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음성을 들으라

2006.01.13 08:18

윤봉원 조회 수:1713 추천:133

눅 8:82006010913

날자: 2006년 1월 9일 월밤
제목: 성령의 음성을 들으라
본문: 누가복음 8장 8절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 나의 삶의 주체는 누구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주님의 피에 팔려서 주님의 것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의미는 우리가 주인이 아니면서 우리가 주인인양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은 강도요, 절도요, 도둑놈인 것이다. 이전까지 내 마음, 내 생각, 내 뜻대로 살아 온 모든 죄를 이 시간 회개 합시다. 다 내려 놓읍시다. 이러한 방법은 우리가 살 자격도 없고, 살아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2. 우리도 과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자라면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야 하는 이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어떤 마음을 갖추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오해되기 쉬운 말, 가장 오용되고 남용되기 쉬운 말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인 저로서도 누군가 내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면, 때로 좀 의심스러워집니다. 저는 알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걸 알죠?”
그러나 가짜가 있다는 것은 언제나 진짜가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2000원짜리 위조지폐를 본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2000원짜리 지폐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만 위조 할 수 있습니다. 이해되십니까? 제가 하려는 말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말씀하기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채널을 맞출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누가 복음 8장 8절에서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찌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께 채널을 맞추는 데 필요한 장비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는 이미 그 장비가 있다. 나는 이미 네게 내 말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그러나 넌 내게 채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라디오나 TV 채널을 맞추지 않으면 아무리 방송국에서 방송을 해도 그 방을 시청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어떻게 채널을 맞추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또는 네 가지의 밭의 비유로 불립니다. 누가복음 8장에 나오고 있습니다.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 하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 쌔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찌어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이 농부가 나가서 씨를 뿌린다고 말합니다. 한번에서 씨 하나씩 심는 것이 아니라 씨를 흩뿌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씨가 각기 다른 밭에 뿌려지며 그것이 뿌려지는 밭의 형태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씨는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냅니다. 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여러분이 지닐 수 있는 네 가지 다른 마음의 태도, 인격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4가지 다른 결과는 네 가지의 각기 다른 마음 또는 각기 다른 마음의 응답을 나타냅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들을 수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어떤 마음을 갖추어야 하는지, 어떻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살펴보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게 왜 중요한지를 살펴봅시다.
3. 성령의 음성을 듣고 살아야 하는 이유
 주인의 뜻이기 때문에
 거역한 노아 시대의 사람들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저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즉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하고, 그에 맞춰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인지를 파악하여 그분의 뜻에 맞춰서 살아가는 남은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더 쉽게 표현하면 우리의 삶의 주체를 주인도 아닌 내가 주인인양 착각하고 살아온 이전까지의 삶에서(‘착각은 자유이나 노망의 지름길이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께로 돌려 드리는 삶인 것입니다. 이는 곧 성령의 음성을 따라서 온전히 순종으로만 살아가는 것을 의미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주인의 뜻 즉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항상 악하게 산 노아 시대의 사람들을 돌아 봅시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건강과 지혜와 부와 가족과 직장등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이 항상 사람 중심, 돈 중심, 명예 중심, 권력 중심, 출세 중심, 안락 중심으로 열심히 홍수가 와서 노아 여덟 식구가 방주에 들어 가던 그날까지 살았습니다. 그 결과 어떤 결과가 왔습니까? 송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기도 다른 사람도 전혀 구원을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그런 무리의 종류와 같이 살다가 가서야 되겠습니까?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순종한 다윗
다윗처럼 하나님이 보시기에 마음에 쏙쏙 드는 삶을 살아가기를 하나님은 원하셔서 지금까지 우리를 하나님 자녀 삼아 주시고, 피흘려 구원하여 주시고, 이 시간까지 보존하여 주시고, 양육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신 것입니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행 13:22)
우리도 다윗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됩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됩시다. 누가 되자고요? 내가! 내가! 바로 내가 주인공이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러려고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가족임을 증명해 준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 관계 맺고 있음을 증명해줍니다. 여러분, 저는 어느 유명 배우와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전 항상 그 친구에게 편지를 씁니다. 하지만 그는 한번도 답장을 보내지 않는 다면 우리가 친한 사이일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나는 그저 팬일 뿐입니다. 따라서 내가 하나님께 얘기한다면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들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관계 맺었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질문해 보아야만 합니다. 요한복음 10장 27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하나님은 자녀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자녀에게만 말씀하신다는 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모세나 또는 그 비슷한 사람이기나 한 것처럼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이야기 하실 것이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 모두는 부모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녀에게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모든 자녀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형통할 때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 여러분의 자녀들이 몹시 힘들어할 때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더 많이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이야기하면 그들은 우리의 음성을 압니다. 하지만 아기 때는 자녀들이 부모의 음성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아기들은 부모의 음성을 듣고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게에서 만난 낯선 사람도 그런 눈빛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하지만 자라면서 부모의 음성을 구별하게 됩니다.
