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웅 목사] 잘 살아 보자

2009.05.08 20:06

윤봉원 조회 수:841 추천:63

날자: 2009년 5월 7일 목전
강사: 김영웅 목사
제목: 잘 살아 보자!
본문: 요한복음 14장 62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베드로후서 3:7-13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예수 잘 믿고 만복의 근원된 거기에 붙어서 이제 한 번 잘살아보자. 예수 잘 믿으면 그 분에게 붙게 됩니다. 예수 한 번 잘믿고 정말로 만복의 근원되신 그분에게 붙어서 남은 때에 우리의 삶을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봅시다!
세상을 어떻게 살고 갈까?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어떻게 살고 갈지를 모르고 있잖아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좋은 필요의 은사를 주실 때는 어떻게 주시는고 하니 거기에 합당한 말씀을 주십니다. 말씀의 보자기에 싸서 주십니다. 각자 이 사람에게 저 사람에게 이 장로에게 저 장로에게, 집사에게 주실 때에는 꼭 보자기에 싸 주십니다. 말씀의 보자기에 싸셔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누구를 통해 주셨느냐 일곱 촛대 사이에 거니시는 그 분이 뭘 잡으셨느냐 일곱 별을 잡으신 것이다. 오른 손에 일곱 별을 잡으신 그 분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 총공회는 감독교회 교회도, 회중 정치도, 장로 정치도 아니고 우리는 개교회 주의입니다. 성경 말씀이 우리의 법이요, 그리고 전원일치입니다. 우리 총공회의 발족의 삼대 취지이다. 개 교회는 일곱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그 분이 일곱 별을 잡으신 그 분을 통한 말씀을 주시는 그것 가지고 우리는 교회를 운영도 하고 경영도 하고 교회를 세워 나가는 것이다. 개교회 주의는 그 교회에 기름 부어 세우신 담임 목사가 주체입니다. 그 주체가 운영을 해 나가는 것이 개 교회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사 기관으로 세워 준 교역자를 위해서 교인들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잘 믿는 교회든지 잘 못 믿는 교회들에 글자 하나 틀리지 아니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종을 멸심하면 그 종을 멸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종을 통하여 나오는 말씀을 멸시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기의 가정이라는 것은 사업이라는 것은 자손은 강성해지지 못합니다. 그러면 망합니다. 안 됩니다. 자손이 땅위에 강성해 지는 것은 시편에서 ?장 ?절 ‘여호와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입니다. 그 자손이 땅에서 강성한즉,
정직자, 뭐이 정직입니까? 정직자는 여호와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고 순종하는 자입니다. 정직자의  후배는 부요 재물이 그 집에 있으며,
다윗이 자손이 강성했습니다. 다윗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니라 말씀했습니다. 그 좋지요, 40년간 왕노릇하고 늙어서도 부하고 존귀하다 죽었다. 이 다윗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 은사 기관으로 세운 사울을 돌덩이 같이 여길 수 있잖아요.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짜른 것을 인하여 마음이 찔려..‘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혹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였나이다’(삼상 24:10) 하고 사울을 해치지 못하게 했다. 했습니다. 이것이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었다는 것이 여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이 일어나서 자기 길을 가니라 라고 기록했습니다.
주의 종이 돌덩이라도 금덩이라 같이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이 정금같이 반짝반짝 빛이 됩니다. 정금으로 보고 사니까? 자기의 사업과 가정과 자손이 정금같이 빛날 수 밖에 없잖아요. 믿음은 그렇게 됩니다.
은사 기관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 해야 합니다. 기도하된 존경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목사님 최고다. 아무리 서울에 교회가 많아도 우리 목사님이 최고다. 우리 교회 목사님 교훈이 최고다. 정금같이 여기면 그 사람이 그 교회에서 정금같이 됩니다. 정금같이 빛을 냅니다.
이 복음을 정금같이 여겼을 때는 빛났는데 주의 종들을 정금같이 여기지 못하고 돌덩이같이 여기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통곡을 해야 합니다. 그래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장로 손아귀에 목사가 들어 있으면 뭐이 그리 좋습니까? 그 교훈이 똥같이 여김을 받는데,
우리는 은사 기관으로 세우신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워 놓으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그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교인을 위하여 자기를 위하여 ...하는 것 같이 하느니라.
은사 기관을 위하여 무엇보다 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을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들리지 않습니다.
너희 믿음 속에서 역사하시느니라.
가르침을 받는 자는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같이 하라.
...할 것이니, 알릴 수 있는 종이 되게 해 달라고,
계 1:16에 교회 사이에 다니시는 이는 일곱 별을 붙잡고 있습니다. 일곱 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는데, 그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이것만 되면,
한국 교회 중에 총공회 목사만큼 소신껏 목회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힘든 줄 알아도 정말로 총공회 목사님들 목회는 소신 목회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성경 하나 들면 됩니다. 그리고 전원일치 안되는 것은 주님의 구속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안 됩니다. 수속 밖에 있으니 하나가 안됩니다.
