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기쁘시게 하라

2009.12.23 18:45

윤봉원 조회 수:1016 추천:54

고후 5:92009122333

날자: 2009년 12월 23일 수밤
제목: 주님을 기쁘시게 하라
본문: 고린도후서 5장 9절 -10절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1. 무엇을 중심으로 해서 살아가고 있나?
모든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는 자기가 가장 옳고 바르고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중심으로 해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각자의 취미, 직장, 학업, 노력의 정도, 성취도, 만족감, 행복의 종류가 다른 것 같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중심 거리는 뭐니뭐니해도 “돈”이 아닌가? 그다음으로는 자기 건강, 자식, 공부 등등 다양한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중심해서 살아가고 있나요?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중심으로 해서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는가를 알아보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합니다.
2. 주님을 기쁘시게 하라
2.1. 부활체의 모습을 생각함으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라는 말을 시작하면서 ‘그러므로’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앞의 내용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장막집은 잠시 후면 무너지고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각자가 행한 것을 따라서 하늘나라에서 나타나는 모습이 벗은 자와 같은 부끄러운 모습으로 나타날 자도 있고, 덧입은 자와 같은 영광스런 자로 나타날자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거(居)하는 동안만큼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 육체적인 생각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을 하지 않겠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라고 결론을 지은 것입니다.
본문의 ‘거하든지 떠나든지’ 하는 말은 세상에 살든지 세상을 떠나든지 하는 말입니다. 즉, 이 세상에 살든지 죽든지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우리의 할 일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이것만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사나 죽으나 주님 기쁘시게 하는 소원이 간절하다는 의미를 바울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죽음 후 부활 때에 나타날 모습을 생각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사람이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00% 성취되었고, 앞으로도 성취될 하나님은 인간이 죽으면 끝이 아니라 반드시 부활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성도들은 죽은 후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사는 천국 시민권자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장례식은 눈물의 장소가 아니라 천국으로 성도를 보내는 환송식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그래서 성도의 죽음은 주님과 함께 누리게 될 영생의 전주곡(前奏曲)에 불과한 것입니다. 죽은 후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항상 힘쓰고 노력(努力)하는 것은 필연적(必然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29-30)
그래서 부활의 소망을 가진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항상 힘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크리소스톰이 말했듯이 우리가 바라는 것도 금생(今生)에서든지 내생(來生)에서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2.2. 부활 후 심판을 생각함으로
우리 성도들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들이 되어 영생을 이미 소유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 6: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8-9)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10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이 땅 나그네 삶에서 각각 산 그 행한 것을 따라서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때 심판자는 주님이시오,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심판하실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 16:27)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마 25:31-32)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요 12:48)
참고 성구.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롬 14:10)
이 심판을 통해서 이 땅에서 살았던 삶의 결과를 평가받고 보상받는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사활대속을 통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선물이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께 믿음의 순종하는 삶을 면제시켜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가 방종을 허용한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고전 6:12)
바울은 고린도전서 6:20에서 우리 몸은 하나님께서 값주고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에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20)
바울은 자신이 말하는 것을 주님이 듣고 계시고 판단하시기 때문에 자신의 언행심사에 대해서 얼마나 조심하였는지를 여러 번 말했습니다.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고후 2:10)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고후 2:17)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고후 4:2)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고후 4:14)
그래서 이런 말씀들을 통하여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들의 말과 행위가 선을 행했던지, 악을 행했던지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반드시 행한 것을 따라서 상벌을 받을 때가 옵니다. 이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의 모든 행위를 평가해야 함을 상기시켜 주는 중요한 각성제(覺醒劑)가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활 후에 주님을 만나뵙게 될 것을 생각하면 기쁘기도 하지만 동시에 거룩한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영원히 가난, 질병, 고통, 눈물, 슬픔, 짜증, 원망 불평 없는 곳에서 살 것을 생각하면 기쁘기도 하지만, 우리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3. 부활과 심판을 생각함으로 항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주인공이 되라!!
우리 성도들은 예수 믿지 않는 자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원죄로 말미암아 사망 아래 아직도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적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움을 받은 자들입니다. 죽은 자에서 산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이렇게 전적 사활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인생역전된 우리는 지금까지는 세상 사람들과 같은 삶의 중심을 가지고 살아왔을지라도 이제부터는 바울이 우리에게 경고하고 권면 한대로 살든지 죽든지 항상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힘쓰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죽으면 끝이 아니라 부활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이 있고, 부활체의 모습을 생각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힘쓰며 살아야 합니다. 또 모든 인생은 죽음과 부활 후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자들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행위가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느냐? 아니면 악하게 주님의 인도인 성령과 진리를 무시하고 세상 중심, 피조물 중심으로 살았느냐? 선악간에 행한 것을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함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잘 살아서 주님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되다, 네 나그네 인생을 내가 기대한 대로 잘살았다.” 칭찬받은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주인공 되세요.
참조. 84030981. Hendriksen,「고린도후서」, p. 158, Osborne,「고린도후서」, pp. 1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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