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1:5-132008120701날자: 2008년 12월 7일 주전
제목: 기도에 대한 주님의 교훈
본문: 누가복음 11장 5절∼13절
1. 내 현실에서 내가 제일 먼저 찾는 것은?
우리는 본능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면 엄마를 찾습니다. 아니면 119, 112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아니면 우리가 만난 현실에서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무엇인지 한 번 말해 봅시다. 이런 삶은 불신자들도 동일하게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의 공로를 입어 의인된 우리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삶의 이유와 동기와 방편을 불신자들과는 다르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 생활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며, 어떤 기도가 성경적인 기도인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2. 본문의 핵심
2.1. 친분보다 강청이 더 힘 있다
우리와 주님 사이에 관계되는 일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 떡 빌리는 이 비유를 하셨습니다. 떡을 빌려 달라고 할 때에 그때에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이 비유를 하셨습니다.
그러면, 벗이라 말은 서로 친하다는 말입니다. 친한 친분보다 강청이 힘 있다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친합니다. 주님을 날마다 부르고 또 주님을 생각하고 또 주님을 따르고 믿고 이래서 참 사람이 자주 만나면 정이 들고 친해지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과의 그렇게 친분이 두껍습니다. 날마다 주님을 사귀고 또 생각하고 또 믿고 또 기도도 하고 찬송도 하고 이렇게 주님을 상대하는 일이 많습니다. 상대함으로 주님과의 관계된 일이 많으나 그것보다 주님 앞에는 이 간절이라는 간절이 더 힘 있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주님과 사귄 친분보다 주님을 향하여 간절한 소원 이것이 더 힘 있다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간절한 이 소원, 강청이 없으면 안 됩니다. 날마다 그저 주님을 부르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하는 이것보다도 주님에게 강하게 청하는 강청하는 이것이 더 힘 있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2.2. 힘쓰지 않으면 안된다
둘째로는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이것은 다, 우리가 주님에게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면 열려지는 것은 다 그것은 주님께 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로 준비되어 있는 것은 우리가 구해서 얻을 것들이 다 준비되어 있고, 또 우리가 만나야 할 모든 것들이 다 준비되어 있고, 우리가 한층씩 들어가야 될 그 모든 들어갈 입구, 문들이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실 온갖 종류의 은혜가 다 준비되어 있다 하는 것입니다. 준비되어 있으나 이는 힘쓰지 안하면 안 된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구하는 힘을 써야 되고 찾는 힘을 써야 되고, 문을 두드리는 힘을 써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고, 준비해 가지고 있는 모든 은혜가 다 구비되어 있으나, 없는 것이 아니고 다 구비되어 있지만 이미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고 주시기로 작정하시고 이렇게 준비되어 있는 이 모든 은혜는 우리가 힘써야 된다, 힘쓰지 안하면 안 된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힘을 써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로 작정되지 않은 그런 것은 우리가 힘써 봤자 헛일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필요 없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하고 그것 때문에 죽어도 소용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그런 것은 다 주시기로 주님이 준비하시고 작정하고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에, 주님은 주시고자 원하고 계시고 또 우리는 그것이 필요하고 이런데 요는 우리가 힘쓰지 안하면 안 된다 하는 것입니다.
왜 힘쓰지 안하면 안 되는가? 안 되는 이유는, 우리가 힘을 안 쓸 때에는 거게다가 마음을 기울여서 그것을 자기가 얻어 가질 그런 필요성을 느끼지 안하고 있기 때문에 줘도 집어던져 버립니다. 그러면 주면 받아 가지고 던져 버리기 때문에, 오병 이어를 가지고서 하신 것을 보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을 먹이고도 남은 부스러기를 버리지 말고 낱낱이 주워라 해서 그거 주우니까 열 두 바구니에 찼다 이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헛되이 버리면 안 됩니다.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이 먹었으면 그만큼 하나님은 많이 불릴 수 있는데 그까짓 거 부스러기 그거야 생각할 게 뭐 있습니까? 그러나 그 부스러기를 남김없이 다 낱낱이 다 주워라 이랬습니다. 그것으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아무리 크고 또 풍성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지극히 부스러기 하나라도 업신여기고 저버리면 그것이 자기에게 큰 배은의 행위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자기와 크게 나뉘어집니다.
