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체포와 성경의 성취

2010.03.29 18:21

윤봉원 조회 수:1010 추천:64

마 26:47-562010032802날자: 2010년 3월 28일 주일오후
제목: 주님의 체포와 성경의 성취
본문: 마태복음 26장 47절 - 56절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하였는지라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저희가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1. 원수를 어떻게 갚고 있나?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으면 거의 본능적으로 되갚아 주려고 합니다. 최대한 자제한다고 하는 것이 이제까지의 우정(友情)을 무효화(無效化)시키고 그 배신자(背信者)를 원수로 치부하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러한 경우에도 유다를 ‘친구’로 대하셨습니다.
대부분 배신행위를 보면 배신자는 단기적인 이익을 얻으려고 자신의 인격과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 관계를 내팽개칩니다. 유다의 경우처럼 종종 돈 때문에 배신하기도 합니다. 또는 자신의 위신 체면 때문에 그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배신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친구를 배신하는 행위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따라서 배신의 실제적인 희생자는 배신하는 자신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배신자는 비난보다는 연민의 대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직장 동료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거나, 친구가 근거 없는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아니 원수를 갚아야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주님께서 어떻게 대처하셨는지를 살펴봅시다. 그리고 그가 취한 방법을 배워서 우리의 삶에 시도해 보도록 합시다.
2. 주님의 체포와 성경의 성취
2.1. 무리가 아니라 그가 주도(主導)하셨다(47-50).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곧 닥쳐올 죽음을 놓고 힘써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외형적으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큰 무리, 가룟유다가 주장이 되어서 주님을 체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의 체포와 돌아가심의 과정에서 주님 자신이 주도적(主導的)으로 일하고 계심은 보여 줍니다.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하였는지라 (마 26:47-48)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파송한 큰 무리는 가룟유다를 앞세워 검과 몽치로 무장하고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이들이 찾아 올 때에 미리 ‘군호’(軍號)를 짜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이 군호는 암호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가룟 유다가 무리들과 이미 암호를 짜서 주님이 누구라는 것을 알려 주면 그를 잡으라고 계획을 세워서 온 것입니다. 사랑과 존경의 인사가, 선생님을 원수들에게 넘겨주는 암호가 된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께서는 이 음모를 다 아셨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저희가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마 26:50)
주님은 찾아온 자들에게 순순히 붙잡히십니다. 존경과 사랑의 표시인 입맞춤을 배신의 신호로 삼고 가식적인 인사로 다가오는 제자를 묵묵히 받아주십니다. 언뜻 보기에는 이 체포는 제자를 매수하여 은신처를 알아내고, 군호를 짜서 예수를 실수 없이 찾아내서, 무리가 없는 밤 중을 틈타 중무장한 체포단을 동원한 기발한 모략의 승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實狀)은 하늘 뜻에 따르려는 주님의 단순한 순종의 결과였습니다. 주님은 기도를 통해서 이미 큰 확신과 평안을 얻은 그에게 죽음은 더는 두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유다가 겟세마네에 데리고 온 큰 무리는 칼과 몽둥이로 무장한 사람들이지만, 주님은 두려움이나 위축됨 없이 앞으로 나가 그들을 맞이하십니다. 이는 할 수 없이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고난과 죽음에 자신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음모를 아시고 주님께서 구부했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겠느냐는 주님의 질문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마 26:54)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마 26:56)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다 알고서도 손해와 희생이 기다리는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지고 버리고 낮아지는 것이 세상의 모략을 이기는 길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 앞에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친다 할지라도 두려움 없이 맞이할 수 있습니까? 확신이 있습니까? 우리도 주님과 같은 담대함을 가지려면 주님처럼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의 기도를 통해 먼저 하나님의 확신을 체험해야 합니다. 환난과 핍박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다 이런 과정을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의 시험을 넉넉히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하루 세 번의 기도 생활의 응답 결과가 아닙니까?
또한, 우리는 직장이나 학교 혹은 교회에서 속으로는 욕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부하고 존경하는 위선적인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를 관찰하시고 심판하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가식, 외식, 거짓을 다 버립시다.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제2의 가룟유다가 되어서 되겠습니까?
2.2. 무력 사용을 반대하신 주님(51-52)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 26:51-52)
주님은 무력을 통해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의 제자 중 한 명인 베드로는 주님을 체포하러 온 사람들로부터 주님을 구해 보려는 열심에서 칼을 빼어 들었습니다. 그의 의도는 선했지만, 주님이 받으셔야 할 고난의 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꾸짖으시며,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한다.”라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검을 가지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는, 당시 널리 통용되고 있던 속담으로 제자를 교훈하셨습니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도 제자들이 비폭력의 원리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 5:39~42)
