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두범 목사] 감사의 근원

2009.05.08 20:16

윤봉원 조회 수:770 추천:45

날자: 2009년 5월 6일 수전
강사: 신두범 목사
제목: 감사의 근원
본문: 누가복음 9장 23절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문제가 세 가지입니다. 하나 답은
죄와 불의와 불목, 이 세 가지의 문제를 요래 맞추고 조래 맞춰 보니까? 답이 어떤 답이 나왔습니까? 자기 부인이라고 하는 답이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자기 부인이 안되면, 올해는 전도회장이 되었으니까 열심히 합니다. 하는데 무엇을 메고 하는데 고무줄을 매고 하니 앞으로 가지만 당기는 힘이 강하면 뒤로 갑니다. 자기 부인이 안되면 이 욕심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으면 예수 열심히 믿는 것 같습니다. 기도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전도도 하는 것 같습니다. 주여 이만하면 주님이 기뻐하시지요, 사건을 부딪히고 당기는 힘이 강하면 사건을 당하면 원망 시비 불평 제자리로 돌아 와 버리고 맙니다. 주님 따라 가기를 원하십니까? 영생의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신랑 맞이 하기를 원하십니까? 달란트를 잘 남기려 하면 네 자신을 부인하라.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그 안에는 자기 안에는 욕심이 있어서 그것이 자리 잡으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은 물질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이 보여서 착시 현상이 일어나 성공은 실패로, 고통은 평안으로 보여서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때를 다 놓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 때문에 시대가 악해 지고 빛이 없어지니까? 결손 가정에 자녀들이 자살하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것 때문에 일어납니다.
자기를 부인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몰라,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몰라,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모른다. 세상의 만물들과 사건에 대해서 도무지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니까 자기 부인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하고 주님 따라 가려면 하나님을 알면 됩니다. 자기를 바로 알면 됩니다. 만물을 바로 알려면 하나님의 존재와 목적, 예정, 창조, 섭리 면을 찾아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죄와 불의와 배반하는 사망으로 이루어진 자기는 어떤 사람으로 되어 있느냐? 영은 자기 영은 죽어 있습니다. 죄, 불의, 사망 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 관계를 생각하니까 자기 마음은 끈 떨어진 연과 같아요. 사람이 죄 안에서 불의 안에서 하나님과 단절된 주격이 중생된 영도 활동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은 끈떨어진 영입니다. 지 마음대로 떠돌아 다닙니다. 마지막에 지옥의 심판에 걸려서 지옥가는 것이 인생의 마음입니다.
몸이라는 것은 저주 파멸 시키는 마귀, 사망의 종이 되어서, 끈 떨어진 마음에 피동이 되어서 악습으로 충만한 몸이 되어 있습니다. 뭐든지 가져야 되고, 있어야 되고, 흉측한 욕심에 따라 움직이는 이것 가지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자기 자신 나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죄 부분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람하고, 사망 부분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람하고 다 하니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코에 호흡 있는 자는 수에 칠 가치가 없다. 자기를 부인하는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는 역사가 자기 안에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일어나야 예수님을 따라가게 됩니다. 이 때부터 하늘나라 가는 발걸음을 가게 됩니다.

사죄라는 것을 두고, 칭의라는 것을 하나 두고, 화친이라고 하는 화목, 이것 없으면 안됩니다. 새생명 네 가지를 가지고 맞추어 봅시다. 죄와 불의와 불목을 가지고 맞춰 보니까 자기 부인이 나왔습니다. 사죄, 칭의, 화친, 새생명의 은혜를 딱 맞추어 놓으면 어떤 정답이 나올까?
