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왜정 말년 때에 그 부장으로 더불어, 도베니라는. 와다나베라는 부장인데, 그 사람으로 더불어 여러해를 계속해서 싸워 나왔고 이럴 때에 늘 그런 말했다. “성경에 기록한, 출애굽기 20장 3절 이하에 있는 말씀을 성경에 이렇게 기록됐기 때문에,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니 성경을 어길 수 없어서 이렇다. 성경에 이래 기록했다. 그래도 해야 되나? 그것은 나는 아직 이해가 안 된다.” 그러면 늘 만날 때에 '이해가 되느냐?' '이해가 안된다' 또 그걸로 또 끝납니다. '그러면 이해가 되느냐?' '안 된다.' 그래서 내치 미루어 나갔고, “성경 말씀이 그러기 때문에 나는 성경 말씀대로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내 의사로 하는 것 아니라.” 늘 그것으로써 계속해 나갔다. 이랬는데, 나중에 해방 후에 감옥에 있는 종들이 나와서 서로 얘기할 때에 내나 동감이었다.
그저 거기에 자기가 뭣을 가석해서 이렇게 인간 대 인간으로 자기가 한 사람들은 다 패전을 했고, 거기에 그저 무슨 말 하든지 성경 말씀 가지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다 승리를 했었다.
“성경에 이렇게 말씀했음니다. 이러기 때문에,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니 이것을 어길 수가 없다.” 늘 성경 말씀 가지고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꾸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내가 대항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럴 때에 그 사람과 하나님과 대항하는 게 돼지기 때문에 악령이 그것으로서는 합당한 그 전법을 가지고 하기 때문에 거게서 물리쳐진 것 같다. 지금 생각 하면. 꼭 동감이었다. 이기는, 이기는 전법은 같았다.
그러기에, 혹 모르면 성경에 말씀했다 하고, 그러면 성경 어디냐 들이대라 할 때에 그것을 못 들이대면 그때는 좀 이놈이 예수 믿는 놈이 이것도 모르냐고서 매도 좀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 “네. 제가 성경을 앞으로 생각하고 또 찾아 가지고서 내가 그렇게 답을 하겠다.” 그렇게 미뤄 놓으면 진 거는 아니다. 패전한 거는 아니오. 우리가 성경 다 외우지 못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그러면 뒤에 가서 생각해서 성경을 자기가 생각하든지, 못 생각하면 다른 사람에게 묻든지 이래 어찌 해 가지고라도 성경을 가지고 답을 했을 때에. “성경 몇장 몇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럴 때에 그 사람들은 그 말에 대한 책임은 성경이 지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부담을 시키지 안하고 네가 이런 성경을 믿느냐고 그런 욕은 할 수가 있고 형벌은 할 수가 있겠다.
그러나 그럴 때에 저는 그래 말했다. “일본 나라와 조선 나라가 합병될 매에 이 기독교 신앙 자유를 허락했으니까 그때에 국제 계약에서 된 일인데 어찌 지금 계약을 자꾸 돌변하라고 지금 하고 있느냐?” 그런 말을 제가 그 다음에는 덧붙여서 했었다. 그래서 그 뒤에 늘 있어도 아무 쟁론 했으나 별 그들이 끝까지 저에게 대해서 가해를 하지를 못했다. 그러나 그때도 어렵지 않는 건 아니오. 제가 어떨 때는 산에 가 가지고서 개미가 됐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생각 여러 번 가져 봤다. “개미 네가 나보다는 행복스럽다. 나보다는 자유가 있다. 나는 아무 자유가 없다. 아무 데도 자유가 없다. 내가 어디로 숨어서 갈라 해도 그런 자유도 없고. 숨어 갈라 하니 주님에게 거리끼고 또 있자니 날마다 마찰의 그런 어려움이 있고, 너는 참 자유롭고 좋다.” 내가 그렇게 했는데, 그 뒤에 개미도 보니까 또 개미 그놈이 적이 있습디다. 개미 그놈이 적이 있다. 그래 뒤에 결론은 “모든 존재 쳐놓고 적이 없는 존재는 없다.” 그것을 보고서 나무에 보니까 산 나무를 파먹는 그것은 산 나무를 파먹음으로써, 버러지는 나무를 파먹음으로 제가 살도록 하나님이 해 놨는데 그 나무 없으면 그놈 죽는다. 먹을 것 없기 때문에.
이래서, 모든 것이 다 이렇게 가해함으로 살고, 가해해서 그것을 전투해서 이김으로 성장돼 나가는 이것이, 모든 피조물 쳐놓고 그것이 하나님이 살고 자라는 법칙으로 주셨지 그것이 절대로 죽는 법이 아니라 하는 것을 마지막에는 결론으로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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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1-27 2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