공연히 총공회 목회 하면서 여게 저게 찾아 다니지 말아요, 소용 없습니다. 유익 없습니다. 이안에 목회 방법은 이 안에 목회 방법을 해야 합니다. 내가 미친 사람 아니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원해도 못 줍니다. 주면 우리가 다 죽어요. 이것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죽기 때문에 못 줍니다. 하나님이 주실 때는 피를 통해서 줍니다. 그 피를 통해서 준 그것이 어디로 오느냐 성령의 감동으로 옵니다. 성령의 은혜가 진리의 은혜로 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통로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주셔야 합니다. 우리 목회자들의 실패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주시는 방편을 쓰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방편이다. 목회자들이 교인들에게 주는 방편을 쓰면 안됩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이 주실 때는 피로 성령으로 진리로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받느냐 우리는 진리에 붙어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에 붙어 가지고, 그 다음에 성령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야 되고, 성령의 역사 속에 들어가서 피를 접해야 합니다. 이 방법으로 목회를 해야 되고, 하나님을 접해야 합니다.
진리와 성령을 통해서 피(하나님)을 접하면 됩니다.
우리는 잘못하면 위의 피를 가지고 자꾸 그라니까 천사같은 말을 하는데 이해가 안됩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연보도 내 형편 계산해서 주일 연보 제일 많이 할 수 있으면 하고, 감사도 내 형편 닫는 사례에서 감사도 내가 제일 많이 하려고 합니다.
목자가 앞서 가면 양은 그 음성 듣고 따라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를 안 쫓아내고 지금까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꾸 위에서부터 마구 쏟지 마시고, 그것은 하나님이 쓰시는 방편이다. 밑에서부터 올라가요.

오늘 아버지라 한 것은 일곱 가지, 나를 낳아주신, 출생케 하신 아버지다. 나의 필요한 것을 내 아버지는 공급해 주신다. 책임지고 사랑하신다. 그런데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나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한 것은 육신의 아버지가 아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근원이 되지 못합니다. 보호해 주고 싶어도 못합니다. 사랑, 보호, 책임져 주지 못합니다. 늙고 쇠하고 죽으면 못해 줍니다. 영원한 내 존재의 근원 사랑, 양육, 책임, 보호하고 은혜를 공급해 주시는 그 근원 영원토록 나를 기쁘게 즐겁게 해 주는 근원은 자존자, 주권자,주재자 전지전능자라야 합니다. 아버지 되었다. 예수님을 통해서 찾아가면 그 분이 아버지 됩니다. 일곱 가지의 근원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었고 그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이 예수님이요 진리가 찾아서 만날 수 있는 것이 예수님이요, 만나서 그 분과 들어 붙어서 떨어지지 않도록 해 주는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라. 예수 잘 믿자. 예수 믿는 것은 이 일곱 가지 근원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우리가 무엇보다도 예수 믿는 것, 하나님이 주신 복 중에 최고의 복이다. 우주의 천상 천하의 부귀보다 귀한 줄 알아요. 천하것 안 주어도 예수 믿고 살았으면 나는 어떤 홍포 입은 부자보다 땅위에서 큰 복을 받은 자다 믿어요. 자식이 공부 못한다고, 돈 못 벌었다고요 예수 믿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지극히 보배로운 믿음이다.
그러면 예수를 잘 믿는 것이 뭐냐? 예수 잘 믿는 것은 우리가 저 사람 예수 믿는 사람이다, 아니다 뭘 가지고 압니까? 교회 나오면 예수 믿는 사람이다. 교회 안나오면 예수 안 믿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예수 잘 믿는 것은 교회 나온 것보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은 말씀을 읽고 듣고 배워 보자 해서 사는 사람은 교회만 나오는 사람보다 잘 믿는 사람이라. 들어서 알아보려고 그래서 성경도 읽어 보고, 그보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실행을 하는 사람이다. 말은 비단 같이 잘하는데 실행은 안해. 실행을 해야 합니다. 실행을 해야 그 진리가 자기를 자유케 한다. 실행 해 보니까 이 말씀은 실상이 있구나, 그대로구나. 내게 유익이 있다. 믿고 순종해 보니까 그것 아니면 죽을 줄 알았는데 사는 길이 있구나. 그래서 술 먹어도 교회 나오너라. 담배 //. 제사 지내도 //. 술 받아 줘 가면서 교회 나오도록은 하지 말고요. 어짜든지 교회 나오도록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그 말씀에서 술을 끊어야 하겠다. 이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는 사람은 술, 담배 끊습니다.
