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역경을 이기려면

2010.10.17 21:16

윤봉원 조회 수:747 추천:75

약 5:7-112010101701날자: 2010년 10월 17일 주전
제목: 고난과 역경을 이기려면
본문: 야고보서 5장 7절 - 1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1. 어려움을 당하고 있나? 또 어떻게 극복해 나가고 있나?
지난주에 선지학교 강의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나는 지금까지 진행된 학생들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작년에 입학했던 2학년들 중에서 세 사람이 중간에 힘들다고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또 있는 학생 중에서도 집으로 돌아가려고 기차 표까지 사서 두었다가 가지 않고 지금까지 또 남아 있는 학생도 있었다. 심지어 한 한 학생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 기적이다는 전도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강의하는 과정과 쉬면서, 돌아와서 이러한 상황들이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는 자연계시라고 본다. 왜냐하면, 선지학교 학생들이 겪는 갈등이나 우리가 겪는 갈등은 상황과 종류만 다르지 그 질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왜 믿는 성도가 자살할까요? 왜 믿는 성도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마 19:6)라고 말씀하셨지만 이혼하는 사례가 자꾸만 널어갈까? 총각이 유부녀를 사랑하는 것은 왜일까?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 ‘덕을 세우라’라고 말씀하셨지만 왜 성도간에 화목이 되지 않고 교회 내외에서 다투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덕이 되지 못하는 일들이 발생할까? 왜 사기를 칠까? 이외에도 많은 사례들을 통하여 성경적이지 못한 것들을 접하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고민해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가 겪는 다양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려고 힘썼나요? 어떻게 극복해 나가고 있나요?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여기에 대해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교훈을 얻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2. 고난과 역경을 이기려면
2.1. 농부에게서 때를 기다리는 인내를 배워라
2.1.1. 길이 참으라(7).
사도들이 처음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선포했을 때 초대 교회 성도들은 매우 큰 소망을 안고 신앙에 열중하였다. 그러나 차츰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연되자 성도들은 신앙이 시들해지기 시작했고 개중에는 형제를 원망하는 자들도 일부 생겨났다(9절). 이에 야고보는 이들의 조급함을 꾸짖고,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은 진득한 자세로 기다려야 할 것을 권면한다. 그리고 그 인내의 본으로서 농부와 구약의 선지자들과 의인 욥을 소개한다. 이들로부터 각각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 그 교훈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약 5:7)
7절의 ‘그러므로’는 야고보 사도의 책망과 연결된 말씀이다. 야고보 사도는 부자들이 교만과 게으름, 풍부한 양식들은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마음을 살지게 하는 것과 꼭같다고 하며 책망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의인에 대한 핍박(정죄하고 죽이는 것)의 죄가 가득하다고 책망하였다. 이러한 부자들에게 핍박을 받으며 살아가면서도 제대로 대항도 못하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는 위로의 교훈을 준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고난에 대한 개념 정리가 먼저 필요하다고 본다. 고난은 사람의 의기를 꺾고 몸을 사리게 하는 속성이 있지만 성도는 고난에 의해 굴복당해서는 안 된다.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6~9)
야고보도 같은 맥락의 말씀을 하였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4)
이 두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확정을 지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게 하는 시련의 과정이요, 훈련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온전하고 거룩하고 구비한 자로 자라가는 수입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께서는 고난이 아무리 우리의 육체를 괴롭게 해도 영혼을 죽이지는 못한다고 가르치셨다(참조, 마 10:28). 육체의 고통을 면키 위해 혹은 일시적으로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영혼을 파멸로 몰고 가는 어리석은 성도들이 쇠어서는 안 된다.
희의 의무에 충실하라. 첫째, 비록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즉시 나타나지 않으셔도 ‘길이 참으라’(7절). 그리고 조금만 더 기다리라. 우리가 우리의 사명을 다 완수했을 때는 상을 받기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이런 그리스도인의 인내는 어떤 철학자들이 가르치는 도덕적인 인내와 같이 단순히 필요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혜와 뜻 가운데서 겸손히 순종하는 것이다.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7절).
이를 위해 먼저 야고보는 조급한 성도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소망을 하게 하려고 농부의 인내를 비유로 들었다. 팔레스틴 농부들은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위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린다. 이른 비와 늦은 비는 각각 10월 하순에서 11월 상순 사이에, 4월과 5월 사이에 내리므로 농부들은 비를 기다리는 데 절대로 조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때가 되면 비가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유 있게 비를 기다렸다. 그리고 비가 오기 전에 해두어야 할 일에 전념했다.
