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등용 조건과 버린 이유

2010.10.02 22:24

윤봉원 조회 수:716 추천:65

삼상 16:1-232010100301날자: 2010년 10월 3일 주일오전 제목: 하나님의 등용 조건과 버린 이유 본문:사무엘상 16장 1절~23절 1. 나는 하나님께 주인공으로 쓰임 받고 있나? 구경꾼인가? 얼마 전에 우리나라 17세 이하 여자 축구 선수들이 월드컵 대회에 나가서 우리나라 축구 역사상 최초로 FIFA 주관 대회에서 우승했지요? 그래서 여민지를 비롯하여 김아름, 김민아, 오다혜 등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의 영광을 누리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요? 또 그렇게 누리는 사람은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지요. 어느 분야든지 그 분야에서 탁월한 지도자에게 인정받고 쓰임 받기란 절대 쉽지 않은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제가 아이폰을 통해서 영어 공부하는 내용 중에 문단열이라는 사람이 만든 교재가 있다. 그가 강의 중에 한 말이 매우 나의 마음 깊이 남아 있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하루 세 시간씩 10년은 해야 노력해야 한다." 이 말을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을 인용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이제 신앙적인 방향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이야기 해 봅시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 쓰임 받는 주인공이냐 구경꾼이냐로 분류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둘 중에 어떤 사람인가 먼저 생각해 보자. 아래의 질문 둘 중에 어느 쪽인지 한 번 손을 들어볼까요? "나는 이런 부분에서 하나님께 주인공으로 쓰임 받고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다른 사람이 잘 쓰임 받는 것 구경하는 박수 부대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 역사를 홀로 주관하시는 하나님, 마지막에 행한대로 심판하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등용하시고 어떤 사람을 버리시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고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이 땅에서뿐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에서도 하나님께 주인공으로 쓰임 받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사울 등용과 버림의 이유 2.1. 자기의 단점을 발견하고 겸손하였을 때 등용하셨다. 본문에는 세 인물이 등장한. 한 사람은 사무엘이요, 한 사람은 사울왕이요, 또 한 사람은 다윗이다. 사울은 이스라엘 왕 중에 제일 처음된 왕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중에서 이 사울을 택하여 왕을 삼는 것이 좋겠다 해서 그래 사울을 택해서 이스라엘 첫 왕을 삼으셨다.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사울왕에게 사무엘이 말하기를 '왕이 이스라엘 중에 가장 작은 자로 알고 자기를 낮추실 그때에 하나님이 왕을 택해서 기름부어 왕 되게 하셨는데, 하나님이 사울 당신을 왕으로 세우신 것이 자기의 부족점을 깨닫고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자요 무지무능자로 알 그때에, 겸손할 그때에 하나님이 택해서 왕을 삼으셨는데 왕이 왕 되고 난 다음에는 그는 겸손이 하나도 없어지고 도리어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은 저버리고 왕의 사욕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왕을 버려서 왕되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말을 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진리로 주셨다. 자기의 단점을 보고 낙망하는 자도 다 사망이지만, 자기의 단점을 보고 하나님에게 구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근근히 살아나갈 수 있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이것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고 등용 받는 길이다. 자기의 단점을 발견해서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사실을 아는 그자를 하나님은 들어서 쓰시는 것이다. 이것은 진리이기 때문에 어느 시대나 꼭같다. 