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

2010.05.07 17:40

윤봉원 조회 수:1144 추천:53

고후 5:1-102010050470

날자: 2010년 5월 4일 화새
강사: 이광호 목사
제목: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
본문: 고린도후서 5장 1절 -10절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1. 장막집
어제 저녁 첫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극히 큰 구원, 목적구원에서부터 섭리 구원까지 상고해보았습니다. 이 목적 구원 주신 것을 연구하면서, 목적을 위한 예정과 창조, 섭리, 대속 중생구원을 힘입고 입은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구원, 천국 시민권 구원, 부활 생명 구원이 다 하나님께 받은 기본구원입니다.

1절로 3절까지 보면 처음에는 집이라 말씀하셨고, 그 다음에는 처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다 우리가 알아 듣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발표 해 주신 것입니다. 집도 자기가 사는 처소를 말씀하셨습니다. 장막이라고 하는 것은 옮겨지는 것은 튼튼치 못할 임시거처하고 있는 집이라 말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 장막집이 무너지면 말씀하셨습니다. 땅에 있다가 없어질 이 집이 무너지면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 장막집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자기가 가진 몸도 장막집이요, 이런 형편, 저런 형편 자기의 사정도 다 장막집입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몸을 입고 있고, 선천 후천의 기능을 입고 있고, 좋은 형편과 사정을 입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부러워하고 이것을 보다 좀 더 잘 마련하려고 애를 씁니다.
자기의 형편과 사정과 처지를 좀 더 나은 형편으로 마련해 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런 것을 무시하는가 아닙니다. 그런 것을 좋은 것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알아도 우리가 바로 알 것은 땅에 있는 장막집은 무너집니다. 우리의 영은 주격이요, 마음의 모든 기능들도 영이 가진 장막집이요, 몸의 기능도 영이 입고 있는 장막집이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큼의 형편도 장막집입니다.
보다 좀 더 좋은 것을 마련하고 사람들이 애를 씁니다. 그것도 좋은 것입니다.
2. 영원한 처소
그런데 우리가 알 것은 이것은 조만간에 다 무너질 장막집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 무너질지 내일 무너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 무너집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 있는 장막집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인데 장막집이라. 그것이 끝나면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처소가 있습니다.
영원한 처소를 둘로 구분한다면 구더기도 죽지 않는 지옥의 처소요, 또 하나는 하늘나라의 처소입니다. 영원한 처소로 옮겨가게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해도 선악과를 먹은 자손은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대로 오늘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 장막집은 우리의 몸, 마음, 형편, 사정, 처지, 지위, 권세,재산, 영광, 명예가 다 장막집이라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자기의 형편 소유에서 살고 있습니다. 자기의 마음 안에 살고 있고, 용모 안에 살고 있고, 신체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을 한 말로 표현해서 장막집이라 말씀했습니다. 다 옮겨질 것이요, 없어질 것은 전제로 해서 장막이라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세상에 아무리 좋은 장막집이라도 언젠가 없어질 날이 조만간에 오게 된다는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자기 세상이 끝나면 없어지느냐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장막집이 끝나면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영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영원히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워 참 불속에 있는 고난과 같은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내가 괴롭다고 자살하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처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은 보응하시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처소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 세상 장막집이 끝나면 하늘에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산 그 생애에 보응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홀로 만들어 놓으신 영원한 집, 처소, 위치, 거처, 기능, 마음, 몸, 기능의 미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2절에 과연 우리가 여기서 탄식하며, 이 땅 위에서 탄식한다. 이것은 자기 형편이 너무 가련해서 자기를 두고 탄식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영원한 미래가 있는데 그것을 생각지 못하고 사는 자기 행위로 인하여 탄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이 탄식이 있어야 합니다.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고후 5:2)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덧입기를 원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것을 덧입기 위해서 간절히 사모한다.