우리가 여러분이 영적으로 성장하기 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아버지의 음성을 알아채고 다른 음성들과 구별하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일생의 과제입니다. 그러나 점점 더 쉬워질 겁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잘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음성을 외부에서 듣는 다른 모든 음성들로부터 잘 구분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임을 증명해줍니다.
 하나님께 인정 받고 성공하는 길
시편 일편에 보면 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이 나오는데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의 생사화복의 주권자 되시는 그분이 우리를 인정하시고 함께 하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 우리의 삶은 성공이요, 형통이요, 열매가 있는 삶이 되지만 그분이 인정치 않고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송장이 되는 것이요, 실패요, 망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단호히 선포 하셨습니다.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예수님의 피공로로 구원을 받은 예수님짜리 된 우리들이 바보로, 항상 실패와 부끄러운 결과만 낳는 삶을 살아서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기를 얼마나 소원하시는지 아세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요삼 1:2~4)
성경은 시편 32편 8절에서 말합니다.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저는 하나님께서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시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삶의 진정한 의미에 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위한 성공의 정의, 계획을 갖고 계신 걸 아셨습니까? 바로 여러분을 위한 맞춤형 길을 준비하고 계신 걸 아셨습니까? 받아 적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더 많이 귀 기울일수록 나는 더 유능해질 것이다. 이것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때 얻는 세 가지 유익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3절 이하에 보면 성령의 음성을 듣고 마음으로 인정하고 입으로 고백한 베드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수 많은 사람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내용대로 예수님을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배우고 듣고 알고 있는 지식대로 살아가면서도 그것이 옳은 줄 알고 철저하게 믿고 사는 삶, 즉 속고 살았다는 것이지요.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 16:13-14)
여러분들은 이렇게 살아 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의 삶은 주님께 인정 받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는 질문에 그 수 많은 지식과 말들을 부인하고 성령님이 알려 주시는대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고 정답을 맞추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 답을 얼마나 듣기를 원하셨을까요? 그 때에 주님이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 인정해 주었고 그에게 세 가지의 놀라운 축복을 하여 주었던 것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 16:18-19)
이와 같이 우리도 수 많은 지식이나 학문, 사람들의 여론을 따라 살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음성을 듣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인 것입니다.
 내가 실수하지 않도록 막아줍니다.
여러분이 귀 기울인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인생의 함정들을 미리 경고하실 것입니다. 그는 잠언 3장 6절에 있는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귀 기울일 때나 순서대로 매일 읽어나가는 성경을 읽을 때 떠오르는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이 “오늘 이것을 조심하거라.”하고 말씀해주신 적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그분께 귀기울인다면 이것은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그저 일상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예를 든다면 무단히 나를 방해하거나 공격하고 마음 상하게 하는 사람에 대해서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시 37:1-2)
만약 그러한 상황에서 원망 불평 짜증 신경질을 냈다면 믿음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40년 간의 광야 생활을 거치면서 자기의 옛사람을 많이 제거하고 주님께 부름을 받아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면서 그들이 틈만 나면 모세를 원망 불평하니까 모세는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하기도 하고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민 20:10)하고 혈기를 부리면서 반석을 두번 가리키지 않고 치는 악을 행함으로 그렇게도 그리고 그리던 약속의 땅 가나안을 느보산에서 구경만 하고 들어 가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저희가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저희로 인하여 얼이 모세에게 미쳤나니”(시 106:32)
성령의 음성을 듣고 살아 가면 이런 실수와 실패를 막아 줍니다! 아멘!
