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14 18:06
날자: 2010년 11월 14일 주전
제목: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인생
본문: 시편 78편 12장 - 22절
옛적에 하나님이 애굽 땅 소안 들에서 기이한 일을 저희 열조의 목전에서 행하셨으되 저가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같이 서게 하시고 저희로 지나게 하셨으며 낮에는 구름으로, 온 밤에는 화광으로 인도하셨으며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깊은 수원에서 나는 것같이 저희에게 물을 흡족히 마시우셨으며 또 반석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황야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 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심이여 야곱을 향하여 노가 맹렬하며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가 올랐으니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연고로다
1. 나는 하나님의 기대에 잘 부응(副應)하고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지금까지 전적 하나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 보호, 양육, 인도, 공급하심, 기쁨의 삶을 살아온 우리이다. 아멘!!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이 기적이고,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다. 우리가 보는 것이 기적이다. 듣는 것이 기적이다. 말하는 것이 기적이다. 소화시키는 것이 기적이다. 심장이 계속 뛰는 것이 기적이다. 이 모든 것은 전적 하나님의 전지전능의 능력을 힘입어서 누리고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적적으로 인도 해 주셨고, 지금도 살려 주셨을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3)
우리는 그의 소유요, 그의 백성이요, 그의 자녀요, 그의 양이다. 우리가 이렇게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라면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하게 그를 기쁘시게, 존귀케, 영화롭게, 그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선포한 말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기대에 잘 부응(副應)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나 된 것처럼 착각하고 그와 그의 말씀을 버리고 배은망덕하게 내 마음대로 악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체질(體質)이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육신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 자식들의 사례를 다양하게 생각해 보자.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기적적으로 살려 주시고 지금도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기대가 무엇인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님을 노엽게 슬프게 하지 않고 기쁘게 하는 삶, 받은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를 찾아보고 그 교훈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2. 하나님을 슬프게 한 것들
2.1. 하나님의 뜻(기대)를 저버린 것(7-11).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7-8)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기를 원하셨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잊지 않기를 기대하셨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기대하셨다. 그의 기대와 뜻은 완고하고 패역하며 마음이 정직하지 못한 악을 버리고 그의 계명을 지켜서 정직하고도 순종하는 충성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팍한 길을 걸어감으로 하나님을 슬프게 했다.
‘저희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 율법 준행하기를 거절하며 여호와의 행하신 것과 저희에게 보이신 기사를 잊었도다 (시 78:10-11)
열조들은 비록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었다 해도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 하였고 오히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이들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우리 각자에게 지금까지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섭리하신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그 뜻에 합당한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유다 백성처럼 강팍하고도 완고하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의 은혜들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배반하는 길을 가는 자들은 아닌가 돌아보자. 만약 우리가 이러한 삶을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면 즉시 회개해야 한다.
2.2. 기적을 통한 구원의 은혜를 잃어버린 것(12-
2.2.1. 열 가지 재앙을 통한 기적적인 구원의 역사를 잃어버린 것(12)
‘애굽 땅 소안 들에게 기이한 일을 저희 열조의 목전에서 행하였으되’(12절). 애굽땅 소안 들에서의 기이한 일이란 하나님께서 바로의 강퍅한 마음을 꺾으시기 위하여 애굽 땅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을 뜻하고 있다. 이 열 가지 재앙을 간략하게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출애굽기 7-11장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집트 땅에 내리신 심판으로서 이 심판은 장차 대환란 때 이 땅에 임할 심판을 보여 준다.
첫 번째 3가지 재앙: 1. 나일강의 물이 피로 변함 -나일강, 즉 강물의 우상에 대한 심판(출7:14-23) 2. 개구리- 개구리들을 경배한 것에 대한 심판(8:1-15) 3. 이 -땅의 신인 셉과 벌레를 숭상한 제사장들에 대한 심판(8:16-19).
두 번째 3가지 재앙: 4. 파리들 - 태양신인 라의 아들인 수 신, 곧 공기 신에 대한 심판(8:20-24). 5. 가축들에게 내린 질병- 신성화된 황소인 아피스에 대한 심판(9:1-7) 6. 사람들과 동물에 생긴 종기- 수테크 또는 티폰에 대한 심판으로 이들에게 바쳐진 희생물의 재물이 공기 중으로 흩어짐- 수신에 대한 심판(9:8-12).
