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07 17:42
날자: 2010년 5월 5일 수새
강사: 전병두 목사
제목: 오병이어의 기적
본문: 마태복음 14장 15절 -21절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 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1. 비합리적인 말씀
전 시간 주의 종을 통해서 진리와 영감을 우리 안에 채우고 진리와 영감을 따라 가자. 거기에 진정한 성공이 있다. 그렇게 영적인 은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육신의 떡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영적인 떡과 육신의 떡 이 두 가지 문제가 오늘날 교회와 모든 신앙인들에게 갈등을 일으키는 두 요소입니다.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살고, 사람이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제게 강사라는 중책을 맡기시기는 맡기셨는데 하나님께 항의를 했습니다. 왜 제가 맡아야 합니까? 잘하는 것도 은혜지만 못하는 것도 은혜다.
벳세다 광야에서 이만 명의 대 군중에게 떡을 먹이신 주님. 다섯 개의 떡과 생선 두 마리로 그 많은 사람을 먹이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에 남기신 주님.
우리 예수님께서 하시려고만 하면 보리떡 한 덩어리가지고도 십만 명도 먹일 수 있고, 백만명도 먹일 수 있습니다. 숫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사실 이 내용이 4 복음서에 꼭 같이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어린아이가 한 번 먹을 식사라 했습니다. 어린 아이가 먹을 것 가지고 장정 열 명만 먹어도 기적입니다. 하나님 열 명만 먹일 수 있는 사람이 나와도 되겠습니다. 기도를 했습니다.
참석하시는 분들 신령한 양식 영적 양식 먹기 위해 모였는데 주님 앞에 모였습니다. 나는 보리떡 밖에 없습니다. 찰떡 준비하지 못하고,
2. 본문 요약
본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세례 요한이 헤롯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요한이 어린 아이의 춤값으로 죽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예수님이 벳세다 광야로 가서 앉으시니 새로운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모인 무리들에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으로 잘 양육하시고 앉은뱅이도 일으키시고 소경의 눈도 열어 주시고, 벙어리도 말하게 하시니 벳세다 광야는 은혜가 충만한 자리였습니다.
은혜만 주시면 가시밭에 앉아 있어도 기쁘고 즐거운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만 주시면 장소가 문제가 아닙니다.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지요. 하니 예수님께서 네들이 먹을 것을 줘라 했습니다. 이 말을 잘못 들으면 비자금 가진 사람이 나눠 줘라 말이 됩니다. 그러나 결국은 예수님이 해결 해 주시는 것입니다.
제자들과 예수님 둘 가운데 누가 합리적이고 현실적입니까? 제자들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신앙생활할 때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시는 말씀이 내가 받아들이기는 비합리적인 것이 있습니다.
대부분 그렇습니다. 주님이 요구하는 것이 현실에서 지켜 행하려고 하면 현실성이 없습니다. 현실성이 있다면 순종하지 말라고 해도 순종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상황에 주시는 말씀, 그 말씀이 내가 현실적으로 마음에 인정이 되고, 내가 현실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것 같으면 따라가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네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따르라 그렇지 않으면 못 따른다.
요한복음 6장에 보니 어린아이 하나의 양식이다.
빌립이 말하기를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있어도 모자랍니다. 이것을 계산하면 2천만원이 있어도 이 사람들을 먹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은 우리더러 먹이라 하지만 불가능합니다. 안 되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 가져 오면 기적이 일어나는데, 언제 놀랍게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역사이다.
벳세다 광야에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장정만 오천명이 먹고 남은 기적을 우리 한 번 구경 한번 해 보자 이것입니다. 이것을 구경만하고 끝나면 연극 영화 구경하는 것과 꼭 같습니다.
3. 은혜의 잔치에도 육신의 배는 고플 수가 있다.
첫째로 은혜의 잔치에도 육신의 배는 고플 수가 있다. 지금 광야에서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각종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육의 양식은 모자랐습니다.
우리 육신 문제가 영적인 생활하면서도 항상 맨 선두에 서서 영적 삶을 리더하고 있다.
은혜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정의라고 하는 것은 네가 열대 맞을 짓을 했으니 열대 맞아라. 공의의 법이다. 자비는 열 대 맞아야 하는데 다섯 대를 감해 주마. 은혜는 네가 열대를 맞아야 하는데 불쌍한데 열 대를 감해 줘서 너는 안 맞아도 된다. 이것이 은혜이다.
