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19:1-182009082302날자: 2009년 8월 23일 주일오후
제목: 성경적 사회질서
본문: 레위기 19장 1절 - 18절
1. 거룩하게 사는 것이 정상적인 삶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1-2)
이 장의 1-4절까지는 성결한 삶에 대한 명령과 원칙이 선포된다.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해야 한다는 명령을 반복함으로 그것을 더욱 명확히 한다.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아들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거룩은 온전성, 정상성, 순수성을 내포한다. 하나님의 거룩은 그분의 무한한 권세와 위대함, 그리고 창조물 위에 숭고하여 뛰어남을 기술하는데 그것은 인간에게 반대로 죽었으며 전적으로 무가치함을 알게 한다. 이 의미는 19:2-18에 언급되어 있는 규례들에 전제되어 있다. 이 규례들을 모든 회중은 각자의 역할을 다해야 하며 매일의 삶의 규정적인 원칙인 거룩을 향상시키는 책임으로부터 그 누구도 예외 일 수 없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인간의 거룩성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전적인 순종의 한 결과이다.
2. 성경적 사회질서
2.1. 부모를 공경하고, 안식일을 지키라(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9:3)
진정한 거룩함은 의식이나 성행위 그 이상으로 거룩함 자체를 드러낸다. 실제로 거룩함은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 관계나 다른 사람들을 향한 수평적 관계, 모든 생활 속에 고루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거룩함은 모든 행동의 기초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그분의 말씀으로 이 긴 내용의 훈계가 소개되고 있음은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1-4).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한 행동이다. 왜냐하면, 부모님들은 어린 아이로서 하늘의 아버지께 순종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모들은 사회적 지위나 육체적 혹은 정신적 상태가 무엇이든 간에 존경과 사랑으로 대우 받아야 한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의무와 책임들 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이다. 이와 더불어 성도들의 가르침에서 주일로 대체된(참조. 마 28:1; 막 16:1; 눅 24:1; 요 20:1) 안식일을 존경하는(귀히 여기는) 것은 다른 동료들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성도에게 규칙적인 기회를 제공하며, 신적 거룩의 요구들에 일치하여 남녀의 삶에 대한 범위를 온전케 한다. 하나님의 대리자인 부모를 존경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숭배하는 것으로부터 단지 한 발자국 옆으로 간 것이다.
2.2. 우상 숭배하지 말라(4)
‘너희는 헛것을 위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9:4)
어떤 형태의 우상 숭배도 강하게 금지되고 있는데 우상이란 히브리 말로 ‘엘리림’이다. 이것의 문자적 의미는 “없음의 것들”(things of nothingness), “실재가 없음”(non-entities)이다(참조. 사 44:10). 우상이란 말은 소리에 있어선 하나님, 히브리 말로 ‘엘로힘’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하나님은 충만하시며 돌이나 나무의 우상들은 텅비어 있다는 점에서 둘은 매우 대조가 된다. 결국에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그 지역 우상숭배의 감언에 굴복하여 그 벌로 말미암아 포로가 되었다. 따라서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무엇(사람, 돈, 공부, 성공 등등)도 우리의 섬김과 숭배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2.3. 성경적인 예배와 형제애를 실천하라(5-10)
