서 지나갔지만, 지금도 계속 주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면 주님이 이렇게 이김을 주시는 이 이김이 얼마나 어느 정도 이김을 주신 것이냐? 이김을 주신 이것이 이미 이김을 주신 것, 또 지금 계속 앞으로 주실 것 이것이 무한한 구원이다, 무한한 구원.
그러면 멸망은 또 얼마나 멸망을 받은 것이냐? 무한한 멸망 가운데 빠진 것이다. 우리는 유한한 인간이기에 무한한 멸망을 받게 돼 있다. 왜? 멸망케 된 그 멸망의 원인이 무엇인데? “그것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무엇이며 너의 쏘는 것이 뭣이냐?” 사망이 어떻게 해서 사망이 된 것이냐 하면 죄값으로 사망이 된 것이다. 그러면 죄값으로 사망이 됐으니까 그 죄가 무한한 죄라야 우리가 무한한 사망이 된다. 무한한 죄값이라야 무한한 사망이 되지 무한한 죄값이 아니고 유한한 죄값이라면 유한한 사망을 받으면 그다음에는 이제 끝이 났다. 그렇지만 무한한 죄값이라면 이는 그 죄값을 받아도, 받고 받아도 끝이 없다. 죽음의 원인인 죄가 무한하다면 그 값인 사망도 무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죄가 무슨 죄가 그렇게 많아서 무한한 죄가 되어지느냐? 무한한 죄가 되어지는 것은 어떻게 무한한 죄가 되느냐? 죄를 무엇이 들어서 죄를 만드는데?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그 죄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죄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이 그것이 몇 가지만 되고 말면 하지만 하나님의 율법이 그 무한한 율법이다.
그 율법이 무한하신 분이 무한하신 당신같이 되기를 우리에게 명령했고 요구했고 하기 때문에 당신의 무한하신 분이 우리에게 대해서 무한하신 법을 제정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 무한한 법을 다 어기게 됐다 그말이다.
어기게 된 것은 그 법의 근본인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했으니까 하나님 배반한 이것으로써 하나님의 무한한 법을, 무한하신 분을 배반했고 무한하신 법을 배반했기 때문에 무한하신 분이 세워놓은 무한한 법을 배반하게 됐다는 말이다. 그러기 때문에 무한한 죄값으로써 무한한 멸망을 받은 우리들이다. 무한한 율법을 근거해서 정죄하기 때문에 무한한 죄가 된 것이다. 이는 무한하신 분이 무한하신 분을 중심해서 무한한 법을 우리에게 제정했는데 우리가 무한하신 분을 배반했기 때문에 무한한 법인 그 법을 하나하나 어기지 안해도 무한하신 그분을 배반하고 대립했기 때문에 우리 죄는 무한한 죄가 됐고 무한한 사망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 무한한 죄로 된 무한한 사망을 구출하는 데에는 무한한 형의 대가 또 무한한 순종, 무한한 형과 무한한 순종 또 무한한 원수된 것을 무한한 화평을 하려 하니까 무한한 원수의 대가만 받을 뿐 아니라 무한한 화평을 이루신 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이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범한 것은 인성인 사람은 다 유한하기 때문에 사람만 가지고는 대속이 안 된다. 이러기 때문에 무한하신 하나님이 사람되어서, 신인양성일위는 인성은 유한하지마는 신성은 무한하셔서 무한한 구속주가 무한한 대속을 해서 우리에게 무한한 대속, 대형 대행 대화목의 제물이 되셔서 우리에게 구속해 주신 것이다.
3. 그리스도께 감사하라
3.1. 무한(無限)히 감사하라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 이김을 주신 것은 이미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셨고 앞으로 이김을 주시는 이게 다 무한성의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감사하면 얼마나 감사를 해야 하겠느냐? 무한한 감사를 해야 한다. 우리가 무한한 감사를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유한한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 전체가 감사가 돼도 우리는 무한의 감사가 안 되기 때문에 우리는 죄인이다.
그러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대로, 모세가 말하기를 “누가 하나님께 대해서 두려워할 대로 두려워하며 감사할 대로 감사할 자가 있느냐?” 아무리 자기 마음 뜻 성품 힘 목숨 다해서 전부 감사의 뭉텅이가 된다면 우리는 충족합니까 미달입니까? 그래도 미달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를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3.2. 흔들리지 말고 감사하라
3.2.1. 시간적으로!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이 사실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이것을 언제나 흔들리지 말라 말은 첫째는 자기의 시간적으로 흔들리지 안해야 된다. 시간적으로 감사하다가 또 제 비위에 조금 맞지 않으면 집어던졌다가 하는 그런 것은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기 때문에 성화 운동이 안 된다. 성화구원은 안 된다.