3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오늘 우리 성도가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자로 발견되게 됩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고전 3:12~15)
나무나 풀이나 집으로 지은 성도는 공력이 불타서 없어집니다. 불타 없어지나 구원은 얻습니다. 불가운데서 얻은 구원과 같은 구원을 얻습니다. 벗은 자로 발견되는 자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장막에 거하고 있습니다. 이 장막 속에 거처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좋은 이 지능도 장막이요, 내 몸에 이 기능도 장막이요, 마음과 몸의 아름다운 것도 장막이요, 지위, 권세, 명예, 소유, 이것이 다 자기 장막집입니다.
이런데 이 장막집을 벗으면 안 됩니다. 벗고자 함이 아니요,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이 장막집을 벗기 전에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덧입어야 합니다. 영원한 그 나라의 기능을 입어야 합니다. 영원한 마음의 기능, 몸의 미를 입어야 합니다.
자기 영이 입고 거처할 영의 처소, 영원히 변동 없을 자리에 기능과 지위, 권세, 자기 형편과 처지는 장막인데 다 무너질 장막집이요, 없어질 장막집인데 그것이 없어지기 전에 하늘에 있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한다.
오늘 장막 집을 벗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이 너무 괴롭고 힘드니 버리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 덧입기를 원한다. 땅에 있는 아름다운 기능을 벗기 전에 하늘의 기능으로 덧입을 수 있고, 땅에 있는 지위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지위로 덧입을 수가 있다.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진리와 영감에 순종함으로 덧입게 된다.
그러면 우리 성도가 하늘로부터 오는 이 처소를 무엇으로 덧입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현실을 주셔서 하나님이 명령하시고 인도하는 대로 감당할 때, 그 지위가 유지될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인도로 말미암아 빼앗길 때도 있다.
보이는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저 버리기 위해서 잡고 있으나 잠시 후면 무너질 것이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잘 사용하여 하늘의 것으로 하늘의 왕권을 덧입기를, 하늘의 사정을 기능을 덧입게, 벗기 전에 하늘의 것을 힘입도록, 영원한 것으로 변화시키려 할 때 덧입는 방편을 주시데 그 방편대로 하면 진리의 왕권, 영감의 왕권, 진리의 부자 영감의 부자를 입게 되는데, 이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이 세상에 있는 것을 물리칠 수도 있고, 그대로 자기가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땅에 있는 이것은 하늘에 없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땅에 있는 것은 하늘의 그림자와 같이 하늘은 실상이요 땅의 것은 그림자입니다. 지옥은 실상이요 이 세상의 고통은 지옥의 그림자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하늘에 있는 처소를 덧입으면 끝나는 것이 있고, 아직 남아 있는 것도 있습니다. 남은 것은 영감과 진리로 행할 때 덧입을 것이 있고, 덧입어서 끝이 났으면 완전히 덧입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장막이든지 우리가 그것이 하늘의 것으로서 덧입음으로 끝났으면 다 덧입는 것이 되었고, 남은 것은 다음 현실에 입을런지 벗을런지 모릅니다.
땅에 있는 자기의 모든 처소 장막집이 무너진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처소로 덧입는 사람도 있고, 영원히 부끄러운 처소로 덧입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자기의 처소는 영원을 덧입는 이것으로 지나가는 것이기에 깨달은 성도는 탄식을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처소로 덧입어야 한다는 것을 굳게 잡고 영원한 것으로 더욱 굳게 잡아야 합니다.
자기의 현재의 처소를 어떻게 하느냐? 현재만이 자기의 것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오는 이 처소를 덧입으라. 어떻게 하느냐?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으로 바꾸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그대로는 무궁세계에 가지고 가지 못하기에, 진리와 영감으로 변화 시켜야 합니다. 영감과 진리로 변화가 되어서 마치 흰 천에다 검정물을 드리면 새카맣게 되었다가, 옛사람을 입었던 사람이, 영감과 진리로 변화되는 이것을 가리켜서 하늘에 있는 처소로 덧입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장막 이 처소를 잘 기억하시고 우리는 이 말씀대로 잘 준비하여 하늘에서 오는 그 처소로 우리가 입어야 하는 것이 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하늘에 입는 처소는 전부 영감과 진리로 되어 있습니다. 영감과 진리로 되어 있는 처소를 내 지위와 권세를 영감화 진리화 시킬 수 있는데 영감화 진리화 된 것은 영원무궁·토록 덧입게 된다. 영감화 진리화 시키지 못하면 다 썩어지게 됩니다.