그 지식에 사로잡혀서 살아가는 것은 신앙양심 자유하고 합니다. 양심에 가책이 되어서 하려고 하니 죽을 지경입니다. 힘이 듭니다. 마찰도 있고, 애로도 있고, 천대도 있고, 거기에서 주님의 심정, 주님의 수고, 주님의 수난, 주님의 아픔도 나도 알게 해 줍니다. 자식도 부모가 있을 때는 제가 애를 먹여도 애 먹이는 줄 모릅니다. 자식을 낳아서 길러 봐야 내가 참 불의 했구나. 이런 나를 기르느라 얼마나 속이 팍팍 썩었을까? 자식을 길러 본 딸 집에 가면 어머니 대접 잘 합니다. 저도 이렇게 진리 말씀대로 살아보고, 신앙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자유하려고 아브라함이 실끈 하나 취하지 않고 다 내어 놓은 것, 이삭을 번제 드리려고 장작을 가지고 가는 것,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죽을 줄 알면서도 올라가는 것은 양심에 매여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 영감에 그렇게 하는 것은 그 분을 사귀고 그분과 교제하고 해 보니까 그 분의 심정을 이해 하게 됩니다. 죄 없는 그분이. 기독교는 말의 도가 아닙니다. 지식의 도가 아닙니다. 실천의 도입니다.
그래서 예수 잘 믿는 것은 영감대로 살아야 합니다. 법에 종되어 사는 것 아닙니다. 자기 양심에 자책됨이 없도록. 연보를 해도 호주머니 넣어 놓았다고 하는 것보다 새 돈 가지고 십일조를 하라고, 성경 몇 장 몇 절에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양심이 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주의 대속에 가까이 가게됩니다. 영감으로 알고 인정하고 깨닫고 실행해야 예수 잘 믿는 사람들이다.
영감으로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로 하라 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영감대로 해야 합니다. 장로들은...즐겨 자원함으로 하라 했습니다.
그게 다가 아니잖아요.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것이 잘하는 것이다. 그 중에 우리는 대형의 사죄를 믿어야 합니다. 그냥 위에서 믿으면 안됩니다. 밑에서 받아가지고 믿어야 합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밑에서 가지고 올라 가야 합니다. 내가 죄를 지었는데 그 분이 내 죄를 다 담당해서. 사람이 지은 죄를 사람이 해결해야 하니 죄를 대신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신인양성 일위입니다. 다 버리지 못하고 신경 세포 하나라도 남김이 없이하도록 하기 위해서 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죄가 완전히 믿어지는 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주님의 대형의 사죄가 어떤 머리 속에 거한 것이 아니고 이것은 자기에게 돌에 맞아 죽어가는 스데반이 보좌 우편에 서서 계시는 분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보기 위해서 인격이 올라 가야 합니다. 모든 것은 내가 하면 됩니다.

내가 죄를 지어서 어려움을 당합니다. 이것은 죄의 값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죄를 고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의 과정으로 주신다. 거기서 예수님의 대속의 사죄를 믿어야 합니다. 그런고로 죄를 치료 하기 위함이니까 죄를 치료 하면 됩니다.
죄를 어떻게 해야 치료 해야 하느냐? 이 대속 아래 있는 우리들의 치료 방법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깨끗게 하실 것이ㅛ..하신다. 우리는 대속하신 주님의 대형의 사죄 그것을 알고 인정하고 느끼고 깨달아서 믿고 내가 지은 죄를 자백을 하면 우리는 그 죄가 사함을 받는다 했습니다.
이렇게 죄를 우리가 청산 해 가지고 죄를 짓지 않으면 내가 어#떤 불의가 있다 할지라도 깨끗해 집니다. 그 죄로 인하여 나에게 오는 어떤 무엇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함 받고 두 번째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면 고해서 사함 안됩니다. 두 번 죄를 짓고 세 번 죄를 지으면 죄 사람 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죄  사람 받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사함 받느냐 그 사함 받는 것은 알고 짓는 고범죄는 다른 것 없습니다 고치면 됩니다.
우리가 처음 모르고 팔계명을 어겼습니다 짐짓 내 연약과 내가 모르고 지은 죄, 연약해서 지은 죄, 고의가 아닌 죄는 사하여 주십시오 하면 죄를 사하여 줍니다. 다시 도적질을 지었으면 고칠 수 없습니다. 고칠 때 죄는 사함 받는데 청산하는 것은 또 다시 그런 죄를  지을 수 있는 입장과 처지에 놓였을 때 그 죄를 범하지 않고 돌이키는 것을 가지고 그 죄는 청산이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르고 짐짓 연약으로 짓는 죄는 고하면 사함 받습니다. 사함 받으면 죄지은 것으로 축복이 가로 막혔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축복이 그대로 옵니다. 주님의 대형의 사죄를 그대로 믿으십시오. 고하면 짐짓 짓는 죄, 연약으로 짓는 죄는 사함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함 받아서 알고 범죄하고 알고 범죄하고 범죄한 횟수가 많아지게 되면 그것은 사함 받기가 어렵습니다. 왜, 행동하는 것은 행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자기라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행동을 한 번 두 번하고 나면 그런 버릇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그런 습관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범한 것을 한 번 범하고 두 번 범하고 세 번 범한 거기에 대한 버릇이 있고 습관이 있기에 사함 받는데는 힘이 듭니다. 그만큼 어려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걸 징계라 말합니다.