우리 사람들도 시은자가 있고, 은혜 베푸는 자가 있고 받는 자가 있는데, 은혜 베푸는 자가 원하는 것은 그 은혜를 기다리는 자에게 주는 것은 기쁨이 됩니다. 주는 것은 기쁨이 되고 얼마든지 주고 싶지만 받은 바의 그 은혜를 업신여기고 천하게 여겨서 던져 버리는 그것은 주는 자의 마음은 아주 싹 끊어 버립니다. 딱 가리워져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힘써, 힘써 그 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한다고 말씀하신 대로, 힘쓰지 않는 것은 주님이 주실 수 없는 것은, 힘쓰지 않는 것은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증거요 또 필요성을 느끼지 안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면 그 은혜를 배은하고 그 은혜를 저버려서 도로 죄가 되기 때문에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씀으로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힘쓴다는 것은 당신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우리가 되고, 우리는 당신에게 그 은혜가 참 필요해서 받아 가지고 강직할 수 있는 우리가 되는 우리 자체 문제지 우리가 그렇게 힘쓴다고 무엇이 당신에게 그와같이 만들어지거나 이루어지거나 그런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분은 완전자시요 불변자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온갖 주시기로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주실라고 애를 쓰고 주시기를 원하고 계시는 그 모든 은혜는 우리가 그 은혜가 우리에게 필요 있다는 그 필요성을 우리가 깨닫는 것이 중요하고, 또 그것이 없으면 안되겠다 하는, 없으면 안 된다는 그 낭패성을 우리가 깨닫고, 그 은혜를 주실 때에 내가 그 은혜를 잘 간직하고 그 은혜를 잘 써서 자기에게 구원이 되도록 이렇게 할 수 있는 우리의 자체 준비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그렇게 분석할라 하면 복잡한 말이지만 그저 힘쓰지 안하면 안 된다 요 한 말로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힘쓰다 보면 그런 것은 저절로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3. 주님과의 인연이 더욱 중요하다
2.3.1. 구할 때 나쁜 것 주시지 않는다
셋째로 말씀하신 것은 ‘너희 중에 아비된 자가 누구든지 자기의 자녀가 생선 달라 하면 뱀을 줄 자가 있으며 알 달라 하면전갈을 줄 자가 있겠느냐 너희들이 악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으로 주지 않겠느냐 좋은 것을 줄줄 알고 좋은 것으로 주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간청하는 것도 중요하고, 또 주님께 모든 필요한 것을 받을라고 힘을 쓰고 애를 쓰는 것도 중요합니다. 힘쓰는 것도 중요하고 애쓰는 것도 중요하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고, 간절한 그 간청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과 우리와의 이루어져 있는 그 인연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자녀가 아비에게 생선 달라 하면, 알 달라 하면 그렇게 정반대의 나쁜 것을 주겠느냐 좋은 것으로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겠느냐 너희가 악한 부모라도 그런데 선한 부모가 더욱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 말씀은,
우리가 잘못하면, 신앙생활 하는 데에 자기의 간절한 그 간청 그거 중요합니다. 간절한 그 간절함으로 주님에게 청하는 그 간청이 중요하고, 또 자기가 주님의 그 은혜를 받을라고, 입을라고, 은혜 생활 하려고 힘을 쓰는 것도 중요합니다. 중요하지만 잘못하면 평가할 때에 그것을 주님이 나와의 이루어져 있는 인연, 그 인연은 무엇인가? 주님이 하나님으로서 사람되시기까지의 그 모든 부요가 낮아지시고 또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의 하신 그 인연, 주님이 도성 인신하시고 세 가지 대속으로 죽으심으로써 우리와 인연되어 있는 그 인연이, 그는 무한히 큽니다. 그 인연이 무한히 크다. 네가 간청하는 것이 필요하고, 힘써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주님과 우리와의 그 관계되어 있는 인연보다 앞세우면 안 됩니다. 그러면 거꾸로 되기 때문에.