본문에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믿음 생활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십자가 어렵습니다. 힘듭니다. 고통입니다. 고난입니다. 이것ㄷ은 정말 진절머리 나는 것입니다. 정말 그런 것인지? 왜 어렵고 힘들고 진절머리 나는 고통으로 보여 지는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미련하게 보이고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왜 이 시각이 달라질까? 사죄, 칭의, 화친이라고 하는 것을 맞춰 보면 능력으로 나타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의 삶은 순종의 삶입니다. 순종에는 주와 및  복음을 위하는 순종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종류는 자기를 위한 순종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  순종을 놓고 진행 과정을 생각해 보면 주와 복음을 위한 순종에는 심사를 해 봐야 합니다. 내가 과연 주와 복음을 위한 순종이었는지 나를 위한 순종이었는지 심사해 봐야 합니다. 뭘로 심사할 수 있느냐? 주와 및 복음을 위한 길에는 피곤함이 없습니다. 감사, 즐거움, 기쁨,  소망이 있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담대함이 있습니다. 자기를 위한 순종은 어디 한계까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갈때까지 가 보면 자기를 위한 순종의 삶은 피곤합니다. 가다가 지칩니다. 힘듭니다. 원망 생깁니다. 불평, 미움까지도 나타나는 것이 자기를 위한 순종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에게 순종했습니까? 종의 형체를 입어 복종하시되 죽기까지 복종합니다. 예수님이 복종하시는 복종의 완성이 십자가에 죽으심이고 인성을 입고 부활하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인데 이 순종을 억지로 한 것 같아요, 즐거움으로 한 것 같아요, 내가 이 유월절 만찬을 먹기를 원하였노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온 것은 섬기려고 왔다. 내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이 땅에 왔다. 우리는 주님 따라 가는 사람들이지요. 우리도 당연히 외부적으로는 미련하고 고통스럽게 보여지는 이 십자가를 꼭 같이 주님이 누리셨던 그 기쁨, 주님이 가지셨던 감사. 주님이 추구하셨던 즐거움, 소망이 꼭 같은 동질과 동성이 되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이만하면 우리가 돌아보면 회개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전도회장을 하면서 주님과 꼭 같은 즐거움으로 해 왔는지, 춤을 추면서 해 왔는지, 주님이 기뻐하셨던 것처럼 기쁨이 충만함으로 해 왔는지, 내 순종의 종류가 어느 쪽에 속해 있었던가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누리셨던 참된 십자가의 즐거움, 감사, 소망을 어떻게 우리가 지고 갈 수 있을까? 복권 당첨 되면 십자가의 길을 기쁨으로 갈 수 있을랍니까? 암병 나으면 십자가의 길을 즐거움으로 갈 수 있겠습니까? 자녀가 건강해 지고 아름답게 믿음 생활 잘 살면 십자가를 감사함으로 질 수 있겠습니까? 정답 없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유동적이고 변동적이고 있다가 없어지고 많다가 적어지고 큰 것이 작아지고 이런 것 가지고는 절대로 안됩니다. 감사와 기쁨 확 바꿔야 합니다. 왜 정말 측량 할 수 없는 무한한 것, 진짜베기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릴 것 이것만 생각했다가 넘어지고 자빠지고 뿌리가 없어요. 자기를 부인하는 뿌리가 견고해야 하는데, 사죄, 칭의, 화친의 뿌리가 견고하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다 주셨습니다. 이런 감사, 기쁨, 즐거움은 사죄, 돌아 가야 합니다. 백업, 돌아가야 합니다. 내 일상 생활에 찌들리고 지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찾아가야 할 것은 사죄에 찾아가야 합니다. 사죄에 찾아 가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사죄로 돌아가야 합니다. 힘든 일이 있습니까? 절망적인 일이 있습니까? 마음에 용서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물질이 없어 힘들어 지쳐 있습니까? 사죄로 돌아가야 합니다. 인간이 씻을 수 없는 사죄에 돌아가야 합니다. 여기가 여호와의 날개 아래요, 전능자의 날개 아래입니다. 돈 찾아가요, 사람 찾아가요, 배경 찾아가요, 사죄 속으로 돌아갈 때 문제 해결이 있습니다.
엡 1:7- 입었음이라.
세상에 이것보다 더 큰 것이 어디 있습니까? 죄 지으면 불안한데, 빚만 저도 불안한데, 죄의 값는 영원한 사망이라고 하는데, 사죄라는 다넝 속에 들어가서 죄의 고통이 얼마나 큰 지를 알면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 아니면 헛일입니다.
내가 지은 죄가 어느 정도이고 죄의 값이 어느 정도 인가?
칭의로 돌아가야 합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에 사죄, 칭의, 화친 뿐입니까? 이 세 가지 없으면 아무리 웃기고 울리고 세상 모든 것을 다 준다 해도 인생의 문제를 해결 못합니다. 십자가를 지지 못합니다. 내가 힘이 있어 십자가를 지고 가겠습니까? 사죄가 없는 설교는 앙코 없는 찐빵이라. 사죄 없는 설교는 맛이 없어요. 살아 있는 새 사람의 생명의 양식은 되지 않습니다.
의가 없는 설교는 질기고, 타이어 씹는 것 같아요. 먹을 수도 없고 먹어야 병드는 것이고, 칭의가 없으면 이게 아니면 안되기 때문에 인생의 삶이 안되기 때문에 이게 아니면 결코 십자가를 질수 없기 때문에 사죄, 칭의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행 13:39,,,믿는 자 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니라.
