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08 20:25
날자: 2009년 5월 5일 화새
설교: 박상도 목사
제목: 열 처녀 비유
본문: 마태복음 25장 1절 -13절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본문 말씀은 열 처녀 비유의 말씀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다 잘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자기의 생명으로 받아서 자기의 구원을 이루는 사람은 심히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받아서 실행하여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능력이 함께 하는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은 기본 구원에 관한 말씀이 아니고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 때에 천국은 한 것은 천국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건설구원 성화 구원을 말씀합니다. 우리 구원에는 기본 구원이 있고, 건설구원 성화구원 행위 구원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기본구원은 사람의 행위와 상관 없이 전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구원입니다. 영원전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은혜로 주신 구원입니다. 꼭 같이 은혜로 주신 구원입니다. 차이가 없습니다.
건설구원은 기본구원을 받은 자가 기본구원을 알고 믿고 기본구원을 받은 자로 믿음의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 건설구원입니다. 믿는 성도의 건설구원의 최종 완성은 믿음을 연단 받고 주님을 만나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것으로 완성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건설구원은 성도마다 같지 않고 그 사람의 믿음의 행위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환난과 시험을 통해서 믿음의 연단을 받고 죽음으로 완성이 됩니다.
우주 전체적으로는 예수님 재림 하시기전에 환난과 시험을 통해서 믿음을 연단받고 예수님 재림으로 연단 받는 믿음의 완성이 이루어 집니다.
여기의 신랑은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을 말씀 합니다. 처녀는 주님의 교회, 곧, 우리 성도를 말씀합니다. 열은 인간 만수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 전부를 말씀합니다. 등은 우리 믿는 성도의 심신 마음과 몸을말씀합니다. 기름은 하나님의 성령과 진리를 말합니다. 그릇은 성도의 생애를 가르쳐서 말씀합니다.
열 처녀라고 하는 처녀도 꼭 같습니다. 왜 처녀라 비유를 했는고 하니 처녀와 신랑이 결혼하는 것처럼 우리 성도와 주님이 결합하는 희망성, 소망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처녀라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은 주님과 온전한 결합이 되었습니다. 이 육은 하나님과 진리와 결합이 아직 완성이 안되어 있습니다. 이 육이 결합의 희망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처녀라 비유한 것입니다.
특히 쳐녀라고 하는 것은 결혼하면 그 남편의 모든 것이 자기의 것이 되고, 자기의 모든 것이 남편의 것이 되어서 동일한 책임을 지고 생애를 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우리 성도가 주님과 결합이 됨으로 자기의 부족한 것을 주님이 책임을 지고 주님의 모든 것이 자기의 것이 되어 지는 것을 가리켜서 처녀라 합니다.
열 처녀라 한 것은 열은 인간 만수로 택함 받고 중생되어서 믿는 성도 전부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잘난 자나 못난 자나 유식한 자나 무식한 자나 똑 같이 택함 받고, 예수님의 사활대속의 공로를 입었고, 진리와 성령으로 거듭났고 천국 백성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결합을 이루어서 영원히 동거동락하는 소망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믿는 성도는 주님과 결합하면 주님의 모든 것은 다 내 것이 됩니다. 주님의 나의 모든 것을 책임 집니다. 주님의 모든 것이 so 것이 됩니다. 주님의 부요, 존귀, 권세, 영광도 내 것이 됩니다. 나의 모든 것은 주님이 다 책임을 집니다. 이런 희망성 소망을 가진 것이 우리 믿는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주님과 온전히 하나되는 여기에 성공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심신을 등이라고 한 것은 마음과 몸으로 주님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등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깨끗하고 거룩하고 참되심을 세상에 나타낼 때 신덕이라 세상에 빛이라 말씀합니다. 여기에 등으로 비유한 것은 믿는 사람의 심신 마음과 몸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기독자들은 꼭 같은 마음과 몸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빛을 나타내지 못하는 심신이 있고, 어떤 사람은 잘 나타내는 차이가 있는 것을 가리켜서 등이라고 했습니다.
