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가려느냐

2009.12.09 18:18

윤봉원 조회 수:1034 추천:54

요 6:66-692009120901날자: 2009년 12월 6일 주일오전
제목: 너희도 가려느냐?
본문: 요한복음 6장 66절 - 69절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1. 신앙생활 하다가 왜 세상으로 돌아갈까?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세상으로 돌아가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주일학생도, 중고등부, 청년도, 어른도 어느 층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는 다음과 같은 것 같습니다.
부모의 강요에 의해서 돌아가는 경우, 자기 스스로 재미를 못 느껴서 돌아가는 경우, 친구 따라서, 남편, 아내 따라서 돌아가는 경우, 돈벌이가 너무 잘돼서 돌아가는 경우, 돈벌이가 너무 안 되어서 돌아가는 경우, 자기식대로 믿다가 믿어 보니 재미없다고 돌아가는 경우, 애인 구하러 왔다가 구하지 못했다고 돌아가는 경우 등.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왜 신앙생활하다가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우리는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일생 일관되게 주님 제자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우리에게 적용하고자 합니다.
2.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질문 “너희도 가려느냐?”
2.1. 지금이 기회이다 자유의지대로 하라!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66절)
본문은 ‘이러므로’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66절이 앞의 내용과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66절 앞의 내용을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하여 유대인들은 어렵다고 상당수가 수군거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지 못하였고, 그가 어떤 분이신지를 바로 알지 못했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근거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자 중에 많이 물러 간 것으로 보입니다.
즉 이 제자들은 다시 죄에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로 들어섰다가 한두 번 게으름 피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에게서 떠나 버렸습니다. 이렇게 되돌아 나간 사람들은 상당히 많은 숫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몇몇 사람이 변절(變節)을 하게 되면 연달아서 많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변절하게 됩니다.
질병은 전염되기 쉽습니다. 이러한 변절이 발생한 시기(時期)는 ‘그때로부터’, 즉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생명의 떡이며, 믿음으로 자신을 양식으로 삼는 자는 자기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위로의 가르침을 전파하신 그때부터입니다.
사람은 흔히 그 타락하고 사악한 마음으로 말미암아서 진정 큰 위로가 되는 것들을 장애물로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걸림이 된다 할지라도 결코 의심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진리는 신실하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기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기질에 순응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까지 변절하였는가?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66절). 즉 다시는 그에게 되돌아오지도, 그의 사역에 참여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되짚어 보면 만약에 그들이 그 말씀이 어려웠다면 겸손히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 이 비유를 자기들에게 깨우쳐 달라고 간청했었어야 옳았습니다. 우리도 말씀이 좀 어렵다고 일찍 포기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이해가 안 될수록 하나님께 깨달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이제부터라도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히 11:1).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다른 이들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가 되습니다. 많은 이들이 발길을 돌렸지만 감사하게도 모두가 다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67절). 그는 발길을 돌린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애초부터 그리스도의 소유가 아니었던 사람들이 떠난다고 해서 커다란 손실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가볍게 왔다가 가볍게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를 열 두 제자들의 다짐을 받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라는 질문은 “가든지 머물든 지의 문제는 너희의 선택에 달렸다. 너희가 나를 저버리고자 한다면 많은 사람이 떠난 지금이 그 기회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와 함께 했던 그 어떤 사람의 의사에 대해 억지로 말리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군사들은 지원자들이지 강제 모집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열두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을 자신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시험해 볼 충분한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취소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시고 그들의 자유의사(自由意思)에 맡기셨습니다.
2.2. 받은 사랑과 은혜를 생각해 보라
‘너희도 가려느냐’의 질문에서 또 하나 교훈 해 주는 것은 “만일 너희 역시 가버린다면 그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길이다. 그 사람들은 너희가 받아왔던 것과 같은 그렇게 많은 사랑도 내게 받지 않았으며 나와 그렇게 친밀하지도 아니했다. 그들은 가버렸는데, 너희 역시 가려느냐?”라는 질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그리스도께 가까이 있었고 더 오래 그리스도와 함께 지내왔으며, 더 많은 사랑과 자비를 받아왔던 우리가 그를 버린다면 우리의 죄는 더욱더 큰 죄에 해당할 것입니다. 따라서 ‘너희도 가려느냐’는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사랑과 은혜를 생각해 보고 그 은혜에 감사해서 스스로 떠나는 길을 가서는 안 될 것을 교훈 해 줍니다.