우리가 어떻게 의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사람에게 명령하는 것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보고 하는 것 안에서 시키는 것도 못하는데 영원무궁토록 사는데 의를 이루는 하나님의 뜻을 타락하고 범죄한 불의 가운데 있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안들 어떻게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 나라 못 가는데 이 이룰 수 없는 의를 하나님이 목적 속에서 예정하셔서 창조하셨고 도성인신 하셨고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 안에서 다 이루었다는 대행의 완성을 통해서 값 없이 은혜의 선물로 칭의의 은혜를 주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춤 추고, 뒹굴고,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주시다니, 주님이 대신 형벌 받으셔서 사죄의 은혜를 주시다니,
만유의 대 주재이신 창조주이신  생사화복 흥망성쇠를 주권하시는 주권자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이 자존자 하나님이 저와 우리의 아버지 되셨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시키기 위하여 인성과 신성의 연합이 되어져서 위를 화친 시켜 주신 줄로 믿습니다.
롬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골 1:22 세우고자 하셨으니. 믿습니까? 정말 아멘 되면 이 기쁨을 어떻게 해요? 정말 사죄의 은혜를 깨닫게 된다고 하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은혜를 깨닫고 보니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비밀을 깨닫고 난 다음에는 내가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빈곤에 처할 줄도 알고 일체의 비밀을 배웠노라. 주와 및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만 알기를 원하노라. 다른 것이 눈에 보이지를 안해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해요. 이 은혜를 깨달아서 우리 인격이 변화되고 회복된다고 하면 우리 교단 교회들마다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가정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이 은혜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어요. 사죄의 은혜, 부모가 나를 사랑한다고 내 죄를 눈곱만큼도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의를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 그 은혜를 생각할 때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드리나이다. 이런 신앙의 고백, 감사의 찬송이 하나님이 말세에 주신 복음인 줄 믿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찬송이요, 노래요, 삶의 원동력이요 힘인 줄 믿습니다.
부활의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사죄, 칭의, 화친을 입어서 절망은 벗어났으나 생명의 활동은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이루려고, 예정, 창조, 섭리하셔서 죄에 대한 고난, 불의를 위한 순종, 절망의 절규를 희생을 대신 지불하시고 그것도 인성만 아니라. 인성만으로 할 수 없기에 신성이 연합해서 구속의 은혜를 주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성을 입고 부활하셔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속에 영생을 주시려고 부활해 주셨습니다.
이 세 가지를 이루는 데는 뭘로 이루었느냐? 첫째, 낮아지심, 둘째, 고난받으심, 셋째, 가난해지심. 이 세 가지로 사활 대속이 완성된 것입니다. 이런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본체적인 완전한 사랑이라야 이 역사를 이루는 줄로 믿습니다. 집에 돌아가시거든 정말 주님의 낮아지심, 고난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거든 시골의 재래식 화장실의 오물을 가지고 세수를 한번 해 보세요. 기분이 어떤지?
크로싱,
주님의 낮아지심, 주님의 희생 하심, 주님의 고난 받으심을 우리가 만분의 일이라도 이해해 보자 말입니다. 실감해 보자 말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 되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온 것이 내 손에 오물 묻힌 정도와 비교되겠습니까? 누구 때문에, 내 죄 때문에, 고난받으시고, 구속의 은혜를 입혀 주시려고 주님이 이렇게 해 주셨는데, 우리는 말로만 주님 위해서 산다. 지식적으로만 주님 위해서 산다.
주의 사랑은 배푸는 사랑인데 받을 사랑만 한 개 주었으면 열 개 백 개를 받아야 하고, 원수가 되고, 사람은 그렇더라고요.
주님이 우리에게 받기를 원하십니까? 무조건적인 사랑이잔하요.
 
사죄와 칭의와 화친과 새생명을 받은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영은 어떻게 되었을까?
벧전 1:3 찬송하리로다...산소망이 있게 하시고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다...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사죄, 칭의, 화친, 새생명, 이 사활대속의 은혜가 우리에게 와서 역사하니 나를 사람이 하나님과 끊어졌던 영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영이 병원에 산소 호흡기 연결하면 살아날까요? 죽었던 영이 중생되었더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들 이것이 작은 일입니까? 살아나 봐야 얼마 있다 죽을 육체의 생명도 살려 주면 감사하고, 다 사다 줄 것인데, 그것도 지옥 가운데 있던, 고통, 가난, 절망 가운데 있던 우리의 주인되는 영을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가진자로 영생을 가진자로 살려 주신 것이 구속의 은혜입니다. 알아야 주님을 찬양하지.
디오게로스, ...왕이 당신의 소원이 뭐요? 그 철학자가 추우니까 햋볓좀 가리지 마세요. 이 사람이 부잣집에 초대를 받아 갔는데 너무너무 화려하고 귀하고 자랑하는데 입에 춤이 티어 한참을 듣고 있더만 확 해서 그 사람 얼굴에다 침을 뱉아요. 미안합니다. 당신이 자랑하는 집을 둘러보니 너무너무 아름답고 깨끗해서 뱉을 장소가 없어서 보니 당신의 얼굴이 쓰레기통 같아서 뱉었다. 세상의 부귀 영화를 자랑하는 사람은 얼굴이 쓰레기 통같이 보입니다.
