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07 17:30
날자: 2010년 2월 7일 주일 오후
제목: 하나님 나라의 새가족
본문: 마태복음 12장 46절 -50절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하니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1. 온 집안 망신 다 시키는 가족을 볼 때면?
지난주에 터키에서는 자기 딸이 남자 친구를 많이 사귄다고 그 아버지가 아이를 묶어서 산채로 2m 구덩이를 파고 매장해서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신문에서 봤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버지는 딸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얼마나 그 아버지가 속이 상했으면 그랬을까 상상을 한번 해 보았습니다. 이런 사건과 비슷한 사건은 세계적으로 많이 일어나는 것을 뉴스를 통해서 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식구 중에 문제의 식구 한 사람 때문에 온 집안이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를 쉽잖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자식일 수도 있고, 남편 일 수도 있고, 아내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다)을 호적을 팔 수도 없고, 죽일 수도 없고, 아주 고생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2. 예수님의 혈육 가족의 특이한 점
2.1. 말씀을 듣고자 하는 간절성이 부족했다.
본문에서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혈육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상대하는 데서 특이한 면을 아주 감칠맛 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집에 들어가셔서 무리들을 가르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와 말하려고 밖에 서 있는 그의 모친과 동생들에 의해 어떻게 설교에 방해를 받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아직까지 백성들에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설교는 담화 형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하고 쉽고 익숙해서 백성들의 수용 능력과 사정에 적합하였습니다. 우리가 일을 하다가 만나는 반대 때문에 일을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는 아무런 선도 하실 수 없음을 아시고 그들에게는 말씀하시기를 그만두셨으나 일반 백성에게는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모친과 형제들은 당연히 그의 말씀을 듣기를 간절히 바라며 안에 있어야 할 때에 그에게 말하기를 바라며 밖에 서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님 말씀을 들으려고 제일 앞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의 육신의 식구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매일같이 그에게 말씀을 듣는 이점을 갖고 있어서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공적인 설교에 참석하는 일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친숙함과 접근하기 쉽다는 사실이 사람을 무시하게 합니다. 이것을 볼 때 "교회에 가까울수록 하나님에게서 멀다"는 일반적인 격언은 아주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와 같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 한 번 생각 해 봅시다. 예수님의 혈육들이 왜 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그 해답을 마가복음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막 3:20-21)
그들은 말씀을 듣기 위함이 아니라 그가 미쳤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에 붙들러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모여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접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한 사람을 보내어 모친과 동생이 밖에서 찾는다고 예수님께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혹시 이 자리에 있는 우리도 예수님의 혈육들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하는 주인공들은 아닌지요? 이런 자들은 없습니까?
2.2. 말씀을 듣는 자들까지도 방해했다.
그들은 그들 자신도 그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즐거이 그의 말씀을 듣는 다른 사람들마저 방해하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에게 말씀을 들으려고 많은 무리가 와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오늘날의 경우처럼 말씀에 열심이고 신앙생활에 모범되는 사람들이었을까요?
복음서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은 각종 병자, 귀머거리, 벙어리, 소경, 문둥병자, 앉은뱅이, 창녀, 귀신들린 자, 간질병자, 그리고 가난한 실업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다 가정에서 이웃에게서,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주님이 이 버림받은 당신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사랑하셨습니다. 사람이면서도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심정도 모르고 혈육의 가족들은 예수님이 이들이 말씀을 잘 듣지 못하도록 방해까지 했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처세를 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도 예수님의 혈육에 속한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지는 않나요? “빨리 예배 안 마치나? 지금 시간이 늦었는데 목사님은 설교를 길게도 하시네?” 하고 시계를 자꾸 들여다 보고 옆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우리는 종종 우리 둘레에 있는 친구들에 의해 일을 수행하는 데 방해와 지장을 받으며 또한 정중한 인사에 의해 우리의 영적인 일들을 중단하게 됩니다. 진심으로 우리와 우리의 일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때때로 경솔함으로 인해서 우리를 방해하고 우리의 의무를 이행하는 데 지장을 가져온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예배 시간과 기도 시간에 말을 거는 경우일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모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의 일(my fatheris business, 개역 성경에는 '내 아버지의 집')을 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 그때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었다'고 하였습니다(눅 2:49). 그런데 만일 그녀가 지금 그 일을 기억했더라면 아버지의 일을 하고 계신 그를 이렇게 방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멘!!