주님은 힘과 권세를 사용하시려고 하면 얼마든지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마 26:53)
여기에 영(營)은 일개 군단(軍團)을 말합니다. 당시에 일개 군단은 6000명의 군인으로 이루어졌답니다. 그러니까 12 군단(72,000)의 천사를 보내실 수 있는 주님이시니 얼마나 그의 권세가 막강하십니까.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 예언의 성취를 위해서였습니다.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마 26:54)
주님은 성경이 예언한 대로 강도 취급을 받으며 범죄자처럼 죽임을 당하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저항 없이 죽음에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그 권한을 사용하지 않으신 것뿐입니다. 권한과 무력을 사용할 실력이 있지만, 하나님의 뜻 성취와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성도입니다. 예수님의 참 제자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일시적인 의분이나 혈기로 하나님의 일을 할 경우가 없습니까?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지금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참으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힘으로 이 세대를 변화시켜 보려고 헛된 노력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군사 구데타나 무력시위는 다른 폭력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정의를 실현시킬 수가 없습니다. 선거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주님처럼 우리 자신을 드려서 주님의 온전한 다스림을 받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무력을 사용하면 다 이겼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지 않는 것과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무력의 사용은 성도가 할 것은 절대(絶對) 아닙니다. 힘을 바르게 사용하는 순종만큼이나 힘을 부당하게 사용하지 않는 순종도 어렵고 또 중요합니다. 아멘!!
2.3. 예수를 버리고 도망간 제자들!!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마 26:55-56)
주님은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포기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셔서 스스로 붙잡히시기로 하셨습니다. 이것은 무력 앞에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당장에라도 하늘의 천사 열두 군단을 부릴 수 있는 온 우주의 주권자시지만, 스스로 그 능력과 권한을 포기하시고 죄인처럼 잡히신 것입니다. 아멘!!
주님은 마치 살인이나 강도를 일삼는 범죄자처럼 취급되셨습니다. 큰 무리가 무기를 들고 와서 주님을 잡으러 왔을 때 순순히 체포되셨습니다. 이것은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셔야만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실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사 53:12)
주님은 성경을 이루시려고 죽음에 자신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결코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장담한 제자도, 칼을 써서 주님을 구하려는 용감한 제자도 모두 도망쳤습니다. 이는 주님의 돌아가심과 부활에 대해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무지 때문이요, 깨어 기도로 무장하지 않은 태만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그들은 성경이 예언한 메시아가 아니라 자신들이 바라고 기대한 메시아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도망으로 그들 역시 성경(슥 13:7)과 주님의 말씀을 성취합니다.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56)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마 26:31)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은 아닌지요? 그들은 맹세에도 역부족이었고 감히 대항할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전에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5:33-37).
우리도 신상의 손해, 경제적인 손해, 위신, 체면의 손해가 닥친다고 하면 다 도망치는 것이 우리 자신들 신앙의 현주소가 아닌지요? 우리는 과연 우리에게 손해가 오고 고통이 왔을 때에도 주님의 뜻에 순종을 잘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장담하면서 약속만 하고 지키지 못하는 것은 없습니까? 우리를 위해 이 모든 모욕과 연약함을 담당하신 주님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대신 짊어지고 있습니까?
이를 통해서 우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지금 말씀을 더 깊이 깨닫고, 기도에 더욱 정진해야 할 것을 교훈 받게 됩니다. 우리의 의지와 노력, 실력으로는 감당 못할 일들이 전부이지만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면 우리도 예수님이 한 일을 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마 19:26)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3. 반드시 성취되는 성경대로 지식하고, 생각하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언행심사(言行心事)를 하라!!
주님의 체포와 가룟유다의 배신, 무리의 폭력 사용, 제자들의 배반과 도망은 성경대로 다 성취되었습니다. 주님은 무력 사용을 금하셨습니다. 이러한 사건 성취의 교훈을 통하여 오늘부터 우리는 원수 같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모든 관계를 일시에 단절해 버리기보다는 한때 아름다웠던 그 결속을 회복하자고 제의해 봅시다.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을 ‘친구’라고 불러 준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돌이킬 수 없는 실수에서 구해 주는 것입니다. 유다는 자기 마음을 바꾸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에게 그러한 기회가 허락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거부하지 않으시고 그가 자신의 행위를 깨닫도록 또다시 시도하였던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원수를 원수로 갚지 맙시다. 무력을 사용하지 맙시다. 아울러 우리 자신을 너무 신뢰하고 자랑하지 맙시다. 주님께서 큰 사건을 앞두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의 은혜를 힙입어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기도로 준비합시다. 말씀의 검, 성령의 검을 사용합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서 승리하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대로만 언행심사(言行心事)를 함으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03-2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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