 피조물들도 원하는 길
마지막으로 우리가 사용하고 누리고 있는 옷, 신발, 컴퓨터, 휴대폰, 안경, 책, 각종 운동기구, 밥,반찬, 각종 집기 등 이 모든 것들도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지어 둘째 사망의 해를 입는 거기에 쓰임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도 우리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함으로 순종함으로 의와 믿음으로 구원을 이루어 영생을 이루어 나갈 때 같이 천국에 가서 영원한 영광의 자유를 누리는데 동참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 피조물들의 소원이 들립니까? 그들의 하소연이?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 8:21)
4.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준비해야 할 네 가지
 열린 마음을 길러야 합니다.
 교만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 원한다면, 먼저 열린 마음을 길러야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수용적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발적, 개방적, 열정적이 되어야 합니다. 준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데 있어 방해물 1호는 저항입니다. “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걸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걸 믿지 않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혹 그들에게 말씀하실 수 있다는 가능성에마저도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분은 말씀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첫 번째 종류의 밭 ‘길가’ 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8장 5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세 더러는 길가(농장에 있는 보행자용 작은 길을 말합니다.)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농장에는 늘어선 채소들의 줄 사이에 사람들이 다니는 작은 길이 있습니다. 이것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일꾼들이 딸기나 그 비슷한 것들을 딸 때 지나다니는 길입니다. 일꾼들이 지나다닐 때 이 길은 수없이 짓밟힙니다. 땅은 굳어집니다. 정말 단단해 집니다. 그래서 농부가 던진 어떤 씨앗들이 우연히 이 단단히 굳어진 땅에 떨어져도 결코 싹을 틔우지 못할 것입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할 것입니다. 새들이 와서 먹어버릴 때까지 땅 표면에 놓여 있을 뿐입니다. 싹을 틔울 기회를 절대로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12절에서 이 말씀의 의미를 설명해주십니다.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길가 밭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단단하고 좁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이 어떤 건지 아십니까? 예. 저는 닫힌 마음, 단단한 심령, 협소한 인생관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압니다. 그들은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존재 가능성조차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닫혀 있습니다. “난 하나님이 필요 없어. 하나님을 원치 않아.” 그들의 마음은 너무나 닫혀버렸습니다. 씨앗인 하나님이 다가가서 그들과 결코 이야기 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마음을 닫아걸게 만듭니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만드는 세 가지 정신적 방해 요소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는 ‘교만’입니다. “나 혼자 처리할 수 있어. 다른 누구도 필요치 않아. 하늘이 두 쪽 나도 하나님의 도움 따윈 필요 없어. 그러니까 기도할 필요도 없지.” 교만은 하나님께 마음을 닫아 걸게 만듭니다.
 두려움
둘째는‘두려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마음을 닫는 이유는 그분이 뭐라고 말씀하실지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라고 하면 어쩌지?” 그래서 두려움 때문에 마음의 빗장을 내려버립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열었다가 광신자가 돼버리면 어쩌지? 갑자기 하나님이 내 모든 즐거움과 자유를 앗아가 버리면 어쩌지?”
 맺힌 마음
셋째는 ‘맺힌 마음’입니다. 맺힌 마음은 하나님께 마음을 닫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삶 가운데서, 사람들 가운데서 상처를 입습니다. 때로는 고의적이며 때로는 비고의적인 것들입니다. 그것은 삶의 실상입니다. 상처를 품고 있으면 삶이 달라집니다. 상처가 쌓이고 쌍이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갑자기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상처 준 사람들로 인해 하나님을 비난하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 드립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지 마시고,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십시오.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에도 여러분에게 계속 상처 주게 만드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세요.