지금도 그에게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은 또 그 사람도 하나님에게는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어떤 사람이 필요한고 하니 자기의 무지무능, 자기의 실수 실패 이것을 찾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잘못된 용서를 구하며 또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이 사람을 하나님은 들어 쓰신다. 2.2. 교만하여 하나님을 버렸을 때 하나님도 그를 버렸다. 그와 정반대로 자기가 이 세상에 어떤 요소를 구비했든지 '내가 이만큼 구비해 놨으니까' 하여 하나님 외에 자기의 가진 그것의 가치를, '하나님이 함께 안해도 이 가치만 하면 무엇을 할 수 있다.'라고 하나님 없어도 그것만으로라도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어떤 것을 가졌든지 자기의 가진 것을 하나님이 그것을 은혜롭게 이루어 주시지 않아도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다 하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는 첫째 길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만큼 지식이 있으니, 힘이 있으니, 지혜가 있으니, 열심이 있으니, 이만큼 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이런 지위가 있으니, 무엇이 있으니 이것으로" 그것만 가지고라도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버림을 당하는 것이다. 자기에게 있는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화덩어리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안 좋을 것이 없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으시면 화 되지 않을 것은 하나도 없다. 지식도 화가 되고 돈도 화가 되고 잘난 용모도 화가 되고 젊음도 화가 되고 힘도 화가 되고 전체가 화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가진 것에 함께 하지 않으면 전체가 화가 되고 우리에게 가진 것이 없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되고 우리의 가진 것 이것조차도 하나님이 함께 해야 이것이 화가 안 되고 쓸모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것을 요것을 믿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사울왕이 처음에 등용될 때는 이 이치에 맞아서 등용이 됐고, 버림을 받을 때에는 이 이치에 버림받을 그 행동을 했기 때문에 버림을 받았다. 사울이 버림을 받을 때의 행동을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또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삼상 15:18-19) 그는 하나님의 하시는 그 말씀은 무시하고 자기 욕심만 취했다. 보기에 좋은 짐승, 보기에 아름다운 사람, 또 그래 놓고 자기 위해서 승리했다고 또 승리의 승전비를 세우고, 이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해 버리고 자기를 생각하는 데에만 급급한 그것이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는 시작이다.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을 버림받은 대표적인 또 다른 사례를 우리는 솔로몬을 들 수 있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부요로우며 영광스런 왕으로 세움 받았다가 하나님이 금하신 수많은 말들을 수입하고, 금은을 저축하고, 이방 여인들을 많이 두었다. 그리고 강력하게 금하신 우상숭배를 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아서 자신의 신하들로부터 반란과 대적에 곤란을 겪었으며, 노후에 우둔하고 비참한 생을 마감한 것을 확실한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왕상 11장 참조).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잊어버릴라, 잘못 찾을라, 감당치 못하고 버릴라.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마음이 기울어져야 될 터인데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야 뭐라고 하든지 그것은 상관하지 않고 자기편만 생각하였다. 자기 유익, 자기에게 필요한 것, 자기 형편, 자기 사정, 자기 유익, 또 땅에 있는 것 그것만 자기가 욕심부린 그것이 사울왕이 버림을 당한 첫째 원인이다. 지금도 꼭같다. 잘나고 못나고 상관없이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이 내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나님이 내게 지금 무엇을 요구하시며 명령하시는가?" 여기에 전심전력을 기울이고 이 말씀 하나를 순종해서 감당하려고 하는 이 사람이 하나님에게 복을 받는 쓰임 받는 사람이고, 정반대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이야 뭐라고 말씀하시든지, 요구와 명령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저 좋은 대로 제게 필요한 것, 저만 생각해서 땅의 것만 취하기를 날뛰는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버림을 당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꼭 같다. 3.