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자: 2009년 5월 7일 목새
강사: 김영웅 목사
제목: 예수님은 하나님께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
본문: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버지는 나를 낳아 주신 분, 양육해 주신 분, 사랑 해 주시는 분, 책임 져 주시는 분이시다. 아버지는 나의 필요한 것을 은혜로 공급해 주시는 분이시다. 나를 만족케 하고 평안케 하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버지이다. 이런 면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려고 여기에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이런 일곱 가지 면을 말씀하셨다.
육신의 아버지는 이런 일곱 가지의 근원이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육신의 아버지 말고 일곱 가지의 근원되신 아버지가 계십니다. 은혜의 기관으로 등록하여 쓰시니까 이런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지, 병이 들거나 아프거나 하면 미국이나 가면 구수한 된장국 해 주고 싶어도 못해 줍니다.
이런 일곱 가지의 근원이 되려고 하면 자존하셔야 하고, 자존의 사랑과 전지 전능이 있어야 합니다. 이 근원이 되려면 창조주, 주재자, 만주의 주, 만왕의 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 자존불변사랑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만이 일곱 가지의근원이 되고 만국의 근원이 되어야 우리가 잘 삽니다. 이 분이 우리의 근원이 되어야 잘 살 수 있지 이 분이 근원이 안되면 잘 살 수 없습니다.
아버지께로 찾아 갈 사람은 돈이 있어야 찾아 가느냐 권세가 있어야 찾아 가느냐? 문화의 혜택을 입고 우주선을 타고 가는 그런 혜택을 입어야 찾아 가느냐? 이런 것 가지고는 찾아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내가 길이요, 내가 진리요, 내가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나로 말미암아서는 이 아버지를 찾을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그근원에 나오는 혜택을 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일곱 가지의 근원된 하나님을 찾아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일곱 가지 근원을 찾아가기 위해 예수 믿는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이 땅에 나를 출생케 하고 존재케 하신 출생의 근원이 되신 분이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부모가 나를 존재케 한 것이 아니라 출생의 근원이 있다. 그 분은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있도록 창조하신 그 분이라야 우리의 출생과 존재의 근원이 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창조의 근원이요, 출생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 분을 만날 수 있는 이치가 예수님이시오. 만나서 떨어지지 않도록 해 주는 생명이 예수님이시다. 이것을 우리가 알고 인정하고 느끼고 깨달아서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근원은 자존 불변의 사랑이 있어야 나의 사랑의 근원입니다. 이분이 영원자존불변 사랑 그분이 아버지입니다. 영원히 사랑하시는 아버지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무궁토록 변함 없이 나를 사랑하시는 근원이신 분이다. 이 분을 찾아 가게 하고 만나고 만나서 그분과 결합할 수 있도록 해 주시는 분은 예수님 뿐이다.

우리가 육신의 양육만 아니라 영과 혼의 양육, 우리의 모든 소유가 자라도록 더 크지도록 우리의 영광과 활동이 망하지 않고 쇠하지 않도록 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이뤄지기까지 귀하게 아름답게 양육하시는 그 분을 아버지 합니다. 양육의 근원이다. 이분을 찾아가는 길이 예수님이다.

우리가 안보에 있어서, 물질이다. 과학이다. 칼이 있어야 한다. 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참된 안보의 근원이 있습니다. 그런 것이 우리를 안보해 봐야 보잘 것 없습니다. 미국이 있으니까 안보가 되리라 아닙니다. 안보의 근원이 있습니다. 그 분은 전지 전능해야 안보의 근원이 됩니다. 모든 것을 주권하는 그분이라야 우리의 안보의 근원이 됩니다. 그 분을 찾아가지고 붙어 살수 있도록 해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다. 이것을 믿어 달라는 것입니다.