‘너희는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릴 때에 열납되도록 드리고 그 제물은 드리는 날과 이튿날에 먹고 제 삼 일까지 남았거든 불사르라 제 삼 일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가증한 것이 되어 열납되지 못하고 그것을 먹는 자는 여호와의 성물 더럽힘을 인하여 죄를 당하리니 그가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9:5-10)
의식의 예법을 여기에서 다시 강조하는데 회생이 자발적이지만 그것은 기술된 절차들과 완전히 일치하여 드려져야만 하는 것은 변질이란 용납될 수 없고 오히려 그 결과 처벌이 왔기 때문이다. 레위기 3:1과 7:15-18에 주어진 규율들은 회생하는 화목제의 독특한 방법을 제공하며 어떤 우상숭배의 오염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예배 의식이 철저히 성경적이라는 점을 확실(確實)하는데 신중(愼重)해야 하며 미신이나 단순히 인간적인 중요성들에 의해 오염(汚染)되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 속한 거룩한 것이 신성(神聖)모독(冒瀆) 될 것이며 그 결과 복(福) 대신 형벌(刑罰)이 따라올 것이다(8절).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가난한 자들에 대한 그분의 관심(關心)은 추수시에 그들을 위해 소량의 이삭과 열매들을 남겨둠으로 이스라엘에 의해 반영(反映)되어야만 한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공동체 의식은 가난한 사람을 형제나 자매로 여기게 했고 그렇게 대우(간주)하도록 했다.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행 4:34-35)
하나님에 의해 그들이 거룩한 국가의 구성원들로 간주되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들의 동료들, 특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자들에게 책임의식을 가질 것을 포함했다. 형제애의 의식은 신명기에서의 규정과 비교할 때 특히 이번 장에서 강조되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는 그 거룩한 백성들의 다른 구성원에게 이익을 취하며 대여(貸與)하는 것이 금지되었다(신 23:30). 왜냐하면, 대여란 이익의 지급이라고 하는 어렵고 당황이 되는 문제를 발생케 했던 그런 종류의 비상 시기에만 보통 필요했기 때문이다. 맷돌은 담보물로 취할 수 없었으니 그것은 사람의 생명을 취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신 24:6), 진실로 담보물로 취할 수 있는 것은 엄격한 규칙들로 다스려졌다(신 24:10-13; 참조. 출 22:26-27). 궁핍한 사람들을 착취(搾取)하는 것은 금지되었는데(신 24:14-22) 그것은 거룩한 국가에서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평등(平等)하다는 것을 의미한 형제애(兄弟愛)의 원칙을 파괴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공동체인 몸의 구성원들은 공평하고 자비로운 방법으로 대우 되어야 했다.
2.4. 도둑질, 사기, 거짓 맹세하지 말라(11∼12)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11-12)
좋은 사회적 관계를 위한 규칙들은 여기에서 특별하게 진술되어 있다. 도적질과 속이기, 그리고 거짓말하는 것들이(11절) 금지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언약적 윤리에 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회의와 불신, 그리고 증오들을 기르면 그것들의 특성들은 사회를 심각하게 약화시킨다. 새 언약의 자녀들도 그런 악들을 피하라고 명령을 받았다(참조. 엡 4:28; 골 3:9 등).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되이 맹세하는 것은 속이거나 거짓의 과정의. 일부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신성모독(神聖冒瀆)한 사건으로 그것은 불순, 부도덕, 사기가 가득차거나 불의한 행동과 관련되어 있다.