닫히고 강퍅한 마음의 비극은 그것이 황폐 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자랄 수 없습니다. 아주 작은 씨앗이 닫히고 걍팍 해진 마음에 우연히 떨어진다 해도 싹을 틔우지 못합니다. 닫힌 마음을 가진 사람은 진정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씨앗이 뿌리를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 속에서는 어떤 것도 자라지 못하며 어떤 것도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새들이 와서 씨앗을 먹어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삶은 새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쓸모 없고 가치 없는 삶입니다.
현명한 대처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야고보서 1장 21절은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겸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것이 닫힌 마음의 반대입니다. 열린 마음입니다. “하나님, 나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신께 귀 기울이겠습니다. 당신의 가능성에 내 삶을 겸손하게 열어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이해할 수 없을 때조차도 여전히 당신께 귀 기울일 것입니다.” 하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첫째 단계는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귀 기울이는 시간을 따로 떼어두어야 합니다.
열린마음을 기르고 귀 기울이는 시간을 떼어두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이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조용한 시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일정표에 그 시간을 끼워놓고 하나님이 말씀 하시는 것을 들을 시간을 내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일정표에 그 시간을 끼워놓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시간을 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데 있어 첫 번째 장벽이 저항이라면, 두 번째 장벽은 ‘서두름’입니다. 이 단어에 익숙하신 분들 있습니까? 서두름. 우리가 서두르며 살 때 하나님은 우리 삶의 측면으로 밀려 납니다. 하나님은 부당한 대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 당신께 귀 기울이기 원합니다. 그런데 딱 5분밖에 없어요. 빨리 말씀해주세요!” 그러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얘는 건너뛰어야 되겠구나!” 하나님은 여러분의 쓰고 남은 시간 이상을 원하십니다. 여러분 삶의 중심이 되시기 원합니다. 그것을 증명해드리는 방법은 귀 기울이는 시간을 따로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일정표 속에 들어갈 만큼 충분히 중요한 일입니다.
여기 두 번째 종류의 밭에 대해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8장 6절입니다.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이스라엘은 많은 지역들이 석회석 기반 위로 얇은 상층토가 놓여있습니다. 비옥한 토양을 가진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암석이 많은 토양에 무엇을 심는 다면 그 씨는 싹을 틔우기는 합니다. 그러나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없어서 말라 죽게 됩니다. 그리 오래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13절에서 예수님은 말하십니다.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예수님은 두 번째 종류의 밭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흙이 얕은 밭은 얕은 마음을 나타냅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피상적으로만 반응합니다. 얕은 마음입니다! 우리는 흥분합니다. 감정적으로 반응합니다. 충동적으로 감동을 받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인격의 기반까지 내려가도록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된 변화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구절을 주목하십시오.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그들은 교회에 갑니다. “와, 대단한 예배였어. 정말 좋아.” 그러나 교회문을 걸어 나가는 즉시 모든 것을 잊어버립니다. 말씀이 깊이 스며들지 못합니다. 들은 것을 모두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뿌리가 얕다고 하는 성경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이런 흙에서는 어린 싹들처럼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합니다. 그들은 깊이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화창한 날만 믿는 신자들입니다. 잠시 동안 믿으나 시험하는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면 말라 죽고 맙니다. 그들의 헌신은 얄팍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강한 열기를 받으면, 말라서 날아가 버립니다. 어떻게 하면 얄팍함을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여러분의 삶에 영적 뿌리를 깊숙이 내릴 수 있겠습니까? 두 가지의 매우 실제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날마다 하나님과 시간을 갖도록 계획하십시오. 10분일 수도, 15분 일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경건의 시간’이라고 부릅니다. 이 시간에 여러분은 앉아서 성경을 조금 읽고 잠시 기도로 하나님께 이야기합니다. 조용한 가운데 하나님께 귀 기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당신의 말씀이나 어떤 것을 통해서 제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주말에 해두었던 여러분의 노트를 다시 읽어볼 수도 있겠죠. 또는 잠깐 일기를 쓸 쑤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든 상관 없습니다. 매우 다양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하나님께 귀 기울이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날마다 하나님과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보다 더 영적 뿌리를 깊이 내리게 만들어 주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피상적이지 않고 뿌리를 더 깊이 내리도록 해줄 두 번째 방법은 매주 모이는 소그룹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참여해야 합니다. 