그 인연은 더 크다. 주님이 죽으심의 인연뿐 아니라 또 주님이 사람으로 다시 삼 일 만에 부활하신 것은 당신이 창조주가 피조물되신 그 수욕을 다시 입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똥 덩어리가 되는 것보다 더 힘드는 것이요, 우리가 송장을, 송장을 입고 다니는 것보다도 더 그것은 측량 못 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의 죽으심의 그 지극히 큰 사랑의 역사, 또 주님이 우리를 영원히 혼자 두지 못하시고 우리를 책임지시고 동행하시기 위해서 다시 피조물로서 부활하신 그 사랑의 인연, 그로 말미암아 우리와의 인연이 되어졌음으로써 우리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됐습니다. 그 인연이 더욱 크니 이 인연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잘못하면 우리가 자기가 노력하는 노력으로 뭐이 되는 줄알고 노력을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의 인연보다 노력을 더 높이 평가하기 쉽고 또 자기의 간절한 그 간청을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보다도 평가를 높이 하기 쉬운 것을 주님이 여기에서 경고하십니다.
그러고, 우리가 주님에게 구할 때에, 그러면, 생선 구하면 생선 줬느냐? 알을 구할 때에 알을 줬느냐? 떡을 구할 때에 떡을 줬느냐? 그것을 줬다고 말하지 안하고, ‘생선 달라 할 때에 뱀 주며 알을 달라 할 때에 전갈을 주겠느냐’ 주님에게 우리의 구하는 것을 나쁜 것으로 주시지 않는 것을 여기에서 단정을 지웠습니다. 우리가 주님에게 구할 때에 나쁜 것을 주지 않는 것을, 정반대로 나쁜 것을 주지 않는 것을, 해로운 것을 주지 않는 것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판정 지워서 우리에게 안정을 주십니다.
2.3.2. 철없이 구하는 것대로 주시지 않는다
주님에게 구할 때에 우리가 구하는 대로 그대로 주시느냐? 생선 달라 할 때에 생선 줬으면 또 알 달라 할 때에, 계란 달라 할 때에 계란을 줬느냐? 계란 줬다 그렇게 말씀하시지 안하고 좋은 것으로 주신다 그것을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에게 구할 때에 내가 구하는 것을 나쁜 것으로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이것을 우리가 확신을 가져야 되겠고, 또 주님에게 구할 때에, 내가 구하는 것은 어리석어서 뭘 구해야 될 줄 모르고 철없이 벌로 구합니다. 어린 아이가 자꾸 그 앞에 무슨, 쥐 잡을라고 쥐약이 있으니까 그 약을 보고서 거머잡았다가 그거 먹으면 죽기 때문에 어머니가 그것을 달래서 빼앗으니까 울면서 야단을 지깁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 앞에 무엇을 구할 것을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 구해서 그것을 주님이 주시면 우리에게 큰 해독이 될 그런 것들이 많기 때문에, 구하는 것을 정반대로 나쁜 것 주시지 않는다, 우리가 철없이 구하는 것을 구한다고 구하는 그대로 줘 가지고 우리를 실패하도록 그렇게 하시지도 않는다 이 두 가지를 말씀해서 우리에게 위험을 방지해 가지고서 확신을 주시는 이 큰 확신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2.3.3. 성령을 주신다
그러면서 ‘밤낮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것으로서 결론을 지웠습니다.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는 것은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무엇을 구할 것을 구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이라 말은, 그게 탄식이라고 기록했지만 말할 수 없는 소원 간절한 소원을 가리켜서 탄식이라고 거기에 발표가, 우리나라 말은 말이 몇 가지 안 되기 때문에 그 세밀한 말을 다 구비하게 발표를 못 합니다. 단어가 적습니다. 말할 수 없는 소원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우리에게 기도할 바를 알려 주시고 대신 우리를 붙들고 기도해 주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래 구하든지 저래 구하든지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구하고, 또 우리가 힘을 써서 주님에게 무엇을 구하고, 그게 좋은데 그것보다 주님과 우리와의 죽으심으로 이루어진 인연, 주님이 다시 피조물을 입으심으로써의 이루어진 인연 이 인연은 무한히 크다. 이 인연을 기억하라. 