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두범 목사] 자기를 부인할 수 있는 길

2009.05.08 20:17

윤봉원 조회 수:845 추천:58

날자: 2009년 5월 6일 수새
강사: 신두범 목사
제목: 자기를 부인할 수 있는 길
본문: 누가복음 9장 23절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 9:23)

지난 네 시간 예수님의 재림 준비 또 슬기로운 처녀, 기름 준비하자. 영감과 진리의 달란트 장사를 잘 해서 칭찬 받는 이익을 남기는 영원한 유업을 상속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 다 되자고 말씀 전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과 이어서 세 가지 면으로 실상을 이루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세 가지를 실상 삶에서 어떻게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말씀 전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이 땅위에 사는 목적은 구원 완성입니다. 호위호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어지는 재림 준비이고 기름 준비 잘하여 주님 맞이하는 이 삶이 우리 세상에 사는 목적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달란트를 장사하는 이익을 많이 남기는 것이 우리 짧은 한 토막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고 목적입니다.
이 일을 잘 이루려고 하면 이렇게 해라. 이렇게 하면 이 목적이 다 이루어진다는 모델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활과 사생활을 통해서 잘 보여 주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세상의 삶의 목적을 달성하기를 원하거든, 예수님이 다시 오시마고 약속하신 재림 준비를 잘하려거든, 신랑이 왔을 때 기쁨으로 영접하려 하거든, 달란트 장사 잘하려고 하거든, 자기를 부인하라. 이것이 조건입니다. 실제적으로 실천 사항에 대해서 세 가지 면으로 구원 완성을 믿음 생활을 잘하려면 한 단계 한 단계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첫벉째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기름 준비 하지 못합니다. 달란트 장사를 못합니다. 영생의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부인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위에 두신 삶의 목적을 조금도 이루어나갈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의 가장 기본적인 첫발자욱이 자기 부인입니다. 이 말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건을 만나면 자기 부인이 안됩니다. 자기 부인이 안되니 십자가를 지는 그 자리까지는 꿈도 꾸지 못하는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는 말한 마디만 들어도 환경의 현실만 바꾸어져도, 내가 기대하지 않는 일을 만나면 좌절하고 낙심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교회 안에도 강한 바람이 많이 지나갑니다. 입 바람이 제일 강합니다. 그 말한마디 때문에 상처 입고, 좌절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가 원수로 미움의 대상으로 바꾸어지는 것이 원인을 찾아 보면 소망은 바람은 주님 따라 가고 십자가 지는 것인데 왜 이루어지지 않는가 자기 부인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창세기에서 게시록까지 찾아 보면 두 가지입니다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데 자기를 부인함으로 성공한 인물들이 있고 반대로 자기를 부인하지 못해서 실패한 사람들을 모델로 많이 적어 주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자기를 부인하지 못함으로 실패한 사람들이 아담과 하와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기를 부인하지 못함으로 실패하는 조상이 되어진 것입니다. 가인은 자기 부인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인류 최초로 사랑하는 동생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노아 시대에도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니 자기의 기뻐하는 대로 자기 좋아하는대로 아내를 삼고 먹고 마시고 장가가는 자기 부인이 되지 않아서 멸망 받고 말았습니다.
롯은 자기 부인이 되지 않으니 믿음의 조상과 같이 출발은 했으나 실패한 조상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자기 부인이 되지 않으니 왕이 된 것이 불행해 지는 안타까운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압살롬, 발람, 아나니아와 삽비라,