우리는 흔히 진리를 들을 때에는 마음에 잘 새겨 두었다고 생각하나 막상 그것을 사용할 때에 이르러서는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을 잃어버렸을 때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요? 그 대표적인 경우를 요한복음 8장의 유대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요 8:37)
3. 혈육 가족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48-50)
3.1. 이 방해를 불쾌하게 여기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의 요구를 들으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48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의 감정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어떤 감정의 표현일까요? 긍정의 표현입니까? 칭찬의 표정입니까? 아니면 아주 혼줄을 내는 말씀입니까?
우리는 아무리 가까운 혈육이라도 상대적으로 미워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보다는 그들을 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족이 우리의 주인노릇하려고 할 때 그 가족이 우리 신앙생활에서 상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확정을 지읍시다. 아멘!!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 14:26)
하나님께 대한 의무가 다른 무엇보다 우선 해야 합니다. 만일 친구가 우리를 기쁘게 하기보다는 우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 점에 대해 그에게 화를 내거나 그것을 그의 악한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아니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친구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게 하는 일을 하기보다는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만족을 거절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를 칭찬하고 도와줘야 합니다. 이렇게 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짜증을 내고 있습니까?
3.2. 영적 가족에게 우선권을 주셨다.
그는 그 기회를 빌려 자기의 혈육들 앞에서 그의 영적인 친족인 제자들에게 우선권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 대하여 그들은 '그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다고 묘사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혈육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그의 제자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그 제자들을 일컫기를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50절)고 그들에 대한 존엄성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는 교훈을 받아들인 제자들은 육신을 따라 그의 혈족이 된 어느 누구보다도 그에게 더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가리키면서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매우 애정을 느끼게 하고 격려를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 선포는 하늘에서 들려온 복음이었습니다. 병마에게 사로잡혀 고통당하는 갖가지 병자들을 향하여, 가족들에게서조차 천대를 받는 불구자들을 향하여, 사회의 배설구와도 같은 창녀들을 향하여, 공동체 안에서의 삶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던 문둥이들을 향하여, 그리고 가진 것도, 일자리도 없이 사회의 쓰레기처럼 살아가는 실업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의 모친이며, 형제이며, 자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찌꺼기를 하늘나라의 보화로 재창조하는 생명의 승화입니다. 그것은 죄인을 의인으로 선언하는 생명의 부활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하나님의 확인이며, 인간의 자존심과 긍지를 불러일으켜 세워 하나님의 형상임을 깨닫게 하는 위대한 자각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놀라운 구원의 선포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만의 특권은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이 명예를 누립니다. 순종하는 신자들은 누구나 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까운 혈족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의 혈육으로서 그들과 자유롭게 교제하십니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그의 식탁에 오도록 환영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에게 합당한 것은 부족한 것이 없이 다 받을 것이며, 주님은 그의 초라한 친족들을 결코 부끄러워하시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사람들과 천사들 앞에서 그리고 그의 아버지 앞에서 시인하실 것입니다.
4. 골치아픈 식구가 되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께 칭찬, 인정, 사랑받는 가족이 되라.
따라서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적 가족관을 정립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가족은 피와 살을 나눔으로써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지극히 동물적인 관계이며 유대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동물이 다 그런 자연법칙에 의하여 가족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이 동물적 가정의 특성은 이기적이며, 배타적이며, 폐쇄적입니다. 가족적으로 얻은 이익을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나누기를 싫어하며, 타인이 가족 안에 끼는 것을 거부하며 타인이 가족을 간섭하는 것을 배척합니다.
예수의 가족관은 바로 혈육으로 된 가족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위대한 도약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가족'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승화이며 초월입니다. 예수의 가족 개념은 이웃과 전인류입니다. 그리고 참혹한 몰골을 하고 앉아 있는 인간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해 내고 그들 모두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선언하는 그런 가족입니다. 인간은 그 자체가 인간과 하나님의 형상이 공존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 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따라서 타인의 구원 유익을 위하여 기도해 주며, 헌신하며,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가족관을 가집시다. 예수님의 혈육의 가족처럼 하나님 아버지께 근심, 걱정, 책망을 받는 가족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새가족으로 삽시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의 걱정 근심거리가 되지 말고, 칭찬과 인정과 사랑을 받는 멋진 가족이 됩시다. 주인공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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