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과 저주를 주시는 하나님

2010.09.26 17:14

윤봉원 조회 수:830 추천:65

신 28:1-82010092601날자: 2010년 9월 26일 주일오전
제목: 복과 저주를 주시는 하나님
본문: 신명기 28장 1절 - 8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신 28:1~8)
1. 내가 하는 모든 일은 형통한가?
 복 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대부분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행복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이스라엘 백성도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압제의 고통 속에서 불행했던 애굽을 떠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약속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모든 사람이 복 받기를 원하지만 복 받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이 아닌가 짐작 해 본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그것은 많은 사람이 요행으로, 즉 “별다른 노력 없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안일한 생각만 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옛 속담에 “주는 사람은 생각도 않고 있는데 김치국부터 마신다.”라는 것이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그래서 많은 사람은 돈을 꾸어 주어 거기서 이식을 취하기도 하며, 로또를 구입하여 허망된 요행을 꿈꾸기도 하고, 신정환처럼 빠징꼬에 빠져서 대박을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사람들의 인생은 행복할 수가 없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홀로 주권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복 받을 행동을 할 때 행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형통하게 잘 돌아가고 있는가? 세상 사람들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 말이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하면 우리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잘 될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하는 모든 일이 불통하게 되는지를 살펴보고 그 교훈을 우리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2. 복 받는 자가 되려면
2.1. 하나님의 명령을 삼가 들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 28:1)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복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모세는 이러한 복을 설명하기 전에 그 복을 받기 위한 전제 조건을 강조하고 있다. 즉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을 통해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면 반드시 이러한 조건을 지키는 것이다.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은총이 아니고서는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진리를 모르고 헛된 노력으로 방황하는 이들이 많다.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행복의 전제 조건을 깨달아 그것을 추구함으로 복된 삶을 누리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1 절).
복 받기 위한 첫째 조건은 듣는 것이다.
사람은 듣기보다 말하기를 더 좋아한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 그런 것 같다. 남이 말하기도 끝나기 전에 끼어들어서 말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약 1:19)는 말씀과 같이 우리는 말하는 것보다 듣기를 먼저 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다.
  본문 1절 말씀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들어야 한다. ‘삼가’라고 번역된 ‘[m'v’(“샤마”, hear)는 는 “듣다”를 의미하며, “경청하다”(listen), “순종하다”(obey)라는 의미도 지닌다. 그래서 표준 새번역이나 공동 번역은 “귀담아 듣다”로, Nasb와 Nrsv는 “순종하다”(obey)로 번역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번역의 의미는 ‘삼가’라는 말은 경청하여 듣는 것과 순종하는 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즉 바늘과 실의 관계임을 보여 준다.
그렇다 듣고 아는 것과 그 사람이 실행하는 것은 항상 같이 붙어 다닌다. 아담 하와가 뱀을 만나서 이상한 말을 듣고 보니까 하나님은 먹으면 정녕 죽는다는 그 선악과가 안 먹고는 잠을 못자고, 손해 보는 것 같아 보였고, 앞날이 창창하게 보여서 둘 다 선악과를 따 먹고야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어떤 말에 지금까지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 왔는가 돌아보자. 허망한 풍설(風說)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았는가? 또한, 속이는 자의 달콤한 감언에 솔깃해지는 분은 없었는가?
저는 어제 동아일보 2010년 9월 25일자에 실린 “대치동 오선생 이야기”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래의 내용은 그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교사 신분으로 학원 입시특강 파문→ 교육컨설팅 대표 변신 ‘대치동 오선생’ 만나보니
{{{{관리하는 학부모만 5000명…1년 100만원 내면 학원소개-원서 첨삭까지 그는 ‘입시교 교주’ 같았다.
《 갓 꾸민 듯한 사무실은 20평 정도로 보였다. ‘OOO’, ‘△△△’, ‘×××’….