언제든지 이 감사가 시간적으로 변동이 없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시간적으로. 밤에는 있다가 낮에는 없고, 자기가 급할 때는 있다가 수월할 때는 없고, 자기가 지금 좀 올라갈 때는 있다가 또 내려가면 없고, 무엇이 형통할 때는 감사가 있다가 형통 안 할 때는 없고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에 지장인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중에 에베소 교회의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하는 모든 것은 가치로 여기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또 사데 교회처럼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었다고 책망한 것도 이런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형제들아 견고하며” 견고하라 말은 이것이 요동치 말라는 말이다. 우리에게 무한한 정죄에서 무한한 멸망에서 무한한 대가로 무한한 대속을 해서 우리에게 무한한 소망을 이렇게 주시고 무한하신 분이 보증자 됐다. 진리도 무한하고 하나님도 무한하다. 무한한 하나님이 이렇게 보증을 한 이 사실에 대해서 이 시간이나 저 시간이나 항상 견고해야 한다. 확고부동해야 한다.
3.2.2. 마음적으로!
또 우리의 마음적으로 견고해야 한다. 우리 마음이 이 마음 됐다가 저 마음 됐다가 자꾸 이래 요동하지 말고 언제든지 이 대속에 대한 이 감격한 마음, 이 마음이 계속하는 것이 그것이 견고이다.
그러면 자기 마음이 이 마음으로서 자기 모든 뜻이나 소원이나 성품이나 자기의 목표나 자기의 생애가 마음의 작용이 대속으로 요동치 않는 것이 견고해야 할 것을 말씀한 것이다.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흔들리지 말라 말은 이것이 여게 갔다가 저게 갔다가, 이것 취했다가 저것, 이 감사에 마음이 기울어지고 여게 기울어졌다가 저게 기울어졌다가 자꾸 이렇게 창기 모양으로서 자꾸 창기성으로 그 인격이라는 것이 이렇게 저렇게 요동되는 그것을 말한다.
우리가 이렇게 지극히 큰 무한한 멸망 가운데 있다가 무한한 대가를 주님이 치르시고 무한한 구속을 우리에게 입혀 주셔서 무한한 소망이 우리에게 있고 무한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무한하신 분들이 보증을 했다 말이오. 무한하신 진리가 보증했고 무한한 이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 보증을 하셨고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라” 이 무한성에 대해서 흔들리지 말라. 일반적으로 보면 여반이 남반보다는 좀 예민하고 날쌔다. 그러나 인내력 견고성이 없고, 흔들리지 안한 견고성이 없고 흔들리지 안하는 이런 면이 약해서 오히려 남반만큼 구원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러니까 처음에 어떤 가정이라도 처음에 믿을 때는 여자가 먼저 신앙을 지키지만, 마지막에 남자가 신앙생활을 턱 시작하고 나면 여자는 평생 죽는 날까지 그 남편에게 언제든지 믿음에 대한 철거리 노릇으로 뒤에 믿음에 방해하면서 따라오는 그것으로써 여생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 때문에 “견고하며 흔들리지 마라” “견고하며 흔들리지 마라” “견고하며 흔들리지 마라” 평생 자기가 마음 아파 가슴을 치면서 회개를 해도, ‘나는 견고하고 흔들리지 안해야 되겠다. 견고하고 흔들리지 안해야 되겠다.’ 견고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 이것을 우리는 이번 기회에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요한은 마귀 우리에게 와서 역사 하는 그 모형을 말할 때에 뱀의 꼬리 같다 했다. 자꾸 시간이 가면 갈수록 대속의 은혜와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서 한 각종 일을 믿지 못하고 흔들리게 하고, 또 흔들리게 해서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 불평하는 자로 만들려고 쉬지 않고 힘쓰고 있다.
4. 대속의 은혜에 무한 감사하며 살아가라.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감사하라!!
오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 기적의 역사를 잃어버리는 것이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라고 증거 받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무한한 대가를 치러서 구원하신 이 역사를 잊어버리지 않기를 원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그 대가를 기억함으로 무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감사할 제목이 많은 중 가장 감사할 제목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우리의 마음속에 사활대속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기쁨의 온도가 조금도 내려가지 않고 오히려 올라가기를 원하신다. 이번 추수감사 주일을 앞둔 일주일간의 삶에서 감사의 온도가 월요일에서 토요일, 주일로 가면 갈수록 올라가도록 힘써라. 바울을 비롯한 앞서 간 선진 중에 이렇게 살았던 자들은 주와 복음을 위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순교의 삶으로 마감하였던 것이다.
우리도 이러한 삶을 살아가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죄, 사망, 마귀, 지옥의 형벌로부터의 이김을 주시려고 무한 대가를 치러 심으로 이김을 주신 구원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여야 한다. 계속적으로 묵상함으로 대속의 사랑을 더욱 깊이 넓게 알아가려는 노력을 힘써야 한다. 그리하여 대속의 은혜에 대한 무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 감사가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바울처럼 이제는 우리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을 기쁘시게만 하며, 슬프게 하는 삶을 살지 않도록 하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고후 5:9)
참조: 8101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