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응답의 조건

2010.08.07 21:40

윤봉원 조회 수:936 추천:66

요 15:7-122010072830

날자: 2010년 7월 28일 수새
강사: 김병춘 목사
제목: 기도 응답의 조건
본문: 요한복음 15장 7절 -12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 기도 응답의 조건은 무엇인가?
전제 조건이 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네 안에 거하는 것이다. 이것만 하면 무엇이든지 실행해 주마 약속하셨다. 이 약속을 참되다 신실되다 믿는다면 그래, 됐다. 지금까지 내 노력으로 연구로 투자로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어떤 것은 없어야 되기 때문에 막아 보려고 어떤 것은 성취해 고 백방으로 노력해도 안되든 것 이제는 두 가지 쯤이야 못하겠느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생명체라면 다 자기 나름대로는 자기가 거처할 머물 처소를 자기 재능 것 마련해서 그 처소에 머물며 안식을 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땅 속에 있는 지렁이나 굼벵이도 나름대로는 땅 속을 자기의 처소로 마련해서 살고 있다.
물속에 있는 것들도 참 재능이 묘하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까 그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나름대로 이 몸이 거처할 집들은 마련해서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처소에 지나지를 않는다.
주 안에 우리가 거한다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거처로 삼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사람들은 이 세상사는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어떤 사람은 달세, 전세, 자기 집, 열 평짜리 20평, 40평, 60평짜리 처소를 마련해서 살고 있는데 그곳도 잠시 뒤는 아이들 어릴 때 소꿉 장난하다가 이것은 내 땅, 이것은 네 땅 “애야 밥 먹으러 오너라” 하면 다 버려두고 가야 하듯이 주님이 오라 하면 다 두고 가야 한다. 
거주의 처소만 아니고 지식의 처소, 인정의 처소도 다 두고 떠나야 한다. 나그네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처소로 삼도록 하시는 데는 얼마만 한 자본이 투자가 되고,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하는 것은 우리의 거처를 주님 안으로 정해 주시고 허락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내 안에 거하거라 하시는 이 한 말씀을
이제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하는 특권을 부여 받은 복 있는 성도가 되었다. 세상 어떤 것을 안식처로 삼는 것보다 예수님을 나의 안식처로 삼겠다.
우리가 꿈꾸고 생각하던 세상에 어떤 처소, 경제적으로는 얼마만큼 우리 나라의 부자는 억수는 부자도 아닌 것 같아요. 57억이면 부자로 인식을 한 답니다.
그 경제 처소에 사는 것 어떤 지위를 마련해서 지위 처소에 사는 것, 어떤 기능을 마련해서 기능 처소에 사는 것, 어떤 대우와 환영 인정과 존경을 마련해서 인정과 존경 처소로 삼는 것 많다. 그러나 그 것 합쳐도 주님 안에 거하는 것만 못하다. 이것이 확정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도 돈 좀 벌어보겠다고 열심히 해도 십억 못 모은 분들이 교우 중에 반 먹을 걸요. 저축이.
오늘 아침에 횡재 만났지요? 오십칠억 보다도 더 좋지요. 서울 시장보다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이 더 좋다면 횡재한 것이지요? 주님이 얼마나 좋다는 것을 몰라서 그렇지 이분 안에 있는 것이 우리에게 허락되었는데 이것을 잊고 있다가 이 시간 다시 주님이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 안에 거할 수 있는 선택된 내 아들 딸들이다. 이것을 이제 우리 주관이 하나 둘 깨달아가는 느껴 가는 여기서 주님 안에 거하는 이 사실에 실효를 하나 둘 누려 나가는 만끽 해 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자를, 이제 우리는 예수 안에 거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가를 하나 둘 자꾸 깨달아 가야 한다. 우리 주님 모시고 주님 안에 거하는 자가 되면 천상천하에 모든 것을 주님이 만드셨고 주님의 주권하에 유지되고 있는 것들인데 뭐 겁날 것이 있고, 두려울 것이 있고 모자랄 것이 있겠습니까?
2. 주님 안에 거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2.1. 말씀 안에 거하는 것
2.1.1. 성경을 읽어라
첫째로 신구약 성경 말씀 안에 거하면 된다. 창조주요 전지 전능자요 만 왕의 왕, 박테리아 한 마리 번식된 것도 주님의 주권하에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위대하신 주님 안에 거할 수 있는 이 주님을 모시고 주님 안에 거하는 자가 되면 내 대적이 약한 것보다 강한 것이 더 좋다. 괴로움을 더 많이 받던 그 상대를 만나면 더 의기양양하다. 이 주님 안에 거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는데 쉽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신구약 66권 안에 거하면 주님 안에 거하게 된다.