책상, 컴퓨터, 시계, 칠판, 복합기 등 비품 모서리마다 붙어 있는 이름표가 눈에 띄었다. 물품을 기증해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엄마들의 이름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 엄마는 사무실 권리금을 깎아줬고, 다른 엄마는 돈 벌면 갚으라며 임대보증금을 무상으로 빌려줬다. 사무실을 차리는 데 든 돈은 ‘OO교육컨설팅’이라는 로고 비용 정도였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대치동 엄마가 ‘헐값’에 내줬다. “엄마랑 이야기해 보면 아이에게 토익이 필요한지, 경시대회와 봉사활동은 어떤 게 좋을지 다 보이죠. 내가 판단해 줘요. 입학사정관제는 어릴 때부터 관리할수록 좋아요. 아이 교육에 관한 한 어떤 엄마도 내 앞에서 고개를 못 들걸요.” 》
○ 엄마들의, 엄마들에 의한, 엄마들을 위한
‘대치동 오 선생의 OO교육컨설팅 대표 오××’. 지난달 20일 만난 그가 명함을 내밀었다. 지난해 신문과 방송을 장식한 ‘대치동 오 선생(50)’이었다. ‘오××’라는 본명이 오히려 낯설었다.
“작년에는 34명을 데리고 국제중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큰소리 빵빵 쳤어요. 전원 싹 다 합격시켜 버리겠다고. 33명이 붙었어요.” 지난해 9월 지상파 뉴스를 탄 ‘대치동 오 선생’의 어학원 강연 장면은 그를 일약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대치동 엄마들 사이에선 5년 전부터 유명인사였지만….
그는 현직 고교 교사 신분이었다. ‘강남 일대 학원에서 특목고 입시 특강을 하며 서류 교정에 50만 원, 개인상담 및 컨설팅 비용으로 한 번에 200만 원을 받았다’는 의혹과 함께 감사원 조사가 시작됐다. 그는 학교를 관뒀다. 모교이자 20년간 교편을 잡았던 곳이었다. 그리고 7월 대치동 한복판에 교육컨설팅 사무실을 차렸다. ‘대치동 오 선생’의 이름을 걸고.
○ 처음부터 ‘오 선생’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만나 관리하는 엄마만 5000명. 문득 궁금해졌다. 학교에 있을 땐 어떤 교사였을까. 그가 근무했던 학교를 찾았다. 1991년 체육교사로 임용된 오 선생은 2003년 체육과목이 축소되면서 사회를 부전공했다.
“뉴스에 ‘대치동 오 선생’이라고 나왔을 때 그 사람인지 아무도 몰랐어요. 학교에서는 조용했거든요. 진로 담당 업무도 맡은 적 없어요.”(A 교사)
처음부터 컨설팅의 달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A 교사는 말을 이었다. “학교에 적응을 못했는데 먹고살 길을 찾은 거니 좋게 말하면 잘된 거죠. 2003년 교감이 됐어요. 하지만 동료 교사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하루 만에 교감에서 내려왔죠. 이후 수업에 늦게 들어가기도 하고 끝나면 바로 퇴근하곤 했어요.”
졸업생 B 씨도 “애들한테 평판도 안 좋았고, 엄마들 사이에서도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는데 그런 일(컨설팅)을 하다니…. 사람은 겉만 봐선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 선생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사장의 신임을 받아 교감에 취임했다. 무엇이든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마음에 드셨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교감에 오르다 보니 사연이 많았지만 사임했다. 당시에는 안타까웠지만, 계속 했다면 두 딸을 위해 모든 것을 던져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출세도 버렸다”고 썼다.
감사원 조사 때도 그는 “딸을 지도하다 쌓인 노하우를 학부모들에게 이야기해준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문제가 됐던 강사료나 컨설팅 비용을 받았는지에 대한 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감사원이 학교에 요구한 처분도 경징계였다.
그런데도 그는 사표를 냈다. 그는 “4, 5년 전부터 학부모가 너무 많이 찾아와 감당이 안 돼 (학교는) 사직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보면서 지금 상태로는 대치동 오선생이 하나님 말씀의 능력보다 훨씬 학부모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 같았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상이 아닌가???