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결과 3.1. 하나님의 신이 떠났다.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나면 그 다음에 어찌 되느냐?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삼상 16:14) 하나님의 신이 사울왕을 떠나 버렸다. 이제까지는 사울왕에게 하나님의 신이 같이 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버리니까 첫째 사울왕에게 일어나는 역사가 영감이 없어졌다. 성신의 감화 감동이 없어졌다. 성신의 감화 감동은 전지의 감동이요 전능의 감동이요 하나님의 원하시는 그 소원의 감동인데 그만 이 감동이 떠나 버렸다. 하나님의 소원이 자기에게 없어져 버렸다. 하나님의 소원이 과거에는 제 소원이고, 소원 중에 하나님의 소원만이 자기 소원이었는데 하나님의 소원이 없어지지, 하나님의 지혜가 없어지지,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지지, 하나님의 영이 떠나는 그것이 벌써 버림을 받은 증거이다. 버림을 받은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은 두려워 떨면서 귀담아 듣지 않고, 청종하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대해서만 급급하였다. 자기에게 대해서만 급급하니까 "이것이 내게 필요 있다. 저것이 내게 필요 있다." 저 좋은 대로 제게 필요한 그것만 취하게 되는 그것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원인이고,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증거는 첫째가 성령이 떠났다. 성령이 떠나면 어찌 되느냐? 하나님의 소원이 자기에게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과 자기 소원이 일치돼야 되는데 하나님의 소원이 자기에게 없지, 하나님의 지혜가 없지,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지지 이것이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사람이다. 3.2. 악신이 사울에게 들어갔다. 그러고 나면, 하나님의 성령이 떠나면 어찌 되느냐? 그다음에 보니까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를 멸하려고, 넘어지고 절단나도록 하려고 거기에 쓰시는 이 악신이 사울왕에게 들어갔다. 이제 사울왕에게 들어가고 보니까 사울왕은 머리가 아팠다. 심히 번민스러웠다. 어떻게 할 일 많고 복잡하고 이래서 머리가 복잡해서 견디지 못할 만큼 번뇌 되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사람으로 신세가 전락하였는지요? 4. 하나님과 동행한 사무엘 4.1. 하나님 앞에 살았기 때문에 등용 받았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함께 했다. 사무엘이 하나님과 함께 했는데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 그 원인을 찾아보면 사무엘이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않았다. 밤이나 낮이나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밖에 없었고, 사모하는 것이, 모신 것이, 의논하는 것이 밤이나 낮이나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서 사무엘이 살았다. 이것이 하나님을 친밀히 사귀는 제일 좋은 방편이다. 하나님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생각하고 항상 하나님 앞에 있는 삶을 살았다. 그는 어머니가 사무엘을 태어난 이후로 일찍이 엘리 제사장 앞에 바쳐서 항상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밤이나 낮이나, 놀아도 거기서 놀고 그저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만 생각하고 이렇게 하나님과 같이 있으면서 하나님만 사모하고 하나님으로 뭐 될 것을 바라지 딴 걸로 뭘 될 것을 바라지 않았다. 이러니까 하나님 앞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것이 사무엘이 하나님과 동행한 그 원인이다. 그는 불학(不學) 무식(無識)한 사무엘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과 같이 있는 것을 좋아하셨다. 