여러분이 받은 은혜가 어떤 것입니까?
구속의 은혜, 자존, 목적,,,자녀 구원 가운데 멀고 먼 가운데 구속의 은혜는 은혜의 절정입니다 에베소서에 보니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렸다. 우리는 공짜로 받았지만 값이 들어갔습니다. 측량할 수 없는 값이 들어갔습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감사가 안 되요. 공짜인데.
당신이 나를 위해서 죽고, 죽은 나는 살아난 것입니다.
예수님 옆에 여러분들과 내가 서 있습니다. 그 옆에 나를 세워 두셔야 합니다. 내가 예수 때문에 살지, 이 세상에서 내가 살아날 가능성은 1%도 없다. 예수 때문에 살았다.
인간의 노력이라고 하는 것은 살기 위한 노력이다. 인간의 노력은 살기 위한 노력인데 죽자 껏 살기 위해 한 노력이 또 다른 감방으로 들어가더라 이것이 인간의 노력이다. 인간 스스로는 해방과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괜히 어리석고 건방져서 내 일생을 자유롭게 행복하게 만들어 보려고 하고, 나를 속이는 자가 나다. 이것을 모릅니다. 이 세상에 믿을 놈 아무도 없다. 나 밖에 없다. 너를 어떻게 믿니?
비유컨대 몽테그리스데 백작 책을 비유컨대 비록 잘못됐다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내가 길을 잘못 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은혜 되게 하시면 은혜 되고 복되게 하면 복이 되게 하는 줄 믿으십시오.
어떤 사람이 죄를 지어서 감방에 들어가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33인 중에 크리스찬이 16명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2천 몇 백명 중에 2%입니다. 그 중에 크리스챤이 16명이라. 월남 이상제 선생이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종이를 말아놓았습니다. 그것을 펴서 읽어 보았습니다.
왠편 뺨 때리거든 오른뺨 대 주고 오리를 가자하거든 십리를 가고. 두었다가 또 읽어 보고, ...나중에 이상재 선생이 고백이 내가 감옥에 들어가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복과 화가 사람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 따라 다니지 마십시오. 다 하나님으로부터 내려 옵니다.
약 빛들의 아버지
4. 선민의 삶
4.1. 은혜 안에서만 산다.
죽어야 사는 것을 압니다. 내가 죽고 내가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대신해서 죽고 우리가 죽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고 내가 산 것입니다. 물건을 사면서 몇 백원 싸게 산 것은 감사하면서도 목숨을 통째로 건짐 받은 사실은 희미합니다. 내가 죽었으니 은혜로 살아라. 회개하고 은혜를 회복하는 집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는 죽고 죽을 놈 전병두가 살았습니다. 살아난 그 사람은 이제는 절대 안 죽습니다. 두 번 태어난 사람은 영원히 안 죽고 한 번 태어난 사람은 몇 번 죽어요. 몸은 죽이고 영을 죽이지 못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영과 육을 다 죽이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은 육신의 죽음 한 번만 죽으면 됩니다. 이렇게 두 번째 살아난 사람은 양식이 달라집니다.
선민은 은혜 안에서만 산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 아래서 40년 산 것을 생각해 봐라. 만나를 먹고 산 것을 생각해 보라. 성도는 어디에서 살 수 있느냐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구속의 역사 하나만을 생각해도 전적 은혜입니다.
빌립보 2장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5~8)
예수 편에 선 사람은 다 그편이 된 줄 믿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의법, 죄는 죽는다. 조그만한 죄라도, 작은 죄만 걸려도 너는 죽는다. 마음속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어도 간음한 것이다.
죄 값은 사망. 예수님이 대신 죽었습니다. 대속의 은혜 속에서만 우리가 사는 길이 있는 줄 믿습니다. 이 밖에는 살길이 없습니다.
4.2. 성도는 믿음으로 산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우리는 사는 길이 믿음으로 사는 길 밖에는 다른 길이 없는 줄 믿습니까? 믿음으로 나아가면 금생도 살고 내생도 살고,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산다.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도 믿음 지키면 삽니다. 불구덩이에 들어가도 삽니다.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의 행복, 기쁨, 소망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온갖 성도들이 원하는 천국이 믿음 안에 있는 것입니다.