인연이 크고, 너희들의 간청이 힘이 있고 너희들의 힘쓰는 것이 힘이 있기 때문에 너희들이 이런 것 저런 것 혹 몰라서 철없이 구한다 할지라도 너희들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신다 하는 것을 발표해서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령이 오시면, 성령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지,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지, 또 성령은 우리의 옳은 것을 찾았을 때에 그 일을 완성하시는 그 능력으로 역사해 주십니다. 그러면 성령은 우리에게 생명으로 역사하시지, 우리의 인도자로 역사하시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완성자로서 역사하시지, 이러니까, 이 성령을 주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모두 필요 있는 모든 것을 다 주신다.
3. 우리가 할 일 세 가지
이제 우리가 할 것은 세 가지가 우리 할 것입니다. 첫째 우리가 해야 할 제일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인연입니다. 인연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이 죽으심으로 우리와의 맺어진 이 인연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이 또 피조물로, 부활은 우리 사람한테 죽었다 부활했으니까 좋은 줄 알지만 그것은. 창조주가 피조물 입는다는 것은 그 이상 더 모욕이 없는 것입니다. 그 수치가 없는 것이고 어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데, 주님이 부활하심으로써의 그 인연, 부활하심으로써의 우리와의 인연이 맺혀졌고, 인연이라 말은 원인으로 인해 가지고서 연결이 됐다 그 말입니다. 주님이 죽으심으로써 우리와 연결됐고 또 주님이 다시 부활하심으로써 연결된 이 연결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 연결을 잃지 마십시오.
주님이 창조주시요 하나님이신데, 지금도 그 능력은 없는 게 아니고 그 능력 가졌습니다. 이 능력을 다 일단 희생해 가지고서, 우리를 대속하셨었는데 또 우리를 위해서 피조물을 입으셨는데, 이분이 지금도 하나님이시요, 지금도 전능자시요, 지금도 주권자시요, 지금도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십니다. 이런데, 이분과 우리와의 맺어진 이 인연, 요 인연을 언제든지 잃지 마십시오. 이 인연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뭐 죽기까지 단식하고 간청하는 그것도 좋지만 그거와 이 인연과 비교한다면 이 인연과 그 간청이라 하는 것은 억억만분의 일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내놓고 죽기까지 힘을 썼다 할지라도 그것도 이 인연과 비교하면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할 일은 간청이 필요합니다. 간절한 이 간절이 있어야 되지 간절 없으면 신앙이라 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노력이라는 힘을 써야 되지 힘 안 쓰면 안 됩니다. 그게 무엇이냐? 우리가 노력하고 간청함으로 무엇을 그것을 조성한다는 말이 아니오. 조성한다는 말이 아니고 주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을 내가 받아서 감당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결론에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면, 성령은 우리가 간청하는 그 간청을 주님이 들어 주실 수 있도록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우리, 받아서 감당할 수 있는 우리를 만들어 주시는 것이 성령입니다. 우리가 힘쓰는데, 힘쓰니까 주님은 애터지시지만 우리의 힘써 구하는 그것을 주님이 주시면 감당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빨리 만들어져야 되겠는데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만들어 지도록 힘쓰는 것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아침에 배운 데서 요 세 가지를 우리가 기억합시다. 주님과 나와에는 주님이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은, 끊을 수 없는 영영한 인연 있는 이 인연을 우리가 언제든지 굳게 잡아야 할 것이고, 이 인연이 나에게 지금 효력 있게 역사하는 데에는 내가, 당신이 이 은혜를 주셔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화가 돼야 되지. 