내 자랑은 사죄의 은혜, 칭의 은혜, 화친의 은혜, 새소망을 자랑하는 것만 그리스도인의 자랑인 줄 믿습니다. 나는 새생명 받아 가진 자다. 세상이 감당 못하는 마귀가 감당 못하는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말미암아 대속의 은혜, 화친의 은혜, 영생의 새생명을 가졌노라. 담대함이 여기서 나옵니다. 돈 있다고 큰 소리 하지 말고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이 우리의 자랑이 되기를 원합니다. 중생한 영을 가진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의 마음은 끈떨어진 마음이 되어 더러운 것에 온 세상을 돌아 다니던 마음이 중생된 영이 딱 잡아서 하나님을 모시는 성전이 된줄로 믿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을 믿느냐?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멸하시리라. 하나님 다음가는 존귀한 자로, 영광스러운 이 위치에 세워주고, 얼마든지 만들어 갈 수 있는 은혜를 주는, 중생된 영도 잊어버리고, 성경도 잊어버리고, 마음에서 잊어버렸습니다. 마음에서 잊어버리고 나니까 몸에서 잊어버리고, 눈에서 잊어버리고, 귀에서 잊어버려, 연속극은 귀에 쏙쏙 들어오는데 마음에 말씀이 떠나고 나니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아요. 조는 것이라. 실상을 우리가 좀 압시다. 주여 실상을 알려 주옵소서. 사죄의 은혜를 십만분지 일이라도 알게 해 주시옵소서. 칭의의 은혜를 //, 화친의 은혜를 //, 새생명의 은혜를 //. 이것이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바쁘기는 얼마나 바쁜지, 내 권세, 위신, 체면, 밥 먹는 것 바쁜지,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사망 받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마음으로, 진리를 담을 수 있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담을 수 있는 마음으로, 의를 탐할 수 있는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 마음으로 회복시켜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런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몸은 어떻습니까? SI. 안 먹으면 배고파 죽고, 배불러 죽고, 배터져 죽고. 죽어야하는 육체, 사랑하는 아들이 미국에서 아프다고 해도 갈 수 있어야지. 이런 부패하고 타락한 육체를 몸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죄, 칭의, 화친, 새생명의 대속의 은혜를 입혀서 죽지 않는 새생명의 완전한 하나님의 지체, 하나님의 몸, 우리가 믿음을 따라서 이룬대로 우리의 중생된 영과 영에게 붙들려서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몸을 입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하는 이 은혜를 무한정으로 전달해 주는 몸으로 써 주시는 것입니다. 소중히 여기고, 몸의 기능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대로 그 쓰임에 쓰임 받도록 하기 위해서 운동도 하고, 음식도 골라 먹고 하는 것입니다.
육체로부터 심은 것은 썩어진 것을 거두고, 이런 소망이 없다면 확 죽어 버리겠어요, 살 이유가 없어요. 그러나 아니요, 이 비밀을 모르기에 좌절하고 포기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 몸은 중생된 영과 마음을 입고, 그리스도의 직분을 감당하는 존귀한 우리의 몸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노라. 새로운 피조물 영생하는 사람이 되었느니라. 여기에서 나오는 답이 감사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즐거움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안에 있는 능력인 줄 믿습니다. 사죄 안에 들어가니 용서 못한 시어머니가 없고, 사죄 안에 들어가니 용서 못할 며느리가 없고, 칭의 안에 들어가니 아무리 머저리 덩신 해도 피동되지 않고 현실을 다스리고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는 능력이 나오는 줄 믿습니다. 이 십자가의 사활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전인격적으로 흠이 없는 하나님의 형상 목적 완성을 이루어 갈 수 있는 나그네 세상.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할렐루야. 사실 내가 거리가 멀어요. 아직도 나를 부인하지 못해서, 고무줄 뒤에 묶여서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어떤 데 가서 보면 원위치 되어 있고,
사죄라는 퍼즐, 칭의라고 하는 퍼즐, 화친이라고 하는 퍼즐, 새생의 퍼즐을 맞춰 보면 감사. 감사함으로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으면 절대로 십자가 못 집니다. 외부적인 물질로 사건적으로 인한 감사의 범위를 벗어납시다. 본질로 돌아 갑시다. 친히 사람되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입혀 주신 칭의로 인한 감사, 화친으로 인한 감사. 이 감사로 십자가를 즐겁게 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5-1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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