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전 장관, 나의 간절한 고백

2010.04.24 19:36

윤봉원 조회 수:1470 추천:52

이어령 전 장관, 나의 간절한 고백

왜 나입니까? 그러나 거기에 답은 없었다.
여전히 나약한 인간은 흔들리며 영성의 문지방을 오르내린다.

젊은 시절의 철저한 실존주의 행각, 냉철한 분석과 영역을 구분하지 않던 날 선 비판, 살아 있는 백과사전…. 시대의 지성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역시 한 명의 나약한 인간이었다.

  
2004년 교토 연구원 시절, 홀로 지내던 골방은 점차 쓰레기 더미로 넘쳐났고, 그 빈 방에서 절대 고독과 마주했다. 감기에 걸린 어느 날엔 고열에 신음하며 환몽을 꿨다. 풍랑이 거센 바다를 아슬아슬 걷는 위태로운 사내가 자신이었다. 그 사이사이 영성은 지성을 톡톡 노크하고 있었다.

미국 변호사였던 큰딸의 갑상선 암 투병과 뜻밖의 실명 위기…. 딸이 치료차 들른 하와이의 작은 교회에서 아버지는 무릎을 꿇었다. “나의 첫 생명으로 태어나 아버지를 쳐다봤던 그 눈을 지켜주신다면 당신을 따라 사역하겠습니다.” 2007년 봄, 딸의 눈은 회복이 됐고, 그해에 아버지는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됐다.

정확히 3주 후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하버드대 법대 진학을 준비하던 스물다섯의 첫째 외손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딸의 치유를 통해 영성의 알을 깼다면, 외손자의 죽음은 시험이었다. 그 양극에 무슨 원칙이 있다는 말인가. 예단할 수 없는 시나리오 속에서 여전히 나약한 인간은 흔들거리며 영성의 문지방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한때 오만하기까지 했다던 냉철한 지성은 이제 겸손의 자리로 내려왔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최근 이어령 교수가 펴낸 책의 제목과 같다. 아버지는 영성의 알을 깨고 나오게 만든 큰딸 민아를 책의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 3월 15일 이어령(77) 교수를 서울 중구 태평로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서 만났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영성으로 가려면 일상성을 깨는 드라마가 있어야 계기가 될 겁니다. 큰 사건만이 아니고, 내면에서 두드리는 작은 사건들이 방아쇠 역할을 하고, 서서히 내 몸을 해체시켜 갑니다.
2004년 교토 연구원 시절, 홀로 지내면서 감기에 걸려 밤새도록 열에 시달렸어요. 그럴 때마다 환몽이 괴롭혀요. 좌우로 파도가 치는 험한 바다를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나갑니다. 의지할 난간조차 없고, 뚝길의 끝은 보이지 않아요. 인간은 나약해요. 병은 인간을 신앙에 가깝게 만듭니다.

딸의 기적을 통해 영성을 접했다는 말에는 잘못된 부분이 있어요. 딸의 사건이 있기 전에 영성은 내적으로 나를 툭툭 두드린 겁니다. 딸의 기적은 이를테면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온 순간이 되었던 겁니다.

인간이 절실할 때 신은 어떤 말을 들려줬나…

하와이에서 난 하나님을 필요로 한 게 아니라 딸의 눈이 회복되기만을 기도했어요. 한편으로 딸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했던 겁니다. 그 자체가 죄였지만, 급하니까 매달린 거예요. ‘두드려라, 그러면 구할 것이다’는 말을 믿고 두드린 겁니다.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계약을 한 거죠.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큰 교회였다면 그것도 못했을 거예요. 난 식당에 가면 구석에서 혼자 밥을 먹는 지극히 내성적인 인간입니다. 아주 작은 교회였어요. 목사님이 외국 분인데,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교회에 나오라고 했어요. 무턱대고 무릎을 꿇었어요. 딸의 눈을 낫게만 해주면 당신의 부름으로 사역을 하겠다고 간절하게 말이죠. 내가 아내를 사랑해서 얻은 첫 생명인데, 아버지라는 사람을 보고 방긋 웃던 눈이잖아요. 그런데 시력을 잃는다니, 말이 되는 일입니까.

