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생활을 돌아봄

2009.12.29 17:19

윤봉원 조회 수:949 추천:48

시니 1:1-3:292009122702날자: 2009년 12월 27일 주일 오후
제목: 광야생활을 돌아봄
본문: 신명기 1장 1절 - 3장 29절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모든 땅을 우리에게 붙이심으로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과 골짜기 가운데 있는 성읍으로부터 길르앗에까지 우리가 모든 높은 성읍을 취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으나 오직 암몬 족속의 땅 얍복 강가와 산지에 있는 성읍들과 무릇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가기를 금하신 곳은 네가 가까이 하지 못하였느니라 (신 2:36~37)
1. 나의 인생의 핸들은 누가 쥐고 있나?
우리 사람은 원죄로 말미암아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본능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 꼬마부터 늙은 노인까지 다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 구별 없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나요?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우리 인생의 핸들을 누가 쥐고 있나?”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자리에 있는 우리의 인생 핸들은 우리 자신이 쥐고 있나요? 아니면 피조물(돈, 일, 공부, 사람, 직장, 기술 등등)이 쥐고 있나요? 아니면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고 심판하실 하나님께 맡기셨나요?
우리 자신들이 인생의 핸들을 쥐고 운전한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아주 만족하고 행복한 결과를 가져 왔나요? 아니면 안전 운전이었습니까? 음주 운전이었습니까? 패가망신이었습니까? 후회 막심한 운전이었습니까? 또 다른 피조물에게 핸들을 맡겼던 경우는 어떠했습니까? 2009년도 한 해를 돌아보면 누구에게 핸들을 가장 많이 맡겼다고 평가가 되나요?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핸들을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를 살펴보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합니다.
2.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상기시킴(1-3장)
2.1. 시내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1장)
이 신명기의 저자는 모세입니다. 모세는 죽기 직전에 세 번의 설교를 합니다. 첫 설교는 1:6-4:43까지, 둘째 설교는 5:1-28:68절까지, 세 번째 설교는 29:1-30:20절까지 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선포합니다(1:1). 이 “선포하다”(1:1)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새긴다”라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법이 그들의 마음에 새겨져야 함을 분명히 밝히고 싶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새 세대들에게 이 연속된 연설을 시작함에서 민족의 과거 역사를 성찰합니다. 이를 통하여 후손들에게 선조들의 실패와 부끄러움의 신앙생활을 반복하지 않는 목적의 교훈을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사는 것은 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를 무시하고서는 절대로 현재를 이해할 수도, 미래를 준비할 수도 없습니다. “과거를 기억지 못하는 사람은 과거를 되풀이할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이 민족은 애굽에서 나온 첫, 해 세 번째 달부터 둘째 해 두 번째 달까지 호렙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출 19:1; 민 10:11). 이 기간에 모세는 율법을 받았으며 성막이 조립되어 세워졌습니다. 모세가 민족의 실수와 아울러 자신의 실수(9-18절)를 성찰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새로운 세대는 왜 그 민족이 이처럼 조직되었으며, 왜 더 빨리 유업에 들어가지 못했었는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그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지은 그들의 죄가 불신앙에 근거한 반역이었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참조. 민 9-14장, 출애굽에 대한 구체적인 경로는 민수기 33장을 참조하라.).
이 민족은 “요단 이편” 모압 평지에 모여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이후로 거기까지 오는 데에 40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2절에서 그 거리가 11일이면 올 수 있는 여행이었다고 언급합니다. 이것이 불신앙의 비극입니다. 이들은 열두 정탐꾼들이 정탐한 내용을 듣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이 아주 좋은 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도 믿지 않고 의심하였습니다(1:22-25).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낙심하고 무서워하며, 두려워 떨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약속에 땅에 도달할 수 있다고 권면 하였지만, 그들은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신 1:29-32)
불신앙은 시간과 힘과 인력을 낭비하고, 하나님의 이름에 돌려야 할 영광을 도적질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하나님께 불순종이나 원망하는 삶을 완전히 청산합시다. 다시는 반복하지 맙시다. 이 길만이 우리의 삶에서 방황과 고민과 불행을 더는 반복하지 않고 청사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가 삶을 살고 난 후 후회하는 어리석은 나그네가 되지 않도록 거울로 주신 것입니다.
2.2. 그들이 피한 나라들(2:1-23)
모세는 한 문장(1:46)으로 “방황”의 기간을 건너뛰고 이제 가나안 경계에 이르는 그들의 여행을 다룹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40년간의 광야에서 방황하던 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다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는 길을 내딛습니다.
‘너희가 이 산을 두루 행한 지 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 너는 또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일에 거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의 지경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깊이 스스로 삼가고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로라 (신 2:3-5)
이 여정에서 그들은 세 민족, 즉 에돔(야곱의 형, 에서의 자손: 4-5)과 모압(9)과 암몬(아브라합의 조카, 롯의 자손들: 창 19:36-38)을 피하였습니다(2:9-23). 이 민족들은 이스라엘과 혈연관계가 있었으므로 하나님은 이들과의 싸움을 허락지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에서의 자손이나 룻의 자손의 권리를 모두 존중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큰 나라들의 경계선을 통과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 보호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본문을 보면서 하나님이 존중하는 사람을 내가 무시하지는 않는지 돌아봅시다. 하나님의 금하셨는데도 나의 욕심과 성질 때문에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함으로 악을 행하는 부분은 없는지 돌아봅시다.
‘너희는 돈으로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으며 돈으로 그들에게서 물을 사서 마시라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행함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가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였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셨다 하라 하시기로 (신 2:6-7)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볼 본문 중 하나가 다음의 본문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중에서 다 멸절되었나니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중에서 멸하신 고로 필경은 다 멸절되었느니라 (신 2:14-15)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한대로 광야 38년 동안 어린아이들을 제외한 20세 이상의 출애굽 1세대들은 모두 죽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셨다.’라는 것은 그들이 나이가 들어 자연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신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그들의 심판하신 심판으로 말미암아 죽은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신다고 하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또한, 약속대로 복은 주신다고 하면 반드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신구약 66권을 통하여 약속하신 약속은 우리가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면 반드시 성취 시켜 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약속의 성취를 소망하며 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은 내 욕심과 성질이 아무리 나더라도 순종함으로 금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전적 순종만 하지 않으면 광야에서 다 죽은 출애굽 1세대와 같은 비참한 결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데까지만 가고, 머물러라 하는 곳에 머물 줄 아는 순종과 절제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의식주를 비롯한 모든 환경은 전적 하나님 아버지께서 형통하게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2.3. 그들이 정복하여 멸망시킨 나라들(2:24-3:2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 민족들이 싸워 정복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일어나 진행하여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라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은즉 비로소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얻으라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으로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인하여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 (신 2:24-25)