오늘이 12월 첫 번째 주일입니다. 우리는 지난 일 년 동안 하나님께 받았던 목록들을 생각해 봅시다. 얼마나 넘치는 은혜를 많이 받았는지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대한 감사도 없을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잘한 것은 내 탓 못된 것은 남의 탓으로 돌리며 원망 불평하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2.3. 서로를 매우 잘 알기 때문에
‘너희도 가려느냐’의 질문에서 세 번째로 교훈 해 주는 것은 “나는 너희가 나를 떠나지 않으리라 생각할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나는 너희에게서 더 나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 왜냐하면 너희는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이기 때문이다”(참조. 눅 22:28). 오늘 우리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온전히 다 아시기 때문에 어떤 불쾌한 일이 있어도 헤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아멘!!
3. 주님을 떠나지 않은 이유
3.1. 영생의 말씀과 영생을 주시는 분으로 알았기 때문에!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질문한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서 나머지 사람들을 대변해서 베드로가 믿음의 답변을 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요 6:68-69)
베드로는 여러 번 다른 제자들의 대변자 노릇을 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말은 때때로 인정받기도 하고 몹시 꾸지람을 듣기도 하였는데(마 16:17,23) 이는 입빠른 자들에게는 오늘날도 흔한 일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리스도를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훌륭한 결의를 나타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68절).
“아닙니다, 주님! 우리는 우리가 택한 것을 매우 좋아하므로 결코 바꾸지 않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떠나는 사람들은 누구에게로 가야 할 것인지를 고려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가야할 것인가? 세상으로 가서 우리의 마음을 달래볼까? 분명 세상은 우리를 속일 것인데 다시 죄로 돌아갈까? 죄는 분명 우리를 파멸시키고야 말 것인데 생수가 나오는 샘물을 두고 물이 새는 항아리로 가야할 것인가?”
제자들은 계속해서 생명과 행복을 추구하기로 결심하고 자기들의 안내자인 그리스도를 꼭 붙잡기로 하였습니다. 남은 자들이 그러한 결심을 하게 된 좋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결심은 맹목적인 사랑에 의한 부주의한 결정이 아니라 성숙한 사고에서 나온 결과였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유익 때문에 그리스도를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영생의 말씀들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그의 교훈의 말씀은 영생에 이르는 길을 보여 주었으며, 우리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상속받을 수 있을 것인가를 지시하여 주었던 것입니다.
주께서 영생의 말씀을 소유하고 계시다는 말은 그가 영생을 나누어 주실 권세를 가지고 계시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바로 앞서의 강론에서 예수께서는 자기를 쫓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셨습니다. 이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 평범한 말씀을 간과하고 어려운 말씀이라 단정 짓고 그리스도를 저버렸을 때 이 말씀을 꼭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께 매달리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있는 모든 신비, 난해한 모든 문제를 설명하시는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영원한 생명에 대한 말씀임을 알고 있으므로 그 말씀에 의해 죽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2.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남은 자들이 그리스도를 떠나지 않은 두 번째 이유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그들이 갖고 있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69절). 그들이 믿었던 가르침은 이 예수가 조상들에게 약속된 그 메시야이며 메시야가 단지 사람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들이 신앙의 정도는 큰 확신으로까지 성장하였습니다. 우리가 알았삽나이다. 우리 또한 감히 우리의 영혼을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에 맡길 정도로 복음에 대한 대단히 강한 신앙을 가질 때 우리는 곧 그 복음을 위해 어떠한 모험이라도 기꺼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3. 홍해 사건
출애굽기 14장 10절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바다 가까이 왔을 때에 앞에는 홍해바다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는 애굽 병정이 추격을 해서 따라서 죽이려고 하는 진퇴양란의 상황에 처했습니다. 애굽 나라 병정 세력은 이스라엘 그런 것 열이고 스물이고 당장 전멸할 수 있는 그런 그 힘을 가진 애굽 병정들이었습니다. 그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절해서 모세에게 원망해 말하기를 “우리를 애굽에서 학대 받다가 죽는 게 낫지 이 광야에다가 다 무더기 죽음 시킬려고 왔느냐” “처음부터 그 말을 하지 안했느냐” “뭣 때문에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해서 여기서 죽게 하느냐”라고 원망을 쏟아냈습니다.