반대로 보면 자기 부인이 됨으로 주어진 현실에서 십자가를 지고 성공을 이룬 성공의 모델이 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생명보다 귀한 이삭을 드리는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도 자기 부인이 안되어 환도뼈까지 뿌러졌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해서 믿음의 표본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 부럽습니다. 그 세 친구의 믿음의 부럽습니다. 왕이여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불 속에서 구원하지 아니할지라도 왕이 만들어 놓은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할 줄 아옵소서. 이것이 내 육체의 생명을 부인하는데서 나는 없어지고 오직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만이 자기 안에 있을 때 이런 역사가 이루어지 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떠나 갈릴리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갔을 때 깊은 곳에 거물을 내려라. 베드로의 반응은 자기 부인이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눅 5:8)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는 엄청난 은혜의 자리에 세워 주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자기 옛사람 자기가 죽는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 부인의 과정을 통과하고 나니까 그에게는 인도하시는 전능의 능력이 있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기적과 표적의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 성도와의 관계를 잘 나타내주는 열하 2장에 엘리야와 엘리사의 관계가 있습니다. 계대자를 세우는 과정을 보면 너는 여기 머물러 있으라 여기가 좋지 않으냐? 나 따라 오면 고생 길이다 여기 있으라 하니 엘리사의 여호와의 사심과 ....내가 당신을 따라 가겠나이다. 자기의 아내를 생각하고, 명예를 생각하고, 자기 부인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요단강을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엘리야에게 주셨던 영감의 갑절을 절대로 못 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나에게 적용할 때 하나님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 할 수 없는 것이 목회인데 주님 이 자신이 부인되지 못함으로 주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이 지체되고 있나이까? 나를 부인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탄식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실질적인 삶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부인이 잘 안됩니다. 이는 바꿀 수 없는 진리인데 나 따라 오려면 아무든지 여기에 포함 안된 사람은 없습니다. 잘난 사람이나 돈이 있든지 없든지 이 세상 삶에 목적이 되는 영생의 구원 완성이 되려고 하거든, 내가 재림할 때에 나를 기쁨으로 만나려고 하거든 진리와 영감대로 순종하여 온전함을 이루어나가려고 하거든 제일 첫 발자욱을 떼는 것이 너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것이 안되면 네 혼자 착각이지 하나님이 목적하시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말 한 마디 들어 보십시오. 밤에 잠을 못 잡니다. 그것이 내 심장을 후비고 할키고, 칼에 다친 상처는 한달 가면 아물어지는데 마음의 상처는 안 없어 집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 인생의 삶의 목적을 가로 막을 수 있습니까? 상대방이야 어떻게 했든지 내가 내 자신에 대해서 하나님의 그 온전하신 형상, 무한의 사랑의 사람이 되어지고 무한의 긍휼과 온유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데, 이것 이루라고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붙여 주시는데 이것을 부인하지 못하고 자기가 깨어지지 않으니 마귀만 춤을 추고 달란트 장사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봅니다.

왜 안될까 자기 부인이 되지 않는 것은 원인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소원이 뭡니까? 하나님 바로 알기가 소원이지 않습니까? 예수님 제자들이 선생님 우리가 어떻게 기도할까요?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해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바로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그렇습니다. 왜 자기 부인이 되지 않느냐?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그렇다.
