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구원

2008.03.27 06:19

윤봉원 조회 수:1469 추천:67

롬 6:22-232003032301날자: 2003년 3월 23일 주일 오전
제목: 십자가와 구원
본문: 로마서 6장 22절 - 23절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1. 죄의 삯은 사망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죄와는 싸워야 한다. 죄와는 싸워 이겨야 한다. 안 싸워서 지고, 힘을 안 써서 져요. 죄는 어떻게 해야 하나. 구원을 얻어야 한다.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 얻는다면 율법주의다. 우리가 폐해야 하는 것은 율법입니까? 율법주의 입니까? 바리새인들이 교만하다가 율법주의로 빠졌다.
율법은 지키면 복을 받는다. 못 지키면 매는 맞지만 죽지는 않는다. 징계가 없으면 참 아들이 아니다. 죄를 깨닫고 치료자에게로 가는 것이다. 치료자는 예수 그리스도다.
죄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권한이 없다. 상대방이 용서를 해 줘야 사함을 받는 것이다.
탕자 비유에서 탕자가 안돌아 왔으면 용서를 못 받았을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고, 인간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탕자는 자기 할 일 최소한의 회개를 할 때 아버지께서 용서해 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용서의 주도권은 아버지에게 있다는 것이다.
칼빈은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력한 존재다고 이야기 했다.
죄는 용서가 있어야 한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용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예수님에게 하루에 일곱 번 용서 해 줬다. 이것은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490번 용서 해 줘라 했습니다. 이것은 가능한가요? 여러분도 하고 산다. 꼭 한 가지 경우에만 가능하다. 자식이 부모를 그것은 안되고, 부모가 자식을  다 그런 경우는 아니고 가능성은 있다.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사랑하라. 이것은 가능할까? 가능할 수도 있고, 불가능할 수도 있다. 사랑이 있으면 된다. 부부 사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자식은 가능하다. 사랑이 있기에.
목사와 사모의 금술은 좋아야 한다. 그래야 마귀가 틈을 못 탄다. 우리 사이는 어떼요? 목사가 아내를 용서 해 주는 것은 490번 가능할까요? 그러나 자식에 대해서는 가능하다. 얼마만큼 사랑하느냐가 얼마만큼 용서를 할 수 있느냐가 결정이 된다. 여기서 십자가의 비밀이 풀린다.
2. 십자가는 사랑이다.
왜 하나님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셨을까? 십자가가가 사랑이다. 이 보다 더 한 사랑은 없다. 만약 이 보다 더 한  사랑이 있다면 그 방편을 택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사랑하사. 그냥 “이처럼”과 “이-처럼”은 차이가 있다.
사단이 우리의 일평생 짓는 헤아릴 수 없는 모든 죄에 대해서 영원토록 말을 못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단 번에 죄의 값을 ‘테텔레스타이’ 완벽하게 영원히 치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버지와 자식 관계를 생각 해 봅시다. 같이 식당에 가서 밥 먹었을 때 만약 돈을 안내고 나가면 잡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계산을 하고 나면 자식이 돈을 안내도 안 잡는다. 왜? 아버지가 지불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값을 치렀기 때문에 사단도, 그 누구도 말을 못한다. 왜? 예수님이 값을 치렀기 때문에. 아멘이 되십니까?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구원 얻었다. 구원의 확신이다.
202장 찬송가 1절) 죄에서 자유를 얻게함은 보혈의능력 주의보혈 시험을 이기는 승리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보혈 능력있도다 주의피 믿으오 주의보혈 그어린양의 매우 귀중한피로다
2절) 육체의 정욕을 이길힘은 보혈의능력 주의보혈 정결한 마음을 얻게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보혈 능력있도다 주의피 믿으오 주의보혈 그어린양의 매우 귀중한피로다
3절) 눈보다 더 희게 맑히는것 보혈의능력 주의보혈 부정한 모든것 맑히시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보혈 능력있도다 주의피 믿으오 주의보혈 그어린양의 매우 귀중한피로다
4절) 구주의 복음을 전할제목 보혈의능력 주의보혈 날마다 나에게 찬송주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보혈 능력있도다 주의피 믿으오 주의보혈 그어린양의 매우 귀중한피로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나도 구원 얻었다!
