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7:5-62010090133날자: 2010년 9월 5일 주전
제목: 내게는 믿음이 있는가?
본문: 누가복음 17장 5절 - 6절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1. 나는 세상을 이용하고 있나? 피동 되고 있나?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후 인간에게 주신 권세가 환경을 다스리고 이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
우리는 태어나서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세상이라는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환경은 우리를 그냥 두지 않는다. 항상 우리를 해치려고 힘쓰고 있다. 이러한 환경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지금 모습은 세상을 이용하고 있나? 피동 되고 있나? 돌아보도록 하자.
즉 살아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목적대로 우리의 믿음이 자라서 주님을 점점 닮아가고 있는가? 나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점점 널어나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드러내고 있는가? 그 역사가 더욱 풍성하게 확산하고 있는가? 세상에 빛으로서,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런 점을 점검해 봄으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대로 환경을 다스리고 이용하는 자인지 아니면 환경에 피동된 죽은 믿음의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주님의 말씀을 잘 준행하고 있는가?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역사가 점점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는지 아니면 점점 쪼그라 들고 있는가? 하는 것을 진단해 보자.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20)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만약 우리가 세상에 피동 되고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며, 이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면 그 비결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그 교훈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2.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2.1. 작은 믿음이라도 있었더라면
이 누가복음 17장은 도래(到來)할 하나님 나라를 맞이할 제자들의 자세에 대한 말씀이다. 1-4절까지는 실족과 용서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5-10절까지는 종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는 사도들의 요청에 의해 시작된다. 그런데 7절이하에서 예수님은 종의 비유를 드시면서 ‘종의 자세’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러면 제자들이 왜 예수님께 믿음을 더하소서 하고 부탁을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현장에서 사역을 하면 할수록 병자를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쉽지 않음을 절감했을 것이다. 즉 능력의 필요성을 절감했기에 이런 부탁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 말씀을 지난 수요일에 같이 나눴음에도 이 말씀을 다시 찾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목회를 하면 할수록 살면 살수록 하나님의 능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사도들의 요청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 17:6)
이러한 예수님의 대답은 제자들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시고 그 핵심을 찌른 대답으로 보인다. 즉 제자들은 믿음에 대해 “양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곧 믿음이 많으면 많은 역사, 큰 역사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믿음이 많으면 병고치는 역사, 귀신을 쫓아내는 역사가 잘 일어날 것으로 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이런 역사가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은 믿음의 양이 부족함이 원인으로 보았던 것 같다. 이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 것은 예수님도 가끔 그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14:31)라고 책망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음에 대한 이러한 “물량적 이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음을 간파(看破)하시고 믿음의 “질적 성격”에 대해 말씀하셨다. 곧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즉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참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 믿음이 역사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진단은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지적한 믿음이 무엇일까? 그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뜻을 찾고, 깨달은 대로 즉시, 온전히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겨자씨는 작은 것이지만 살아 있고 성장할 수 있다. 작은 겨자씨처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진정한 것이라면 작더라도 뿌리를 내리고 자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자라면 자랄수록 그 성장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 면을 예수님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작은 믿음만 있더라도 뽕나무를 뿌리채 뽑아 바다로 던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누가는 이 믿음의 결과에 필연성을 나타내서 말씀했다. 이것은 비유인데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참 연결된 생명 있는 산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라는 의미이다. 겨자씨처럼 작은 것이라도 거기에 생명이 있다면 필연적으로 놀라운 역사는 일어난다는 것이다.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이다.
뽕나무는 많이 자라면 11미터까지 자랄 수 있다. 마태복음은 산을 들어 바다로 던질 수 있다는 비슷한 교훈의 말씀을 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마 21:21)
나무를 뿌리채 뽑고 산을 옮기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해 준다. 믿음의 작은 “씨앗”만 있어도 충분하다! 아멘!!!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작음 믿음으로도 엄청난 역사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교훈 해 준다. 믿음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작은 믿음이라도 있으면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중요하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얼마나 희망과 용기가 생겼는지 모른다. 나같은 존재도 믿음의 양이 많아야 한다면 희망이 없다고 보아야 하는데 작은 믿음이라도 믿음만 있으면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교훈을 깨닫고 보니 저도 희망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도 희망이 있는 것이다. 예수를 얼마나 오래 믿었느냐? 잘 믿느냐 못 믿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직분이 목사냐? 장로냐? 집사냐? 권찰이냐? 도 문제가 아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가 문제이다. 할렐루야!