우리는 대치동 오선생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신 음성에 더 귀를 기울어야 한다. 여기에 우리의 삶을 행복의 길로 인도하는 지침이 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라고 고백한 것이다.
이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이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요 5:24).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영생의 축복을 얻을 수 있다.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만이 약속의 땅, 가나안이 축복의 땅이 될 것이다. 이 가나안 땅은 영적으로는 모든 성도가 영생 복락을 누리는 천국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축복의 땅을 기업으로 얻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하는 조건을 지켜야 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복은 이 땅에서만 누리는 복이 아니다. 만약에 이 땅에서만 누리는 복이고 영생을 누리는 복이 아니라면 진정한 행복이 아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땅은 머지않아 멸망될 것이기 때문이며 모든 산 자는 수명을 다하면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만이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으며 행복이 약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슥 7:11)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는 이들 또한 행복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부할까?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 4:4)는 말씀과 같이 이들은 허탄한 이야기를 좇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좇는 허탄한 것, 즉 세상적인 쾌락을 그들의 행복으로 알고 좇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 말씀은 그들에게는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가 되면 그들의 삶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도 이런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아닌가 심각하게 돌아봐야 한다.
☞ 방송가 이야기(요즘 낙지집이 파리 날린답니다. 왜요? 낙지 머리 먹으면 안 된다고 방송에 났기 때문이다.) 이 뉴스 듣고 난 다음에 낙지집에 가려다 포기한 사람은 없는가? 손 한 번 들어 봅시다. 점 하나도 빠짐 없이 다 100%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방송 한 마디의 맨트가 폭풍보다 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 씁쓸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세상의 쾌락을 멀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인정한 자들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본문 1절에서 말씀한다. 우리가 하나님 축복의 음성을 들으려면 먼저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이전해야 한다. 사실은 이미 이전되어 있었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강제 퇴거 조치한 것을 이제 바로 잡아야 한다. 이것이 성전 건축하는 것이지요.
2.2. 말씀을 지켜 행하라.
복 받기 위한 둘째 조건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믿음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의 표현이다.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한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약 2:22)
겨자씨 믿음이라도 믿음의 실상이 있어야 하고 이 믿음은 실천하는 믿음이다. 알고 행치 않는 믿음은 무슨 믿음이지요? 죽은 믿음. 역사가 일어납니까 안 일어납니까?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아멘!!!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26)
이상과 같은 조건을 행할 때 3-6 절에 기록된 것과 같이 엄청난 축복이 약속되는 것을 본문은 강조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지켜 행하기를 노력함으로 이러한 축복된 삶을 누려야 한다. 그래서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 1:3)
3.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과 저주를 주시는 하나님.
3.1. 모든 일에 복을 주심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존재가 그들의 삶에 방해가 되는 분이시며 저주를 내리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밝힌다. 신명기 28장에서는 이러한 축복을 내리시는 하나님과 저주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양면성을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된 우리가 축복을 내리시는 하나님으로 축복의 삶을 사느냐, 저주를 내리시는 하나님으로 저주받는 삶을 사느냐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른 선택의 여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러면 우리는 먼저 본문을 통해서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신가를 상고해 봄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말씀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자.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신 28:8)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신 28:1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 30:9-10)
이 약속에 대한 실례를 다음 성경에서 우리는 확인 할 수 있다.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 14:29)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 순종의 경우이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 15:10)
‘타국인에게 네가 꾸이면 이식을 취하여도 가하거니와 너의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얻을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신 23:20)
말씀 순종함으로 경제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순종하라.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 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신 24:19)
‘뭇'은 “단”(sheaf), 오메르(호멜, 건양단위, 에바의 10분의 1)을 의미한다.
지금 당장은 아까워도 말씀 순종함으로 약속의 복을 받아 누리는 주인공이 되라.
