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4:62010103102날자: 2010년 10월 31일 주후
제목: 유일한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
본문: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 내가 아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나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믿고 있는가? 많은 사람이 말하는 것과 같이 “세계 삼대 성인 중의 하나”로 아는지? “지식적으로 예수라는 분이 있다.” 정도로 아는지? “부모님이 믿는 예수 나와는 상관없다.”는 아닌지? “애인이 믿는 예수지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느냐?” 아니면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특별한 관계의 예수님인지? 냉철하게 우리 자신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돌아보자.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이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이라는 이름은 안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과 삶과는 전혀 무관(無關)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중에 일부분의 사람들만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이라는 분과 어떤 관계를 하고 있는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살펴보고 그 교훈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2. 예수님은?
2.1. 하나님을 찾아가는 유일한 길
하나님은 우리를 낳아준 아버지시다.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를 영원히 보호해 주시고, 길러 주실 분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책임져 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영원히 공급해 주실 하나님이시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를 영원히 기쁘게 해 주실 하나님이다.
이 일곱 가지는 아버지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이 주시는 주심을 받는 길이 무엇이냐?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느냐? 받는 길이 무엇이냐? 받는 길은 예수님 믿는 것뿐인 것을 주님이 말씀했다. ‘내가 길이요…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자 없다.’ 예수님이 길이시니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일곱 가지를 받는 유일한 길이라는 선포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도 좀 명상해 보아야 한다. 이 세상에는 길이 너무 많다. “이쪽으로 가야 그 일곱 가지를 다 받는다.” “저쪽으로 가면 받는다. 이게 준다. 저게 준다.” 무책임하게 “내가 준다. 네가 준다.” 인간들은 자신을 하나님처럼 여겨서 이게 준다. 자기 남편은 이것을 줄 수 있다고 아내가 그렇게 믿으면 이러다가는 큰 낭파 당한다. 이 아내를 경계하면서 “나는 네가 소망하는 그런 믿음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나는 인생이다. 나는 생명이나 권위가 극히 제한된 존재기 때문에 그런 실력 없다. 이러니까, 나를 믿다가 왕창 낭패당하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믿어라.” 이렇게 말해 주는 것이 사랑인데 어쨌든지 자기를 인정해 주면 좋다고 이러니까 마지막에 가서 가죽 껍데기 휘뜩 벗고 보면 다 그렇게 “나를 속인 제일 첫째 원수가 남편 이놈 네다.” “날 속인 네가 아내 네다.” 이래서, 전부 이렇게 싸워서 원수의 그 복수 하는 그것이 지옥이다.
하나님 아버지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데 이분을 만나야 하겠는데 이분을 내가 만나야 하겠는데 이분을 어떻게 찾아가야 하느냐? 이분을 찾아가는 길은 예수님을 믿는 것밖에 없으므로 내가 길이라고 말씀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사람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기에, 세상에는 수많은 거짓부리 가짜 구주가 있고, 세상에는 수많은 가짜의 그 길이 있는데 이 수많은 길 가운데 참된 길은 하나뿐이다. 하나뿐인 이 한 길을 어떻게 우리가 찾느냐?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이 길을 찾게 하신 것은 영원 전 선택을 입었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었고, 우리가 중생 됐기 때문에 이것을 찾았다. 이거 전부 하나님이 순전히 객관의 은혜이다.
2.2. 하나님 만나는 유일한 이치
‘내가 진리요’ 하는 말은 진리라 말은 “참된 이치라”는 말이다. 참된 이치라 말은 영원 자존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시요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그분의 뜻이라 그 말이다. 진리라 말은 그분의 뜻이라 그 말이다. 예수 믿는 것이 그분의 뜻이라. 이 대주재가 당신의 가지신 일곱 가지는 예수 믿는 것으로만 찾아와서 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정해 놓아 버렸다. 인생의 구원은 예수님뿐으로 하나님이 정해 놨다 그 말이다. 인간들이 정한 것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 놨기 때문에 인간들 끼리 “이 길이 된다.” “저 길이다.” 아무리 해 봤자 상관이 없다. 하나님은 상관하지 않는다. 천인 만인이 무슨 길이 인생 구원이 있다고 한다 해도 하나님이 눈이나 꼼짝하겠습니까? “안 듣고 그 길 가려면 가거라. 나는 이 심판에 다 모조리 심판 치루고 말뿐이지 아무 소용이 없다.”
