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는 정말, 하나님의 심판일까?
▲그러나 동성애를 찬성하는 미국인들은 늘어나고 있다.
일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에이즈를 동성애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 자신있게 주장한다. 존 스토트는 여기에 신학적으로 ‘그렇다’와 ‘아니다’, 둘 다 답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은 이유는 “예수님이 재난을 악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특정한 심판으로 해석하지 말라고 경고하셨고, 정절을 지킨 기혼 여성들이나 어린아이 등도 걸린 경우가 제법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사실, 혹은 악한 행동은 악한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만드신 도덕적 세계에 새겨두신 질서인 것 같다”며 “이러한 심판은 문란한 성관계에 성 해방 같은 무언가가 있다는 자유방임적 사회를 향해 계속 허풍을 떨어보라는 도전과도 같다”고도 했다.
하지만 목회적으로는 “그들을 멀리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지역교회는 교회나 그 지역사회 내 에이즈 환자들에게 다가가야 하고, 실제로 호스피스 운동이 에이즈 환자에게까지 확장된 데는 그리스도인들의 덕이 컸다. 또 철저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무지와 편견, 두려움 그리고 문란한 태도와 싸우는 데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는 “에이즈의 위기는 우리를 행위와 진리의 모든 면에서 진정한 교회, 곧 치유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되도록 큰 도전을 안겨준다”며 “우리는 자기의(self-righteousness)에 빠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치유 공동체 자체가 그리스도의 용서로 치유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
바울이 제시한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삼각대 속에서
기존의 해묵고 반복되는 동성애 논쟁을 뛰어넘는 제3의 길은 무엇일까. 존 스토트는 “동성애를 하나님의 규범에서 벗어나는 행위로 본다면 이들에게 동성애 행위와 관계의 중단을 요청이 받아들여지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고 질문하며 믿음과 소망, 사랑의 측면에서 이를 풀이하고 있다.
△‘믿음’이라는 부르심=스토트는 믿음을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 간명하게 정리한다. 이에 따라 믿음은 하나님의 기준을 받아들이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이성애 결혼이 아니라면 독신과 금욕 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며 “성 경험은 하나님의 좋은 선물이지만 인간이 충족을 누리는 핵심이 아니고,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근심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동성애는 믿음의 문제라 말하면서 성욕으로 가득한 이들에게도 ‘독신’이 가능함을 설득한다.
△‘소망’이라는 부르심=지금까지 그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치유’의 가능성에 대한 소망이다.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그는 “동성애자들은 부모 중 동성과의 관계에서 결핍을 경험했고, 이를 같은 성 혹은 동성애 관계로 보상하려 한다”며 “이는 결핍과 욕구가 한 쌍을 이룬다는 말이고, 부모의 돌봄을 대체하는 관계도 하나님의 구원 속에 들어있다”고 말한다. 제대로 된 해결책은 성적 행위 없이 동성을 만나는 데 있고, 특히 교회 안에서 이러한 관계를 통한 치유가 가능하다.
△‘사랑’이라는 부르심=안 그런 것 같지만, 교회는 사실 동성애자들을 대하면서 사랑을 보여주는 일에 주로 실패한다. 바로 공포와 적개심, 혐오감이 뒤섞인 ‘호모포비아’다. 동성애자들에게 그 습관을 버리라고 요청하듯 이성애자 그리스도인들은 호모포비아를 버려야 한다. 그는 “레즈비언과 게이 크리스천 운동 단체가 존재하는 자체가 교회를 책망하는 표시라 생각한다”고 일갈했다. 동성애 성향의 핵심에는 깊은 외로움과 상호적 사랑에 대한 본능적 갈증, 정체성의 추구 그리고 완전함에 대한 갈망이 있는데, 교회 가족 내에서 이를 찾을 수 없다면 우리는 그러한 표현을 쓸 자격이 없다고 그는 지적한다. 사랑과 이해, 용납과 지지가 바로 제3의 길이다.
스토트는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적 성향을 공개할 필요는 없고 도움도 되지 않는다”며 “그러나 마음의 짐을 털어놓을 사람, 자신을 경멸하거나 거절하지 않고 우정과 기도로 지지해 줄 절친한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이러한 관계들은 동성이든 이성이든 하나님의 가족 내에서 발전해 나가야 하고, 하나님은 각각의 지역 교회가 따뜻하고 용납하며 지지해 주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신다. 그는 “진정한 사랑과 도덕적 기준을 지키는 자세가 서로 양립 불가능하지는 않다”며 “동성애자 그리스도인의 딜레마가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그의 기준과 이를 지탱하는 은혜를 받아들일 믿음, 현재의 고통을 넘어 미래의 영광을 보는 소망, 서로를 돌보고 지지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실 것”이라고 결론내린다.