3.2. 모든 일에 저주를 주심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공구와 견책을 내리사 망하여 속히 파멸케 하실 것이며 (신 28:20)
‘저주’는 상대방에게 재앙이나 불행이 임하기를 비는 일을 일컫는다. 특히 인간 관계에서는 상대방에게 해나 큰 재앙이 임하기를 바라거나 멸시를 주고 비방하는 것을 뜻하지만(렘 29:22; 마 26:74) 하나님의 측면에서는 범죄한 인간에게 대한 준엄한 심판이나 형벌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뱀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창 3:14)
‘공구’는 사전적으로는 몹시 두려움, 원어적으로는 ‘혼잡’, ‘뒤죽박죽’, ‘불안’이란 뜻이다.
‘견책’은 그릇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 훈계하고 꾸짖다는 의미이다. 잠언과 이사야에서는 경계하다고 했다.
‘거만한 자는 견책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 (잠 15:12)
‘주께서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사 쫓아내실 때에 동풍 부는 날에 폭풍으로 그들을 옮기셨느니라 (사 27:8)
비행이나 과실을 꾸짖고 나무라는 것을 ‘견책’이라고 한다.
‘주께서 죄악을 견책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 먹음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각 사람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시 39:11)
‘견책’은 누구나 싫어한다. 하지만, 성경은 견책을 싫어하는 자의 최후는 파멸과 죽음이라고 경고한다.
‘도를 배반하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요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라 (잠 15:10)
따라서 우리는 ‘견책’을 싫어하는 자가 되면 안 된다. 오히려 감사하게 받고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성경 찾아보기: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한 길을 떠나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케 하므로 너희가 말세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라 (신 31:29)
신명기 저자는 먼저 복 내리시는 하나님을 소개하고 난 다음에 저주를 언급하였다. 이를 통해서 저자가 우리에게 교훈해 주는 것은 하나님은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원하시며, 그들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임을 일깨워 준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복 내리시며 그것을 즐거워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순종치 않는 자들에게는 노여워하시고 저주를 내리시는 분이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저주를 내리시는 것은 그들에게 빠른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바람이요, 정신을 차려서 복 받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이다. 아멘!!
따라서 우리는 먼저 저주의 두려움보다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품성에 귀를 모아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저주를 받지 말고 축복을 받는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신다.
찾아서 읽기: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신 11:26~28)
그러므로 우리는 저주가 두려워 순종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과 받은 은총에 감사함으로 마땅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런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하나님의 음성 듣고 즉시 온전히 순종하여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는 주인공이 되라!!
오늘 말씀의 결론을 지혜자 솔로몬의 말로 결론짓고자 한다.
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고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의 주신 바니라 내 아들아 또 경계를 받으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전 12:11~14)
하나님의 성전된 자는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삼가 듣고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본분이다. 이것이 자신의 신분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 것은 무익한 종이 아니라 유익한 종이요 자신의 위치를 망각한 교만한 행위요 삶이다.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전적 은혜로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부터 삼가 듣는데 집중하라.
들은 것은 즉시 온전히 순종하라. 그리하여 우리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렇지 않고 듣지도, 순종치도 않아서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저주를 받는 불쌍한 자가 되면 안된다. 이것은 우리의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기대하는 바가 아니다. 오늘은 우릭 이제 이렇게 저주 받는 삶을 살았던 것을 철저히 회개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또한, 오늘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시작한 기념비적인 날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하심을 누리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인공 되세요.
{셀 모임 나눔 제목}
☞ 본문(신명기 28:1-8)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 그의 명령을 삼가 듣고 기키기를 원하시는 분.
‣ 명령을 지키는 자에게는 자신, 다른 사람, 짐승, 토지, 식탁, 왕래,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분.
‣ 그러나 명령을 삼가 듣지도 지키지도 않는 자에게는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그 원하심의 열정으로 저주를 주시는 분.
☞ 내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 모든 현실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삼가 들을 수 있는 깨어 있는 심령이 되라.
‣ 하나님의 뜻을 찾았을 때는 어떤 명령이든지 즉시 온전히 순종하는 자가 되어 약속의 복을 누리는 주인공이 되라.
* 셀 모임을 하기 전에 미리 나눌 체험담을 준비하여 나눕시다.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09-2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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