당신과 같이 있는 것이 전지와 같이 있는 것이요, 전능과 같이 있는 것이요, 완전과 같이 있는 것이요, 승리와 같이 있는 것이요, 행복과 평강과 생명과 같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같이 있어서 손해될 것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과 같이 있는 데는 돈이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유식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잘나야 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못나도 하나님과 같이 있을 수 있는데 하나님은 무엇을 갖다 바치는 것보다도 당신과 같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도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이라도 부모와 같이 있기를 원하는 것을 부모는 좋아하지 아무리 잘나도 부모하고 같이 있기는 싫어하고 제가 사업으로 날뛰든지 어디를 돌아다니며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참 하나님을 위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부모와 같이 있기를 싫어하면 어떤 것을 대접하더라도 마음에 차지 않다. 부부간도 친구간도 그런 것 같다. 그저 있어만 해 줘도 만족하고 행복한 것이 부부사이 아닌가? 사무엘이 하나님과 같이 한 사람인데 하나님과 이렇게 친밀해진 원인이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같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것은 하나님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 생각하고 하나님과 같이 있기를 좋아하고 하나님과 속삭거리기를 좋아하고 의논하기를 좋아하고 하나님에게 묻기를, 배우기를, 하나님의 도움을, 하나님에게 얻는 것을 좋아하는 이것이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신다. 4.2. 자신과 나라에 평강을 누렸다. 하나님과 이렇게 같이 있어 하나님이 좋아해서 하나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느냐? 이 사무엘은 정치가 중에서 독특한 정치가이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을 맡고 난 다음에는, 이스라엘 나라에 원수들이 많았지만, 원수들이 사무엘을, 사무엘의 정권을 해(害)하지 못했다. 달려들면 그들이 패해서 갔지 이쪽에는 해(害)가 되지 않았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사 중에는 제일 마지막 사사인데, 많은 사사들의 시대가 지나갔지만, 사무엘이 사사될 때와 같이 그렇게 평안하고 조용하고 외적의 그 해를 받지 않은 때가 한 번도 없었다. 제일 특수하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증거는 그에게 언제든지 평강을 주신다. 외부로 보면 요셉이가 참 말할 수 없는 그 어려움을 당한 것 같았지만 남이 모르는 그 속으로는 굉장한 참 평강과 기쁨과 재미를 봤다. 또 사도 바울도 그가 고린도후서에 보면, 그 일생 생활을 가만히 명상해 보면 참 너무 끔찍해서 생각하기에도 징그러울 만하였다. 이랬지만 제삼자들이 보기에 이랬지 자기로서는 굉장한 위로와 기쁨을 누렸다. 일어났다고 하면 복음이 크게 전파되고 큰 승리와 성공을 이루었고, 그래서 그분이 말하기를 '환란이 심한 그것보다 주의 위로가 더 크기 때문에 그것이 환란으로 보이지를 않았다.'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에게는 평강이 있다. 안팎이 다 평안하고, 안팎이 평안하지 않으면 세상이 모르는, 겉이 험한 그 속에 굉장한 평안이 있다. 이러기에 모든 성도가 간증하기를 십자가의 그 길은 전부 기뻐했다. 제삼자가 볼 때에는 "아마 이 사람이 지금은 너무 외로워서, 너무 기가 막혀서 지금 한숨을 쉬고 밥맛이 없고 아마 낙망하고 있을 것이다. 위로를 하러 가야 되겠다."라고 위로를 하러 가면 상상도 못할 만큼 그 사람은 속으로 한없는 기쁨과 평강을 누리고 있다. 오히려 갔던 사람이 놀라서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에게는 겉과 속이 다 평안하게 평안을 해 주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겉이 불안한 속에 상상도 못할 특수한 평강을, 이 환란 속에 들어 있는 특수한 평강을 주시든지 어쨌든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괴롭히지를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 16:32-33)라고 말씀하셨다. 또 십자가상에 못을 박혔으니까 아마 심히 고통스러워서 '엘리 엘리 라막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렇게 말을 했을 것이다라고 그 세계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해석을 하는데, 이 믿음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들은 십자가상에서 어떻게 기쁘고 좋은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영광스러운 지위, 영광스러운 역사, 창조주와 피조물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가 환영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이런 직책을, 이런 역사를 어떻게 나에게 맡겨 줬습니까?"라고 감탄해 못견뎌서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한다. 사무엘이 그랬다. 