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불행 원인

2009.11.18 17:15

윤봉원 조회 수:922 추천:73

마 19:16-222009111833날자: 2009년 11월 18일 수밤
제목: 인간의 불행 원인
본문: 마태복음 19장 16절 - 22절
어떤 사람이 주께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가로되 어느 계명이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1. 불행의 원인은 병
하나님께서 사람을 처음 창조하실 때는 불행의 원인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담 하와의 타락한 범죄 이후로 인간에게는 영적, 육적, 인격적인 병이 들기 시작했습니다(or 죄를 짓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러한 병이 들어서 인간을 점점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사례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1. 사울의 교만과 불순종
사울 당시에는 그가 이스라엘 백성 중에 제일 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면이 구비하고, 왕으로 세우기에 가장 구비하고, 적절하고,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다음  성경 구절, 사울 자신의 대답과 사무엘의 지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삼상 9:21)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삼상 15:17)
그러나 그를 멸망시킨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치 않는 병이 자기에게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축복이 결과적으로는 악화하여 그를 멸망시키는 그 결과가 맺어졌지 유익을 가져오지를 못했습니다. 그 교만과 불순종에 대해서 사무엘 선지가 가서 말을 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습니다.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삼상 15:19)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삼상 15:23)
1.2. 바울의 자고(自高)
사도 바울은 자기가 마음에 자책할 것이 없었다고 자부하였습니다.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고전 4:4)
그러나 바울도 자신을 절단 낼 병이 자기에게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세 번이나 자신의 몸속에 있는 육체의 가시가 떠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그가 받은 계시의 은사가 지극히 크므로 그를 자고(自高)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육체의 가시, 즉 사단의 사자를 주셨습니다(고후 12:7). 그럼에도 바울은 세 번이나 이 육체의 가시가 자기에서 떠나가기를 간구하니까 주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바울은 듣고 크게 기뻐하였고, 그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고후 12:9). 왜냐하면, 이렇게 할 때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바울 자신에게 머물러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고후 12:9).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실 그때에 깨닫고 그는 돌아섰습니다. 이제는 내가 그것을 떠나기를 원해지만 그것을 떠나기를 원하는 것보다 그 사탄의 가시가 내게 계속되어 있기를 내가 원한다. 왜? 그것은 내가 계속 약한 자로, 계속 다른 사람 앞에 잘난 척하려야 할 수 없는 그런 자로 내가 약한 자로 수치스러운 자로 그렇게 되어 있는 그것을 오히려 나는 기뻐한다. 왜 기뻐하느냐?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머물러 있고 떠나지 않게 하려고 한다. 과거에는 이것이 떠나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그것 떠나면 하나님 은혜는 그 다음으로 절로 떠날 수밖에 없는 내인데 나는 그것을 떠나기를 원했지만 이제 깨닫고 보니까 그것이 떠나면 나는 나도 모르게 모든 사람이 나를 자꾸 높여서 나를 자고(自高)한 사람 만들어서 내가 자고(自高) 하게 되면 하나님이 내게 떠나기 때문에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나는 그것이 내게 있기를 원하고 지금 있는 것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자기가 일생동안 싸워 나가야 할 것. 일생동안 자기는 자기에게 있는 그 단점, 하나님과 당장 원수되게 되고 멀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역사할 수 없고, 그 능력이 끊어질 수 있는 끊어지게 하는 그 자기에게 대한 성전 휘장, 자기에게 대한 가로막는 문, 문을 열라, 내가 들어가겠다 하는 그 문, 그 문을 사도 바울은 발견하고 그 문으로 말미암아서 죽는 날까지 계속 그는 노력했습니다.
1.3. 다윗의 정욕과 살인
다윗도 자기는 자기가 밧세바를 취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이는 큰 죄를 지을 인격의 병이 자기에게 있음을 몰랐습니다. 몰랐다가 하나님께서 그 병을 발견시켜서 발견하였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그는 일생동안 그면에 대해서 힘쓰면서 나갔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 병을 발견하기 전보다 그 후가 참으로 하나님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2. 부자 청년의 재물 우상병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청년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이때에 주님은 청년이 자기는 선한 사람이요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주관적인 착각인가를 다음과 같이 알려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 19:17)
이 말을 들은 청년은 ‘어느 계명입니까?’라고 재질문을 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은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마 19:18-19)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때에 청년은 그 계명은 자기가 다 지켰다고 응수하였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청년의 부족한 것을 정확히 아시고 그것을 지킬 것은 요구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마 19:21)