말씀 안에 거하는 자를 누구를 막론하고 말씀 안에 있으면 우리 주님이 그 사람 홀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안에 거하는 우리가 됩시다. 성경 안에 거하는 우리가 됩시다. 소망이라도 같이 가지면서 하는 것이 내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신구약 66권 안에 거하려면 성경을 알아야 하겠기에 성경을 읽읍시다. 하루에 3장만 읽으면 일 년에 한 독을 할 수 있다.
성경을 읽기를 우리 주님이 원하십니다. 고대 구약 시대 성도들에게까지도 성경을 읽어라.
신명기 6장 6절 이하에 보면옷 단에도 기록하고,,,,계시 1장에도 이 성경을 읽는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성경 읽는 것이 소원이 같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 시간을 통해서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우리를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요 12:50에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나는 그의 명령 영생인 줄 아노라.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말씀하는 것을 예수님은 영생으로 이해를 했다. 영생으로 들려 졌다. 아버지를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가 영생이니 영생으로 바로 안 것이다. 이와같이 신구약 성경은 어느 말씀이든지 내가 들을 때 고맙다 감사하다 밑줄을 긋자 하는 말씀이든지, 성경을 무섭다 너무하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산 제사로 드리라. 너를 부인하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그러나 이것은 내가 아직까지 철이 없어서 그렇지 우리가 어렵다고 생각되는 성경, 위대한 목사나 성자 성녀가 순종할 것이지 우리 정도는 이런 말씀은 안 돼 하는 말씀일 수록영양가가 더 많이 들어 있다. 이래서 기본적으로 이제 신구약 66권은 어느 성구 어느 단어 어느 말씀이든지 예수님같이 우리도 신구약 66권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요 2:50에 영생이라. 영생의 말씀으로 기본적으로 이해를 하고 성경을 대하는 우리가 되자. 이것이 세 시간 증거하고자 하는 이것입니다. 어느 말씀이든지 우리를 조금도 힘들게 하거나 내 사업에 지장되게 하거나 이런 것이 아니고 받아야 할 것 같으면 참말로 내 진로에 방해되는 것을 정리해서 튼튼 대로가 되게 해 주시는 말씀이다. 한 마디로 영생이다.
기본자세를 바꿔야 한다.
예수님은 영생이다 하셨는데 나귀 타고 입성할 때 제자들이 겉옷을 깔아주고 환영하니 좋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내가 목적하고 경영한 소원 내가 택한 백성들을 내 목적 성취를 이루어 다오 라고 음을 명령하셨을 때에도 예수님은 이것은 힘드네요 하지 않았다. 동일하게 영생인 줄로 바로 파악을 했다. 아버지를 위해 드린 것 아니다.
이제 성경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이렇게 가질 것
내게 대해서 명령이,,,
그때도 성경을 읽는 것이 영생이다. 새벽기도 하라 하면 하는 것이 영생이다. 여기까지 지식적으로 성경은 영생.
2.1.2.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도 영생이다.
말씀이 객관으로 있을 때는 말하기가 쉬운데, 자기와 상관 없을 때는 잘 믿는다. 그런데 문제는 마르다와 마리아야 돌을 옮겨 놓으라 하니 예수님이 바꿔 졌습니까? 동일한 분입니까? 같이 믿어졌어요 획 바뀌었습니까? 객관이 될 때는 잘 믿으나 일대일로
당사자가 될 때는 부인한다. 이것이 문제다.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도 영생이다.
내게 대한 하나님의 말씀도 성경과 동일하다.
같은 말씀인데도 무덤 앞에 섰을 때는 거부가 되었다. 이것을 깨트려야 한다.
 진리가 야 나 거부하지 않았느냐 뭐라고 변명하겠습니까? 일차적으로 주님 안에 거하려면 말씀 안에 거해야 한다.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도 영생인 줄로 기억하라.
이제 말씀대로 해야 되겠느냐 현실대로 해야 겠느냐 논리를 해 보면 힘이 나올 것입니다. 이럴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읽어야 한다. 알아야 하기 때문에,
2.1.3. 들어서 알아야 한다.
