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24:142009090453날자: 2009년 9월 4일 금밤
제목: 막다른 골목에서 드리는 기도
본문: 사무엘하 24장 14절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
1. 막다른 골목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요?
2. 사단의 종이 된 다윗
삶의 큰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다윗은 인생의 후반을 맞이하게 된다.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수도가 함락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극복해 다시 한 번 번영(繁榮)의 시기를 맞이했다.
그러던 어느날 다윗은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나라를 바라보면서 인구 조사를 하고자 하였다. 다윗은 요압과 측근의 부하를 불러 말했다.
‘왕이 이에 그 곁에 있는 군대 장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그 도수를 내게 알게 하라’(삼하 24:2)
단은 북쪽 끝의 도시, 브엘세바는 남쪽 끝의 도시이다. 전 국민의 인구조사(人口調査)를 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이것은 정부의 일상적인 업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당시 인구조사(人口調査)는 단순하게만 볼 것이 아니었다. 역대상 21:1에는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개역: 격동(激動) => “선동하다, 꾀다, 유인하다”)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무엘하에서도 군인(軍人)인 요압조차도 ‘요압이 왕께 고하되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삼하 24:3)라며 인구조사(人口調査)를 반대(反對)하였다.
다윗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전쟁에 출병할 수 있는 남자의 수(數)를 헤아려 자기만족에 빠지고 싶었던 것일까? 어쨌든 다윗은 자기의 명령에 반대한 요압을 설득하여 9개월 20일에 걸쳐 이스라엘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하지만, 보고를 듣고 난 후 자기 만족(滿足)에 빠져야 할 다윗은 무거운 양심(良心)의 가책(呵責)을 느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삼하 24:10)
3. 막다른 골목에 이른 다윗
다음 날 예언자 갓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지고 다윗에게 찾아온다. 하나님의 심판은 잔혹할 정도로 혹독(酷毒)했다.
‘임금님의 나라에 일곱 해 동안 흉년이 들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왕께서 왕의 목숨을 노리고 쫓아다니는 원수들을 피하여 석 달 동안 도망을 다니시는 것이 좋겠습니까? 또 아니면 임금님의 나라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퍼지는 것이 좋겠습니까?’(24:13)
이 질문을 받은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막다른 골목에 이른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고 매우 곤혹스러워하여 다음과 같이 갓에게 이야기했다.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삼하 24:14)
7년 동안 기근이 있으면 나라의 존속(存續)이 위태로워질 정도로 쇠퇴해져 버린다. 또 3개월 동안 적의 위협을 견뎌낼 정도로 다윗은 젊지 않으며, 가능하다 하더라도 나라는 그 위세를 잃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선택지는 3일동안의 역병이다. 그 당시 역병의 맹위(猛威), 그 무서움은 최첨단 의료기술 사회에 사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불구가 되겠는가? 가족을 잃겠는가? 교회를 잃겠는가?”의 문제와도 같다. 이처럼 슬프고 괴로우며 어쩔 도리가 없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예언자 갓은 이 괴로운 질문지를 다윗에게 내밀며 말했다.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무엇을 대답하게 하소서.’(24:13)
역대상 21:11에서는 질문지를 말하기 전에, 갓이 처음에 다윗에게 한 말은 “너는 선택하여라”(즉, 받아들여라)였다. 그것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갓은 하나님께서 내신 질문지가 선택할 수 없으며, 결정할 수도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윗에게 받아들이라고 말한 것이다.
약 20년 전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신학관련 책이 있다. 풀러(Fuller) 신학교 교수 루이스 스미즈가 쓴 “용서하고 잊으세요”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다양한 상처를 입는데, 이 책에는 그것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상대방을 용서하고 그 사건을 잊어버리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책이 특히 기독교계에서 화제가 된 것은 “신을 용서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권자인 신을 감히 인간이 용서한다는 발상은 신학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이 표현을 의미 있게 만드는 다음의 내용을 간과할 수 없다.