어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불쌍하고 가련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형편에서도 하늘에 있는 처소를 덧입었습니다. 성령의 감화 감동대로 살아 높은 지위와 권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다니엘입니다.
4절에 말씀합니다.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벗지 아니하고 덧입는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차려 주신 처소, 형편, 내 명예, 소유, 마음에 몸의 아름다운 미와 기능 이것을 벗지 않고 그대로 하늘에서 오는 처소로 덧입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첫째 아담에게 속한 우리의 자체, 심신의 기능이 어떤 것이든지 이것은 장막집이라. 무너질 집이라 잠깐 있다 없어질 것이다. 그런데 영원한 하늘나라의 것으로 덧입을 수 있다는 말씀을 굳게 잡고,
진리와 영감대로 행하면 영원히 하늘나라의 존영을 덧입을 수 있고, 내 뜻대로 하면 영원히 부끄러워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 나라는 별개의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의 형체를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공로로 덧입어서 형체로 변화시킨 것을 그 나라에서 다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 벗어 버리고 그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그 나라의 영광과 지위의 차이다! 어떤 성도는 이 세상 천한 형편과 사정에서 “성도야 너는 그 형편과 처소에서 천한 생활을 해라. 천한 진리 생활하라.” 할 때 천하게 여기지 않고 영감과 진리를 고수하고 불평불만 없이 그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면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갑니다. 하늘의 영광과 지위를 덧입으라.
진리화 되고 영감화 되고 하늘나라화 되라 하는대로 바꾸어 가지는 것이 영원한 하늘나라의 것으로 덧입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첫째 아담에 속한 자체는 잘나도 못나도 장막집이기 때문에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영원한 것으로 덧입을 수 있다! 지금은 기회입니다. 벗으면 안됩니다. 덧입은 양만큼 가지고 갑니다. 그 형태 그대로 거기에다 도금을 하고 감염을 시켜서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의 처소가 심히 낮아도 당신의 영광과 기쁨을 위하여 나의 처소를 이렇게 만들어 주셨으니 내가 당신을 기쁘시게 하는 것만이 나의 본분이요 소망이니 다른 것을 무엇을 할 것이 있겠느냐?
영감과 진리대로 단 마음으로 순종해서 진리화 영감화 시켰다면 보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신기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원히 하늘나라에 보물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벗고자 함이 아니라. 이 말씀이 좋습니다. 저는 벗는 줄 알았습니다. 너무 힘드니까, 오늘 처소 장막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벗지 마시고 영원한 것으로 덧입기를 바랍니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진리와 의로 된 새 사람을 입으라 말씀했습니다.
입으라. 우리의 심신은 죄가 없습니다. 악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심신을 악령과 악습으로 물을 드리기 때문에 더러워 졌는데 이것을 씻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에 영감화 진리화 시키면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모든 처소를 벗는 것으로 아지 마시고, 이것을 벗어놓고 좋은 것을 마련하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우리 구원에 필요한 것으로 주셨습니다. 어떤 처소도 덧입는 것은 가치가 꼭 같습니다!
천태만상의 모양입니다. 이 모양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고 진리와 영감대로 했고, 저 모양에서는 험난한 시험에서도 거기에서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장막이요 처소인 줄 알고, 감사하고 만족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기쁨의 뜻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대로 섬기겠다 하는 사람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낙낙장송처럼 얼마나 영광스런자가 될지 모릅니다.
4. 자기를 부인함으로 덧입을 수 있다.
높은 지위에서도 자기를 부인해야 덧입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지 나사로 같이 천한 자리에서도 자기를 부인해야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덧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진리와 영감화 되는 것이 하늘나라의 처소입니다.
우리는 오늘 땅에 있는 장막집을 이것도 보배인데 영원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재료이기 때문에. 오늘 장망집을 통하여 영원한 하늘나라를 덧입을 수 있기에 귀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앞에 장막집이 무너진다는 것을 기억하고 기회를 잃지 말고 진리와 영감대로 살아서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영원히 덧입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이요, 지혜롭게 사는 것입니다.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준비하는 것입니다. 내 삶의 장소, 처소는 보배입니다.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05-07 18:0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