그래서 바울은 여기에 대해서 로마서 5장에서 계속 해서 한 사람 아담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로 인하여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다. 그러나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한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다는 것을 거듭 거듭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사하는 줄 믿습니다.
3. 예수의 족보에 등장한 여인들의 메시지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의 족보가 나온다. 지금은 여자가 큰 소리를 칩니다. 남녀 평등이지요. 그런데 요즘 난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그 때는 여자는 숫자에 치지 않았다. 예수님 족보에는 원칙적으로 여자가 없다. 아버지와 아들, 지극히 남성적인 방식으로 기록이 되었다. 그런데 여자 이름, 다말, 라합, 룻,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등장한다.
3.1.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이방인(異邦人)이었다.
다말은 가나안(창 38:11, 13-14; 대상 2:4) 사람이었다.
라합은 유대인이 아니고 여리고(수 2, 6장) 사람이다. 기생이다. 그 당시에 제일 수치스러울까? 이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문화적 상황은 기생은 사람, 이방 여인은 개로 취급할 때이다. 그 때 감각으로는 이방여인이 족보에 들었다는 것은 개망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록되었으니 이것이 복음의 진수이다.
룻은 모압(룻 1:4) 출신이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는 우리야가 헷 사람이었다는 점은 감안할 때, 헷 여인이었든지 아니면 최소한 헷 남자의 아내였다(삼하 11-12장). 특히 그를 밧세바라고 하지 않고 우리아의 아내라고 한 것은 이러한 이방적 요소를 더욱 분명히하고자 하는 마태의 관심의 표현으로 보인다.
이는 예수께서 이스라엘뿐만 아이라 이방의 혈통과도 연관을 갖고 이 땅에 오셨다는 점과, 따라서 그 예수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을 위한 그리스도도 되신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3.2. 이들은 모두 비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하였다.
다말은 시아버지를 유혹하여 육체적인 관계를 가져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창 38장). 라합은 창기였다(히 11:31). 룻은 재혼을 하였다(룻 4장).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는 간음과 재혼을 하였다(삼하 11-12장).
이러한  사실은 윤 목사의 족보에 쓰기에 부끄러운 일인 것이다. 시아버지에게서 낳은 것이야, 기생에게서 낳았다. 옆 집의 아내를 빼앗아서 너를 낳았어.
이 넷의 이름이 엄청난 멧시지다. 이게 복음이다. 복음은 어떤 죄인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 번 용서하고 깨끗하게 한다면 뒤끝이 없는 것이다.
밧세바가 처음 나은 자식은 죽었다. 회개하고 난 자식은 살려 주었을 뿐 아니라 왕을 삼았다. 용서하면 완전하게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복음이다.
예수께서 이처럼 정상적이지 못한 결혼 생활의 경력이 있는 여인들과 연관을 갖고 이 땅에 오셨다. 이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이 사실은 예수께서 이와같이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주 선한 사람과 매우 악한 사람의 구주로 오신 구주  되심을 시사해 준다. 사람들의 죄가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방해받지 않았으며 구원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우리 자신들을 돌아봅시다. 모세, 솔로몬, 다윗 이야기 나오면 괜히 기가 죽고 희망이 없으나, 앞에 열거한 네 여인의 이름을 들으면 희망이 있고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어김없이, 빠짐없이 구원의 선물을 예수님께서는 주시기 위해서 오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완벽한 구원의 선물을 주셔서 받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12, 17~20)
4. 사단의 장난에 놀아나지 말라
사단은 죄를 짓게 할 때에 양심을 어기는 것으로 죄를 짓게 한다. 죄를 지은 다음에는 양심을 붙들고 시험한다. 너 같은 놈이 어떻게 목사가 될 수 있느냐? 내가 죄가 있다는 것은 내가 알고 하나님이 아신다. 당신이 값을 치르고 구원한 관계이다. 기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람이구나. 사람 노릇 못하는 놈을 건져 놓았더니 이제 목사가 되었구나.