‘네가 온전하기를 온전하고저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아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는 것은 “그리고 와서 나를 믿어라”, 그래야만 나와 결합할 수 있고 나와 동행할 수 있고 나를 따를 수 있고 나를 믿을 수가 있지 그것이 너와 나 사이에 가로막고 있으니까 그 문제를 해결하고 와서 나를 믿어라고 한 것입니다. ‘나를 좇아라’는 것은 예수를 믿어라는 말씀인데 그 말씀하니까 그 청년이 그만 근심하면서 떠나 버렸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까 자기는 완전하다고 생각을 하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모르는 하나님과 자기 사이를 가로막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그 휘장 그것을 그만큼 주님에게 말해도 모르고 문답을 해도 모르고 그러니까 주님의 빛이 거기에 안 간다 말입니다.
삭개오는 빛이 그의 속에 들어가니까 부자 청년과는 반대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눅 19:8)
우리 인간에게는 예수님의 빛이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요한계시록 3장의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너는 나와 함께 해서 네게 맡은 바의 사명 책임 다 완수할 수 있다 그 말입니다. 거기에는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양식이라 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대로 네가 요 문만 열면 네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완성할 것이고, 또 나는 네가 요 문만 열면 너를 통해서 네게 대한 내 뜻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았으므로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명령을 순종치 못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과 주님의 말씀보다는 재물을 더 사랑한 청년의 병(病)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재물이 우상이었습니다. 만약 이 병만 그에게 없었다면 그는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나누어 주었을 것이고, 하늘에서 보화가 많은 영원부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을 터인데 재물 우상을 섬기는 병이 들어서 금생 내생을 망치는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3. 자신의 허점인 병을 찾아서 고치도록 힘써라!
이러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님은 우리가 어린 신앙이든지 무엇이든지 자기대로 자기 수준에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고, 주님의 은총이 역사하지 못하게 하고, 또 주님의 능력이 그를 통해서 나타나지 못하도록 주님과 자기 사이에 가로막은 그것을 발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찾기 전에는 다 헛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아서 고칠 때에 비로소 주님과 결합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 찾아서 고쳤으면 다 됩니까? 아닙니다. 하나 결합 됐으면 주님과 백분의 일 결합된 사람도 있고, 백분지 구십구가 결합된 사람도 있고, 그 결합의 정도는 천층만층입니다. 이러니까 어쨌든지 주님과 자기 사이에 가로막는 그것을 틔워져야 결합되지 그게 틔워지기 전에는 결합 안 됩니다. 이것을 틔우기 전에는 아무리 자기가 애를 쓰고 해도 자기에게 하나님의 영감이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자기에게 역사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것을 발견해서 고치면 자라 갑니다. 삼십 팔년된 그 병자는 그거 하나 고치니까 당장 해결이 됐습니다.
이 부자 청년은 어릴 때부터 모든 계명은 다 지켜 나왔습니다. 그러나 자기와 주님 사이에 가로막고 있고 또 앞으로 가로막을 것, 현재 가로막고 있는 것, 이것을 자기는 발견을 못 했습니다. 발견을 못 해서 다른 것으로 날뛰니까 착각하고 헛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 점을 주님이 발견하시고 그것을 고치려고 딱 침을 놓으려고 하니까 도망쳐 버렸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 “내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순종했으면 자기는 자기의 불행의 원인인 병을 고침 받고 주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는 주인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만 고침 받지 않으려고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속도로 빠르게 자꾸 쇠퇴해져 갑니다. 지식도 육체의 지식과 성령의 지식이 있고, 힘도 둘, 소원도 둘, 권위도 둘, 기쁨도 둘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현실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며 살아가느냐 이것을 따져서 나는 어느 것을 취사선택(取捨選擇)하며 살아가느냐를 따져서 성경대로, 영감대로 하지 않은 것은 즉시 고쳐야 합니다. 부자 청년처럼 고치지 않고 불행한 길을 걸어가서야 하겠습니까?
만약 이것을 고치지 않고 육체가 되면 세상 사람들은 다 좋아합니다. 그 점 안 고쳐도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고 아주 권위 있고 모든 사람에게 인기 집중됩니다. 그래도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었기 때문에 집은 크지만 나중에 가서 다 타 버리고 없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불 가운데서 구원을 얻은 것과 같은 불쌍한 자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는 버림받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의 기쁨과 행복, 부요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 때에만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과 연결이 끊어진 가지, 버림받은 소금이 무슨 기쁨과 행복, 부요가 있습니까? 이러니까 어쩌든지 지금부터 우리는 고쳐야 할 점을 발견해서 고칩시다. 그리고 진리와 영감으로 말씀하시는 명령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예수 그리스도처럼 “예”만 하고 살아갑시다. 그리하여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라고 칭찬받은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생 내생에 주님이 주시는 부요로 보화를 많이 마련한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참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인공 되세요.
참조. 83042360.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11-1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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