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현실

2008.11.29 20:50

윤봉원 조회 수:816 추천:54

벧전 5:12008112633날자: 2008년 11월 26일 수밤
제목: 기회의 현실
본문: 베드로전서 5장 1절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라
1. 지나 놓고 남는 것은?
세월 지나고 남는 것은 돈, 권세(노무현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시끄러운 이야기, 전직 두 대통령의 감옥행), 부귀, 영화, 미 어느 무엇도 지나 놓고 보면 별로 남는 것이 없으며, 남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 효력의 범위가 이 땅에 한정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을 지나 놓고 영원무궁토록 효력을 발휘하며 남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두 가지로 요약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진리와 영감을 따라 순종함으로 내 자신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란 것입니다. 즉 주님의 제자된 것입니다. 이면은 자라면 자랄수록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은 구원의 영향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전구의 밝기가 30W, 60W, 100W,,,,몇 만 W 밝기냐에 따라서 어둠을 비춰 주는 범위가 달라지듯 말입니다.
둘째, 가서 제자 삼으라는 주님의 뜻을 따라 다른 사람은 구원한 것만 가장 큰 수입으로 남습니다. 즉 다른 사람은 주님의 제자로 성장 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베드로가 장로들에게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라’라고 인사를 합니다. 본래 장로는 각 교회가 세운 직분으로 사도들을 도와 교회의 행정과 관리, 목회, 설교 등을 했는데, 유대인들이 중심인 교회에서는 그들의 지도자들을 ‘장로’라고 불렀고, 헬라인들이 중심이 된 이방 교회에서는 그들의 지도자들을 ‘감독’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장로와 감독은 같은 직분을 뜻합니다. 그런데 사도인 베드로가 스스로 자신을 '장로'라고 부르는 것은 사도로서 고자세나 권위주의를 나타내지 않고, 지방 교회 지도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고자 하는 배려에서 나온 친절의 표시입니다. 이와 같은 겸손한 자세는 초대 교회 사도들의 일반적 모습이었습니다. 즉 초대 교회 사도들은 그 특권적 명칭보다 장로란 보편적인 칭호 부르기를 좋아한 것입니다(참조, 행 21:18 ; 요이 1:1). 그러나 어디까지나 신약 당시의 권위직은 사도직이었지 장로직은 아니었습니다. 성도들이 오기를 바랐던 직분은 사도직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직접 본 자요 대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모임에서든 사회하고 설교하고 교훈하는 자들은 사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도의 권위를 내세워 군림하지 아니하였고 겸손하였으며 동등한 입장에서 권면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개교회의 장로가 맡고 있는 일도 역시 목회적인 일이므로 이처럼 양 무리를 치되 본이 되고 겸손한 자세로 해야 합니다. 겸손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완전하게 누리게 될 ‘영광에 참예할 자’였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된 것은 베드로에게 있어서 특별한 영예이었으며 보다 큰 영광이었다. 그러나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가 되는 것은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의 특권인 것이다.
어제 창원 서머나 교회에 가서 D12 경남 지역 네트워크 모임에 가서 들은 간증과 김성곤 목사님의 다양한 간증 이야기 등은 나에게 많은 도전을 주었다.
이은영 집사, 오명석 집사 이야기는 또한 전도한 수입은 얼마나 효력적인지를 알게 되었다.
2. 하늘나라의 영광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의 현실
주님은 우리를 가서 제자 삼으라고 하셨다. 우리 또한 이를 위해서 전도하고 심방하는 것은 선지 사도들이 한 그 장로들이 하는 일에 참여하는 일이요, 곧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위해서 모든 걸 창조하셨고 섭리하시고 보존하시는 이 지극히 큰 영화로운 일에 우리가 참여해서 계대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실 때에 유언으로 남기고 가신 말씀입니다. 제일 원하셔서 부탁한 말씀입니다.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제거되지만 하늘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때에 그때에 영광은 이것으로서 결정됩니다. 이 하나로 그 나라의 영광은 결정됩니다. 그런고로 그 나라의 영광을 지금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베드로처럼 우리가 힘쓸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감사하면서 기념하는 일이요, 또 그리스도의 고난에 내가 참여하는 일이요, 또 그리스도의 고난의 역사를 내가 일으키는 일입니다.
3. 제사장 역할의 가치를 이해하라
그러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권세 땅에 있는 권세를 다 가지시고 이 일 하는 자에게만 동행해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이 일이 무슨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이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이 하나만 했다. 또 이 하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지금도 이 한 가지만 하신다. 이 한 가지만 하는 자에게 동행해 주신다.’ 이 한 가지의 가치는 제사장 역할을 감당 하는 것이며, 선지자 역할을 하는 것이며, 왕 역할을 하는 것이며, 또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의 실력을 기르는 것이며, 제사장이 하는 일 선지자가 하는 일 왕이 하는 그 결과를 맺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이 일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 일만 합니다. 이 일이 제일 중하고 이 일 외의 것은 다 망하고 불탈 것입니다.
제사장 일은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조화를 바로 맞추어서, 하나님은 피조물을 좋아하고 피조물은 하나님을 좋아하도록 그 사이 조화를 잘 맞추게 하는 이 중보의 역할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심이 그 지혜에 있는데, 지혜로 나타나서 그 실상이 이루어지는데,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피조물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또 피조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만 복종하는 자 되어지도록 통일 정치의 이 정치 운동 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이 외에는 가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전도하고 심방하는 그 걸음은 첫째, 악령에게 사로잡혀 있는 자를 하나님의 제사장을 만들기 위해서 가고, 선지자를 만들기 위해서 가고, 왕을 만들기 위해서 가는 걸음입니다. 둘째, 우리 자체가 제사장 역할 하러 가는 것이요, 선지자 역할 하러 가는 것이요, 왕 역할 하러 가는 것입니다. 셋째, 주님이 제일 소원하시는 일이요, 또 하늘에 있는 권세 땅에 있는 권세를 가지시고 이 일 하는 자에게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어떤 자라도 이 일 할 때는 동행하시겠다고 하는 이 배경이 든든한 일입니다.
4. 다른 지체를 주님의 참 제자로 세워가는 일에 무익한 종으로 죽도록 충성하라!!
주님의 대속의 피공로로 예수님짜리 된 우리들은 이제부터 우리의 생명 끝나는 날까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 즉, 제사장 노릇의 가치를 깨닫고 제자장 역할을 잘 무익한 종으로 충성스럽게 잘 감당함으로 다른 지체들을 주님의 참 제자로 세워가는 이 일에 죽도록 충성하는 자들이 됩시다. 이 일만 우리가 가치로 삼을 것이요, 영원무궁토록 불타지 않고 영광의 면류관으로 남을 일을 하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승리하세요.
{참조. 82060600}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1-2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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