진리라 그 말은 진리라 말은 이 일곱 가지 인생의 구원을 가지신 하나님 아버지가 일곱 가지를 얻는 데에는 “요대로 해라.” 하고서 당신이 정해 놓은 법칙이 그것이 진리라 말이다. 법칙이라 말이다. 하나님이 정해 놓은 법칙이라 말이다. 일곱 가지를 찾는 바른 이치라 말이다.
이러기 때문에, “천하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요즘은 예수 교인들이 이 길 외에도 구원을 얻는 다른 길이 있다며 종교 통일을 말하나 그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이는 하나님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이미 우리에게 와 있는 것도 그분이 주신 것이고 앞으로 주실 이도 그분뿐이요, 주실 실력도 그분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없다. 이 분을 찾아가는 바른 길은 예수님뿐이다. 이분을 찾는 바른 이치는 예수님뿐이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확정을 지어야 한다.
2.3. 하나님과 결합되는 유일한 방편
‘내가 생명이라.’ 말은 생명은 안 죽고 사는 것이 생명이다. 우리 이 고깃덩어리의 생명은 생명이 아니다. 이것은 생명이 아니고 이것은 죽은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루 살면 사는 것만큼 자꾸 죽어지는 것이지 이것은 사는 것 아니다. 생명은 어떤 게 생명인가? 조물주하고 딱 들어 붙는게 생명이다. 죽음은 뭐인가? 조물주와 떨어지는 것이 죽음이다.
내가 진리요 생명이라 그 말은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과 딱 들어 붙게 하는 딱 들어 붙임이다.” 그 말이다. “조물주와 결합시키는 결합이다.” 그 말이다. 하나님과 결합되면 산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요 우리의 진리요 우리의 길이다.
3. 예수님을 믿는 것
3.1.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것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 믿는 것은 다섯 가지이다. 첫째는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신구약 성경 문서 계시의 이 말씀을 어기지 않고 이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다. 이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말씀대로 살라고 애쓰다가 또 넘어지고 애쓰다가 또 넘어지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다.
반대로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람, 말씀대로 사는 것을 자기도 안 살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사는 것을 빙글빙글 하면서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훼방을 하는 자이다. 우리가 택함을 입은 자 가운데도 예수님을 배척하는 자도 있고, 예수님을 믿으려고 애쓰는 자도 있고, 예수님을 믿은 자도 있고, 믿은 자는 말씀대로 한 자는 믿은 자요. 믿으려고 애쓰는 자는 말씀대로 하려고 하다가 또 넘어지고 행하려고 하다가 또 넘어지니까 자꾸 말씀대로 살라고 애를 쓰는 자요 예수님을 배척하는 자는 중생된 사람이라도 저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안할 뿐 아니라 옆의 사람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야 너무 그렇게 지나치게 믿지 마라. 과격하게 믿지 마라 너무 지나치게 예수 믿는다.” 하는 그것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막바로 필요한 일곱 가지를 가지신 하나님 아버지를 배척한 사람이기 때문에 일곱 가지를 얻을 수 없는 사람이니까 빨리 거게서 돌아서야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내가 예수 믿어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 같이는 예수 믿지 안 하련다. 너무 그렇게 지나치게 예수 믿는다, 뭐 누구는 그래 지나치게 예수 믿는다.”라는 그것이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자기에게 화가 마구 벼락같이 떨어지고 있다. 그 한 마디에 화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것이 성령 훼방(毁謗)죄(罪)이다. 내가 말씀대로 살지 못할지라도 말씀대로 사는 사람을 보고 부러워하고 찬성하고 존경하고 나도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좋고 옳은 줄 알고 애를 쓰는 그 사람이 돼야 하지 자기도 살지 안하고 다른 사람 말씀대로 사는 것도 훼방을 하고 저와 같이 불의에서 죄짓지 않는다고 그와 같이 지금 하는 그 사람은 비록 택한 자라도 아버지를 배반하는 사람이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요, 일곱 가지 은혜를 배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행위에 따라서는 상당한 보응으로 조만간에 반드시 그에게는 이 일곱 가지가 없는 사람 될 것입니다. 일곱 가지 차차 차차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 믿는 교인들이 다 모두 비참하게 된다.
작은 자라의 대통령만 자기의 아버지가 돼도 세력이 있는데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아버지가 아버지 됐음에도 왜 이렇게 비참하게 됩니까? 이것은 소금이 맛을 잃었기 때문에 쓸데 없어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힘이 돼서 있는 이 현상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는 것은, 믿으려고 애를 쓰는 것은 말씀대로 살라고 말씀 어기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 믿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다.