여러분들, 이래 가지고 땅위에서 어떤 죄라도 사함 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알고 지어 버릇이 되어서, 그 징계가 다윗의 징계가 다말과 암논의 관계, 형제가 죽는 재앙, 압살롬이 반역하는 재앙, 피비린내 나는 일이 일어납니다. 왜, 그 만큼 징계를 통해서 고치기 위한 순서에는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런고로 고치기가 어렵다 하는 것이지 사함 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만일 사함 받지 못할 죄가 있다면 하나님이 사람 되어 대형한 사죄는 헛일입니다. 다시 와서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한 번 범하고 주님 앞에 고해서 사함 받는 사람이 복이 있고, 그 보다 복이 있는 사람은 대속을 알고 미리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고, 범하고 나서 주님의 대형의 사죄 앞에 고해서 사함 받고, 알고 짓는 죄는 고치는 사람이고, 그 보다 못한 사람은 버릇이 된 것은 고쳐야 하는데 그만한 대가를 내야 합니다. 죄의 형벌입니까? 징계입니까?
이래서 우리가 어쩌든지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누구보다도 나는 주님 앞에 형을 많이 부담 시킨 사람이다. 아 참 나는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남들이 못하는 수고도 해야 되고, 남이 하지 못하는 희생도 해야 되겠고, 남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하는 것은 나는 주님 앞에 많은 형을 부담을 시킨 자이기 때문에, 대형의 사죄가 실질적으로 깨달아지고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다윗은 침상의 요를 적실만큼 흘린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으로 인해서 돌을 치는 자들을 미워 할 수 없어요. 하늘 문이 열려야 합니다. 대속을 잡고 검어지는 데는 이렇게 거머쥐고 잡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참 나는 그냥 지나칠 것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아 주님의 대형의 사죄가 내 속에 느껴지고 그 피가 내 속에 흐르니까 일을 해도 활발하게 해야겠고, 남이 안하는 희생, 헌금도 해야겠고 그것이 진짜 예수 잘 믿는 사람입니다.
그게서 더 예수 잘 믿는 사람은 형제가 죄를 범할 지라도 하루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라. 예수님의 대형의 사죄를 알기 때문이다. 인정하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을 아니까 형제를 돌을 들어 칠 수가 없잖아요. 죄 없는 자가 돌을 들어 치라. ...다시는 가서 죄를 범치 말라.
형제의 죄를 주님의 대형의 사죄로 내가 용서 해 주어야 내 죄가 사해 집니다. 내가 그런 죄를 짓지 아니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용서 못하면 자기는 그 죄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스승이 되려고 하지 말라. 스승된 자는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아라.
참 다윗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나와 왕 사이에 판단하실 이는 하나님이시고 ....내 손으로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라.’ 심판 하실 그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이 이렇게 모든 것 다 사람 몸 입고 오셔서 나의 죄의 값을 대신 받아 주셨는데,
그냥 믿지 말고 밑에서 올라 와서 믿으셔야 합니다. 위에서 하지 말고, 자기는 의로운 채, 우리가 그럴 수 없잖아요.
우리는 여기에서 사망에서 해방된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믿으니까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죽음을 예수님은 잔다고  합니다. 내가 늙어 죽을 때에 나는 예수님의 대형으로 사망에서 자유한 자다. 우리가 죽는 것은 혈과 육은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형체와 같이 부활하기 위해서, 왜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합니까? 이런 죽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쩌든지 치료함을 받읍시다. 주님의 대형의 사죄 가지고 치료함을 받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어떤 고범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주님은 고치기를 원합니다. 아무도 한 사람도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셔서 참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대형의 사죄가 자기에게 알려지고 느껴지고 감격이 되어지는 이것이 되어 졌다면 자기는 손해 본 것이 없습니다. 정말로 귀한 수입니다. 앞으로 큰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이제 나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데 이런 징계의 순서가 필요한 것이니 ...받는 것입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살되 그냥 안 삽니다. 나는 주를 위해서 살겠습니다.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이것 예수 잘 믿는 사람입니다.
528장 찬송.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5-1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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