믿음 떠나서 살길 있거든 떠나서 살아봐도 됩니다.
의인은 공자를 의인이라고 불렀어요? 석가? 모하메드?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받아들여서 죄사함을 입고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은 사람은 믿음으로 산다. 우리는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믿음 밖에 살아가는 길 밖에 없다.
4.3. 선민은 말씀으로만 삽니다.
신 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8:3)
우리 살길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만 따라가면 삽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니 말씀을 통해서 사는 길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1-2)
시간만 나면 말씀을 꺼냅니다. 로고스. 그때 그때 생각나는 말씀은 레마. 오늘날 명하는 말씀은 레마. 생각나는 하나님의 말씀.
성도는 말씀으로만 삽니다.
요삼서에 보면 순서가 있습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여 지고 이것이 순서입니다. 영이 강건해 지고 범사가 잘되고 몸이 건강해 지고,
우리는 거꾸로 갑니다. 뒤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대속의 은혜를 생각하면 내가 도무지 백이 뭉쳐도 안 되고, 천이 뭉쳐도 안 되는데, 육십억이 뭉쳐도 안 되는데 예수님이 살려 내 주셨습니다.
건설구원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돈도 하나님이 주신 것, 건강도 하나님이 주신 것, 태양도 하나님이 주신 것. 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진리와 성령을 따라 살면 구원을 이루게 되고, 내 생각을 따라 살면 버리는 것이 되는데, 우리가 마치 장사하는 것처럼, 이익이 남으면 네가 가지고 가고, 손해는 내가 책임진다.
성공한 것은 전부 내가 가지고 가고, 실패한 것은 주님이 몽땅 가지고 가고, 그래서 은혜라. 그래서 백 목사님은 구원 이루는 것은 쉽다.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의뢰하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하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는 것과 같아요.
5. 우리가 은혜 속에 들어가도 육신의 몸은 고플 수가 있다.
주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 주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가 거지라도 그 아들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염려 안해. 대통령이 미국도 가고, 카나다도 가고, 중국 일본을 갈 때 수행원들이 같이 갑니다. 그 수행원 속에서 오늘 파리가면 내가 어디 사지. 내가 비행기에서 내리면 뭘 먹어야 되지. 대통령 수행하는 사람이 숙소 걱정, 먹을 것 걱정하면 됩니까 안됩니까? 그런 것 걱정하는 사람은 안 데리고 갑니다.
너는 다른 것 걱정하지 말고 나만 잘 보필해라. 네 할 일은 조국을 생각해라. 국익에 유익되는 것만 생각해라. 그리하면 네게 필요한 것은 다 내가 더해 주리라(마 6장).
그런데 하나님을 모시고 간다 하는 우리가 무슨 걱정하고 있는지 돌아 보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인가? 섭섭해 하실 것인가?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지 여기에 대한 확신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도 이 확신이 안 되면 천상 내 힘이 동원됩니다. 내 기술이 동원됩니다. 인간 생각이 나를 끌고 가게 됩니다.
롬 8장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 육신의 생각이 우리를 끌고 갑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없으면 나를 사망으로 끌고 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해라. 너 부인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은 애굽 땅에서 자기 백성을 놀라운 역사로 건져 냅니다. 출애굽 역사를 보면 재앙을 그 나라에 열 번 내렸습니다. 왜 열 번을 내립니까? 애굽이 그렇게 밉습니까? 자기 백성들에게 내가 그니라. 내가 네 하나님이라. 내가 네 구원자를 알려 주시려고,
딱 한 방에 건져 낼 수 있지만 열 번 했다. 광야에 나셨습니다. 너희들은 자유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 모세야, 예, 천막 처라. 뭐하려고요, 내가 거기 살란다. 그래서 모 세가 시내산에서 최초의 성문성경 십계명을 받고 성막 모형도를 받아서 내려 왔습니다. 내려와서 지성소를 만들어 이스라엘이 있는 법궤에 좌정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진할 때 보면 장막을 중심으로 해서 세 지파씩이 움직였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할 때 법궤를 맨 사람들이 제일 앞에 서면 순서를 따라 갑니다.
주님을 앞세우고!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법칙이었다.
그들 가운데 장막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출 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도대채 이 말을 하신 분이 누구냐? 함께 하시면서 그들의 삶을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책임져 주시는 것을 보셨습니까?