(댓글)
우리는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없을 만큼 편협한 상황입니다.......ㅠㅠ
전 항상 고민합니다. 평생을 함께 동반자로 사랑하며 산 동성애 커플, 이와는 반대로 맞바람을 피우며 아이들 때문에 사는 이성애 커플. 두 커플 사이의 사랑의 질을 따지면 어느 쪽의 우위이고 어느 쪽의 죄가 더 클까를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문제를 죄니 하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관계의 질"은 좋은 논점 중 하나입니다. 반면에 불행한 동성커플도 다수입니다. 우리는 과연 성과 관계, 가족, 결혼 제도의 본질이 무엇인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지점에 서 있습니다.
동성애 철학과 신학이 제기하는 "동반자 관계"라는 본질은 배워야 할 점이다. 남녀관계는 단순한 육체적/인격적 보완관계가 아니다. 결혼은 남녀가 대등한 벗-동무로 선물의 경제를 집(oikos) 가운데 이루는 하나님이 창설하신 제도로 선물의 경제인 교회의 은유이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그 고민은 이른바 '군부대 내 동성애자 차별 금지법'이나 '학생인권조례' 등을 둘러싼 논란과는 철저하게 구분돼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런 법이나 조례들은 '신앙'과 '윤리'의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평등'의 문제를 다룬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사 진지한 고민 끝에 동성애가 '윤리적 신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하더라도, 그것이 위의 법이나 조례를 폐기하거나 반대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범죄를 저지르고 그로 인해 사회적인 처벌을 받은 사람들, 즉 전과자들을 취업 등에서 차별하는 것과 똑같은 행위입니다.
예전에 교회에서 동성애를 허용하는 법에 반대하는 서명을 받으셨던 분이 계셨는데 제가 서명을 거부하자 ...순간 이상한 사모 취급을 받았던 일이 떠오르네요. 사실상 늘 죄가운데 사는 우리가 동성애만이 유난을 떨면서 정죄하는것은 자기기만이고 자기모순이 아닌가 싶습니다~
분리해서 대응하는 것이 맞습니다. 기독교적 가치를 사회의 공공의 영역에서 힘으로 강요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개신교 윤리적인 문제냐, 인권의 문제냐. 개신교가 그것을 전통적으로 해 온 것처럼 개신교 윤리적 문제로만 대할 것이냐, 아니면 인권의 문제로만 처리하는 전환점을 가질 것이냐......등이 문제이군요.
1. 교회 내의 동성애는 반대이지만 2. 사회에서의 동성애자에 대해서는 우리의 잣대를 들이 대면 안 된다는 것에는 찬성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3. 예를 들면 군대 내의 동성애를 생각해 봅시다. 군대는 상하관계가 엄격한 곳입니다. 그래서 상급자의 요구(명령)을 거절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발생하는 동성애가 대부분입니다. 실제로 저는 오래 전에 훈련을 마치고 연대 대기병으로 있을 때 밤마다 내무반장인 병장에게 불려나가서 추행을 당하는동료 휸련병을가장 가까이에서 봤습니다. 그는괴로워하면서도누구에게도호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군대 내의 동성애를 단순한 인권문제로만 볼 수 있나요? 교회에 적용과 사회의 적용을 분리해야 허는 것처럼이런 특수 환경에서의 문제도 분리해야. 하지 않을지.....
3번 같은 경우는 권력의 문제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벌어지는 남자 상사가 여자 상사를 추행하는 문제와 같은 거 아닐까요? 제가 보기엔 비정상적으로 발동하는 권력과 그 권력에서 파생되는 발생하는 폭력의 문제, 기독교는 거기에 맞서야 할 거 같습니다.
군법상 계간 처벌 조항은 여러 논의가 있습니다. 본질은 강제추행 혹은 강간이지 동성애가 아닙니다. 그런데, 군법은 형법상 명확성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동성애를 처벌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보완이 필요합니다. 다만 군이 가지는 특수한 권력관계를 고려해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을 적용할 필요가 여전히 있습니다.
예. 그래서 말인데 군대 같은 곳에서의 동성애자 처벌 금지에는 어떤보강 법이나 규정을 덪붙여야 할 것같습니다.
"성경이 무엇이라 하는가?"
섣부른 규정은 성경의 정신이 이야기하고 있는 죄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 우리는 동성애자들과 함께 앉아 예배를 드릴 수 없는가 라는 질문이 문득 머리를 스칩니다. 우리의 도그마가 그것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든지 상관없이.
조재석 목사님의 페이스북에서 인용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1-19 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