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3:1-72010090501날자: 2010년 9월 5일 주후
제목: 최고의 행복과 최고의 불행
본문: 고린도전서 13장 1절-7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1. 이 세상에서 제일 가치 있는 것은?
사람들은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최고라고 한다. 정치의 맛을 아는 사람은 돈보다 정치에 가치를 더 두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돈, 정치보다 학문이나 도덕을 더 중요한 것을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외에도 다양한 것들을 각자 나름대로 가치(價値)로 삼고 그것을 구비하고자 평생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질문을 해 보자. 성경에서는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알아보고 그 교훈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했다.
본문에 사랑으로 번역한 ‘avga,ph’(아가페)는 성도들이 각자 지니고 있는 영적 은사들(고전 12:28-30의 예)을 바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여기서 우리는 고전 12장 31절을 한 번 읽어 보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전 12:31)
이 말씀은 13장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부분이다. ‘아가페’는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께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요 15:10; 17:26) 및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사랑(요일 4:9)을 표현 해 주는 것으로 깊고도 변치 않는 애정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또한, 이 사랑(‘avga,ph’(아가페))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보여지는 성도의 사랑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4-35)
그래서 성도는 사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8)
사람이 자기가 모든 면이 구비하고 충족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자기는 고통이요 불행이요 지옥이 된다. 사랑이 없는 사람이라면 자기의 가진 모든 것은 결과적으로 원망 불평 낙망 시비 미움 복수 살해로 화(化)해지고야 만다.
그렇다면 사랑이 무엇이기에 모든 것이 구비하고 충만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도 아무 유익이 없고 자기에게도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하였을까? 또 사랑은 영원하고 모든 것보다 사랑이 제일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을까 하는 이점에 대해서 우리가 깊이 깨닫는 것이 있어야 하겠다.
2. 사랑과 미움의 정의
2.1. 사랑은 다른 사람 구원의 유익을 위하여 오래 참는 것
사도 바울은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언급함으로써(1-3) 그리스도와 동료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바언과 예언의 은사를 중요시했던 그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절제 없는 행위를 누그러뜨리려고 했음이 분명하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이란 사람과 천사들이 사용했던 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때 당시에는 성전에서 예배 드릴 때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를 쳤었다(삼하 6:5; 대상 13:8; 시 150:5). 또한, 예언하는 능리 있고,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 만한 큰 믿음이 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비밀’과 ‘지식’이라는 용어는 “알다” “통찰하다”에 연결되며, 하나님의 구속 사업에 대하여 밝혀야 하는 깊고도 비밀스러운 사실들을 뜻하는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믿음이라는 로마서 5:1에 언급된 것과 같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산을 옮길 많난 믿음이라는 설명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적 같은 것을 행할 수 있는특별한 믿음의 행위를 뜻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마 21:21)
바울은 더 나아가서 비록 어떤 사람이 자신이 가진 모든 물질을 가난한 사람에게 다 준다 해도 사랑이 없이 하는 그런 행위는 아무런 유익함이 없다. 또한 자신의 몸을 자발적으로 내어 주면서까지 순교를 하고 고통을 감수한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 대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해 준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주는’ 행위는 순교의 극단적인 형태의 하나로써 이는 노예들에게 찍는 낙인 같은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까지 나름대로 희생을 하고 헌신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으니 이 사랑의 가치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한 사랑의 실체는 무엇일까? 바울은 4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그것을 밝히고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4~7)
사랑은 상대방을 좋아하는 것이 사랑이다. 즉사랑은 상대방을 위하고자 하고 상대방이 유익 되기를 원하고, 상대방이 복되기를 원하는 것, 상대방이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기를 원하는 그것이 사랑이다. 이 일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사랑이다. 이것을 위하여 자기의 소유를 아끼지 않고 투자하는 것이 사랑이다. 자기의 몸과 생명까지 상대방을 위하여 다 희생할 수 있는 이것이 최고의 사랑이다. 이것이 모든 존재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된 것이요 보배로운 것이요 또 중요한 것이요 자기에게도 가장 유익 된 것이다.