2.5.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약자의 인권을 짓밟지 말라(13-14)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며 늑탈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13-14)
어떤 개인이 그의 동료 이스라엘인을 무슨 방법으로도 착취해서는 안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형제와 자매였기 때문이다. 이웃이(13절) 신명기 24:14에서는 고용된 품꾼이 되지만 그 원칙은 동일하다. 그의 임금은 조금도 착취하지 (그를 약탈하다) 말고 적절한 비율로 지불되어야 한다. 그 날에 고용된 품꾼에게 밤이 되기 전에 임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참조. 마 20:8) 그 이유는 가난한 자들은 그날의 임금이 즉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신약에서도 상전들은 자신들의 종들을 공평하게 대우하라고 권면을 받는다(엡 6:9; 골 4:1). 고대 근동에 있어서 불구자들은 착취당하고 학대당했으나 이스라엘 중에서의 그들은 보살핌을 받아야 했는데 이유는 이스라엘이 숭배하라고 명령받았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들은 태어났기 때문이다. 귀먹은 자를 악담하는 것은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서 불공정한 유익을 실제로 취하는 것이다. 레위기 19:14와 신명기 27:18 둘다 이스라엘에게 눈먼 자들 앞에 여러 가지 장애물들을 설치하거나 그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들을 금지시켰는데 이런 종류의 행동은 다른 국가들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눈먼 자와 귀먼 자들이 사회에서 구성체들로 규정되었다는 사실은 모세 시대에 이런 두 가지 병이 유행하고 있었음을 입증한다. 시력과 청력의 회복은 그리스도의 초자연적 사역의 놀라운 증명들 가운데 있었다(참조. 눅 4:18)
2.6. 공정한 재판의 명령과 중상금지(15-16)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네 이웃을 대적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15-16)
정의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인 환경이 어떻든 간에 왜곡되어서는 안된다. 문에 있는 재판관이나 장로는 자신의 결정에 공평해야 하는데 그것이 정의에 있어서 유일한 기초가 된다. 헛되이 혹은 아무렇게나 서 있는 자들에게 악담을 퍼뜨린 자들은 이런 규정의 책망을 받는데 이웃의 생명이 위험에 있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바른 인도주의 면들은 고대 근동에서나 심지어 이스라엘 중에서도 항상 찾아볼 수 없었다.
2.7.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17-18)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17-18)
이웃에 대한 책임감은 심장과 마음의 적극적인 태도를 포함한다. 증오는 오직 악에 대해서만 품을 수 있었던 정서적인 반응이며(암 5:15) 언약 공동체의 동료-구성원(형제)에게는 추호도 가질 수 없었다. 책망이 필요하면 그가 있는 곳에서 솔직하게 해야 하였고 그의 등 뒤에서 해서는 안 되었는데 이는 노가 원한이나 증오로 가서 그 결과 죄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의 잘못을 범하는 지체들을 사랑과 인내로써 책망하라고 가르쳤다(딤전 4:12). 피 싸움(blood-feud)의 방법으로 복수한다는 것은 단지 정의롭지 못함을 영속화하며 때때로 모든 면에서 발생한다. 복수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신 32:35; 롬 12:19; 히 10:30) 그분께서 적절한 때에 갚아주실 것이다. 그럴 때 그리스도인이 좇아야 할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로 보여 주셨다(벧전 2:23). 자신의 동료에 대한 사랑의 법은 여기와 34절에서만 선언되고 있으며 이스라엘 가운데 살았던 이방인과 나그네들과 함께 언약 공동체의 구성원들(너희 자신 백성의 아들들)을 포함하도록 한다. 사실상 사랑과 이웃이란 용어들은 지금보다도 더 범위에서 넓게 이해됐던 것 같다. 이 소위 황금률은 사회에서 이타주의 행동의 이상으로서 그리스도에 의해 인용되었다(마 19:19; 22:39; 막 12:31: 눅 10:27) 이 금언 저변에 있는 감정은 고대 세계에 있어서 유일했으며 구약성경의 가장 뛰어난 도덕교훈 중의 하나로 나타난다.
11-18절까지의 말씀은 출애굽기 20:1-17에 나오는 십계명과 비슷한 또 다른 필연법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권리와 의무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간에 맺은 사회적 계약의 개념을 훨씬 더 자세히 제공해 준다.
3. 부모를 공경하며, 우상을 만들지 말고, 이웃 사랑함으로 베푸는 삶을 살아라!
이상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성경적 사회질서를 지키는 거룩한 삶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부모를 공경하는 삶과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이다. 둘째, 우상을 만들지 않는 삶이다. 셋째, 이웃을 사랑함으로 다른 사람을 상해하지 않고 그들과 교제하며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거룩함을 특징지어 주는 구별된 삶은 언약이 요구하는 이 모든 규정을 지킴으로 거룩함을 나타내야 한다(37).
참조. Harrison,「레위기」, pp. 227-32. 박철우, ‘성결함으로 나아가라’,「레위기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p. 237. Dyer & Merrill,「구약탐험」, p. 103.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8-28 1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