등은 등 자체에는 빛이 없습니다. 기름을 넣어 불을 밝힐 때 빛이 비췹니다. 성도의 몸과 마음은 빛이 없습니다. 주님이 참 빛인데 우리 심신이 받으면 심신이 비취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신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을 받아서 세상에 잘 나타내라고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 열 처녀가 다 등을 가졌습니다. 밤중에 빛을 나타낼 수 있는 등을 꼭 같이 가졌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는 꼭 같이 마음과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와 영감을 받으면 심신이 나타낼 수 있고 진리와 영감의 빛을 갖지 못하면 나타낼 수 없는 것입니다. 기름이 없으면 등불을 밝힐 수 없는 것과 꼭 같은 것입니다. 등을 밝히려면 기름이 채워져야 합니다.
우리 심신이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의 빛을 비추려면 게속해서 진리와 영감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영감과 진리의 말씀, 신구약 성경의 말씀을 우리가 읽고 듣고 배워서 행하여 영감과 진리의 빛을 심신에 충만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심신은 이런 심신입니다.
슬기 있는 처녀는 그릇에 기름을 예비했고 미련한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릇은 성도의 생애를 말합니다. 믿는 성도는 다 각자 자기의 생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생애를 주셨는데 자기의 현실을 통해서 지나갑니다. 믿는 성도가 자기의 일생의 생애라는 걸음에서 믿음으로 진리와 영감을 담을 수 있고, 진리와 영감을 담지 못하고 세상 것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에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심는 것은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행동은 두 가지 뿐입니다. 하나는 자기 육체를 위해서 행동하든지, 성령을 위해서 행동하든지 두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육체를 위해서 행동한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둡니다. 썩어진 것을 담는다 말입니다.
성령으로 행동한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이루게 됩니다. 영생을 자기 생애라는 그릇에 담습니다. 그러므로 기독자의 현실은 중요한 현실입니다. 진리와 영감의 충만함을 담는 우리의 생애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름은 진리와 성령을 가리킵니다. 그 사람의 행위에서 진리를 하나씩 둘씩 사서 모았고, 성령을 하나씩 둘씩 영접하여 영감과 진리라 담겨 있는 것을 가리켜서 기름이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생애는 진리의 생애가 되어야 하고, 성령의 충만한 생애가 되어야 합니다.
기름은 등불을 밝히는데 필요한 기름입니다. 등불은 밤에 밝힙니다. 이 세상은 죄악으로, 마귀로, 악한 영으로 어두운 세상이라. 이 어두운 세상에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진리와 영감이 우리에게는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하여 진리와 영감의 빛을 주셨습니다. 이 빛이 우리 마음과 몸 심신을 나타내도록 이미 주님이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름은 영감과 진리인데 영감과 진리의 말씀을 바로 행하는 것이 기름입니다.
그러면 자기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의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행했으면 그것이 빛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피로 말미암아 빛을 받았으니 받은 자신임을 믿고 영감과 진리의 말씀을 바로 행하면 기름을 가졌고, 그 사람은 어둠을 밝히는 빛을 나타내는 신앙의 행위가 되는 것입니.
밤중이라 하는 것은, 낮은 하나님의 진리와 배치 되지 않는 것을 낮이라 했고, 차차 하나님의 진리를 거슬리는 시대가 오고 환경이 오고 자기의 처지가 되는 것을 밤이라, 어두움이라 말한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최고적으로 바로 알기도 어렵고 믿기도 어려운 절정기를 가리켜서 밤중이라 말합니다. 자기의 생애의 어떤 부분이든지 결말을 이루는 시기, 성공을 이루는 시기, 하나님께 인정을 받든지 못 받든지 최종 인정하심을 받을 때, 그 결정이 되는 시기, 이것이 성령의 인을 받는 것이요 하나님에게 인을 받는 것이요, 다시는 해를 받지 않는 절정기를 가리켜서 밤중이라 합니다.