참 내가 맡긴 것 영원한 책임을 지시는 그 분은 아버지입니다. 남편에게 맡길 것입니까 아내에게 맡길 것입니까? 맡아서 책임 져 주실 그분이 계십니다. 책임의 근원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책임의 근원을 아버지라 말합니다. 이 분을 찾아 가는 그분이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책임의 근원이 있다 하니까 내가 노력할 것이 뭐 있느냐? 책임 맡으신 분이 있으니까 감나무 밑에 입만 벌리고 있으면 감이 톡 떨어질 것 아닌가? 우리는 책임 진 그 분이 잘 해 주시도록 그분에게 잘 보여야 할 것 아닙니까? 우리는 그 분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고,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그 분이 잘 해 주시려고 하니까 꼭 제가 책임지고 하는 것처럼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책임의 근원이 있기 때문에 나는 더 열심히 해야 하고, 그 분을 감동 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다 같이 밭에서 일을 하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게 된다.
우리는 자기가 책임의 근원인 줄 알고 사는 사람이 있고, 그 분에게 잘 보여야 그분이 책임지고 잘 해 줄 것이니까? 자기 성질대로 마음대로 제 좋은대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를 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상전 위에 상전이 있어, 그 분이 계심을 믿기 때문에 상전에게 우리가 잘하기를 주께 하듯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책임된 그 분이 잘 해 주실 수 있도록 그 분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다 보니까 그 분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게 되고, 아내는 남편을 경외하게 되는 것, 남편이 자기를 사랑 해 준다 해도 책임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책임의 근원 때문에 남편을 경외 합니다.
근원을 보고 사십시오, 늙어도 병들어서 사랑해야 합니다. 책임진 근원을 알고 인정하기 때문에,

나의 필요를 은혜로 공급하는 근원이 있습니다. 부모가 아니고 국가기관이 아닙니다. 그들은 공급하는 근원에서 나와서 전달하는 통로이지 근원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서든지 부족함이 없도록 넉넉하게 주실 은혜의 근원은 창조자, 주권자, 주재자 아버지 한 분외에 다른 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고 믿으십시오. 이 분을 만나게 하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돈으로 인한 기쁨, 예술로 인한 기쁨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기쁨과 만족과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근원이 있음을 알고 인정하고 믿으면 자체의 부족과 대적의 강약을 상관하지 말고 우리가 뭐 해야 합니까? 예수 잘믿자! 예수 잘 믿자! 예수 잘 믿는 것 밖에 다른 것이 어디 있어요. 예수 잘 믿자. 예수 잘 믿자. 그것만 여러분들이 굳게 잡으면 됩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 믿으면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는다.
우리가 무엇보다 천하에 제일 귀한 것은 예수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복을 받았다 복을 받았다 하지만 예수 믿는 것보다 복 있는 것이 없습니다. 천하를 얻는 것보다 큰 보배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극히 보배로운 믿음이라 했습니다. 왜 예수 믿음으로 일곱 가지 근원된 아버지를 찾아가야 한다. 이것을 잊어버리고 살았잖아요. 이것을 해결 해야 합니다. 이 분을 만나야  하고 붙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것이다.
장사를 해도 예수 잘 믿는 사람이다 하는 것을 위해서 장사를 하고, 공부를 해도 //. 공부 꼴지해도 근원에 붙었기 때문에 염려하지 마십시오. 노동을 해도 예수 잘 믿으려고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은 죄다. 일들을 해도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60년도 삼봉산 굴 앞에서 백목사님이 집회를 하는데 거기에 참석을 했습니다. 부모가 믿으니까 교회 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집회 가서 아, 내가 예수를 믿어야 하겠다. 그것을 잡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집회가면 앞 자리에 앉습니다.
예수를 믿어서 손해 보는 것 없습니다. 믿는 자녀들이 예수 믿는 것 뒤로 두고 해서, 거기에 빠져 있는 사람들 노경에 보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의 출생 근원을 잡기를 원합니다. 사랑의 근원을 잡기를 원합니다. 보다 내일이 좋아지고 성장되기를 원합니다. 자기를 잘 보살펴 주는 안보를 찾고 있습니다. 이 근원을 찾아가서 만나고 결합되는 데는 예수 믿는 것이다. 이것을 굳게 잡고,