이러한 사랑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앞에서 “아가페”에 대해서 살펴 보았듯이 사랑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사랑을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으로 증명해 주셨다. 이 사랑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다른 사람의 구원 유익을 위해서 오래 참는 것이다.” 즉 “인내”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3-4)
사랑의 완전한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도 그분이 사랑하셨던 삶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기대하신다.
2.2. 미움은 다른 사람보다 자기를 위하는 것
이 사랑과 반대로 자기에게 다른 사람에게 제일 해로운 것, 제일 몹쓸 것이 무엇인가? 자타를 해치는 것 제일 독한 요소가 무엇인가? 이것은 사랑의 반대(反對) 미움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미움은 살인(殺人)이라고 하셨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일 3:15)
그러면 미움은 어떤 것인가? 미움은 다른 사람보다 자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의 유익보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이다. 사랑은 자기 유익보다 다른 사람 유익을 구하는 것이다. 자기를 좋아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러나 미움은 다른 사람보다 자기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모든 면이 행복하고 기쁘고 평안하고 즐거워지기를 자기가 모든 면이 행복하고 평안하고 즐거워지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그것이 사랑이다. 이것이 최고의 복이요 이것이 최고로 복이요 자기에게 있어서 최고의 보배요 또 최고의 능력이요 영광이요 권세이다. 이것이 사랑은 생명에 속했고 미움은 사망에 속했고 사랑은 그 결과가 행락이고 미움은 그 결과가 사망과 고통이다.
그러기에 나그네 세상에서 예수님이 오셔서 구속하실 이 사람들을 어떤 자로 만들려고 하시는가? 사랑의 사람으로 만들려는 그것이 목적이다. 이것을 하나 둘 연습하는 가운데서 사랑의 행사가 이루어지고, 사랑의 행사가 이루어지는 거기에서 사랑의 성품이 사랑의 취미가 사랑의 사상이 사랑의 사람이 이루어지는 이 일을 하려고 예수님이 오셨다.
그러기에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의 가치는 사랑의 가치요, 모든 존재의 능력과 지혜는 사랑의 지혜요 사랑의 능력이다. 아무리 위대한 지혜와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사랑의 능력과 사랑의 지혜가 아니라면 아무 작도 못 쓸 것이다. 미움의 지혜와 능력이라면 이는 필연적으로 그 결말은 완전 멸망이 된다.
3. 가장 행복한 사람
3.1.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가는 것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울리는 구리와 꽹과리가 된다.’ 그 말은 생명이 없다 말이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가치(價値) 없고 전체는 멸망할 것뿐이다. 자타에게 유익이 없다. 그런고로 모든 존재는 사랑만이 원하고 모든 존재에게는 사랑만이 필요하다. 영생법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요 모든 존재의 영생법은 사랑이다. 사랑은 받는 사람도 아주 좋지만 주는 사람은 더 좋다. 받는 사랑은 그 사랑을 주는 사람보다는 빈약하지만 주는 사랑은 받는 사람보다 모든 행복이 충만하다.
인간이 최고의 행복을 가진 자가 어떤 자일까요? 자기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뜨거워져서 자기 아닌 다른 것을 좋아하고 반가워하고 아끼고 위하고 복되기를 영광되기를 그가 참 쾌락하기를 이것을 원하는 그 사람으로 되어 있는 이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이것이 점점 넓어져서 하나를 내가 사랑하고 둘을 사랑하고 셋을 사랑하고 열을 사랑하고 백을 사랑하고 마지막에 전부를 전 존재 전부를 사랑할 수 있는 자기가 되고 사랑함으로 자기 모든 것을 투자할 수 있는 자기가 되고 또 이렇게 사랑하되 시간적으로 지금도 사랑할 수 있고 백 년 후에도 사랑할 수 있고 만년 후에도 사랑할 수 있고 여기에도 여기 사랑할 수 있고 저기 사랑할 수 있고 늙으면 사랑할 수 있고 죽음에 사랑할 수 있고 부활해 사랑할 수 있고 심판에 사랑할 수 있고 무궁세계에 사랑할 수 있는 이 사랑으로 점점 그것이 개량되어가는 그것이 인생의 가치가 커지는 것이요 실력이 커지는 것이요 행복이 커지는 것이요 생명이 커지는 것이다.