노아 때는 홍수로 심판할 것을 말씀하시고 120년 후에 물속에 전멸을 받는 그 때가 밤중이었습니다. 다니엘은 기도를 계속하며 차차 어두워져서 사자굴에 던져 넣는 그 때가 최고, 최종적으로 밤중이었습니다. 예수님 재림 때에는 하나님이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재림 때입니다. 재림하셔서 심판하는 그 때가 밤중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낮이 있는 반면에 밤도 있습니다. 밤이 길어지면 밤중이 있습니다. 평안한 현실도 있는 반면에 어려운 고난의 현실도 있습니다. 건강 할 때도 있으나 병들 때도 있습니다. 밤이 점점 짙어지면 밤중이 됩니다. 개인적으로도 오고 시대적으로도 오고 우주 전체적으로 반드시 밤중은 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등불이라 하는 빛은 바로 알고 행하는 영감과 진리, 하나님이 평가하시는대로 바로 알지 못하게 하는 세력들이 강해지는 것을 밤이라 했는데, 이렇게 되어져도 자기는 하나님의 뜻을 똑 바로 깨달아 알고 믿고 믿는 그대로 행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등불이라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과 몸이 등인데 마음과 몸이 하나님의 뜻 진리와 영감을 바로 알고 행하는 것이 시험이 닥쳐와도 그 현실에서 지켜 행하여야 하는 이 등불을 우리 성도는 가지고 비춰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성도입니다. 마 5:13-14에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너희 착한 행실을 사람에게 비취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 빛을 진리와 영감을 평안할 때만 비춰야 합니까? 어려움이 와도 계속 비춰야 합니다.
혼인잔치라 한 것은 우리 성도가 평소에 진리의 말씀대로 생활한 것이 어두워져도 변동되지 않고 계속하고, 밤 중 같은 최고 최종의 어려운 시기를 당해도 자기의 등불을 영감과 진리와 하나되어 순종의 완성을 이룸으로 주님과 자기와 하나 되는 그 면에 대해서는 죄를 완전히 이겼고, 사망을 이겼고, 마귀를 완전히 이긴 것을 혼인잔치라 했습니다. 성도는 이 빛을 가졌습니다. 성도가 얼마나 존귀합니까?
이 혼인 잔치를 우리 성도는 소망해야 합니다. 최종의 완성이 이루어 지는 것은 밤중에서 이루어 집니다. 성도가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 밤중이 나를 죽이는가 해서 등불이 꺼집니다. 그러나 깨달은 자들은 이 밤중을 위해서 기름을 준비합니다.
이 소망이 없는 자는 기름 준비 안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아브라함아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번제로 드리라 할 때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림으로 완전 순종으로 드릴 때에 네가 네 아들 이삭보다 나를 사랑하는 줄을 이제야 알았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밤중을 통해서 혼인 잔치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나의 벗이라 불렀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벗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최고의 성공인 것입니다.
신랑을 영접했다. 못했다 했는데 이것은 이제까지 진리와 영감을 지켜 나왔지만 어려워지니 등불이 꺼져 버립니다. 영감과 진리를 배반하고 환경을 따라서 주위에 따라서 세상화 되어지는, 주님과 자기와 결합이 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시기에 진리와 영감을 배반하는 것을 가리켜서 신랑되신 주님을 영접하지 못했다고 한 것입니다.
주님과 온전한 결합되는 것을 소망하고 이것을 위해서 전심 전력을 해야 합니다. 주님과 결합을 온전히 이루는 성공은 밤 중에서 이루어 집니다. 밤중에 등불을 밝힘으로 이루어 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에 진리와 영감 생활의 삶을 살아서 진리와 영감의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밤중 같은 어려움 시험이 닥쳤을 때 진리와 영감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기름 없는 자들이 나와서 나눠 달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와 너희 쓰기에 부족할까 하노니 파는 자들에게 가서 사라 하니, 진리와 영감은 다른 사람에게 나눠 줄 수 없습니다. 평소에는 마련할 수 있지만 밤 중에는 마련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마련한 기름은 자기 등불을 밝히는데만 족한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덕을 보려고 하는 것을 어리석은 것입니다. 자식 덕을 보려는 것도 어리석은 것입니다. 다른 것은 양보해도 진리와 영감의 신앙은 양보하면 안됩니다. 왜 거기에 주님을 영접하고 못하고 자기의 영원한 성공과 실패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손해 봐도 자기 믿음은 손해 보면 절대 안됩니다.
평소에 우리가 예비하는 우리가 됩시다.