3.2. 영감을 따라 사는 것
또 예수 믿는 것은 우리가 말씀대로 행동하는 동시에 내 마음과 정성이 주님에게 바쳐지는 성신의 감화 감동을 받아서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 이러니까 말씀대로 행하면 자기가 성신의 감화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탄식을 하면서 성령의 감화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예수님을 믿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우리는 전도 하면서, 기도하면서 마음과 욕심, 정신도 다른 데 두고 얼마든지 성신의 감화는 소멸하고 살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대로 살고 성신의 감화와 감동에 복종하는 그것이 돼야만 비로소 두 가지 예수 믿는 일을 한 것이다.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다가 못 살면 또 회개하고 말씀대로 살기를 목표 하고서 애를 쓰고 자기 마음을 딴 데 기울이지 안하고 마음과 정성을 들여서 성신의 감화 감동을 받아서 그 감화를 소멸하지 안 하고, 껍데기 말씀대로 사는 껍데기와 속에는 성신의 감화 되어서 사는 이 일을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예수님 믿는 일을 두 가지 한 일이다. 이 두 가지 하는 것은 입문이다.
3.3. 사죄를 믿는 것
이 두 가지를 하면 무엇이 이루어지는고 하니 이 두 가지를 하면 세 가지가 이루어진다. 이 두 가지를 하면 “주님이 내 모든 죄를 대신해서 형벌 받아서 나에게 대형함으로 사죄해 주셨다. 나에게는 하나님의 지극한 심판 그 공심판에 너는 죄 없다 인정함을 받아서 사죄를 주셨다. 나는 주님의 대형의 공로로서 나는 사죄함을 받아서 나는 죄 없다. 죄 없는 사람이다. 사죄의 공로를 받아서 나는 죄 없는 사람이라.”라는 것이 자기에게 믿어지게 된다. 이 두 가지를 하면 믿어지게 된다. 말씀대로 행하고 영감대로 행하게 되면 이 사죄가 믿어지게 된다. 사죄는 믿어지는 그게 문제이다.
주님은 나를 나의 형벌을 대신해서 죽기까지 하셔서 내 죄의 형벌을 받으셨으므로 내 죄를 다 사하셔서 나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사죄를 받아 죄 없는 사람이라 하는 것이 믿어지는 것, 요거 믿어지면 된다. 요거 믿어진다는 것이 그게 그렇게 쉽게 믿어지는 게 아니다.
예를 들면 공산주의가 와서 죽인다고 할 때 “주님이 나를 지키시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겠느냐? 주님이 날 지키신다, 나와 함께 계신다, 나를 지키신다, 전능자가 지키신다 전지자가 지키신다, 주권자가 지키신다.” 입으로는 아무리 해도 믿어지지 않는다 말이다. 믿어지지 않으니까 두려움이 많고 평강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다 떨어지고 다 지는 것이다. 이 믿어진다는 것은 그렇게 쉽게 믿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말씀대로 평소에 살고 어기지 않고 말씀대로 살라고 애를 쓰고 또 어겼으면 또 말씀대로 살라고 달라들고 영감대로 살라고 애를 쓰고 말씀대로 살라고 애를 쓰고 영감대로 살라고 애를 써서 말씀대로 산 것만큼 영감대로 산 것만큼 사죄가 믿어진다. 이 사죄가 믿어지고 “주님이 나를 죄 사해서 나에게 사죄를 주셨다.” 믿어진다. 믿으려고 한 게 아니리 믿어진다.
3.4. 칭의를 믿는 것
다음으로는 칭의가 믿어진다. “아, 나는 아무런 행함이 없지만,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나를 대신해서 행하셔서 하나님의 지공한 심판에 나는 하나님의 법을 다 실행한 자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심판에 내가 면제돼서 구출돼 나왔다. 주님은 나를 대신 행해 주셨기 때문에 대신 행해 주신 이 대행이 나의 행함의 의가 됐다.” 하는 요것이 믿어진다. 요게 믿어질 때에 믿어질 때에 마귀는 우리를 침노하지 못한다. 요게 믿어질 때에 마귀가 우리를 침노하지 못하는 것이고 주님이 나를 대행해서 사죄가 믿어질 때에 죄가 와서 우리를 농락하지 못한다. 가까이 오지 못한다.