사무엘은 그가 사사 중에, 사사로 들어서고 난 다음에는 그 연방이 조용하고 평안했다. 그에게 고통되는 일이 없었다. 마지막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 하는 데에 좀 고민했으나 하나님이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 8:7)라는 말로 사무엘에게 다시 큰 위로와 큰 힘을 주었다. 4.3. 실족이 없도록 해 주셨다. 만약 사무엘이 일국의 왕을 잘못 세웠다면, 하나님의 명령은 이 사람에게 기름부으라고 하는데 딴 사람에게 기름부었으면 이스라엘에 대해서 멸망되는 모든 책임을 사무엘이 져야 할 것 아닙니까? 그 맏아들이 떡 오니까 사무엘이 말하기를, 어떻게 잘났는지 인물이 잘났지, 키가 훌륭해, 신체가 구비해, 말을 잘해 그만 사무엘이 그 인물을 보고 깜짝 놀라서 "사울왕이 없어져도 문제없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예비해 놨구나." 하면서 놀라 기뻐했다. "아, 하나님이 이렇게 위대한 사람을 예비해 놨구나." 하고 기름을 부으려고 하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무엘아! 기름 붓지 말라. 사람들은 사람을 평가하기를 인물 잘나고 키 크고 신체 건강하고 말 잘하고 지식 있고, 이 세상에 떠날 때 두고 갈 것 그런 것들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만 나는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다." "여호와는 사람의 중심을 보느니라." 그 말은 인간 속에 하나님이 나타내신 이 계시와 영감이 속에 들어 있는 그게 가치지, 그게 가치지 그것은 없이 이 세상 것으로 아무리 번들 번들하게 들여 채워봤자 하나님은 그것을 무가치한 자로 버린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만약 사무엘이 그때에 이새의 맏아들에게 기름을 부었으면 사무엘은 얼마 동안 안정한 통치를 했지만 하나님과 백성 앞에 큰 죄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무엘로 하여금 실수하게 둬 두지를 않았다. 아브라함도 애굽으로 내려가서 애굽에서 큰 실수를 하게 될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아브라함으로 실수하지 않도록 했다. 바로왕에게 현몽해서 아브라함으로 실수하지 않도록 그렇게 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첫째로 평강을 주시고, 둘째로는 그의 생활에 실족이 없도록 해 주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되게 하는 방편은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증거는 그에게 평강이 있었다. 또 사람은 사람이라 실수하기 쉽지만, 그 실수가 실수의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실수하는 것이 본인이 회개해서 유익만 되게 하지 실수의 열매로서 죄에 나가지 않도록 하나님이 해 주신다. 5. 하나님이 등용한 다윗 5.1. 하나님의 계시(영감과 진리)가 가득 찼다. 하나님이 다윗왕을 하나님이 등용하셨는데 왜 그를 하나님이 등용하셨는가? 첫째로 다윗은 그의 속에 하나님의 계시가 가득찬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영감과 진리가 그 속에 차 있는 그 사람을 등용하신다. 다윗왕은 산에 가서 양을 치고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신의 감동으로 살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 부모로 통해서 들은 그 말씀을 그대로, 하나님이 주신 성경 말씀을 그대로 자기 마음에 채우고 살았다. 이러니까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라는 말씀은 그 중심에 여호와가 없다 그 말이다. 다윗은 그 중심에 여호와가 계셨다. 영감과 진리가 그 속에 있은 이것이 하나님에게 등용되는 첫째 조건이다. 사무엘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나 같은 이치이다. 사무엘은 그 앞에 있었고, 다윗은 그 속에 여호와가 그 속에 들어 있었다. 그러나 사울은 여호와도 말씀도 없었기 때문에 여호와가 그를 버렸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에게 붙들려 쓰이려면 영감과 진리가 마음에 들어 있어야 한다. 그 중심에 진리와 영감이 들어 있으면 하나님에게 등용되고 아무리 세상 것으로 가득차게 구비해도 진리와 영감이 그 속에 들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은 버리신다. 잘못하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것으로 자기 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이 들어 있는 그것을 대신 할 수 있는 줄로, 그것을 대용될 수가 있을 줄로, 영감과 진리의 그 대신이, 알아듣게 대신이, 대용이 될 줄로 이렇게 알고 하는 그것이 하나님에게 버림당하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등용되는 것은 자기 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이 자기 속에 떠나지 아니하고 계속되는 이것이 하나님에게 등용되는 것이다. 