두 번째가 자기라고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몰라서 그렇다. 자기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데 자기 위신 세워봐야 뭐 큰 것입니까? 아무것도 아닌데 자기의 실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관련되어 있는 물질에 대한 견해, 바로 알지 못하는데 있다.
우리에게 주신 가장 핵심적인 복음이 실상적으로 우리에게 깨달아지고 적용이 되어서 이 복음을 통해서 많은 장사하는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 해서 준비를 했습니다.
사람의 구조와 하나님의 영원전부터 시작된 목적, 예정,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세 가지 원인이 있는데 이 세 가지를 잘 모름으로 우리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이 모든 것을 보는 사건과 현실에 착시 현상이 생겼다.
왜 자신이 부인이 안되느냐 착시 현상이다. 하나님을 정확하게 못 봐요, 내 자신도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이 세상에 존재 목적도 몰라요 이러니까 사는 것이 뭐처럼 보여 집니까? 사는 것이 죽는 것으로 보이고 성공은 실패로, 하와가 하나님이 너 먹으면 죽는다. 죽는데 100% 죽는다 말인데 착시 현상이  생기고 나서 선악과 보니 보암직, 먹음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던 것입니다. 내가 왜 십일조를 도덕질 하느냐? 왜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데 나에게 화목의 직책을 주셨는데 내가 왜 이간을 시키고 불목을 시키고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는데 그것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그 중심에는 자기라고 하는 것이 뿌리 박고 있는데서 나오는 착시 현상입니다. 이간 시키면 하나님은 망하고 깨어진다 해도 그것이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너무 무서운 것입니다. 이런 모든 착시 현상들이 욕심에서 생긴 것입니다. 자기 부인되지 않는 자기 안의 욕심입니다. 하와에게 왜 착시 현상이 생겨졌을까? 뱀이 찾아와서 먹으라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된다. 그때에 자기가 없었으면 사탄아 물러가라. 네가 정신이 있나 없나? 했을 것인데 그렇지 않으니....
에베소서 4장 22절에 ‘너희는 유혹의 ...옛사람을 벗어버리라’ 이것 가지고는 안된다. 주님 재림 준비도 안되고 달란트 장사도 안되고,
자기 부인이 안되면 왜 주님을 못 따라 가느냐 자기 중심 안에는 욕심이라는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하와가 선악과 따 먹은 것은 욕심이 들어 있습니다. 주일을 범하는 것도 자기 안의 욕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십일조를 떼먹습니까? 욕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마귀가 천국에서 쫓겨났는데 이 악령이 천국에서 쫓겨날 때도 세 가지 때문에, 소유욕, 가지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욕심의 종류는 세 가지 뿐입니다. 소유욕, 내가 가지려고 하는 소유욕, 사람은 본능적으로 악령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가지려고 합니다. 소유욕이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성도가 가져야 하는데 마귀가 방향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대상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자기의 전부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소욕을 주셨는데 우리로 하여금 물질을 소유하고 두고 갈 것
영광 욕심, 권세 욕심입니다. 이 세 가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를 부인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알면, 자기를 알면, 세상이 무엇인 것을 알면, 여기에 해답이 있는 것입니다. 산 속에 가서 도 닦는다고 문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모르기 때문에 현실관을 바로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부인이 되려면 하나님의 목적을 잃어 버리면 안됩니다. 시작하신 목적이 무엇이며 예정과 창조와 섭리 역사 하시는 그 섭리 면에 가서 깨달을 때에 바로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게 됩니다. 왜 우리가 말 그것만 생각합니까? 은혜는 하루만 지나면 다 없어지고, 원치 않는 것은 돌에 새겨 지워지지 않고, 왜 그런가? 하나님의 목적과 대속과 오늘이라고 하는 현실관을 바로 가지지 못하니 자기 부인이 안됩니다. 그러니 욕심이 내 삶을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가 보면 탄식이 되는데 가 보면 실망이 되는데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다.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가르쳐 주셨는데,
하나님 자기 세상 사건과 물질, 여기에 대해서 많이 들었습니다.

