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일에 힘쓰라

2009.08.07 12:15

윤봉원 조회 수:1139 추천:46

딛 3:1-82009072601

날자: 2009년 7월 26일 주일오전
제목: 선한 일에 힘쓰라!
본문: 디도서 3장 1절 - 8절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1. 나를 보는 것은 예수님을 보는 것일까?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살아갑니다. 그 모습은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계시는 그분의 음성을 듣고 순종생활을 잘함으로 우리 속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주인이신 주님을 배반하고 세상을 사랑함으로 마귀의 종이 되어 악한 모습, 강팍한 모습, 미운 모습, 혐오스런 모습, 덕(德)이 되지 못하는 모습을 드러내면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을 나를 통해서 나타내면서 살아가고 있나요? 자신을 돌아봅시다. 아울러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성경적인 모습일까요?
2. 선한 일에 힘쓸 수 있는 근거
2.1. 구원받기 전에 나의 실상을 기억함으로
2.1.1. 어리석은 자
바울은 디도에게 그레 성도들로 하여금 모든 선한 일에 예비된 자가 되어 선한 일에 힘쓰게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1, 8). 이것은 바울의 일차적 권면의 대상이 그레데 사람이었지만,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도 그들과 같은 선한 일에 준비된 자가 되어 선한 일에 힘쓰는 자가 되기를 기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선한 일에 힘쓰는 것을 계속하는 것이 얼마나 잘 되지 않는지를 절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선한 일에 준비된 자가 되어 선한 일에 힘쓰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을 본문에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선한 일에 힘쓸 수 있는 준비된 자가 되고, 그 선한 일을 감당할 힘의 근거를 우리 자신들의 구원 받기 전에 실상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에서 찾고 있습니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딛 3:3)
바울이 말한 우리는 바울, 디도, 서신을 받는 그레데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모든 신자들을 뜻합니다. 우리 자신들도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우리의 과거 신분과 은혜의 상태에 들어간 연후의 현재 신분간의 뚜렷한 대조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도록 해 줍니다. 이로써 또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이웃에 대해서도 선한 마음을 갖게 해 줍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자이었습니다. 지각이 없는 자였습니다. 무지하였을뿐 아니라 본질상 실질적으로 성령의 일을 분별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9)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 1:21)
2.1.2. 순종치 않았던 자
우리는 신적 권위와 인간적 권위에 순종치 않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양심의 소리나 부모의 훈계나 시민법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자들이었습니다.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롬 1:30)
2.1.3. 속은 자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딤후 3:13)
그래서 우리는 진리를 떠나 방황케 되었으며, 비현실 세계에서 살며, 방종이 자유인 양 착각하고 살았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마귀와 죄의 종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2.1.4.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
우리는 강하고 악한 정욕들이 우리의 삶과 행실을 지배하도록 허락했었습니다.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딤후 2:22)
행락에 빠져서 살았던 우리들이었습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약 4:1)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벧후 2:13)
그리스도 없는 세상을 살펴 봅시다. 얼마나 비참한 광경인가요? 여기에 ‘우리가’ 있지 않았던가요! 대식가요 술고래이며, 구두쇠요, 게으름뱅이며, 사기꾼이요 멋쟁이며, 변태 성욕자요 강간자이며, 호랑이와 여우가 아니었던가요(참조, 롬 1:18-32)?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9~21)
2.1.5.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
이 악독은 단순한 악의가 아니라, 그것은 불량이요, 사악이요, 부정이요, 특별히 마음의 악한 기질입니다. 치명적으로 영혼을 멸망시키는 악독 중에 하나가 투기인데, 이것은 사람을 탕진케 하는 악을 의미합니다. 투기는 아무것도 그 맹위를 당해낼 수 없는 악덕으로서, “지옥의 장자”로 불리는 것이 아닙니까?
2.1.6. 시기
시기는 다른 사람이 어떤 것을 갖고 있는 꼴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의 명예를 시새워 경계하며, 다른 사람의 기술을 시기하여 부러워합니다. 아벨을 살해케 하고, 요셉을 웅덩이에 집어넣게 하고,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으로 하여금 모세와 아론을 반역케 하고, 사울로 하여금 다윗을 추적케 하고, 탕자 비유에서 큰 아들이 자기 아버지에게 무정한 말이 나오게 하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바로 시기였습니다. 사랑은 투기하지 않습니다(고전 13:4).
2.1.7. 가증스러운 자
회심하지 않은 죄인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자신의 태도로 말미암아 혐오감을 일으키기에 가증스러운 자이다. 우리가 이러한 자들이었었다.
2.1.8. 피차 미워한 자
이것은 가증스러운 자들이 악독한 마음을 품고 다른 사람들과 살도록 되어 있고, 접촉하도록 되어 있을 때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이다.
바울이 말한대로 우리는 한 때 이러한 자들이었다. 따라서 아직도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무정하게 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영점하도록 경건하게 행실을 갖추어 노력해야 합니다.
2.2. 사활대속으로 입혀 주신 하나님의 구원은총을 기억함으로
2.2.1. 중생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의 행위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 사활대속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의 은혜를 선물로 주신 분이십니다. 이분을 바울은 디도에게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일깨워 주었습니다(딛 2:11). 그분은 모든 사람을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도록 양육하시고 훈련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이분이 세상에서 가장 악하고, 못나고, 쓸모없는 우리를 구원해 주심에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립시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딛 3:4-5)
이 말씀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비인도적인 행위와 대조하여 하나님의 자비로운 행위와 인간에 대한 사랑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의 과거 칠흑같은 어두움 위에 우리를 현재의 은혜의 상태에로 인도해준 성부 하나님의 자비하신 행위를 극적으로 비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임을 강조하고 있다.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구원의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넓이가 인간들의 구원 넓이를 결정하는 척도임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참조. 엡 1:7).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추가적인 수식어에 의해서 더욱 지지 된다.