옥토에 뿌린 씨라고 말씀하신 그 옥토에 뿌린 씨도 꼭 같은 이치의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이 그 속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계속 그 사람 마음을 주장하고, 또 성신의 감화가 더 감동시켜서 주장하게 되는 이것이 하나님에게 등용되는 비결이다. 다른 것을 가지고는 하나님에게 등용되지 않다. 5.2. 모든 사람이 배척해도 하나님께 등용(登用) 받았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전 인류가 반대해도 소용없다. 상관없다. 다윗은 자기 부모네들도 왕이 되게 기름을 붓는다 하니까 이 얼마나 기가 찰 놀랠 일입니까? 그 당시의 사사니까 지금 대통령보다도 굉장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 제사장이요 왕이다. 종교와 정권을 다 혼자서 쥔 사무엘인데, 또 사사라도 참 유력한 사사인데 이분이 와서 자기 아들 중에 기름을 부으려 하는데 일곱만 내세우고 마지막 아들은 그것은 데려오지도 않았으니까 그 부모가 "아이구, 다윗 그까짓 거야 세워서 안 되겠고 우리 큰 아들은 세우면 될 터인데"하고 생각했다. 이런 부모의 생각을 보면 부모가 다윗을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 몰랐다. 이웃이 알았습니까? 아무도 몰랐다. 버림을 받아 저 산골에 가서 양이나 먹이고 심부름이나 하고 하는 그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등용했다. 하나님이 등용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무리 배척해도 상관없다. 사람이 아무리 배척해도, 사람이 몰라줘도, 부모 형제가 몰라줘도, 부부간이 몰라줘도, 교인이 몰라줘도, 이웃 사람이 몰라줘도, 스승이 몰라줘도, 지도자가 몰라줘도 상관없다. 하나님이 등용하는 자는 인간이 몰라줘도 당신이 등용하시면 등용이 되는 것이지 인간이 몰라준다고, 천거를 안 한다고 안 되는 것 아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등용하는 사람은 인간의 방해, 인간이 부인하는 그 인간의 부인이 상관이 없다 이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5.3. 하나님의 영이 크게 역사 했다.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삼상 16:13)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등용하시니 성령이 크게 그에게 역사했다 하는 말이다. 크게 감동했다 말은 크게 역사했다 말인데, 다윗이 모든 면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에게 크게 동행했으니까 그 다윗은 전능자 아닙니까? 전지자 아닙니까? 하나님의 신이 크게 그에게 감동됐으니까, 역사했으니까 이만하면 하나님 다음으로 세력가는 자 아닙니까? 하나님이 등용하는 자는 이 세상 것 그런 것 준비해도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하나님이 등용하면 그런 것 없어도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세상 모든 것을 준비하는 그 준비를 반대할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등용하시면 되는 줄로 믿는 사람은 이 세상 것 준비해도 이거 있어야 된다고 해서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벌써 그것은 하나님과 그것으로 멀어졌다. 왜 사람들이 공부하다가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업하다가 멀어지고 이 세상 것 기반 닦다가 하나님과 멀어지는 그 사람은 왜 그러냐?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해도 이것이 있어야 하지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이것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 사람들이 그것을 마련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등용하시느냐 버리느냐 그것이 문제이지 하나님이 쓰실 때에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피조물에게 대해서 뭘 못할 것이며, 모든 것 하나님이 만드신 분인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문제가 뭐 있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너 학교 가거라." 하니까 학교 안 가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에 할 수 없어 학교 가고, '네가 학교 가서 공부를 잘못하면 복음을 가릴 터이니까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우등이 돼야 된다.' 하니까 어쩔 수 없어 하고, 모든 것을 믿음으로만 한다는 말이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이 시키시니 안 할 수 없는 믿음으로 하지 '이거 있어야 된다. 하나님만 있어서 안된다. 이것이 있어야 된다.' 그런 죄를 범하지 아니한 것이 다니엘이 그런 죄를 범하지 않았다. 