소그룹에서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소그룹은 여러분이 배우고 상호작용하는 곳입니다. 제가 가르치는 동안 그저 조용히 앉아 있기만 하면 여러분은 배울 수 없습니다. 기탄없이 이야기하는 가운데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은 이것을 이렇게 말합니다.“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의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이것은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저는 목사가 된지 25년, 크리스천이 된 지는 4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소그룹이 필요합니다.사실 전 가장 나가기 싫을 때, 가장 피곤할 때, 스트레스로 녹초가 되어 “오늘은 그럴 시간이 없어.” 하고 생각할 때가 제게 소그룹이 가장 필요한 때란 걸 알게 됐습니다. 혹 지금 시련을 겪고 계신 분이 있다면 그런 분은 특별히 소그룹에 속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귀 기울이면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극복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산만함을 제거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다른 생각들로 분주할 때 근심, 염려, 불안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스스로의 계획, 해야 할 일들, 하지 못했던 일들로 가득 차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여러분의 꿈, 계획, 야망과 활동들로 가득 차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소음들이 계속 들리면 말씀을 들울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소음들이 계속 들리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종류의 밭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가시떨기 밭이라 부르십니다. 누가복음 8장 7절에서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밭에서 씨앗은 싹을 틔우고 실제로 자라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가시떨기들에게 억눌려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14절에서 예수님은 이 비유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의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지내는 중”이란 구절에 동그라미 치십시오. 여러분은 언제나 잘 지내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잘 지내는 것의 희생물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있어 첫째 장애물은 저항입니다. 둘째는 서두름입니다. 셋째는 분주함입니다. 분주함. 여러분은 주의가 산만하고 너무나 바빠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활동과 생산성을 혼동합니다.그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항상 잘 지낸다고 생각하지만 쳇바퀴를 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아무런 진전도 없고 열매도 없습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이 기운이 막혔다고 말씀합니다. 일상용어로 말한다면 그들은 눌려있습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항복하기 직전입니다.
예수님은 산만함이 가시떨기와 같아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자라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을 막는다고 말씀합니다. 실제로 산만함은 대게 세 가지 가시떨기를 자라게 합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삶으로부터 하나님의 기운을 막는 세가지 일반적인 사항들을 말씀합니다.
첫째는 ‘염려’입니다. 여러분은 일상의 문제들과 압박감으로 인해 너무나 분주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염려’란 말은 ‘다른 방향으로 끌려가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너무나 근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염려로 가득 차있어서 더 이상 하나님을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그는 ‘재리’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돈 버는 일로 너무 바빠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침 일찍 일어나 사무실 또는 일터로 출발 합니다. 하루 종일 일 속에 묻혀있습니다. 녹초가 되어서 그리고 의무감으로 가득 차서 집으로 오며, 베개를 베자마자 잠에 빠져듭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또 똑같은 하루를 보냅니다. 하나님을 위한 시간은 조금도 없습니다. 먹고 살돈을 버느라 하나님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생명을 북돋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일락’이 여러분의 주의를 흩뜨린다고 말씀합니다. 즐거움이 뭐가 잘못됐다는 것입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즐거움을 창조 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오감을 주셔서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즐거움에는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단지 여러분이 재미를 추구하는 일에 너무나 분주하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잊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들이 바로 세 가지 가시떨기입니다. 세상에는 다른 종류의 아주 많은 가시떨기들이 있습니다. 가시떨기는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 대신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가시떨기는 여러분의 삶으로부터 하나님의 기운을 막아서 여러분이 하나님과의 시간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의미심장한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가시떨기를 자라게 하려면 얼마만큼 애써야 합니까? 가시떨기는 소홀함의 표시입니다. 내 팽겨쳐 놓고 자라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매일의 경건시간 또는 소그룹을 소홀히 할 때면 언제나, 가시떨기들이 삶에서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본문에 있는 3가지에 속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가시떨기들일 것입니다. 그것들이 자라나서 여러분의 영적 삶의 기운을 막을 것입니다.
