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하는 여호와

2009.09.21 20:19

윤봉원 조회 수:869 추천:65

민 09:15-10:362009092002

날자: 2009년 9월 20일 주일오후
제목: 인도하는 여호와
본문: 민수기 9장 15절 -10장 36절
그의 뒤에는 베들레헴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더라 그가 아들 삼십과 딸 삼십을 두었더니 딸들은 타국으로 시집보내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타국에서 여자 삼십을 데려왔더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 지 칠 년이라 입산이 죽으매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더라 그의 뒤에는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 스불론 사람 엘론이 죽으매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되었더라 그의 뒤에는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더라 그에게 아들 사십과 손자 삼십이 있어서 어린 나귀 칠십 필을 탔었더라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팔 년이라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죽으매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더라
1. 나는 무엇에 따라 움직이는가?
우리는 살아갈 때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기도 하고, 마귀와 세상을 주인으로 섬기고 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지 않는 모든 때에는 우리의 주인이 아닌 것에게 종노릇하며 살아가는 비뚫어진 삶을 사는 것이요,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의 그 모든 것들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우선 보기에는 아름다워 보이고, 비전이 있어 보이고, 행복해 보이고, 결과가 아주 좋을 것 같지만 그 길을 걷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는 가장 불행하고도 불쌍한 길이요 실패와 후회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을 살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대해서 칭찬과 인정할 것은 하나도 없은 헛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길을 잘 걸어 보았던 전도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던 것입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그러면 우리는 무엇에 따라 움직이며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까요? 본문을 통해서 알아 보도록 합시다.
2.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
2.1.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인도(9:15-23)
민수기 1:1-9:14에서 공동체의 구성을 논의한 다음에 모세는 이제 시내로부터 가나안으로의 여행에 대해서 준비할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준비 단락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그 여행 길에 인도를 받아 왔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회막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켰던 출애굽기 40:36-38의 구름은 안내자로 등장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이스라엘 진영의 행진과 머물러야 할 곳을 지시해 주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 기둥이 진영 위로 떠오르면 진행하였다. 그러나 구름 기둥이 머물면 백성도 머물렀다. 그 머무는 기간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기간에 따라서 하루도, 한 달도, 1년도 계속되었다. 모세와 백성은 여호와의 이러한 인도와 명령을 따라서 잘 순종하였다(9:18, 18, 20, 23). 이것은 변하지 않는 법규였다. 이것은 백성을 여호와께서 인도하신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분께서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따르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하나 생각 해 볼 것은 출애굽기 13장에서는 밤낮으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출 13:21-22)
그런데 민수기 9장에서는 구름 기둥의 인도만 기록해 준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본문에서는 구름의 ‘뜨오름’이라는 용어로만 그 움직임을 규정하고 있다(17, 21-22). “사람들은 어떻게 움직인 구름에 의한 인도를 정확하게 믿었을까?” 하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질문은 무의미해 보인다. 그에게는 그것이 그랬다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출애굽기에 나오는 불 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온 무리 앞에서 인도했다는 출애굽기 13:21-22에 나오는 이론에 대한 논쟁을 하기를 원치 않고 있음에서 알 수 있다. 모세의 관심은 하나님 임재의 중심성을 보존하며서 이스라엘이 행진해 나가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실한 복종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구름이 머무는 기간이 길든 짧든 백성은 신실하게 반응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도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에게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실까? 그때 당시에는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라는 역사를 통해서 그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을 인도하셨지만, 성령 시대인 오늘날에는 성령과 진리로 인도하심을 분명히 밝히셨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갈 5:18)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성령과 진리, 피로 우리와 함께하시면 인도하시는 그 인도를 따라 성실하고도 충실하게 따르는 충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2.2. 은 나팔의 인도(10:1-36)