3.5. 하나님과 화목을 믿는 것
주님이 나를 대신해서 내가 원수된 것을 아버지 하나님과 화목의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죽기까지 해서 하나님과 나와 화목을 시켜 주셨다. 하나님 아버지와 나와는 화목이 됐다. 화목 됐다는 요 사실이 믿어지는 것. 하나님과 나와는 하나다. 하나님과 나와는 한 덩어리다. 화목이 돼서 하나님과 나와는 둘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신인 양성 일위와 같이 일위는 되지 않지만 나와 동거 동행의 결합이다 하는 요것이 믿어질 때에 사망이 가까이 오지 못한다. 사망이 못 오는 것이다. 사망(死亡)과 해(害)가 가까이 못 온다. 그 사람은 세상을 떠났으면 영원한 생명으로 이 몸을 변화 받기 위해 그렇지 다시는 죽음이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요 다섯 가지를 가지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처음에 첫째 것 하나를 가지면 오랫동안 힘쓰면 둘째 것이 된다. 첫째 것 가지면 나중에 둘째 것이 되고. 첫째 것과 둘째 것이 됨에 따라서 사죄가 믿어지는 믿어짐이 차차 차차 생기고 칭의의 믿어짐이 생기고 화친의 믿어짐이 생긴다. 이래 자꾸 이겨는 믿어지는 것이 이것은 뭐 행하는 게 아니라 믿어지는 것이다. 믿어지는 것이 어데서 믿어지느냐? 말씀과 영감에서 믿어지는 것이다.
셋째로서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우리가 굳게 잡고 예수님을 믿는 일할 것, 예수님을 믿는 일을 하면 예수님은 자기의 예수님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가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는 그 이치대로 했기 때문에 그 만나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와 결합이 된다. ‘나는 생명이다.’ 그 말은 하나님으로도 결합이다. 하나님으로 결합이다. 그러면, 하나님과 나와 그사이에 예수님이 들어서 거물장과 같이 꺾장(연결 고리)과 같이 이렇게 꽉 찍어서 결합이 된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시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와 나와의 둘이 결합시키는 둘이 한데 들어 붙여서 다시 떨어지지 못하도록 결합시키는 것이 그것이 중보자 예수님이시다. 그 예수님이 우리의 영은 결합을 시켰는데 영원히 떨어지지 못한다. 우리의 마음과 몸은 결합 됐다가 떨어졌다가 하는데 결합된 그 분자, 결합된 분자, 결합된 요소, 성화된 요소는 다시는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4. 진리와 영감 순종함으로 하나님 아버지 만나 하나님 아버지가 주시는 모든 은혜를 누리는 주인공이 되라.
그런고로 우리는 세상에 이 일곱 가지가 매일 우리에게는 관련되는 것이니까 자기의 근원을 찾는 것, 자기를 참 사랑해 줄 그 사랑을 찾는 것, 자기를 길러 주실 그 길러 주심을 찾는 것, 자기를 보호하심을 찾는 것, 자기를 책임져 주실 그분을 찾는 것, 내게 영원히 필요한 것을 은혜로 주실 그분을 찾는 것, 나를 영원히 기쁘고 평안하게 해 주실 이를 찾는 것, 나를 영원히 안보 해 주실 이를 찾는 것, 이 찾는 것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찾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찾지 못한다. 왜? 예수님이 뭐이기에? 내가 길이다. 이 아버지를 찾는 유일한 길이다. 또, 이 아버지를 찾는 진리다. 아버지를 찾는 이치다. 아버지가 정해 놓은 법칙이다. 내가 생명이다. 이 하나님 아버지와 연결을 시키는 연결 고리이다. 하나님과 우리와 쩍 달라붙게 하는 것을 가리켜서 “내가 생명이라.”라고 말씀하셨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이것을 우리가 언제든지 기억하고 예수님 떠나면 죽는다.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님과 떠나면 죽는다. 우리가 예수님 잊어버리고 하루종일 돈벌이를 했던지, 무엇을 했던지 예수님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하루종일 살았으면 그날 산 것은 전부 죽은 생활이요, 우리 심신의 기능은 다 죽고 송장 돼 시체(屍體)됐다. 우리의 생각에서 예수님이 떠나지 안해야 그 생각이 살았고 우리 마음에서 예수님이 떠나지 않아야 우리 마음이 살았고 우리의 소원이 예수님과 끊기지 않고 연결된 소원을 했어야 우리의 그 소원이 살았다. 우리의 계획도 다 그런 것이다.
그런고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안하면 아버지에게로 올 사람이 없느니라.’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말씀을 단단히 기억하라.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는 만나지 못한다. 상관이 없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진리와 영감에 순종함으로 예수님을 믿는 생활을 잘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죄가 믿어지고, 칭의가 믿어지고, 화친의 결합이 실상적으로 믿어짐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 그분이 주시는 모든 은혜를 금생 내생 온전히 누리는 복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
참조: 85041033; 85041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