2.2. 말로 명령하면 역사가 일어난다.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눅 17:6)
뽕나무는 비유이다. 뽕나무는 뽑기 매우 어려운 나무이다. 앞에서도 잠깐 말씀 드렸지만, 이스라엘 지역에 자라는 뽕나무는 큰 것은 10m 전후까지 자란다고 한다. 이 뽕나무를 말한 것은 제일 뽑기 어려운 것. 또 옮겨 운반하기에 제일 어려운 것. 심는 데에도 흙에 심기가 쉽지 바다 위에 심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데 심겨진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작은 믿음이 있었더면, 그리고 너희가 그 믿음을 실천에 옮긴다면 이 뽕나무에게 말 할 수 있으리라”는 뜻을 추정된다. 다를 말로 표현한다면 심지어 뽕나무의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는 것을 포함하여 주님으로부터 위임받은 모든 사역(과업)을 하나님과의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한 너희는 모두 다 성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생각 해 볼 것은 ‘말하면 순종하리라’라고 한 것은 네가 무슨 연장을 가지고 그와 같이 하는 것이 아니고 너는 말로 가지고 전부 다하게 되리라. 네가 그것을 뽑힐 것을 뽑히도록 말을 하면 그게 뽑혀질 것이고 또 옮기도록 말하면 옮겨질 것이고 심기도록 말하면 심겨질 것이라는 것이다.
사도들이 놀라운 사역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었던 계기는 이러한 예수님의 교훈을 통해 확신이 생겼고, 또 실제적으로 믿음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사도들의 정신상태 즉 사도들은 어떠한 사고방식과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이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렇게 믿음을 가지고 사역을 하면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면 괜히 자기가 뭔가를 한 것처럼 우쭐해지지지 않겠는가? 그럴 때 그들이 가져야 할 자세가 무익한 종의 자세라는 것을 예수님은 7절 이하에서 교훈해 주셨다. 아래의 말씀을 참조하여 더욱 우리가 가져할 자세를 정립하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마 21:21)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눅 10:20)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세상을 이기는 이런 신앙을 가졌다고 하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런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산 믿음이 있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이것이 안된다고 낙망할 것이 아니고 또 두려워할 것도 아니고 거기에 대해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고 그대로 두고 있지도 못하고 반드시 네가 명하였을 것이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생명 있는 믿음이 아니라면 그런 것을 보고 후퇴하는 사람, 낙망하는 사람, 포기하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2.2.1. 최권능 목사님의 경우
최권능 목사님이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 때문에 평양 감옥에 갇혔을 때에 그는 아침마다 설교를 했다. 아무리 금해야 금하지 못하고 마지막에는 해방될 때까지 계속하니까 아예 그 시간 되면 최권능 목사님 이제 설교가 나온다 하고 모두 옥중에 있는 성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어떻게 그만한 새로운 힘이 나서 또 이길 힘이 나서 했을까요? 그는 감옥에서 목회를 했다. 새벽마다 “회개하고 예수 믿으라” 하는 그 소리를 외치는데 처음에는 제재했지만, 나중에는 제재도 못하고 그 외치는 그 한소리로서 그때에 그 간수들이 얼마나 많이 회개하고 예수 믿었다고 한다. 최권능 목사님의 그 음성을 한번 듣고 나면 그 믿음이 굳건해졌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권능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나요?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럴까요? 우리도 작은 믿음이라도 가졌는지 심각하고도 철저하게 진단해 보아야 한다.
3.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 하심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주인공이 되라.
따라서 믿음 생활은 그가 닥치는 그 현실을 보아서 알 수가 있고, 믿음의 능력은 뽑고 옮기는 그 역사가 일어나는 그것으로서 증명된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다.
우리가 목회의 실력이나, 개인으로서 자기 가정을 구원시키는 그 실력이나 다 같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가정교회의 목회자요, 어떤 자는 사회교회의 목회자요, 그 가정에 제일 처음에 믿는 사람은 그 가정교회의 목회자이다.
이런데 그것이 왜 안 되느냐? 왜 역사가 일어나지 않느냐? 작은 믿음이라도 우리에게 없어서가 원인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일하셨다. 지금도 말씀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역사 하신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 능력 받아서 일하는 것도 말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급선무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믿음으로 살면 기적의 역사는 필연적이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을 믿음으로 감당할 때 성령님이 역사 하시니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이전까지 경험할 수 없었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우리도 이제부터 겨자씨처럼 작은 믿음이라도 산 믿음을 가진 주인공이 되자. 말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 하나님의 역사 하심을 풍성하게 경험하고 누리는 주인공이 되도록 하자. 지금까지 이런 능력의 역사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권세와 특권을 주셨음에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원통하지 않은가? 이제부터라도 믿음을 간직한 사람, 믿음의 기적 역사를 풍성하게 나태 내고 누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주인공이 되도록 하자. 주인공되세요.
참조: 81082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