사단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죄 사함 받은 것을 의심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죄 용서해 주심을 믿어, 당당하게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제가 목사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대단한 은혜입니다. 나같은 죄인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니요. 진광교회 성도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있다니요. 한 편으로는 육신의 부모님보다도 우리 성도들이 저를 더 사랑해 주시는 것 같아서 혼자 생각해 보면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뭣만 자랑해요.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죄가 있어요. 가책을 느낍니다. 그래도 흰 눈같이 깨끗함을 받았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매를 듭니다. 초달을 못하면  성경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 13:24)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 12:8)
 아빠가 자식을 용서 해 줬으면 깔깔거리고 웃어야지. 문 닫고 책상에서 머리를 치면서 나는 죄인이야. 나 같은 놈은 용서를 받을 수 없어 하면 겸손한 것 같아도. 교만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라.
여인들 중에는 은혜를 잘 받아도 얼굴이 어두운 사람이 있다. 대학생 때  순결을 잃어 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에 헌금하고, 기도하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죄 사함 받았으면 하나님의 은혜로 새 삶을 살아 줘야되지 그렇게 살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십자가가 은혜이다. 죄에서 자유함을 얻어야 합니다. 모든 죄를 사함 받았다는 것을 믿기 바랍니다.
예수 믿으세요. 구원 얻었어요. 구원 얻을 거예요. 얻은 것예요.
5. 구원(영생)의 효력은 영원하다!
운동을 좋아한다. 지금 배드민턴, 야구, 축구 보는 것을 좋아한다. 박찬호. 박찬호가 5승인가 할 때 이긴 것은 녹화로 본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박찬호가 이긴 것을 이미 안다. 1회에 19개를 던졌다. 이것 위험한데요. 컨디션이 나쁜데요. 녹화 테입 속에 있는 아나운서는 박찬호가 이긴 것을 모른다. 그러나 나만 안다. 홈런을 맞아도, 만루가 되어도 천하태평이다.
예수 믿고 구원 얻었다는 것은 이것과 같은 것이다. 예수 믿고 사는 것은 지금 몇 회인지는 모르나 끝은 구원이라는 것이다. 만루되면 어떻습니까? 홈런 맞으면 어떻습니까? 투수로서 열 아홉 개 아니라 190개를 던진 덜 무슨 소용이 있어요. 이미 이겼는데 말입니다.
결국은 예수님의 사활대속으로 구원을 얻은 자들이기에 걱정 없습니다. 담대합니다. 승리하는 것입니다. 나는 구원을 얻은 사람이라.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9)
군에 가서 자살하는 아들은 이등병 일등병이 죽지. 병장은 안 죽어. 제대 날짜 얼마 안 남았으니까? 제대 날짜 앞둔 사람은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시간은 간다. 제대 날짜 잡아 놓은 사람과 같다. 구원 받았다 이 말입니다. 지금 당하는 고난은 장차 받은 고난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도다.
그것 없으면 희망이 없으면 콱 죽지 이런 생각이 들지만, 우리는 이미 구원 받은 사람인데,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내가 당하지 아니하고 이것이 기독교이다. 상황은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도 꼭 같다. 둘 다 시험을 당한다. 안 믿는 사람은 이겨낼 힘이 없는데, 이겨낸 사람은 이길 힘이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6-7).
따라서 십자가의 은혜가 영원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살면서도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요. 여러 분은 몇 회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힘든 세상 강하게 이겨 나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감사, 찬송하며 주님이 주시는 이김으로 승리 생활을 하는 주인공이 됩시다! 할렐루야!!
예수는 모든 혈통의 구주시다! 예수는 모든 이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셨다! 사단의 장난에 놀아나지 말라! 우리는 영원한 의인이요 영생을 가진자이다! 구원의 효력은 영원하다!
할렐루야!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3-27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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