이렇게 가시떨기에 뒤덮인 밭은 여념이 없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항상 여러분과 얘기하기 원하시지만 여러분이 뭔가 다른 일에 귀 기울이느라 너무 분주하다면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에게 다가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회선은 꽉 차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엘리야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한번은 그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자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 당신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놀라운 볼거리를 연출하십니다. 먼저 크고 강한 바람을 보내십니다. 그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바람 속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하나님은 지진을 보내십니다. 온 산이 울립니다. 엘리야는 무척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하나님이 그 지진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다음에 하나님은 이글거리는 불을 보냅니다. 산을 타고 번지는 산불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산불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다음에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세미한 소리 가운데서 말씀하십니다. 작고 조용한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여러분은 세미한 소리가 무엇인지 압니다. 그것을 들으려면 조용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 주간 내내 여러분에게 세미한 소리로 말씀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듣지 못했습니다. 왜입니까? 여러분은 조용해진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조용함을 싫어합니다. 침묵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안녕! 내가 네게 말할 거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조용함 가운데서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협력하십시오.
저는 열린 마음을 기르고, 귀 기울이는 시간을 할애 하며, 산만한 마음을 버리고 그가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협력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그것을 행하겠다고 먼저 결심하는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좋은 생각인지 아닌지 제가 가진 서너 가지 생각들과 비교해본 뒤 가장 좋다고 여겨지는 것을 택하겠습니다.” 안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시간을 그런일에 허비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먼저 말씀드리세요. “하나님이 제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에 기꺼이 협력하겠습니다. 주님. 저는 백지수표에 사인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써넣으십시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좋은 밭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15절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좋은 밭의 특징을 눈 여겨 보십시오. 첫째, 그들은 말씀을 듣습니다. 둘째, 그들은 말씀을 간직합니다. 즉 말씀을 적거나 하면서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그것을 암기하고 기억합니다. 다음에는 순종합니다. 그리고 결실할 때까지 그것을 지킵니다.
어떻게 해야 여러분은 열매를 맺습니까? 한가지 방법은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배우는 것을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좋은 밭이며 우리가 자원하는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게 무엇을 구하시든지 간에 기꺼이 행하겠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그것을 전하겠습니다. 당신을 위한 대변자가 되겠습니다.”
자, 우리가 여러분의 심령 스캔을 받아 스크린 위에 투영해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에 대해 무엇을 드러내줍니까? 여러분의 닫힌 마음을 보여줍니까? 여러분의 얕은 마음을 투영해줍니까? 여러분의 여념이 없는 분주한 마음을 보여줍니까? 만약 여러분이 이런 마음들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그래서 그런 삶의 황폐함에 지치셨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5. 나에게 적용
 삶의 주체를 바꾸라
우리은 이제 우리에게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채널 신앙 양심을 주셨습니다. 그 채널을 최대한 가동하여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실패하는 길을 걸어가지 말고 성공하는 길을 걸어가고 심지어 피조물의 고대소망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도록 작정 합시다.
지금까지 증거 받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개의 기도를 올립시다.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지금까지 얼마나 만홀히 여겼고, 주인이 아닌 내가 주인인양 하나님을 무시하고 우리의 생각대로 살아 왔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피에 팔린 주님의 것이요 주님의 성전입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의 삶의 주체를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으로 완전히 바꿉시다!! 결단을 합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성령의 음성 들을 준비를 하라
교만과 두려움과 맺힌 마음으로 요즘 같이 깡깡 얼어 붙은 강과 같이 닫혀 있는 단단한 마음을 열린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합시다.
 아무리 바쁘고 분주하더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을 따로 떼어 두는 일에 힘씁시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라는 책을 지은 것을 봤습니다. 하나님 음성 듣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목숨 떼놓고 움직이는 자살행위인 것입니다.
염려와 재리와 일락으로 산만한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는 단순한 마음으로 바꿉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일평생 동안 “아니오”는 한 번도 안 하시고 “예”로서만 순종하며 사신 것처럼 우리도 범사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듣고 순종에서 순종으로만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들, 좋은 땅에 뿌리워진 씨의 삶, 하나님께 전적으로 협력하는 삶을 살아 가도록 합시다.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으라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1-1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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