성도들이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가 바로 이러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기정사실이다. 때와 기한은 이미 정해졌다. 성도들이 조급히 기다린다고 해서 앞당겨지거나 게을리한다고 해서 늦춰지지 않는다. 따라서 성도들은 재림(혹은 약속의 복, 성공의 때)을 기다리되 주님을 부끄러움 없이 맞이할 준비를 하며 기다려야 한다.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며 기다려야 한다.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에 전념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재림(혹은 약속의 복, 성공의 때)을 기다리는 성도의 최선의 자세이다.
2.1.2. 마음을 굳게 하라(8).
이 말씀은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과제이므로 야고보는 8절에서 다시 반복하고 있다. ‘마음을 굳게 하라(8절)라고 독려(督勵)하였다. 이는 믿음을 견고히 하고, 선행을 꾸준히 실행하며, 어떤 고난과 시험에도 하나님을 따르기로 한 너희 결심을 바꾸지 말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2.1.3. 서로 원망하지 마라(9).
그리고 ‘서로 원망하지 말라’(9절)고 독려하였다. 이는 너희 자신이 불안해하거나 서로 불평함으로 서로 간에 거북한 사이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사방이 공동의 적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고난의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은 서로 간에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도 원수들과 마찬가지로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서로 싸우지 마라. 위대한 심판자께서 가까이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바로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실 만큼 가까이 와 계신다. 조급함과 불만은 우리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하고 우리가 서로 불평하고 원망하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재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
2.2. 선지자들에게서 고난을 정면으로 맞아들이는 자세를 본받아라.
2.2.1. 고난 자원함을 배워라(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약 5:10)
우리에게 선지자의 본을 받아서 인내할 용기를 얻으리라고 격려하고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당한 고난은 본문이 증언하듯이 '주의 이름으로 말한' 충성심의 결과였다. 그들은 악한 세대를 향하여 주의 이름으로 말하면 고난이 올 것을 알았지만, 절대 회피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재림(약속의 복, 성공의 때)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선지자들의 이러한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에게 순종함으로써 오는 고난을 결코 두려워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된다. 즉 세상이 주는 환난과 핍박이 두려워서 주의 말씀대로 실천하기를 주저하는 성도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4)고 권면했다. 그리스도와 고난을 함께 하지 않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을 해도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할 수 없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 8:17)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 가장 혹독한 취급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고 우리도 고난을 기꺼이 용납해야 한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사례들을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2.2.2.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냄을 배워라.
아무리 고통을 자원하는 마음이 뜨거워도 끝까지 견뎌내는 인내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선지자들이 겪었던 고난은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즉 순간만 견디면 되는 고난이 아니었다. 일생에 걸쳐 찾아오는 고난이었으며 생명을 요구하는 고난이었다. 그리스도의 재림(약속의 복, 성공의 때)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선지자들에게서 이러한 인내를 본받아야 한다. 이를테면 생명을 위협받는 극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인내와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 3:18)
2.3. 욥에게서 결말을 보는 인내를 배워라(11a-b).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욥의 인내는 우리에게 아주 특이한 교훈을 준다. 욥은 하루아침에 자녀와 재산과 건강을 잃고 생명만을 부지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 상황에서도 그는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았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 1:21-22)
설상가상으로 그를 위로하러 찾아온 친구들까지도 그의 마음을 심히 괴롭게 했다. 그러나 욥은 그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결코 소망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끈질기게 하나님 만나 뵙기를 간청했다. 하나님은 결국 욥을 만나 주셨으며 욥은 하나님으로부터 과거의 갑절로 축복을 받았다.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그 후에 욥이 일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욥 42:12~17)
우리는 욥에게서 이러한 끈질긴 신앙을 배워야 한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만나 뵙기를 포기해서는 안 되며 그리스도를 만날 때까지 사모하며 기다려야 한다.
2.4. 주님과 그의 인도를 믿고 순종함으로(11c)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약 5:11)
우리의 모든 현실을 우리를 위해서 창조주의 영광 권세 부요 다 내어 놓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한 주님이 주시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롬 11:36)
우리의 고난 환경을 만들 주신 주님은 몸소 이 땅에서 고난을 받으셨지만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사셨다. 주님은 시간과 공간과 종류의 제한을 받지 안 하는 모든 것을 초월한 쾌락이 주님 안에 충만했다. 십자가 상에서도 기뻐 못 견뎠다. 이 모든 피조물에게 추호의 제한도 받지 않는 이 기쁨이 우리가 계명을 지키면 우리에게 생겨진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우리 목표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 15:9~11)
성도들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만나 뵙고 그에게까지 자라고, 그에게서 위로를 받는 것이어야 한다. 세상이 우리의 고통을 해결해 준다고 해서, 혹은 저절로 고통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리스도를 만나뵈려는 우리의 소원이 함께 사라져서는 안 된다. 신부가 신랑을 애타게 기다리듯 재림의 그리스도를 사모하며 기다리는 모든 성도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라는 사실을 확고하게 믿어야 한다. 주님의 진실됨과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불변성,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하신 것, 이 모든 것은 주님이 우리 구원 위해서 예정하신 것이요, 창조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우리를 책임지시고 구원하셨고, 우리 구원 위해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움직인다는 이 사실을 확고하게 믿어야 한다.
