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20 06:14
날자: 2009년 4월 19일 주일오후
제목: 너는 나를 따르라
본문: 요한복음 21장 20절 - 23절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1. 비교와 경쟁의 전문가는 아닌가?
우리는 걸핏하면 옆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고 좌절감을 겪기도 합니다. 이젠 이것이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난 세월을 얼마나 많이 그렇게 살아왔습니까?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어쩌면, 우리는 교회의 성장도, 믿음을 측정하는 잣대도 경쟁과 비교의 논리에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닌지요? 더욱 부끄러운 것은 남이 그렇다고 비판까지 하면서 그런 모습이 된 자신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두 달란트 받은 종과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있습니다. 만약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두 달란트를 남기고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여덟 달란트만 남겼다고 가정 해 봅시다. 그 종이 주인에게 “나는 저 두 달란트 받은 종보다 배나 많이 남겼습니다.”라고 하고 자부심 섞인 이야기를 한다면 과연 주인은 칭찬을 하였을까요? 아마도 주인은 “이 악하고 게을한 종아” 하고 책망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이웃이 우리와 무슨 관계인지를 어떻게 설명해 주고 있을까요?
2. 베드로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을 깊이 뉘우칠 기회를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을 통하여 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세 번 동일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랬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베드로가 앞으로 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앞으로 그가 주님을 따르려면 순교의 죽음도 각오하여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18).
이때에 베드로가 요한을 보면서 주님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라고 질문을 하였다. 이 질문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베드로는 요한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 알고 싶어 한 것입니다. 요한과 자신을 비교한 질문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님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심오하고 애정 어린 책망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충동적인 베드로에게 그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실제로, 기독교회의 출발에 베드로가 공헌한 바(불과 몇 주 후 오순절에 그가 한 설교부터 예루살렘 교회에서 그의 리더십, 이방인 또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첫 사람이 된 것까지)는 놀랄 만한 것이며, 그가 죽음에서 기적적으로 벗어난 것(행 12:1-19)은 물론 순교 또한 영웅적일 것이다. 비록 살아남겠지만, 요한은 먼 섬에 유배되기까지 다른 종류의 소명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이 놀라운 복음서와 세 통의 서신,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있는 하나님 아들의 승리의 재림에 대한 놀라운 기사를 기록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은 좀 더 오래 살면서 다른 사명을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충동적인 베드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인내할 것을 격려하는 두 통의 서신을 쓸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을 위해 서로 다른 종류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어느 쪽이든 이유를 묻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들을 제자로 부르셨을 때, ‘나를 따라 오너라’(막 1:17)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그 명령을 반복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비록 예수님께서 조만간 세상을 떠나시고, 더는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으시겠지만, 그분을 따르는 것은 가능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제자들을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혼란스러워 하던 제자들과 오늘날의 우리에게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위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혼란 속에 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사명을 주시고, 그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따르라’고 베드로에게 한 예수님의 명령은 모든 신자 개개인에게 적용됩니다. 그분은 우리를 뒤에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 곁에, 우리와 함께, 우리 앞에서 따라 오라고 부르십니다.
3. 비교하지 말라
예수님을 따르기 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순종하는데 적적으로 그분의 인도인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전적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 순종의 결과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충동적인 베드로들과 사려 깊고 민감한 요한들, 그리고 힘이 넘치는 바울들을 위해 구체적인 계획과 섬김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천성과 능력을 고려하십니다. 각각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부름과 인도를 받으며, 어느 누구도 아닌 하나님께서 책임을 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비교하거나 각자가 하나님의 계획을 어떻게 성취해 가고 있는지에 대해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갈 6: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갈 6:4)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신 곳에 만족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시키신 일에 대해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운명과 요한의 운명을 비교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예수님의 목적 달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내게 맡겨진 나의 사명에 관심을 집중하고 온전히 이루어 드리도록 죽도록 충성합시다. 주인공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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