출애굽 이후 일 년 이상이 지나고 연기된 유월절 절기를 지킨 바로 직후(9:11-12),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는 구름 기둥이 이제 시내 광야를 떠나 북쪽을 향해 나아갈 것을 알려 주며 이스라엘 진영 위로 떠올랐다(10:11-13). 유다 지파가 대표단으로 먼저 떠났고(10:14-16) 성막이 거두어졌으며,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이 각각 맡은 성물을 가지고 진행해 나갔다(10:17, 4:21-33). 다음에 르우벤과 함께한 지파들(10:18-20)과 언약궤, 성막의 기물들을 운반하는 고핫 가족들이 뒤를 이었다(10:21). 그 뒤에는 에브라임과 단 지파가 따랐다(10:22-28). 이 단락에서 전체적인 중요성은 질서정연(秩序整然)한 순종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 모티브이다.
이상의 과정에서 여호와께서는 여행을 위한 두 번째 안내 수단에 관한 정보를 구름 기둥에 이어서 말해 준다. 두 개의 은 나팔은 이스라엘을 모으는 수단이며, 행진 시작의 표시이기도 했다. 이 두 나팔을 사용하면 전 공동체가 모였다(3). 하나를 사용하면 족장들을 소환하는 것이었다. 행진의 소리는 다른 소리인데 하나의 “경보”(5-7)다.
회중을 소집할 때는 나팔을 울려 불지 말고 그냥 불게 하였다(10:7). 그러나 진행할 때는 나팔을 울려 불도록 하였고 백성은 그대로 진행하였다. 나팔을 불 때는 반드시 아론의 자산인 제사장들이 불도록 하였다(10:8). 그렇게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하여 전쟁에 승리하도록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10:9).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 하나는 구름 기둥의 인도에서는 하나님의 주도권을 나타내지만, 나팔들은 각기 장막에서 회중을 모을 때, 그리고 각 지파 그룹들로 하여금 진행하는 순간을 알리는 표시로서 인간 지도력의 반응을 강조하고 있다.
이 두 인도 단락의 강조점은 하나님의 주도권에 대한 인간의 반응의 필요성(必要性)을 증거하고 있다. 구름으로 상징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반응을 요구하였다. 나팔 소리는 믿음의 복종을 하라고 자극하는 들을 수 있는 표시였다. 인간 헌신의 한 면은 위험과 장애가 있음에도 자원하여 믿음으로 따르고자 한다. 또한, 나팔 소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의 기억나게 하는 수단으로 묘사되어 있다(9-10). 이것은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의존을 표현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믿음이라는 시각으로 볼 때 하나님은 결코 인정이나 이용의 대상으로 취급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동이 계속 되는 동안 제사장들이 이스라엘의 참 지도자이신 여호와의 임재(臨在)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지고 가장 선두에 나섰다(10:33-34, 9:23). 언약궤가 앞으로 나아갈 때 모세는 다음과 같이 외쳤다.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민 10:35)
이 말씀은 시편에도 나와 있것으로써 아마도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운반되었을 때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전쟁에 능하신 신으로서 그의 백성들 맨 앞에 서 계셨다.
‘하나님은 일어나사 원수를 흩으시며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시 68:1)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시 132:8)
1560년에 작성된 요한 낙스의 스코틀란드 신앙고백이 아래와 같은 모세의 기도로 끝나고 있음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원수들로 놀라게 하소서. 주의 거룩한 성호를 미워하는 자들이 주의 목전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당신의 종에게 주의 말씀을 담대히 말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모든 민족들로 하여금 주의 참된 지식에 귀를 기울이게 하소서. 아멘.’
행진이 멈출 때는 모세는 다음과 같이 외쳤다.
‘궤가 쉴 때에는 가로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인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민 10:36)
이 구절을 NEB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스라엘의 여호와여 머무소서.’
모세가 한 말의 의미는 분명한 것으로서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머물러 주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언약궤를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임재(臨在)하시는 것으로 보았던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자가 인간만이 아닌 법궤가 상징하고 있었던 하나님 자신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3. 진리와 영광과 피의 인도에 전적 순종으로만 따라가라!
이상의 여호와 인도에 대한 이야기를 통하여 저자 모세는 그들이 여행을 시작할 때 정해진 하나님 백성의 순종을 지적하고 있다. 그 여행은 앞을 향하여 나아가는 진행 과정에서 전적인 순종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의 인도자는 구름과 나팔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이 성령과 진리와 피공로로 인도하심을 먼저 인식하여야 한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인생을 운전해 갈 자격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인도하시는 대로 우리는 시간이나 장소, 어려움과 평안에 상관없이 전적 순종만 요구된다. 이렇게 그의 인도에 온전히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계속해서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인도를 하시든지 전적 순종으로만 따라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됩시다. 결과는 가장 좋은 길, 은혜로운 길, 평강의 길,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참조. Budd,「민수기」, pp. 197-216. Vanderwall,「1. 모세오경에서 역사서까지(창세기-에스더)」, p. 296.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9-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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