“신을 용서한다”라는 장에는 스미즈 부부의 간증이 담겨 있었다. 스미즈 부부는 결혼하고 오랫동안 아이가 없었다고 한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며 불임클리닉을 다니고 여러 가지로 노력한 결과, 그들에게 마침내 아이가 생겼다. 그러나 태어난 아기는 몇 주 만에 원기를 잃고 시름시름 앓더니, 의사에게서 오늘밤이 고비라는 말을 들을 정도까지 악화됐다. 스미즈 부부는 목숨을 걸고 기도했다. 교인들도 부부를 위해 간절히 중보기도를 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일까. 다음날 아침, 의사로부터 “이제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라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아이는 그만 목숨을 잃고 만다. 스미즈 교수는 이때 신에게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결국 하늘나라로 데려갈 것이라면 애당초 아기를 주시지 말지. 어차피 데려갈 거라면 오늘밤이 고비라고 하는 그날 밤에 데려가시지.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안심시켜놓고는, 곧바로 데려가시다니. 이는 너무 잔인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것은 스미즈 교수가 받아들여야 하는 아픈 현실이었다. 그는 이 현실이 받아들이는 단계에서 “신을 용서했다.”고말한 것이다. 이것이 크리스천으로서 문제 있는 표현이라는 것은 그 자신도 의식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신을 용서하고 용서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아니라, 삶 속에서 신이 제시한 혹독한 현실을 극복하려면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자기 연민에 허우적거리며 현실에 대한 쓸데없는 불평과 슬픔에 묶여 있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현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인생에 속았다는 감정을 떨쳐버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4. 다윗의 기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 놓으며 기도한다.
‘차라리 우리가 주님의 손에 벌을 받겠습니다. 사람의 손에 벌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24:14, 대조성경 새번역)
나는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 다윗의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데 잘 어울리는 생의 궁극적인 기도라고 생각한다. 이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엄하심과 긍휼하심의 양면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생애를 통해 이 두 가지, 즉 하나님의 죄에 대한 엄하심과 회개한 자에 대해 깊은 긍휼 하심을 배워왔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 타협하지 않으심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예는 사울의 최후에서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적(敵)에게 쫓겨 칼 위에 엎어져 자해(自害)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또 다윗 자신의 경우만 봐도 밧세바와의 간음(姦淫)으로 얻은 아이가 이레 동안 금식기도 했으나 죽어버린 슬픔을 경험(經驗)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깊은 자비도 알고 있었다. 목장에서 지내던 어린 자신을 이스라엘 왕위에까지 오르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셨다. 또 골리앗과 맞섰을 때 한 번에 승리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때때로 그가 죄 가운데 빠졌을 때도 회개하는 다윗의 마음을 모른척하시거나 내버려두지 않으신 분 역시 하나님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을 잘 알고 있기에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한 심판이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알았다. 그는 자신이 이 현실에서 달아날 수는 없으며 반드시 죄에 대한 대가(代價)를 치르리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심판이 아무리 괴로운 체험(體驗)이라 하더라도 달아나지 않고 허둥대지 않았다. 하나님께 원한을 품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동시에 다윗은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알고 있었다. 또한, 항상 하나님의 자비(慈悲)는 하나님의 엄 격함보다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도했다. “하나님의 손에 벌을 받겠습니다.” 라고.
이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 아침부터 사흘 동안 온역을 온 이스라엘에 내려서 70000명을 죽이셨다. 그리고는 더는 천사가 사람을 죽이지 못하도록 하셨다. 이 역사를 보고 다윗을 다시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다.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삼하 24:17)
그리고 다윗은 갓의 권고를 받아들여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번제화 화목제를 드렸다. 그랬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에 내리는 재앙을 중단하셨다.
그래서 다윗의 막다른 골목에서 드린 기도는 자기 백성들의 행복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17절). 아울러 그는 회개할 줄 아는 사람임을 회개의 기도를 통해서 드러내고 있다. 결과적으로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사울과 사울의 집에서 떠났던 것과 같이 그에게서는 떠나지 않았다.
5.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님께 회개와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하라!
우리는 다윗이 막다른 골목에서 드린 다윗의 기도를 통하여 그에게 베풀어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의 모델이며, 하나님의 자비(慈悲)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모든 세대(世代)의 가능성과 실제성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만나는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님께 회개와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하도록 합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다시 은혜를 베푸시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주인공 되세요.
참조. 후지모루 미쓰루,「기도하는 사람들」, pp. 205-210.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9-13 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