세번째 3가지 재앙: 7. 우박으로 인해 수확물의 파괴- 수신(水神)에 대한 심판(9:13-35) 8. 메뚜기로 인한 수확물의 파괴-신성화된 풍뎅이에 대한 심판(10:1-6). 9. 흑암- 파라오가 자신의 아버지일 것이라고 여겼던 태양신 라에 대한 심판(10:21-23)
마지막 재앙: 10. 첫 번째 난 자들(장자)의 죽음(출11-12)- 히브리인의 모든 사내아이들을 나일강에 버리라는 명령을 내린 대규모의 유아 살해 죄를 지은 이집트 민족에 대한 심판(출1:22).
이 열 가지 재앙은 노예 상태로 있던 하나님의 백성을 해방시키려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내리신 초자연적 능력에 의한 재앙들이었다. 이것을 잊을 수 있다고 보는가? 도무지 잊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것을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유다 백성이 이 기사를 잊어버렸다는 것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의 희생의 공로로 구원 얻은 것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지는 않나 돌아보아야 한다. 또한, 이것은 회개의 생활을 잊어버린 것과 같다 할 수 있다. 우리 또한 그들과 같은 동류(同類)의 사람이 아닌가?
2.2.2. 홍해에서의 구원을 잊음(13)
‘저가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같이 서게 하시고 저희로 지나게 하셨으며’(13절). ‘무더기’는 “강둑”을 말한다. 바다가 갈라져서 강둑이 생기는 일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요 역사이다. 이것을 잊을 수 있다고 보는가? 도무지 잊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것을 잃어버렸다. 이 사건은 유대 백성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 완전히 애굽으로부터 탈출하여 자유민이 된 것을 말하고 있다. 이때 홍해의 물은 모세의 지팡이에 의하여 갈라졌다.
우리는 성령과 물과 피로 구원함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이 안에서만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것은 홍해의 구원을 잃어버린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행위이다. 유다 백성이 홍해 사건을 잃어버릴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잃어버린 그들과 같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의 사건을 통하여 구원 얻은 것에 대한 감사를 잃어버리는 것을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인생은 아닌가?
2.2.3. 기적적인 인도를 잃어버림(14)
홍해를 건너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현현하심을 눈으로 보았다. 율법을 받았다. 보이지 않게 일하시던 하나님이 가시적 현상인 율법으로 그들 가운데 거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중생 이후 성령의 내주와 말씀의 사역을 상징한다. 유다 백성이 이것을 망각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 대신 애굽으로의 환원을 기도했다는 것을 뜻하며, 그것은 성도의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온 밤에는 화광으로 인도하셨으며'(14절). 시내산에 현현하신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출발할 때부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했다. 낮에는 사막의 열기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는 구름기둥으로, 온 밤에는 그들이 칠흑 같은 밤,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들짐승들이 그들에게 가까이 못 오도록 '화광'으로 인도해 주셨다. 실제로 그곳은 낮에는 너무 덥고 밤에는 너무 춥다고 한다. 이런 기적적인 보호의 역사를 매일 경험하며 살았다. 그러나 그 후손들은 그 은혜를 잊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지만 잃어버렸다.
우리 또한 그들과 같이 지금까지 지나 온 것이 이런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를 통해서 예수를 믿고 있고, 숨 쉬고 있고, 보고 있고, 듣고 있고, 말하고 있고, 각종 활동을 함에도 여기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없이 살아갈 때가 대부분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들과 다른 것이 뭐가 있는가? 한 번 같이 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남의 이야기가 아니군요!” “바로 내가 하나님을 슬프게 한 당사자이군요!”