이렇게 그들이 싸워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허락하신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곧, 가나안에 있는 민족들에 대한 경고이며(25절), 요단 동편에 정착할 2와 1/2 지파(르우벤, 갓므낫세 지파)가 그 땅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3:12-17). 유대인들이 이 나라들에 도착했을 때, 평화롭게 통과할 것을 건의하며 이 나라들을 친절히 대하였으나 그들이 유대인들을 공격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정복하셨습니다. 구세대(舊世代)를 놀라게 했던, 큰 성벽으로 방어하는 성읍들이 새 세대로 말미암아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3:5).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관자이십니다. 대적들이 강팍하게 나오는 것도,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도 전적 하나님께서 홀로 주관하십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취하는 것도 취하지 못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경계 내에서만 가능함을 명심합시다.
‘헤스본 왕 시혼이 우리의 통과하기를 허락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네 손에 붙이시려고 그 성품을 완강케 하셨고 그 마음을 강퍅케 하셨음이라 오늘날과 같으니라 (신 2:30)
‘시혼이 그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야하스에서 싸울 때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우리에게 붙이시매 우리가 그와 그 아들들과 그 모든 백성을 쳤고 (신 2:32-33)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모든 땅을 우리에게 붙이심으로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과 골짜기 가운데 있는 성읍으로부터 길르앗에까지 우리가 모든 높은 성읍을 취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으나 오직 암몬 족속의 땅 얍복 강가와 산지에 있는 성읍들과 무릇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가기를 금하신 곳은 네가 가까이 하지 못하였느니라 (신 2:36-3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산 왕 옥과 그 모든 백성을 우리 손에 붙이시매 우리가 그들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느니라 (신 3:3)
이 일은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준비하는 이스라엘에게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때 여호수아가 특별한 사명을 받는 것(3:21-22)과 모세가 그 땅에 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했으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것을 유의해서 보아야 합니다(3:23-28).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충성된 종 모세를 통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에게 그 사명의 완수 할 수 있도록 맡기셨습니다. 우리 자신이 뭐든지 다 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욕심이 아닌가?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합니다. 욕심은 버립시다.
모세는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나님을 ‘그만 해도 족하니’(3:26)라고 말씀하시면서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을 비스가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계획이 아무리 옳고 바른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하나님이 거절하시면 우리는 단호하게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인정하는 것이요, 속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며, 순종하는 것이요, 그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순종함으로 하는 모든 영적 싸움을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100전 100승임을 확정 지읍시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만 온전히 감당하는 자가 되도록 하나님의 인도 하심과 뜻에 민감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욕심을 하나님의 뜻인 양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를 약속의 땅에 들이지 않으신 것처럼 우리의 기대와 요구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지 맙시다.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쓰임 받은 것으로 감사하며 만족하도록 합시다. 하나님의 권한의 범위를 내가 뛰어넘으려는 교만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피조물이요 하나님의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따라서 현재 주어진 기회에 하나님께 온전히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깨어 죽도록 충성하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인생의 핸들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순종으로만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형통한 인생길이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이스라엘을 인도하셨고 보호하셨으며 장래에도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에벤에셀(“지금까지 여호와께서 우리를 도우셨습니다.”)의 하나님이십니다. 아울러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지금까지 살려 두시고 인도하신 것은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구원 계획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불신앙하는 행동은 광야의 방황생활과 같은 방황과 고민과 불행의 연속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원망, 불평, 짜증을 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삶의 전투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까지만 가고, 머물러라 하면 즉시 머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욕심을 성취시키려고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꺾으려는 교만하고 악한 행동을 함으로 하나님을 속상하게 하지 맙시다. 우리는 우리 노력의 결과가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나의 기준으로 평가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요 인도이심을 믿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처럼 욕심부린다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결과에 만족하며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나에게 주어진 사명만큼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우리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능(能)히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충성합시다. 그리하여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잘했다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받은 주인공, 면류관의 주인공이 되도록 하나님께 은혜를 구합시다. 이것이 광야생활을 돌아보며 출애굽 2세대들에게 심어 주고자 했던 모세의 목적이요 하나님의 목적인 것입니다.
이 시간부터 우리 인생의 핸들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깁시다. 우리는 그저 순종과 충성으로 따라가기만 합시다. 하나님께서 “가라”하는 곳까지만 가고, “서라” 하면 즉시 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에 보태거나 빼거나 하지 맙시다. 이것이 가장 바보같이 보지만 가장 지혜롭고 형통한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주인공 되세요.
참조. Wiersbie., 「창세기-말라기 1」, p. 197.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12-2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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