사람, 사람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알면 내 자신이라고 하는 사람의 정체성만 밝히 깨달아도 자기 부인, 모든 욕심, 칼이나 원자폭탄으로부터 끊어질 줄 믿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아는데에서 지금까지 나를 사로 잡은 모든 욕심으로부터 자유하시는 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하나님이 열어 주신 생명의 길입니다. 천국의 길입니다.
나라고 하는 사람은 죄인이다. 죄인을 인정을 안합니다. 죄인임이 인정이 되면 자기가 어떤 사람인 것을 알기 때문에 당연히 가만히 있어, 눈 감고 가만히 있어, 너 죄인이니까 왜 나서? 죄가 뭐가 죄입니까? 삐뚫어진 것이 죄잖아요, 네가 뭘 안다고? 우리 자신을 너무 모릅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깊은데 가서 거물을 내려라. 고기 잡았을 때 주님 앞에 와서 의욕도 소망도 상실하고 그냥 머리 숙이고 모기만한 소리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용서 해 주옵소서. 내가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롬 3:23에서 죄인 아닌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주여 자는 죄인입니다. 인정을 안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현실에서는 죄인됨을 부정합니다. 자기 부인이 안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나라는 사람은 불의한 사람입니다.
베드로...의인으로 불의한 자를 대신하....인도하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이 말씀을 근본적으로 뿌리를 찾아 들어가면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 없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린 후회하는, 주여 나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안다고 해도 실행 할 수 있는 힘이 없는 사람입니다. 주님 날 아시잖아요.
화장, 무장, 변장을 하고???
비뚫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없고 창조주 자존자 나를 존재케 하신 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무시하고 배신하고 이렇게 산 이 사람이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사람은 영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영원 원죄로 말미암아 정죄 받아 하나님과 단절되어서 영원히 살아날 수 없는 우리 영이잖습니까?
전도하면 하나님을 보여 주면 잘 믿겠다고, 당신 마음을 보여 주세요. 마음이 보입니까? 사람들은 종이한장만 가려도 못 보는 물질적인 눈이 전부인 줄 압니다. 마음도 볼 수 없는데 사람의 주격이 되는 영도 있는지 없는지 못 보는데 하나님을 육신의 눈으로 보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중생해서 영이 있는 줄 압니다. 영안에 내주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우리는 매일매일 만나고 있습니다. 이 영이 이런 구속의 은혜를 입기 전에는 죄, 불의, 말미암아서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되고 생명 작용을 전혀 할 수 없는 자였습니다. 사람의 주격이 되는 제일 원만한 영이 이래라 저래라 해도 그것도 믿을 수 없는데,
마음, 몸, 이것만 활동하는데 그것이 다 인줄 알고, 이것 때문에 자기 부인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하나님을 알고 나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는 불의 한 사람입니다. 죄인입니다. 내 영은 완전히 죽었던 자입니다. 여게서부터 자기 부인이 시작됩니다. 여기서부터 온갖 욕심의 쇄사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재림 준비하는 사람인줄 믿습니다. 이 사람이야 말로 달란트 장사해서 네가 작은 것으로 충성했느냐? 많은 것으로 네게 맡겨 주마...
마음을 보면 막 2:7 이하에 보면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악, 악! 이것이 원수입니다. 인정합시다. 깨달읍시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 밖에 안 나옵니다. 이것을 보지 못하니 자기 마음에서 악이 나옵니다. 자녀들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영에 대해서 육체에 대해서, 요즘 아들은 본능적으로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영이 어떻고 육체가 어떻고 마음이 어떻고를 가르쳐 주면 효도하고 공부할 줄 믿습니다.
대속이 있기 이전에 사람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악한 것이라. 악입니다. 악한 생각, 곧 음란, 도덕질, 살인,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된 것이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며,
기계는 거짓말을 안해, 식물은 거짓말을 안 해, 사람은?? 내가 거짓말 해요, 돈 욕심 때문에 거짓말 해, 500원 돈 벌려고 거짓말 합니다. 만물을 거짓말 안합니다. 마음에서, 예수님이 밖에서 들어가는 것은 너를 더럽히지 않는데 속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힌다.
모세에게 레위기 11장에 이런 것은 먹지 말라. 쪽발로 되지 않은 것은 먹지 말라. 세김질 하지 않은 것은 먹지 말라. 성령과 진리로 구별하라. 우리 마음이 어떤 마음인 것을 알 때 비로소 자기 부인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떠나 갔을 때 욕심도 함께 떠나 가는 줄로 믿습니다.
갈 5: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벧전 1:24 그러므로 이런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아멘은 하는데 말은 하는데 설교는 하는데 욕심이라고 하는 이 욕심이 자기 부인이 이루어지지지 않아서 ‘알면서도 왜 그랬을까?’ 주여 알면서도 왜 그랬을까? 그래서 피와 성령과 진리의 보증을 주신 줄 믿습니다.
벧전 2:11 주님이 탄식하는 것이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제어하라.’ 싸웁시다. 이것이 우리의 선한 싸움입니다. 바울이 내가 전파한 후에 내가 버림을 받을까 두려우노라. 이 싸움이 바로 선한 싸움 육체의 정욕과 마음의 악과 자기와의 싸움이 우리의 싸움인줄로 믿습니다.
대속의 은혜를 입기 전에는 나는 죄인이었다. 불의의 뭉텅이었다. 하나님을 배반했던 배반의 뭉텅이었다. 나오는 것은 죄 밖에 안 나오고, 불의밖에 안나오고 이러니까 이것 때문에 단번에 영은 죽어버렸고, 이제는 남아 있다고 하는 마음도 육체도 죽어가면서 하는 것은 죄 짓는 일을 합니다. 악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사건건이 무엇 하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은 상상도 못합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옛날에 우리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아직도 여기에 매여서 살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기 부인이 이루어지 않는데서 영생의 삶의 목적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공부좀 했다고, 얼굴 예쁘다고 교만할 것 없는 것입니다. 가치 없는 것입니다. 돈 좀 있다고 돈 의지하고 없다고 기가 죽어서 굽신굽신하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 아닙니다.
교만하지 말고 자랑 할 것 없고 큰 소리 할 것도 없고 얼마나 얼마나 어리석은 삶을 많이 살아 왔는지? 창조의 의미도 모르고, 예정도 모르고, 풀도 나게 하고 지게 하시는지 섭리의 역사를 알지 못하고, 십자가의 대속을 알지 못하고, 말로만 사랑  사랑 은혜 은혜 하였지 이것을 이루지 못하고 자기 부인이 되지 않으니까? 자기를 지배하고 있는 욕심이 끌고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런 탄식의 소리가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할 때 주님이 은혜 주시는 줄 믿습니다.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5-1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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