2.3. 기적적인 양육과 공급하심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배반함(15-18)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깊은 수원에서 나는 것같이 저희에게 물을 흡족히 마시우셨으며 또 반석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황야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시 78:15-18)
하나님께서는 물이 없고 귀한 광야에서 반석에서 생수를 나도록 하셔서 그들의 갈증을 흡족히 충족시켜 주었다. 그리고 매일같이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에게 하나님은 양식을 공급하셔서 건강과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 놀라운 은혜들을 까마득히 잃어버리고 계속하여 범죄하고, 하나님을 시험하고,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는 일만 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탐심을 경계하고(참조, 눅 12:15) 그리스도의 살(참조, 요 6:51)로 표현된 '말씀'만이 영원한 양식이라는 뜻이다. 이 외에 것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이것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시켜 보면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참조, 고전 10:4), 생수는 성령을 상징한다(참조, 요 7:38-39). 하나님은 성령의 끊임없이 성령님을 공급하여 주심으로 성령의 열매(참조, 갈 5:22-23)를 우리 심령 속에 맺게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이, 그의 본능적으로 성령의 역사 하심을 무시하며 살아왔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하루에 몇 번이나 성령의 인도를 구하고 그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살았는가? 자신에게 질문해 보라. 이 은혜를 배반한다는 것은 성령의 사역을 거부하는 것이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사함 받을 길이 없다고 하셨다(참조, 마 12:31, 32). 이 얼마나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일들인가?
2.4.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과 완고함(18-22)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 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심이여 야곱을 향하여 노가 맹렬하며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가 올랐으니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연고로다’(18-22)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생활에서 신령한 음식과 음료를 마시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 불신앙적 반항과 시험한 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완고했을 뿐만 아니라 불성실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 속에 매일 살았으면서도 영적인 것보다 물질적인 것, 미래적인 것보다 현세적인 것에 더 큰 관심을 뒀다. 이것은 그들이 애굽에서 오랫동안 노예 생활을 하는 가운데 몸에 밴 노예근성의 소치로 이해 된다. 그들이 하나님을 슬프게 한 것의 극치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19, 20절)
이보다 더 강팍한 하나님께 대한 저항과 불신앙적인 질문이 있을 수 있을까? 이들은 이미 출애굽 과정에서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했다. 홍해를 육지같이 갈라 건넌 체험을 하였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강림 하심을 목격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심으로 매일 보호의 은혜를 입고 살았음에도 그들의 불신앙과 완고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모든 역사들은 하나님 전능의 능력이 아니면 하나도 일어날 수 없는 사건들이었다. 이러한 놀라운 역사들을 경험하고도 그들은 먹을 것을 걱정하고 마실 것을 염려하며 하나님을 시험하고 항거하기를 그치지 아니했다.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우리가 하나님이라면 이들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말이다.
매일 떡과 고기를 먹으며 살아왔음에도, 반석을 쳐서 물을 흡족히 마셨음에도, 떡과 고기를 예비하실 것을 의심한 그들.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은 그렇게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완고한 죄로서 그 전지 전능성을 불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단호히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심이여 야곱을 향하여 노가 맹렬하며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가 올랐으니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연고로다’(시 78:21-22)
하나님께서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도 확실한 말씀을 하실 때 사용하는 강조법이다. 이 말씀에서 세 번이나 ‘노’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화나게 할 수 있는 대로 다 화를 나게 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하나님의 속을 천불나게 한 강팍이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아버지이시며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인이시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 19:26).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 인자하심과 그의 성실을 온전히 믿는가? 지금 우리가 처한 환경을 보면서 내가 계산해 볼 때 환경이 별로이고 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환경에 피동되어 하나님을 불신하는 자는 아닌가? “하나님께서 이 문제는 해결 해 줄 수 있겠나?” “이 사람은 변화시켜 줄 수 있겠나?” “이 자녀는 변화시켜 줄 수 있겠나?” “하나님이 이 셀 식구는 변화 시켜 줄 수 있겠나?” “이 문제는 해결 해 줄 수 있겠나?” “우리에게는, 우리 가정에는, 우리 교회에는 무슨 역사가 일어나겠나?”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앞으로의 역사하심에 대한 불신앙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살아왔는가?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자들이다. 오늘 2010년 11월 14일을 계기로 하여 다시는 이런 불신앙적인 마음과 생각을 완전히 정리하도록 하라! 지금까지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신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다. 아멘!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려고 하면 다 하실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불신앙과 완고함이 문제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3.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마라! 다시는 하나님을 불신하지 마라!!