진리를 제 진리로 삼고 주님을 제 주님으로 모시는 것은 한 현실, 한 현실의 체험의 행위에서 경험의 행위에서 자기 생활에서 어두움의 죄악의 세력이 자기의 진리 생활을 빼앗으려 할 때에 그것을 능가할만한 진리와 영감이 평소에 마련이 되어야 이기게 됩니다. 세상을 이길만한 지혜, 지식, 사상, 소망, 사랑, 진실이 거룩이 마련되어서 소유와 몸과 생명이 어떻게 되어도 진리와 영감을 배반할 수 없는 강한 힘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평소에 자기 현실에서 세상에 죄악을 사망을 마귀의 역사를 이길만한 힘이 마련되지 못하면 그 사람은 평소에는 잘하지만 환난이 닥쳤을 때는 등불이 똑딱 꺼져 버립니다. 그래서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실패하고 성도들의 건설구원이 다 실패가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려움을 닥치면 이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기름을 오늘에 준비를 해 놓아야 그 때에 되풀이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지,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 등불이 꺼집니다. 그 때 가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밤 중에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준비한 자들은 다 밤중에 주님을 영접하고 혼인에 들어간다. 준비하지 못한 자는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다. 밤 중에 이기는 것은 육체의 힘으로 못 이깁니다.
예를 들면 이곳에 어둠이 있다면 돈, 권세, 총, 칼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습니까? 어둠이 물러 가는 것은 조그만한 빛만 있으면 어둠은 물러 갑니다. 내 천국 구원을 절다내는 것은 빛 만이 이깁니다. 진리와 영감만이 이길 수 있습니다. 예비할 수 있는 기간을 주십니다. 노아 때는 120년의 유예기간을 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예비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지금은 예비하는 기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다섯 처녀는 준비할 필요성도 느꼈고, 알았지만 그때 가서 어떻게 되겠지 해서 준비하지 않아서 실패했고, 지혜로운 다섯 처려는 준비한 기름으로 등불을 밝혀서 신랑을 영접했습니다. 이들은 깨달음을 확실히 가졌다는 것입니다.
어젯밤에도 노아 때 홍수 심판을 못 면한 자들은 깨닫지 못해서 멸망 받았다. 노아는 깨달아서 구원을 받았다. 그릇은 자기의 생애입니다. 깨달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깨달으면 되는데 깨달음이 없으면 안됩니다. 지금 깨달아야 합니다. 그때 깨달아 봐야 소용없습니다. 그래야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모든 구원은 미리 예고적이요 예비적입니다. 그때 가서 당장 되는 일은 없습니다. 실은 세상일도 그렇습니다.
천국 준비는 오늘 세상에 있을 때 해야 합니다. 영원한 천국 준비 밤중에 주님을 만나는 준비, 결합하는 준비는 평소에 진리와 영감을 알고 행하는 믿음의 준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사 49:8)
은혜의 때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은혜의 때에 은혜받는 자는 받은 그 은혜로 구원의 날에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은 하나로 됩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은혜의 때와 구원의 때가 따로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은 하나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슬기 있는 자가되어 밤이 오기 전에 미리 기름 준비 해서, 영감과 진리의 체험을 가져 진리와 영감이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에 믿는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인가? 기름 준비, 기름 준비, 이것이 우리 기독자의 가치요 권위요 실력이요 능력입니다. 진리와 영감의 행위가 늘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자기 현실에서 기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름 준비가 쌓이고 쌓여서 이기는 것, 다른데서는 못합니다. 자기 현실에서 자기 할 일이 무엇인가? 영감과 진리를 바로 찾는 것이 기름 준비를 하는 준비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그 현실에서 행할 때에 자기 진리와 영감이 됩니다. 이렇게 현실에서만 영감과 진리는 자기의 것이 되고 영감과 진리를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시다. 그러므로 자기 현실에서는 반드시 내가 행해야 할 진리와 영감의 뜻이 있습니다. 그대로 통과 했을 때 자기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한 자국 한 자국 올라 가는 초월의 도지, 초절의 도가 아닙니다. 신앙양심만 쓰면 다 찾을 수 있습니다. 어려워도 순종해 나가면순종이 되어집니다. 목사와 성도가 다 사라져도 성도는 등불을 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그네 세상은 주님과 결합하고, 내 지식면이 주님과 결합하고 행동면이 // 사랑면이 // 순종면이 주님과 결합을 이루는 이 결합이 평소 자기 현실에서 진리와 영감을 행하는 여기에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성공과 실패는 현실에서 결정이 됩니다.
대체적으로 지금은 낮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밤이 옵니다.
우리는 처녀요 등도 가졌습니다. 밤 중도 옵니다. 신랑되신 주님도 옵니다. 오늘은 기름만 준비하면 됩니다. 기름 준비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와 책임입니다. 기름 준비해서 성도의 최고의 완성을 이루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깨어서 슬기 있는 처녀처럼 기름 준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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