아멘!! 5.4. 마귀와 사울의 병, 전쟁이 그를 도왔다.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삼상 16:14) 하나님이 등용하는 자는 하나님이 동행하고 또 악령이 다윗을 도왔다. '번뇌'라는 것은 "두렵게 하다. 엄습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이 말은 사울왕에게 악령이 들어가니까 그의 정신 상태가 매우 괴로웠으며, 공포에 휩싸였던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의 머리를 번뇌케 만들지 않았으면 다윗이 사울왕에게 그렇게 요긴하게 쓰였겠습니까? 사울왕이 이렇게 번민스러우니까 견디지를 못해서 하는데 거기에 있는 사람이 하나 말하기를 "악기 잘 다루는 사람을 청해다가 악귀가, 악신이 들어와서 왕을 괴롭게 하거들랑 그 좋은 수금을 타서 왕의 마음이 기쁠 때에 그때 그만 악신은 나갈 것이다. 그래 해 보십시오." 이러니까 사울왕이 모든 신하들을 다 불렀다. 불러서 "얘, 이렇게 말하는데 나를 위해서 그렇게 수금을 잘 타는 그런 사람 하나 구해 봐라." 이러니까 온 신하들이 나서서 광고를 하는 가운데에서 어떤 소년이 하나 말하기를 다윗을 소개를 했다. "그런 목동이 하나 있다." "얼른 불러 오너라." 청해서 오니까 당장에 그 모든 신하들도 이 다윗을 마구 이렇게 존대한다.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청컨대 다윗으로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삼상 16:22) 그 신하들도, 또 거기에 있는 청년들도 다윗을 위하는 자 됐고, 또 사울왕도 오니까 아주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면서 "지금 네가, 이 내가 지금 악신 때문에 견디지 못하겠으니까 한번 수금을 타 보라." 수금을 타니까 악신이 그만 썩 물러가고 사울왕이 쾌감드니까 사울이 이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아꼈다. 악령이 하나님이 등용하신 다윗에게 직접적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그 모든 역사가 다윗을 돕는 일이 됐다. 이를 통해서 다윗의 인기는 더욱 올라갔다. 하나님이 등용하는 자에게는 자기 가족이 몰라줘도 상관없고 사람들이 인정 해 주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등용할 수 있는 자, 하나님이 등용할 수 있는 그 중심이 바로 되는 것이다. 그 중심에 여호와가 가득 차고,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 찼을 때 그 사람을 하나님은 등용하신다. 하나님이 등용하시니까 인간이 추천 안 하고 몰라줘도 상관없었고, 또 하나님이 등용하시니까 당장에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크게 감동되었고, 이러니까 여호와의 신이 크게 감동되고 난 다음에 악신이 첫째로 일했다. 둘째로는 누가 일했습니까? 그 왕권 가진 왕의 머리 아픈 왕의 병이 다윗을 위해서 일했다. 그 다음에 누가 일했소?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공론하기를 '아무래도 이 수금 잘 타는 사람을 데려다가 해야 된다.' 모든 사람들이 다윗을 위해 일했다. 그러니까 사울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단합해서 또 다윗을 위해서 일했다. 이러니까 거기에 있는 소년 하나가 또 다윗을 소개해서 다윗 위해서 일했다. 다윗이 오니까 그 신하들과 모든 사람과 사울왕이 다윗을 금쪽같이 높였다. 이렇게 귀중히 높였다. 하나님이 쓰시면 이렇게 존귀해지는 것이다. 아멘!! 아멘!! 그리고 난 다음에 17장에 보면 블레셋과의 전쟁이 일어났다. 그 전쟁은 다윗의 인기를 올리려고, 다윗의 권위 올리려고 난 전쟁이다. 또 그 전쟁은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다윗에게 마구 마음이 다 집중해서 기울어지도록 만드는 그런 전쟁이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등용할 때에는 모든 것이 다 합해서, 모든 것이 다 합해서 하나님이 등용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사람을 위해서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대항할 수가 없다. 다윗이 아무리 수금을 잘 타 봤자 이렇게 하나님이 분위기 조정을 하지 않았으면 그 수금 잘 타는 것이 뭐 세월이 그리 나겠소? 이러나 하나님이 위하시려고 하면 그 사람을 그 사람의 가진 것이 다 가진 것만큼 필요하도록, 그 사람의 하는 일만 유명해지도록, 성공이 되도록, 그 사람이 하는 일만 잘 되도록 이렇게 공간을 전부 그 사람을 위해서 활용을 하지, 인간의 심리를 다 활용을 하지, 마귀를 활용을 하지, 모든 인간들의 생명을 다 활용을 하지 이러니까 전체를 하나님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는 그 사람에게는 전부가 이렇게 협동해서 그 사람이 되도록 이렇게 만드니까 어떤 인간이 그것을 반대를 하겠습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6. 하나님께 버림당하면 이보다 더 비참할 수 없고 등용 당하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여기에서 하나님에게 등용당한 사울왕이 왜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했느냐? 