출애굽의 은혜를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의 은혜로 전적 죄, 마귀, 사망에서 구원함을 얻은 우리이다. 이 구원을 얻는 데 있어서 우리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구원의 은혜뿐 아니라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의식주의 모든 문제와 살아오면서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지금 이 순간까지 누리고 있는 은혜와 복들)도 전적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지내 왔다.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의 인도와 양육의 은혜로 예배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섭리 역사를 항상 기억하고 감사, 찬송, 노래하며 기쁘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영육의 모든 문제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지금까지 베풀어 주셨던 사랑, 선하심과 자비하심, 인자하심, 긍휼로 은총 베풀어 주실 것에 대한 믿음을 확고하게 가지도록 하라.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마라.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마라!!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은 그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고 자원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항상 먼저 구하고 그 뜻인 진리와 영감을 따라서 순종하는 삶이다.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고 겸손하게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어떤 경우도 슬프게 하지 마라!! 그의 뜻을 구하고, 그 뜻을 따라 순종하며 충성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만 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전도자는 말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3-14)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역사를 저버리고 그의 뜻을 무시하고 불순종함으로 그를 슬프게 하는 자가 되지 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 충성하며 살아감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주인공 되세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그의 기쁘신 뜻을 계속 이루어 가시고 우리는 거기에 주인공으로 쓰임 받는 자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행 13:22)
-----------------------------------------
셀 나눔 제목
☞ 본문(시 78:10-22)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그가 행하신 기적의 역사를 잊지 않고 계명을 지키며 정직하고 충성스럽게 살아가기를 기대하심. 아울러 이렇게 살아가지 않고 그의 뜻과 소원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것을 보시면 격렬한 노를 발하시는 분.
‣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과 의심, 완고한 것을 보시고 격노하시며 슬퍼하시는 하나님.
☞ 내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 이미 역사하신 모든 역사를 기억하고 잊지 않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을 완전히 버리라.
☞ 앞으로는 더욱더 큰 구원 은혜의 역사를 일으켜 주실 줄 믿고 모든 삶의 현장에서 승리하며 살아가라.
* 셀 모임을 하기 전에 미리 나눌 체험담을 준비하여 나눕시다.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11-14 18:06)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646 |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 윤봉원 | 2010.11.25 | 825 |
645 | 거룩해야만 하는 이유 | 윤봉원 | 2010.11.23 | 1011 |
644 | 성경적 감사 생활 | 윤봉원 | 2010.11.20 | 844 |
643 | 하나님 말씀의 목적 | 윤봉원 | 2010.11.18 | 663 |
642 | 대속의 은혜를 무한(無限) 감사하라 | 윤봉원 | 2010.11.14 | 752 |
641 | '렛츠 통! 생각과 마음 | 윤봉원 | 2010.11.14 | 836 |
» |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인생 | 윤봉원 | 2010.11.14 | 812 |
639 | 배울 때 주의할 것 | 윤봉원 | 2010.11.04 | 751 |
638 | 하나님 우리 아버지 | 윤봉원 | 2010.10.31 | 1322 |
637 | 유일한 길,진리,생명이신 예수 | 윤봉원 | 2010.10.31 | 722 |
636 | 낮추시고 높이시는 하나님 | 윤봉원 | 2010.10.27 | 2386 |
635 |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라 | 윤봉원 | 2010.10.20 | 775 |
634 | 고난과 역경을 이기려면 | 윤봉원 | 2010.10.17 | 747 |
633 | 하나님의 등용 조건과 버린 이유 | 윤봉원 | 2010.10.02 | 716 |
632 | 복과 저주를 주시는 하나님 | 윤봉원 | 2010.09.26 | 830 |
631 | 놋기둥과 놋바다 | 윤봉원 | 2010.09.21 | 1058 |
630 | 다윗의 삶의 태도 | 윤봉원 | 2010.09.15 | 774 |
629 | 다윗의 기도와 응답 | 윤봉원 | 2010.09.15 | 1181 |
628 | 시므이의 죽음 | 윤봉원 | 2010.09.12 | 1665 |
627 | 최고의 행복과 최고의 불행 | 윤봉원 | 2010.09.09 | 7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