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스의 인격

2009.07.18 21:48

윤봉원 조회 수:1255 추천:42

룻 3:14-4:62009071753날자: 2009년 7월 17일 금밤
제목: 보아스의 인격
본문: 룻기 3장 14절- 4장 6절
1.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평을 받고 있나?
우리는 우리가 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를 접하는 사람들이 간접으로 하나님을 접하고, 하나님과 가까워짐으로 그들이 구원의 유익을 얻도록 하는 제사장의 임무를 감당해야 할 자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잘 이행하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구원에 상처와 손해를 끼치는 악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 자신들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4:49-51)
그렇다면 우리가 악한 친구가 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의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려면 어떤 인격을 갖추어야 할지 보아스의 인격을 통해서 그 해답을 찾아 봅시다.
2. 보아스는
2.1. 세심한 배려의 사람(14)
‘룻이 새벽까지 그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피차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의 말에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룻 3:14)
보아스는 그녀가 밤의 위험-가령 수확기에 배회하는 젊은 남자들에 의한 위함-에 빠지도록 내버려두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보아스는 자신이 기업을 무르지 못하게 될 때 룻이 곤란해지지 않도록 룻이 타작마당에 들어온 것을 감춰 줍니다. 세심한 배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용하지 않으시듯 보아스도 일관되게 순수한 인애의 마음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맺고 있는 여러 관계를 향한 내 의도도 보아스와 같이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배려가 있는지를 돌아봅시다.
2.2. 호의의 사람(15-17)
‘보아스가 가로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펴서 잡으라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이워주고 성으로 들어가니라 룻이 시모에게 이르니 그가 가로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룻이 그 사람의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고하고 가로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손으로 네 시모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룻 3:15~17)
이전에 보아스는 룻이 이삭을 주울 때에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서 줌으로 하루에 한 에바(22리터: 이 양은 두 사람이 몇 주 먹을 수 있는 만큼의 많은 양의 양식이었다.)를 주었었다. 이번에도 보아스는 룻을 빈 손으로 돌려 보내지 않고 많은 보리를 이워줘 보냈습니다. 17절에 ‘빈손으로’는 히브리어로 ‘레캄’(텅빈)은 우연히 사용된 말이 아닙니다. 1장 21절에 ‘비어’로 번역된 언어와 같은 말입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룻 1:21)
이것을 룻은 시어미에게 다 보고를 하였다. 이러한 보아스이 행위는 룻의 보호 요청을 이행하여 추수가 끝난 뒤 두 과부가 맞이할 미래가 결코 추운 겨울처럼 텅 빈 빈손의 기간이 되지 않게 할 것임을 확증해 주는 표시입니다. 보아스의 호의를 통해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두 과부의 삶이 채워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실천하는 작은 사랑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다시 얻는 기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3. 신뢰감을 준 사람(18)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룻 3:18)
보아스의 말과 호의를 확인한 나오미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후에 기업 무를 자(구속자) 보아스가 그 약속을 지킬 것이니 믿고 기다리자고 합니다. 이 기다림의 믿음은, 궁극적으로 보아스를 통해서 양식 주신 하나님께서 보아스를 통해 이 과부의 가정에 씨를 주셔서 참 안식을 주실 때까지 신실하게 도우실 것을 신뢰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를 구속하여 참 쉼을 완성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 5:17)
2.4. 일처리를 투명하게 한 사람(4:1-4)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서 거기 앉았더니 마침 보아스의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그가 와서 앉으매 보아스가 성읍 장로 십 인을 청하여 가로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그들이 앉으매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관할하므로 내가 여기 앉은 자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고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그가 가로되 내가 무르리라’(룻 4:1~4)
보아스는 엘리멜렉 가문의 기업을 무르는 것을 투명하게 정해진 공적 절차를 밟아서 진행했습니다. 당사자뿐 아니라 장로 열 사람을 세워서 그가 일처리 하는 것에 대한 이이가 없도록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한 정의를 확립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일수록 내 이해와 관련된 일일수록 더욱 투명해야 합니다.
2.5. 희생의 사람(5-6)
‘보아스가 가로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야 할지니라 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룻 4:5-6)
먼저 기업무를 권리가 있던 사람은 늙은 나오미만 부양하면 엘리멜렉 소유의 땅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수락했지만, 보아스가 룻의 존재를 확인시키자 재산상의 손실을 우려하여 권리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그러한 경제적인 손해를 감수하고도 기업 무르는 일을 자원함으로 감당하였습니다.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고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룻 4:9-10)
기업무를 자기의 순서를 경제적인 논리로 따져 손해가 간다고 포기한 사람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손해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면 결코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 거룩한 공동체가 우리를 통해서는 태어나지 못합니다. 희생 없는 십자가는 없고, 헌신 없는 생명의 공동체는 없습니다.
우리는 보아스처럼 경제적인 손해가 가더라도 다른 사람의 구원 유익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인 그를 사랑하는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3. 보아스처럼 성경대로의 사랑을 실천하는 주인공이 되라.
보아스는 세심한 배려의 사람, 호의의 사람, 신뢰감을 준 사람, 일 처리를 투명하게 한 사람, 희생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상과 같은 인격을 갖춘 면면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인격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평상시 생활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순종하는 삶이 지속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그의 인격으로 말미암아 그는 나중에 예수님 조상이 되는 엄청난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보아스처럼 성경대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인격의 주인공이 됩시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들도 보아스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축복의 통로로 멋지게 아름답게 쓰임 받다 나그네 인생을 마감하는 주인공이 됩시다.
아울러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잘했다 칭찬받는 주인공이 됩시다.
주인공 되세요.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7-18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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