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항해하라

2009.01.18 18:31

윤봉원 조회 수:791 추천:91

요 6:16-212009011802날자: 2009년 1월 18일 주후
제목: 주님과 함께 항해하라.
본문: 요한복음 6장 16절 - 21절
1. 풍랑을 만나 고생하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의 삶이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서 진퇴양란에 빠진 것처럼 삶의 풍랑을 만나 고생하고 있지는 않나요? 지금의 상황을 자신의 노력으로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는 않나요? 아니면 사람이 도움을 받아서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나요? 언젠가는 해결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기다리고 있나요?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본문을 통해서 찾아봅시다.
2. 가까이 계신 예수님
   2.1. 제자들의 해상 조난
‘저물매’라는 말은 해가 질 때부터 어두울 때까지를 말한다. 제자들은 아마 벳세다와 가버나움 사이의 가까운 거리를 해가 있을 동안에 갈 계획이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봄철은 황혼이 짧으며 그들은 당연히 어둡기 전에 집에 닿기를 원했을 것이다. 바다 주위의 지형은 언덕이므로 그들은 실제로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라’(마 14:22)는 명령을 따라 ‘바다에 내려갔다.’ 오천 명을 멱이기 위하여 그들은 어느 정도 내륙으로 들어갔다. 요한은 그들이 실제로 바다를 건너려고 하기 전에 이미 어둠에 깔렸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라는 말은 그들의 예수께서 오실 것으로 기대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오시기를 바랐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미 어두웠고’(17절). 때때로 하나님의 백성은 곤경에 빠져 피할 길을 찾지 못하기도 한다. 즉 자신들이 왜 이런 곤경에 빠졌는지 그 원인을 모르는 흑암, 그 곤경의 의도와 성향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흑암 가운데 빠지는 것이다.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지 않으시면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은 더욱 가중되는 것이다.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18절). 제자들이 배를 타고 나섰을 때는 바다가 잔잔하고 평화로웠으나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이 일어났다. 우리는 평온할 때 다가올 고난을 예비해야 한다. 격랑이란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드는 법이다. 때때로 먹구름과 칠흑 같은 어둠이 빛과 낮의 자녀를 둘러싸기도 한다.
   2.2. 적절한 시기에 다가오신 예수님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리 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 하거늘’(19절). ‘십여 리쯤’이라는 말은 아직도 가버나움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마가는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막 6:47)라고 말하고 있다. 제자들은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좋은 방법을 찾아 헤매다가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발견하게 된다. 제자들은 그를 보고 놀랐던 것이다.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걷고 계신 것을 가설로 보고 다만 물 위를 걷고 계신 것처럼 보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도저히 타당치 못한 견해이다. 갈릴리 바다에 익숙한 어부들이 바닷가를 걷는 사람과 물 위를 걷는 사람을 분간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마가는 ‘유령인가 하여’(막 6:49)라고 말한 다음 ‘저희가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라고 말을 잇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사실을 볼 수 있다.
첫째, 자연의 법칙과 관행을 지배하시는 그리스도의 권능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마른 땅 위를 걷듯이 물 위를 걸으셨다.
둘째, 곤경에 처한 제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돌보심
‘예수께서 배에 가까이 오시다’(19절). 주님은 제자들이 시험에 빠져 고통을 당할 때 결코 위로 없이 내버려 두시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시요, 체휼하시는 주님을 믿읍시다.
셋째,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제자들에게 내미신 도움의 손길
제자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는데, 풍랑에 놀란 것 이상으로 갑자기 나타난 유령에 대한 공포가 더 심했다(제자들은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께서 유령이라고 생각했었다.).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귀신이 나타났다고 생각하지 여태껏 자연적인 현상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보다 더욱 두려움에 떨었던 것이다. 우리의 현실에서의 걱정거리는 흔히 우리의 지나친 상상에 의해 더욱 커지는 법이다. 우리는 우리가 입은 상처에 비해 더 놀라기도 하지만, 우리가 이미 도움받도록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다정스럽게 동정어린 말로 제자들의 두려움을 가라앉히고 계신가!
‘내니 두려워 말라’(20절). 이 말씀보다 더 강력한 위로의 말씀은 없으리라.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을 하심으로써 그들의 두려움을 가라앉히셨다. 그들은 그 음성을 알아듣고 주님을 배 안으로 영접하였다. 이 기적은 예수께서 어떤 상황에서든 그들과 함께 하실 수 있으심을 보여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떡과 물고기를 늘리신 일이 물질에 대한 그의 권세를 보여 주셨듯이 물 위를 걸으신 일은 자연도 다스리고 지배할 수 있는 주님의 초자연적 능력을 드러내신 것이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교훈하시는 데서 일보를 더 전진한 것이었다. 어려움이 곁에 있을 때는 그리스도께서 가까이 계시기 마련이다.
넷째, 그들은 목격했던 포구에 도착하였다(17절).
제자들은 배 안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21절). 그리스도께서 잠깐 자리를 비우셨다가 돌아오시자, 제자들은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안전하게 제자들을 바닷가로 이끄셨다.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21절). 교회라는 배 역시 대단히 요동하고 어려움에 빠질 수 있지만, 마침내 항구에 안전하게 이르게 될 것이다. 제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노를 저어도 배에 그리스도를 모시기 전까지는 그 목적지에 이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모시고 난 후에 모든 일은 갑자기 풀려나갔던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인으로 영접한다면 비록 밤이 어둡고 강풍이 몰아쳐도 우리는 우리의 배가 목적지에 다다를 것이요, 생각보다는 우리가 목적하는 해변 훨씬 가까이에 있으리라는 사실로 스스로 위로를 삼을 수 있을 것이다.
3. 주님을 모시고 주님과 함께 항해하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확정을 지읍시다. 우리가 당하는 어떤 종류의 어려움이든지 인간의 노력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의 방편대로 해결해 주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우리는 주님을 우리의 인격과 삶에 모시지 않은 삶을 회개 합시다.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곁에 계심을 발견하고 영접하여 들이도록 합시다. 그분이 우리의 인생항로의 선장이 되시도록 그분께 우리의 인생의 핸들을 맡기고 그가 명령하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갑시다. 즉, 어떤 현실에서도 우리는 항상 성령과 진리의 인도를 따라서 순종으로만 살아갑시다. 그러면 제자들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인도해 주신 주님이 우리의 인생도 평안과 형통, 행복의 세계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인공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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