광야 40년 동안을 지성소에 그들을 위해서 계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소리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사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장에 보니 창조주라. 말씀과 소리로 역사하신 그분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나라에 올라 가셨습니다. 그 주님이 가시고 난 다음에 이제는 영으로 우리 몸을 성전 삼고 내 안에 계시는 줄로 믿습니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까? 주님이 내 안에 계셔. 이 광야 길을 걸을 때 염려 할 것 없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염려하지 말라.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 모든 것이 은혜지만, 야곱의 일대기를 다뤄 보려고 했지만, 야곱은 간사한 놈이다. 이기적인 놈이다. 속이는 자이다. 야곱은 가치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다. 진짜 좋은 것을 발견한 자는 목숨 버릴 수 있습니다. 가치를 알면 내가 욕을 얻어 먹어도 상관 없어요.
야곱은 졸장부처럼 보이나. 대담 무상한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배짱 좀 있어야 합니다. 야곱이 형님과 협상해서 장자 명분을 받고 값을 줬습니다. 사과 한 상자 놓고 5원 하면 5원 주면 값을 준 것이라. 그 값을 주고 받은 장자가 그때부터 내가 장자라. 배포가 있습니다. 그리고 장자라고 자부심만 가진 것이 아니고 장자의 이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집도, 고향도, 인생도 버렸습니다. 대담부상한 사람입니다.
장자명분이 돈이 나옵니까? 집아 나옵니까? 이게 내 소중한 보물이다. 귀한 것이다. 이것 차지하기 위해서 집도, 아버지도 버렸다. 젊음도 인생도 여기에 집어 넣었다. 그래서 떠나서 벧엘 광야에서 하룻밤을 지나다가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이 책망합니까? 응원합니까? 야곱아 두려워 하지 말라. 안심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모든 것을 버려두고 네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생지일지 사지일지 모르고 가는 밤길에 내가 너와 함께 간다. 이것이 인생에 주신 최고의 축복인 줄 믿습니까? 나그네 인생을 사는 동안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내가 어디를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네 목표를 이루기까지는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참 멋쟁이라.
지금 그 하나님이 오늘 이 자리에 은혜의 잔치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에게 하나님 문제 있는 분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벳세다 광야에서 주님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오천명이 먹을 수 있나 없나 염려 해야합니까 안 해야 합니까? 뭐부터 믿어야 합니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염려 거리가 있을 때 해결이 됩니까? 안됩니까? 주님이 안에 계시면 됩니다.
6. 기적의 동기 부여자가 있었다.
기적이 일어나는 현장에는 기적에 동기 부여자가 반드시 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친 희생자가 있다. 집에서 교회에서 삶의 현장에서 기적이 나타났으면 좋겠지요. 여러분들이 동기 부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한 번 기적의 동기 부여자가 되어 보자. 뭐가 있느냐? 엘리야가 물었습니다. 가루통에 가루 한 줌과 기름 병에 남은 기름 이것 밖에 없습니다. 이것 웅쳐서 먹고 죽을랍니다. 그러니까 엘리야가 옳다 그것 내 놓아라. 이게 정신 있는 사람의 요구 입니까? 모자가 아껴서 아껴서 몽땅 털어 먹으면 끝인데 그것 내 놓아라 그것 정신 있는 소리가 아닙니다. 이것 드리는 것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여기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세계를 구경하지 못합니다. 가루 한 줌 기름 한 방울 값이 얼마 됩니가? 요즘 소보루 하나 값 됩니까? 안됩니까? 그것 바칠 수 있습니까? 그것 먹으면 산다면 바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시돈 지방 과부는 엘리야에게 갖다 놓았습니까? 목회자는 엘리야라. 거기서 진정한 목회를 보았다. 우리 속담에 코에 있는 뭐를 빼먹지. 하나님의 종은 그런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 엘리야에게 드려 버리고 모자는 엘리야가 먹는 구경하고 있다가 굶어 죽었습니까?
주님 손에 보리떡을 얹어 놓으면 보리떡 풍년지고, 주님 손에 우리 인생을 얹어 놓으면 우리 인생이 풍년지지 않겠습니까? 거기서 주님의 기적이 시작되는 줄 믿습니까? 이것이 얼마나 귀하기에 4복음서에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주님과 같이 있는 동안에는 염려하지 마시고, 기적이 일어나는 곳에는 동기부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붙들고 하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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