중생은 문자적으로 거듭나는 것(palin= 그듭, genesia = 낳다)을 의미합니다. 중생에 대해서 루이스벌코프는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중생이란, 새 생명의 원리가 인간 속에 심어지고, 영혼의 지배적인 기질이 거룩하게 되며, 그리고 이 새로운 기질이 처음으로 거룩한 작동을 시작되도록 하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중생은 성령의 사역이다. 성령은 영적 생명을 주시고, 사람들을 거룩하게 한다.
중생은 새롭게하심(성화)의 과정에 선행하며 그것의 원인을 이룹니다. 새롭게 하심은 평생토록 계속되는 것이지만, 중생은 단번에 되는 것으로 즉각적인 변화입니다.
이 중생은 전인(全人)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중생은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3절에서 언급된 여러 가지 죄악으로부터 눌려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1절과 2절에 언급된 일곱 가지 미덕으로 치장되는 것입니다.
2.2.2. 새롭게 하심
‘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5-6)
중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이다. 그러나 새롭게 하심(성화)은 하나님의 뜻에 인간이 자기의 전 인격을 의식적으로, 계속적으로 복종함으로서 가능한 것이다. 이 새롭게 하심의 역사는 성령님이 주도적으로 한다.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하시며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의 능력의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에 관하여 바울은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라고 덧붙인다. 여기서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이 합심해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풍성하게 역사하심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의 대상임을 항상 기억하여야 합니다.
2.2.3. 영생의 소망을 주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7)
이쯤해서 우리가 정리 해 볼 것은 3절에 묘사되어 있었던, 우리의 이전 상태(신분)은 끝났고, 4-6절에 서술되어 있는 축복들을 우리는 이미 받은 자들이 되었고,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이제 이 축복들의 목적과 결과에 대해서 진술한 것이 7절 영생의 소망 중에 있는 후사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입니다. 이러한 패턴은 바울 서신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과거) ‣ 우리는 살아나게 되었다(현재 완료) ‣ 우리는 이제 우리가 더 큰 영광을 받게 될 오는 세대를 믿음으로 고대한다(미래, 엡 2:1-10).
우리는 우상숭배하는 자들이었다(과거) ‣ 우리는 지금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현재) ‣ 우리는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것(살전 1:9, 10)과 우리가 누리게 될 그와의 영원한 교제를 기다리고 있다(미래, 살전 4:13-18).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의 목적은 ‘영생의 ……후사가 되려 함이다.’ 즉 우리가 지금 원리적으로만 소유하고 있는 권리를 금생에서도 가질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임을 분명히 하여야 합니다. 미래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교제를 누리게 되며(참조. 요 3:16; 17:3), 그의 사랑의 햇볕을 쪼이게 되며(참조. 요 5:42), 그의 기쁨과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는 사실이 얼마난 놀라운 특권인지요(참조. 요 17:13).
우리는 영생을 이미 소유한 자들이요, 하나님의 소유를 상속 받을 자들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으로 과거 우리 자신들의 실상을 항상 기억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선한 일에 항상 예비된 자가 되어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예수님처럼 겸손과 온유함을 범사에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3:1, 8).
3. 범사에 선한 일에 열심을 내어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를 드러내라!!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딛 3:1-2)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인 대한민국의 법과 권위에 복종하면서 선한 일을 행하는 데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권세도 하나님께서 위임하셨기 때문입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사람들처럼 정상적인 권세에 불복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단 우리가 구별할 것은 국가가 북한 공산권처럼 하나님의 정의를 부정하고 불의하게 행세를 할 때(예를 들면 국기 배례, 단군상 숭배, 주일 성수를 못하게 하는 행위 등)는 따라서는 안 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 13:1)
아울러 우리 성도는 우리가 접하는 누구에게도 공격적이어서는 안됩니다. 그들과 화해와 관용(온유함, 사려깊음), 범사에 온유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즉 나의 삶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온유가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나도 불신자들보다 더욱 악하고, 못나고, 불순종에 종노릇하며 살아가던 자를 사활대속으로 중생, 새롭게 하심, 영생의 소망 주심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항상 충만한 자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사활대속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죽도록 겸손함으로 선한 일에 충성함으로 열매 있는 자가 되도록 힘써라!!
묵상 나눔 제목: 선한 일에 힘쓰라.
☞ 본문(디도서 3:1-7)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 우리를 우리의 행위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 사활대속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의 은혜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
‣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으로 과거 우리 자신들의 실상을 항상 기억하기를 원하시는 분.
‣ 선한 일에 항상 예비된 자가 되어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예수님처럼 겸손과 온유함을 범사에 드러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 내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나도 불신자들보다 더욱 악하고, 못나고, 불순종에 종노릇하며 살아가던 자를 사활대속으로 구원하여 주심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항상 충만한 자가 되도록 힘써라!!
‣ 사활대속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죽도록 겸손함으로 선한 일에 충성함으로 열매 있는 자가 되도록 힘써라!!
참조. Hendriksen,「디모데전후서․디도서」, pp. 511-23.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1949, p. 469.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8-07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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