그 때에 모세에게 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모세야 너희들이 그렇게 분주하게 시비하지 말고 네가 든 지팡이로 홍해바다를 턱 이래 가리키라” “가리키면 홍해바다가 턱 갈라져서 육지가 되리라” “이스라엘 백성을 그렇게 건너도록 해라.” 모세가 들은 말은 어떻게 생각하면 물에 넣어도 붙지 안할 말이지요. 이렇지만 말씀하신 이가 책임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과 그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고 지팡이를 가리키니까 홍해 바다가 바람이 불어서 갈라지는데 이 바닷물이 못 내려가니까 요즘 고속도로 뚫는데 높은 산 중앙으로 도로를 내면 양쪽은 절벽이 됩니다. 그와같이 바닷물이 절벽이 되고 바닥은 바짝 마른 육지가 됐습니다. 그 길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전하게 하룻밤 사이에 다 건너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가니까 애굽 병정들도 그것을 모르고 좋다고 그 뒤를 따라서 지금 막 이제는 잡는다 하고서 힘을 내서 따라 건너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또 한 번 모세에게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야!” “네 뭡니까” “또 네가 지팡이를 들고서 바다를 가리키면서 이 물들이 근본과 같이 합해지도록 해라” 말씀하셔서 모세는 명령대로 다시 홍해를 가리켰습니다. 그러니까 그만 홍해바닷물이 딱 합해졌습니다. 애굽 나라의 사람은 하나도 남지 안하고 물건도 남지 아니하고 전부 홍해 속에 딱 매장이 되어서 전멸을 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때에 모세가 두 번째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거게서 참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고, 홍해바다를 건넜다 할지라도 애굽 병정들도 건너고 그들도 건너왔으니까 요단강을 건너 그 홍해바다를 건너 와서 이스라엘 백성은 비참하게 망했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인간의 살고 죽고 흥하고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 들으면 어떤 다급한 데서라도, 어떤 비참한 데서라도, 어떻게 다시 희망이 없는 데서라도 하나님의 음성만 바로 듣고 행하면 문제가 없는 것을 교훈해 줍니다. 우리 인간이 보기에 아무리 튼튼하고 좋고 모든 것이 구비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안 하고 꾀우는 마귀의 음성을 들으면 그는 결과적으로 비참하게 망하고 말 것을 교훈해 줍니다.
오늘 아침 묵상 본문 느헤미야 6장에서 느헤미야는 산발랏의 타협과 중상 모략, 스마야의 변절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힙입을 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가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는 평상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그의 역사하심에 대한 많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그 말씀을 의뢰함으로 대적들의 유혹과 협박, 중상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4. 주님과 그의 말씀에 영생의 구원이 있음을 깨닫고 끝까지 따르는 자가 되라!!(하나님의 음성 들으면 살고 안 들으면 죽는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의 은혜를 받는 우리도 앞으로 계속해서 믿고 안 믿는 것에 대한 자유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렵다고, 이해 안 간다고 많이 물러간 제자들과 같은 세상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일생 예수님의 참 제자의 길을 걷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수입을 볼 수 있을까요?
받은 사랑, 받은 은혜들을 자꾸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깨달은 자들은 입이 만 개라도 다 감사 찬송할 수 없다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또 어떤 이들은 일생 주의 종으로 충성하고도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며 무익한 종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이런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성령의 음성을 듣고 큰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던 모세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살고 안 들으면 죽습니다. 들으면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길은 자기에게 대한 주님의 음성을 바로 듣고 행하는 데 있습니다. 인간이 망하는 것이 게을하고 무식해서 가난해서 망하는 것 아닙니다. 망하는 것은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음성 듣지 못하고 마귀 말 들으면 망합니다. 가감(加減)이 없습니다. 땅위에 모든 학자, 영웅, 용사, 도덕가, 철인가, 종교가의 말은 다 없어지고 불살라집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만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100% 성취 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자기 생각과 판단의 욕심대로 노력하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대로 순종하는 일에 힘을 써야 우리의 생명과 평강이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이후부터는 우리는 이런 신앙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더욱 경험하는 주인공이 되도록 합시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고, 믿어가고, 말씀이 영생의 말씀으로 확고하고 자리 잡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이 다 세상으로 돌아가더라도 따라서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고 주님 제자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걷는 주인공이 됩시다. 주인공 되세요.
참조. 81080901, 메튜헨리 주석.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12-0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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