3.2. 도성인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랑의 밑천
이 세상에는 미움으로 점점 커지는 사람도 있고 사랑으로 커지는 사람도 있다. 미움으로 커지는 사람은 자기 가치가 점점 허무해져 가고 자기에게 고통과 불행이 점점 커지고 사망이 점점 커지고 대적이 점점 커지게 된다. 그러나 사랑이 점점 커지면 자기는 존재의 가치가 점점 커지고 행복이 커지고 영광이 커지고 모든 존재에게 필요의 가치가 점점 커지게 된다. 이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사랑으로 점점 커지게 하여서 그 자체가 모든 것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자체로 성화하고 유익을 줄 수 있는 자체로 성장시켜서 자기의 모든 욕망이 타(他)에 있고 자기의 행복이 타(他)에 있고 자기의 기쁨이 타(他)에 있고 자기의 전부는 타(他)에게 투자되어 영원히 투자될 수 있는 이 자기의 밑바탕이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나타났다. 이래서 이것을 가리켜서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포도나무 가지라 내 아버지는 농부라 이것을 많이 맺는 자는 내 제자가 되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의 지식이나 자기의 사상이나 자기의 욕망이나 자기의 노력이나 자기의 기쁨이나 이런 것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되기를, 다른 것이 행복되기를, 다른 것이 잘되기를, 이렇게 모든 것이 다른 것을 사랑하는 이 사랑의 이 모든 것이 매여 있고 속하여 있는 이 사람이 가장 행복한 행복된 사람이다. 이것을 만들기가 참 어렵다.
세상은 한 꺼풀 두 꺼풀 여러 꺼풀이 있어서 별별 모양으로 많이 중복돼 있지만, 세상은 타(他)를 위해서 있는 것 같지만 자기를 위해서 다른 것이 있어지기를, 자기를 위해서 다른 것이 행복 되기를, 자기가 근본이요 모든 자기 아닌 다른 것은 자기를 위하는 세상이요 이것은 전부 사망뿐이다.
자기의 행복이 무엇이냐? 자기의 행복이 사랑이다. 사랑은 인간에게 없고 하나님에게만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 4:9)
이 사랑을 받은 자가 어떤 자냐? 하나님이 당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시고 영원히 희생하여 영원히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로 말미암아서 당신이 원하는 대로의 행복된, 우리가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의 영광된, 우리가 어떻게 잘 되기를 원하시는 그대로의 잘된 우리가 되는 요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이 사랑을 가진 자이다. 이 사랑으로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자기가 아무리 어떻게 됐다 할지라도 자기가 이 받은 전부를 다하여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자기 아닌 그 이웃에게 전부되는 이 자가 인간을 성공한 자요 행복된 자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이 사랑의 사람이 되어서 살아나게 된 것이다.
그런고로 사람이 가장 행복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가장 행복된 사람은 자기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된 것이 행복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싶고 그를 위하여 내 전부를 다 투자할 수 있는 요런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이 요것이 가장 행복의 사람이다.
4. 가장 불행한 사람
4.1.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사랑치 못하는 사람
그렇다면 제일 불행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제일 불행한 사람은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사랑치 못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존재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더 큰 불행에 있는 사람이요. 다른 사람이 불행해지기를 원하는 그 사람은 더 불행 속에 빠진 사람이다.
4.2. 다른 사람의 불행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
이 사람보다 더욱 불행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위해서 자기의 것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이 최고 불행의 그 사망 속에 들어 있는 가장 불행스러운 사람이다.
사랑은 받는 데에서 그 행복스러운 맛보다 주는 데에서 행복스러운 맛이 더 강하다. 미움은 받는 사람의 그 고통의 불행보다 미움을 주는 사람의 불행과 고통은 더 크고 심한 것이다.