그러면 예수 믿는 것은 어떻게 하면 잘 믿는 것이냐? 예수 잘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 나오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지요. 교회 안나오면 아무리 부자고 똑똑해도 예수 믿는 사람 아니다. 교회 문턱이 참 높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 10년 심방해서 교회 나오도록 한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 나와도 술을 끊지 못하는 사람은 친구 좋아서 나오고, 친구 때문에 나오고, 친구가 권하니까 담배도 끊고 술도 끊어 보자. 그런 사람은 못 끊습니다. 내가 가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그러니까 그 말씀이 무엇인가 해서 교회 나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거물을 내리리이다. 한 것처럼 말씀에 의지해서 하면 됩니다. 말씀이 끊어라 해서 나는 끊는다 하는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그 말씀대로 내가 해 보니까 경험이 되고 책임이 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하면 더 좋은 것이 있구나 이것이 경험되고 체험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 지식이 생겨진 그 지식의 지배를 받는 마음을 신앙양심이라 합니다. 그 신앙양심에 자책됨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 어디서 나오냐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해 보는데서 나오는 것을 압니다. 신앙양심을 끊지 않고 살아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 우리가 계약을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신앙양심을 거슬릴 수 없어서 자기로서 그 일을 이루려고 하면 못하는 것을 역사하시는 신을 성령이라 합니다. 자기에게 와서 역사하는 것을 성령의 감화감동이라 합니다. 그 영감에 순종한 것, 신앙양심의 자유.
법적으로는 얼마든지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나끈 하나 취하지 않는 것은 영감 순종입니다. 그 사람 예수 잘 믿는 사람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할 때 산에 가면 나무가 많으나 듣자 마자 집에서 준비를 했어요. 영감 순종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 나왔느냐? 성문화 된 법을 배워서 안 그 실행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시작해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들어 갑니다. 이것 없이는 안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아무리 성경을 뒤적여도 그렇게 하는 것은 없는데 신앙양심에 나타나는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양심에 매여서 자책됨이 없도록 하려고 하니까 내게 손해가 가고 죽을 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은 예수를 잘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와 영감이라는 것은 무엇을 중심하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중심하고 있습니다. 대속은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대형과 대행의 화친하신 것을 대속이라 합니다. 이렇게 대속한 것을 실상으로 누리는 것은 구속의 역사라 합니다. 요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진짜 예수 잘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첫째로 진짜 예수 믿는 가운데서 또 진짜 진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 몸 입고 왔습니다. 입고 와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내 죄의 형벌의 값을 대신 치르렸다. 이것을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입니다. 나는 죄 값으로  형벌 받는 것이 없다. 그것이 사죄라 말합니다.
그런고로 나는 죄를 지은자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정죄 하는 것이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 나는 죄 없는 자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죄의 값을 형벌을 대신 받아 주셨기 때문이다. 그것을 믿기 때문에는 나는 죄가 없는 자다. 나는 완전하다. 완전한 사죄. 내가 어떤 어려움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죄값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나를 죄짓는 버릇을 고치는 것으로 주신 줄 믿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의롭다 하는 것은 대속의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다. 대속 안에서 깨끗한 것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택함을 입고 구속함을 입게 되면 형벌이 없다 이것이 믿어지는 것. 내가 당하는 것은 징계다.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이것을 알고 인정하고 깨닫고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복음은 고치면 됩니다. 다윗은 부요 존귀와 권위를 누리다 죽었습니다. 일곱 가지 근원에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형의 사죄를 믿으니까 일곱 가지 근원으로 찾아가요. 이제는 죄와 더불어 싸우고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그 대형의 사죄,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5-1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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