사람이 안 된 그 사람에게 돈 주면 그 사람 돈으로 망해 버리고 맙니다. 철이 없는 아이에게 비수검이나 칼을 주면은 그 칼로 말미암아 그 아이는 상하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고 구비해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되는 것이 지금 급선무입니다. 사람 되게 하는 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야만 됩니다. 성령이 오셔야 되는데 그것은 또, 성령 오시는 것은 우리가 간청과 노력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우리에게 오실 수 있고 우리에게 또 역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연 요것을 제일로 잊어버리지 말고 언제든지 기억하고, 인연을 언제든지 앞세워야 됩니다. 인연이 있기 때문에 내가 순교도 하는 것이고, 이 인연이 있으니 순생도 하는 것이고, 이 인연이 있으니 모든 것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 인연이 있으니 주님을 든든히 의지하는 것이고, 이 인연이 있으니 주님에게 구하는 것이고, 주님이 주시는 것이고 인연이 있으니 나를 보호할 것을 안심하고 있는 것이고, 주님과 나와의 인연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만 하는 요 인연을 잊어버리지 말고 단단히 기억해야 되고, 다음으로는 우리가 간절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간절한 소원과 간절한 그 노력 이것이 필요합니다.
그 보충의 상식적으로 알 것은 우리가 기도하는데 잘못 기도한다 할지라도 주님이 우리에게 해로울 거는 안 주십니다. 해로울 거는 안 준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이런 기도 저런 기도 어떤 기도를 한다 해도 해로운 것은 주시지 않습니다. 또 해로운 것을 안 주시는 동시에 우리가 철없이 구하는 것을 구하는 대로 줘 가지고서 해가 될 것을 그런 것을 주시느냐? 그것도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할 때에는 어쩌든지 그 답은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4. 기도를 일순위로 두고 기도에 더욱 힘써라
벗됨을 인함보다는 간청이 힘이 있었다. 그저 우리가 주님과 친해서 주님 날마다 부르고 주님 믿고 의지하고 사모하고 하는 이것보다도 간청이 필요하다. 벗보다도, 친한 벗 인연보다도 간청이 필요하다. 또 아무리 주시기로 다 되어 있는 것이라도 우리가 힘쓰지 안한면 그것을 우리가 얻지 못하게 된다, 가지지 못하게 된다. 그것보다도 주님과 우리와의 이 주님의 사활로 된 이 인연은 더욱 더 크다 이 인연은 너희들이 중언부언해도 구하는 것을 해로운 것을 주시지 않는다. 잘못 구해도 잘못 구하는 것을 잘못 구한 그것으로 주지 안하고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신다. 너희들의 모든 노력은 이래 노력하는 노력할 때에 성령을 주신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기도에 힘쓰지 안하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은 힘 안 쓰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비유하기를 신앙생활은 두발 자전거 걸음과 같다, 두발 자전거는 빨리 달릴수록 힘이 있고 섰으면 넘어간다, 그래 신앙생활은 중단하면 절단난다. 힘만 쓰면, 자꾸 달리면 힘이 더 난다, 더 난다. 그러면, 당신이 뭐 못 할 것 없기 때문에 몸도 강건하게 해 주시고 모든 것 또 힘을 쓸수록 더 해 주신다.
{참조. 86010830}
셀 모임 나눔 제목
1. 본문(눅 11:5-13)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
⑵ 우리에게 다 주실 수 있지만 간절한 필요성을 느끼고 강청의 기도를 하기를 원하시는 분.
⑶ 우리가 기도 할 때 가장 좋은 것을 응답하시는 하나님.
2. 내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 모든 현실에서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살아라!
☞ 적당한 기도가 아닌 강청의 기도를 하라!
☞ 항상 좋은 것, 즉 성령을 주심을 믿고 기도하고, 성령을 따라 순종하라!!!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2-06 2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