신 28장에 삼가 들어라 했다. 당신의 말씀을 가르치는 강의의 시간으로 정해 주셨다. 11시간 배우고 듣도록 하겠다. 참석하면 참석하는 너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나는 산광교회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세운 하나님의 종이다. 사례 주고 세워 놓고 왜 참석하지 않습니까? 새벽기도 안가면 자기
잘 듣는 사람이 되어서 알아야 한다.
2.1.4. 순종하라
읽어서 알고 들어 알고 아직까지도 객관 지식이다. 내 주관 지식이 안 되었다. 남의 지식이다. 이것은 냉장고 안에 온갖 좋은 구비한 음식이 내 양식, 가족 양식이라도 양식은 안 되었다. 실제로 먹어야 내 양식이 된다. 내 양식을 만들려면 순종하자 실행하자 돌을 굴려 내자, 내 지식에 안 맞아도 아무리 내 동생이지만 장래까지 치렀으니 형제로의 의무를 다했다. 예하고 돌을 굴려 내라. 실제로 굴려 내라.
이제 우리도 말씀 안에 거하려면 읽어 알고 들어 알고 배워 안 것은 하나님이 다 순종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가 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묵상을 해서 관련된 말씀들을 하나 둘 생각해 보면 기가 찬다. 이래서는 안되겠구나 새로움이 얼마든지 나와 진다.
이래서 말씀 안에 거할 것. 이것이 일단계로의 주님 안에 거하는 과정이다
2.2. 예수님의 대속 안에 거하는 것
그 다음은 예수님의 대속 안에 거하는 것이다. 대속은 죽으심의 대속 세 가지, 이것을 늘 대속 아니면 설교가 안 돼, 하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미어진다. 신구약 성경은 누구를 가르칩니까? 예수님 한 분을 중심해서 가르친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결정체라 할까 예수님은 무엇으로 완성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의 근원이 된 것은 하나님만으로는 우리와 아무 상관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면 멸하기만 하고 두렵기만 하지 아무 상관없다.
그러면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이 되고 은혜가 되는 것은 예수님 한 분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말미암아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으로 연결이 됩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활의 대속이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아무런 관련 없는 자가 되고 만다.
사죄 안에 거하지 않으면 예수님 안에는 거할 수 없다. 사죄는 죄가 하나도 없는 것, 죄를 안 지어서, 회개를 해서요? 회개는 하면 할수록 죄가 더 많아진다.
죄 없는 자가 되는 것은 내 죄를 다 받아 주신 예수님의 사죄를 믿는 법 밖에 없다. 사죄 속에 들어가니 죄를 찾을수록 죄가 없다. 아멘입니다. 참말로 얼마나 좋은지. 이 세계로 들어가야 예수님 안으로 들어간다.
회개를 해도 사죄를 입는 회개라야 한다. 사죄 입으면 무사통과이다. 죄를 안지어 보려고 착수해야 한다. 거짓말 안하려고 욕을 안 하려고 해 보며 죄 이기는 것이 이렇게 힘드는구나 알 수 있다. 제가 돈을 벌어보면 돈의 귀중성을 안다. 돈을 아껴 쓸 줄도 안다.
사죄를 주시기 위해 당신이 죄를 하나도 짓지 않는 이런 무죄자가 되어야 자격자가 되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의 사죄를 실질적으로 깨달아야 하겠는데 이러려면 내가 죄를 안지으려고 애를 써 봐야 한다.
다른 사람을 죄에서 해방시키려고 노력을 해 봐야 한다. 죄 안 짓는 사람 만들려고 노력 해 봐야 한다. 그러면 내게 사죄를 주기 위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사죄는 모든 사망에서 해방이다. 이것이 싫다 하니 피를 토할 말이다. 우리는 평생 노력해도 한 사망도 해결 못한다. 죽어도 죄 안 지으면 불행이 안 온다.
모든 사망은 죄 때문에 온다. 사죄 속에는 칭의를 입을 때 예수 안에 거할 수 있다.
의가 얼마나 좋습니까? 옳게 해 보려고 각오하고 결심하면 더 안되는데 어떻게 합니까?
평생 한 번도 안 먹어본 음식의 맛을 알 수 없다. 이제 우리가 들은 대로 배운 대로 예수님의 칭의가 얼마나 값진 칭의인가 하는 것은 자기가 행해 봐야 안다.
사죄의 이면에는 사망에서 해방된 것이 들어 있었다. 칭의라는 보따리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08-0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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