버림당한 것을 지금까지 우리는 살펴 보았다. 버림당한 것은 왜 버림당했습니까? 하나님 말씀 생각지 아니하고 저 생각하는 그게 버림당한 원인이다. 버림당하고 나니까 왕은 왕이지만 하나님의 권능이 떠나 버리니까 왕이기 때문에 천해졌지, 하나님의 권능이 떠났기 때문에, 떠났으니까 목회자이기 때문에 천하지, 왕이기 때문에 천하지, 껍데기만 가지고 권능이 없으니까 천해진다. 그리고 바로 악신이 들어왔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 사무엘에게 대해서 함께 하는 원인, 함께 하니까 자신과 나라가 평안해졌다. 하나님이 함께 하니까 실수 없었다. 다윗 속에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만 들어 있으니까 하나님이 그것 보고 등용하셨다. 하나님이 등용하시니까 인간이 천거 없어도 됐다. 사람이 우리를 천거해서 어디로 보내주고 할 필요 없다. 하나님이 천거하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마음에 채워 있으면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데 사람들이 소개 안 해 주면 어쩔 겁니까? 인간들의 소개를 바라서 '어디로 가면 좋은 데로 보내주고 어떻게 해야 등용될까?' 그 참 굴욕적이고 애타지는 일인데 뭐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고 영감과 진리만 내 속에 계속 충만해지면 하나님이 날 등용하시니까 인간에게 사정할 필요가 없다. 이 길이 쉽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등용하시니까 아무리 무지무능하더라도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충만하니까 문제가 뭐입니까? 아무것도 문제 되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까 악령도 그를 위했지, 사울왕의 병든 것도 그를 위했지, 모든 사람도 그를 위했지, 모든 사람의 중론과 공론이 수금 타는 사람을 데리고 와야 한다고 모든 사람이 심리가 다 다윗을 위했지, 신하들도 위했지, 또 거기에 있는 소년들이 아는 지식이 또 다윗을 위했지, 이러니까 다윗이 청함 받아서 이렇게 존귀해졌지, 전쟁 일어나는 것이 또 다윗만 세월 나게 하지, 유명하게 하지,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게 하였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에게 버림당하면 비참하다! 하나님이 동행하시면 참 평안하고 좋다! 하나님에게 들어 쓰이기만 한다고 하면 모든 것이 문제없고 전체가 협조해서 이렇게 협동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하는 일을 방해할 수가 없다! 이보다 더 배짱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좋은 일, 제일 크고 튼튼하고 사람에게 아니꼬운 소리 안 하고 굴욕적인 소리 안 하고, 제일 씩씩하고 튼튼하고 유력하고 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우리가 뭐 어디에 궁색스런 소리를 할 것입니까? 하나님에게 버림당하는 이유,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이유, 하나님에게 등용되는 이유, 버림당할 때에 그 나타나는 흔적, 동행할 때에 그에게 이루어지는 역사, 하나님이 등용하실 때에 모든 것이 어떻게 하는지? 이 자리에서 확정을 지우고 갑시다. 확정을 지우고 이는 이치는 변하지 않는다. 시대와 외모는 변해져도 이 이치는 변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정을 지우자!! 이치는 이 사람에게도 저 사람에게도 옛날도 오늘도 꼭 같다. 이 이치는 우리에게 해당한다. 주인공 되세요!! 참조: 81120453. 셀나눔 제목 ☞ 본문(삼상 16:1-23)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 자신을 버린 사울을 단호하게 버리시고 다른 사람을 일꾼으로 세우심(1-5). ? 사람들은 상대의 외모와 신장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하나님은 중심에 말씀과 진리를 사모하는 그 마음이 있나를 중요하게 여기심. ?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실수와 낭패를 막아주시는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 ?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는 사람, 물질, 사건 사고, 심지어는 마귀와 죄까지도 그 사람에게 유익과 도움이 되도록 역사 하시는 멋진 하나님!! ☞ 내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사울의 길을 걷지 말고, 사무엘과 다윗의 길을 걸어서 하나님께 등용 받아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다가는 사람이 되라!! * 셀 모임을 하기 전에 미리 나눌 체험담을 준비하여 나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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