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야 할 사랑

2010.04.13 20:47

윤봉원 조회 수:1043 추천:63

요일 4:7-1220100412 부청년 기도회

날자: 2010년 4월 12일 부산지방청년회 기도회
제목: 내가 해야 할 사랑
본문: 요한일서 4장 7절 - 12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1. 나는 누구인가?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이 공산당원인지? 대통령인지? 사장인지? 직원인지? 군인인지? 민간인인지? 자식인지? 부모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그에 걸맞게 살아가야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통하여, 사활대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즉 우리의 DNA는 하나님의 DNA로 지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 3:1)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항상 인식하고 매 순간, 매 현실에서 우리의 유일한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다스림(기름 부음: 요일 2:24)을 따라 순종으로, 충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2. 우리의 본분과 할 일
2.1. 사랑하라고 지음 받은 우리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DNA는 사랑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8)
따라서 그의 아들된 우리도 사랑의 DNA를 갖고 태어난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상적으로 자라가고 살아가는 삶의 당연한 본분은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 4:7)
하나님은 사랑하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보다 더 큰 일은 없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사랑하고 순종하며, 주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으로 자라갈 수 있습니다.
2.2. 사랑에 빚지 자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사죄, 칭의, 새생명, 하늘에 대한 소망을 선물로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 4:9-10)
하나님께서는 아들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아들 노릇 할 수 있는 자로 만드시려고 사활대속의 희생의 값을 치르셨습니다. 우리는 이 은혜에 대한 깨달음과 감사가 자라가야 합니다.
사람 중에서는 어떤 사랑하는 다른 사람을 살리려고 자신이나, 자신의 자식이나, 형제를 죽이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예를 들면 장기 이식이나 감옥 생활) 경우를 저는 아직 못 들어 봤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감히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원죄와 본죄로 말미암아 죄, 사망, 마귀, 지옥, 가난, 고통, 슬픔, 눈물, 질병, 절망의 종이 되어 있는 우리를 이로부터 해방과 자유를 주시려고 독생자를 희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의 증표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이 사랑의 은혜는 우리가 값을 치를 수도 없고, 갚을 수도 없는 무한한 은혜의 사랑이요,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거저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이 사실을 깨달은 바울의 고백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 1:14)
그래서 그는 주와 복음을 위해서 죽는 것도 마땅하다는 신조를 가지고 평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우리 또한 바울과 동일한 빚진 자들입니다. 그의 깨달음이 우리에게도 있다면 우리 또한 바울과 같은 신앙의 고백과 신조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일만 달란트 탕감 받는 자가 백 데나리온 빚진자를 용서해 주는 것은 마땅한 것아닙니까? 그러나 그 종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때 주인이 교만하고 불의한 그를 감옥에 집어 넣었던 것입니다(마 18:23-34). 이것이 처음 사랑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11) ’Beloved, if God so loved us, we also ought to love one another‘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가는 것은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의 마음, 힘, 뜻, 생명 전부를 다 기울여 사랑의 실천을 하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실천을 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값없이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아멘...
이렇게 우리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요일 4:1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이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고후 3:3)
2.3. 주님과 같은 온전한 자가 됨
하나님은 우리가 점점 자라서 하나님과 같은 온전한 자가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온전한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3)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 5:48)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요일 4:12)
이런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방편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경건의 연습입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 4:8)
이처럼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주님과 같은 온전한 자로 자라가는 것이 우리 나그네 인생의 최고 성공입니다. 아멘!!
3. 사랑하는 것이 체질, 본능이 되기까지 사랑을 실천하라!!
오늘부터 우리는 이제 사랑만 하며 살아갑시다. 미워하지 맙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일 4:20-21)
우리는 용서를 몇 번까지 용서 해야할까요? 일흔 번씩 일곱 번? 아닙니다. 무한히 죽을 때까지 해야합니다. 이것이 성경대로의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하던가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의 실천을 할 수 있는 밑천은 이미 받은 사활대속의 사랑을 내가 얼마만큼 깨닫고 누리느냐에 달렸습니다.
무한대로 죽을 때까지 어떠한 것이라도 용서하라. 예수님께 이런 용서를 우리는 받았다. 그래서 용서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 섬김은 당연하다.
배고픈 자, 아픈 자, 상처받은 자, 믿지 않는 택한 백성을 위한 전도로 돌보는 삶을 살아라.
미워하지 말라.
우리를 보는 것이 주님을 보는 것이 되기까지 우리에게 자신의 몸을 종으로, 죄수로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희생하신 주님을 본받아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됩시다. 사랑하는 것이 체질, 본능이 되기까지 사랑합시다. 이런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인공되세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 14:9)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04-13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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