주님 자체가 어떤 인격자라는 것을 믿고,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책임진 이것을 믿고, 모든 존재가 이를 위해서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고, 모든 움직이는 순서가 이를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이 사실을 믿고, 이 넷을 확고하게 믿어야 한다. 그러면 그 다음에 우리가 소망하는 것이 반드시 올터인데 오는 그 때는 우리를 시험하는 시험 문제가 먼저 나오고 시험 문제 넘어 시험에 합격 된 자에게 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주님이 우리에게 정해주신 이 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반드시 이 계명을 지켜나가면 밤중 같은 다양한 어려움이 온다. 해산 고통과 같은 그런 고통이 온다. 그럴 때에 우리가 당황하면 안되고 요동하면 안 된다. 그럴 때에 주님이 나에게 계명지키라고 하신 것은 나를 온전하고 거룩한 자로 성장시키시기 위해서, 좋게 하려고, 복되게 하려고, 평안하게 하려고, 쾌락하기 위해서, 욕망 되게 하려고 주신 현실이다.
이 현실이 올 때에 거기에서 하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그것도 확실히 결정이 된다. 또 네가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의 법칙으로 사느냐 네 생각으로 사느냐? 하나님 법칙으로 사느냐 자율로 사느냐? 하나님의 법칙에 순종으로 사느냐 너 위주로 사느냐? 하나님을 위주로 사느냐? 그것보다 어느 것이냐? 어느 것이 위주냐? 어느 법칙이냐? 하는 것이 판정나는 때이다.
판정나는 때이니 그때에 자기가 이제까지 주의 계명을 지켜 나오다가 그럴 때 되니까 “아이구 이제까지는 왔지만 여기서는 이제 하나님 생각하려면 내가 절단 나고 나 생각하려 하면 하나님 절단 나니까 여기에서야 안 되겠다. 나도 있고 하나님도 있는 데는 줄줄 따라나왔지만 나를 절단 내고 하나님 따르지 못하겠다.”라고 하고 순종 포기하면 온전한 구원의 수입을 얻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유혹이 올 때에 주님과 주님의 자비하심, 긍휼히 여기심, 그의 체휼하심과 임마누엘 되심을 믿고 양이 목자의 인도를 따르듯이 끝까지 순종으로 따라가기만 하면 영원무궁토록 주님 보좌 우편에 앉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누리는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복을 받아 누리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누구도 원망 불평하지 말고 인내로 승리하여 영광의 면류관의 주인공이 되라!!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고난과 역경을 이기려면 어떤 자세를 갖춰야 할지를 지금까지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주님 재림의 때가 매우 가까웠다는 것을 생생하게 인식하며 살아가야 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성공과 축복의 때가 매우 가까웠다는 것을 생생하게 인식하며 살아가야 한다. 농부에게서 때를 기다림으로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며, 원망하지 않는 인내를 배워야 한다. 선지자들이 고난을 자원하고,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냄으로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이겨낸 사실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의인이었지만 온갖 고난과 역경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한 욥에게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이심을 분명히 입증한 하나님과 욥의 인내를 본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의 순서이다.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과 역경은 “하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의 법칙으로 사느냐 네 생각으로 사느냐? 하나님 법칙으로 사느냐 자율로 사느냐? 하나님의 법칙에 순종으로 사느냐 자기중심으로 사느냐? 하나님을 위주로 사느냐? 피조물 위주냐? 진리와 영감 법칙이냐? 인간과 세상법칙이냐?”가 판정나는 때임을 명심하고 누구도 원망 불평하지 말고 끝까지 참고 인내하여 심판을 합격으로 통고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영원토록 별과 같이 빛나는 면류관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인공 되세요.
묵상 나눔 모임
☞ 본문(약 5:7-11)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 주의 강림 때까지 농부가 수확을 바라고 길이 참듯이 고난과 역경을 길이 참기를 기대하심.
? 어떤 형제에 대해서도 원망하지 않음으로 심판을 받지 않기를 기대하심.
? 선지자들과 욥의 참음과 인내를 본받아 주님과 주께서 주시는 약속의 복, 결실을 소망함으로 참고 인내하기를 기대하심.
☞ 내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 나에게 어려움을 주는 사람에 대해서 오래 참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을 회개하라.
☞ 약속의 복 곧,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는 최고의 복을 소망함으로 수확을 바라는 농부, 선지자들과 욥의 인내를 본받아 수고하고 인내하는 자가 되라.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10-2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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