그러면 이런 불행한 삶을 살다가 간 인물들로 우리는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자기보다 더 잘되는 것을 못 보는 성질의 사울이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다윗을 죽이려고 얼마나 노력하였으며, 나중에는 하나님께 버림받아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또 다니엘의 세 친구를 용광로에 집어넣으려다 자신들이 7배나 뜨겁게 한 불에 다 타 죽은 자들을 예로 들 수 있다.
다니엘이 잘되는 것을 미워하여 사자굴에 집어넣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이런 불행한 사람들의 무리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도 마귀의 종이 되어서 이단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사람들, 부모를 불태워 죽이고, 청부해서라도 죽이고 자기의 행복을 누리려는 불효자식들,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 강도들 등을 꼽을 수 있을 있다.
5. 다른 사람의 구원(행복)을 위해 사랑을 베푸는 행복한 삶을 살아라!
그러기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생의 행복은 어디 있느냐? 인생의 행복은 사랑을 받는 데에 있다. 그보다 더 큰 인생의 행복은 사랑을 주는 데 있다. 인생의 불행은 미움을 받는 데에 있고 그보다 더 큰 불행은 미움을 주는 데에 있다. 이 행복의 크고 작은 차이가 그 수를 헬 수 없이 심히 많으니 어떤 사람은 공간적으로 종별적으로 단둘이 사랑함으로 이 행복을 가진 것은 극히 유약하고 빈약한 행복이다. 또 시간상으로 이 시간에만 사랑을 주고받음에 이 행복을 가지고 요것이 다음 시간에는 이 사랑을 주고 가는 것이 끊어질 수 있는 현실만 가진 이 행복을 가진 사람이 가장 사랑의 행복을 빈약하게 가진 사람이다. 사랑의 행복을 이 자리에서는 이 굴 안에서는 이 방안에서는 이 자리에서는 이 사랑을 주고받아 행복하지만 이 장소를 옮겨 이 장소가 바뀌면 이 주고받는 사랑이 변해서 이 사랑이 끝이 나는 요런 사랑이 빈약한 사랑이다.
인간의 행복은 어디 있느냐? 인간의 행복은 사랑의 주고받는 데에 있다. 인간의 기쁨은 어디 있느냐? 사랑을 주고받는 거기에 있다. 마치 포도나무 가지가 원 둥치로부터 진액을 잘 주고받음으로 열매를 맺음으로 주인의 극진한 관리와 사랑을 받는 건강한 가지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불행은 어디 있느냐? 미움을 주고받는 거기에 있다.
인간의 고통은 어디 있느냐? 미움을 주고받는 거기에 있다.
그러면 자기를 가치 있게 영광스럽게 하는 것은 무엇이냐? 자기를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자기를 기쁘게 할 자는 어떤 자냐? 자기를 기쁘게 할 자는 위로부터 사랑을 받는 데에서 인생은 기쁨을 찾을 수 있고 이웃에게 사랑을 주는 데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으니 무한한 자에게서 오는 사랑을 주는 데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다. 무한한 자에게서 오는 사랑을 받을 때에는 무한한 기쁨을 자기가 누릴 수 있고 유한한 자기가 사랑을 줄 때에는 사랑을 받는 그가 기쁨보다는 뛰어난 기쁨을 자기가 가질 수 있는 이것이 인생이다.
사람들은 악령이 어둡게 한 이 어둠으로 말미암아서 이렇게 가치 있고 행복 되고 정말로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잘 안 된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므로 말미암아서 행복을 누릴 수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를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함으로 자기의 전부를 다 내어 놓는 희생을 치러서 하나님으로부터 최고의 사랑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사랑함으로 예수님처럼 우리의 물질, 몸, 인격 전부를 다 희생하기까지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으로 자라가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오래오래 참으며 사랑을 베푸는 삶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가라!
어떤 경우도 다른 사람의 구원에 손해를 끼치는 불행을 위해 삶으로 최고로 불행한 사람이 되지 말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5-11)
참조: 79070653.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09-09 1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