딸의 손을 잡고 한국에 돌아오니 병원에서 망막 박리가 아니고 일시적인 문제가 생긴 거래요. 그 순간 희열을 느끼면서도 하나님과의 ‘계약’이 생각나서 가슴이 덜컥했어요. 나라는 사람은 세속적인 의미에서 자유로워야 할 인간인데, 무릎 꿇어야 할 인간이 된 거니까요. 그때까지도 지성은 인간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던 겁니다. 누군가는 의학과 영성의 혼돈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난 의사, 목사를 통해 또 다른 세계를 두드리고 있었던 겁니다.

세례 결심…

당시 온누리교회의 하용조 목사(큰딸은 투병 당시 LA의 한 교회에 들른 하 목사의 설교를 듣고 긍정과 희망을 읽었다)가 “이제는 믿으시죠?”라고 물었어요. 그때도 난 그랬죠. 모든 앞 못 보는 이들에게 기적이 일어나야지, 내 딸이 그랬다고 믿는다면 그건 거래일 뿐이라고요. 그때 하 목사가 낙담을 했어요.

그 다음 날, 딸이 새벽 기도를 간다고 문밖을 나서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무척 행복해 보였어요.

큰딸이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새로 산 가방을 메고 ‘아빠!’하며 손을 흔드는 그 순수한 환희와 같은 겁니다. 마흔 넘은 나이의 딸이 그 모습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때 덜컥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하신 행복이구나! 그래서 딸의 등에 대고 이렇게 외쳤어요.

“딸아, 아빠가 세례를 받아야겠다!”

*2007년 초여름, 그는 도쿄에서 열린 온누리교회 선교대회 행사에 참석해 세례를 받고 정식 크리스천이 됐다. 당시 그의 나이 일흔셋이었다.

나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그런 게 있어요.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면 축복과 시련을 알 수 없거든요. 그래도 난 나약한 인간이라 호된 시련은 견딜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기도를 드릴 때 “제발 나는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라는 걸 빠트리지 않았어요.

이게 웬일입니까. 세례 받고 3주 후 첫째 외손자가 갑자기 고열이 나더니 의식을 잃고 세상을 떠난 겁니다. 버클리대학을 나와 하버드 법대를 준비 중이었던 아이예요.

더구나 내가 키우다시피 한 아이였어요. 딸이 공부를 많이 했으니까, 무슨 시험 준비를 할 때면 손자만 한국에 와서 나와 함께 있었죠. 생각이 깊은 아이였지. 어린 나이라 엄마가 보고 싶을 텐데 한숨만 쉬고 그런 속내는 안 드러냈어요. 내가 출근하면 넥타이를 붙들고 출근하지 말라고 하고. 그 정이 얼마나 애틋합니까.

생물학자인 다윈은 신앙이 깊었는데, 딸이 열 살에 요절한 뒤 인간의 생사 결정은 신앙과 관계가 없구나, 무슨 원칙이 있다는 말인가라며 신앙을 버렸어요. 얼마나 절실하게 기도를 했겠어요? 왜 신앙심이 흔들리지 않겠어요? 그러나 난 그때 눈물과 원망을 머금고 더 철저하게 나를 던지고 해체한 겁니다.

딸의 기적에 기대어 영성을 접한 게 아니라면, 손자의 죽음은 비워야 했던 겁니다. 그러면서 더 간절하게 깨달은 겁니다. 나와 가족, 내게 소중한 울타리와 상관없이 이 세상은 더 큰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요.

예수가 박해를 받을 때, 군중 속에서 그의 어머니를 보잖아요. 그때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여인이여! 죽는다고 슬퍼하지 마라’라고 외치잖아요. 또 제자들을 가리키며 ‘저기 당신의 아들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나의 가족, 나의 혈연이 아니라 더 넓은 우주적인 개념이 있다는 것을 되새기며, 나는 아픔을 위로한 겁니다.

더 솔직한, 인간적인 얘기를 할까요. 손자를 떠나보내면서 난 홀로 기도를 하며 절대자의 무원칙하고 부조리한 시나리오를 탓했습니다. 왜 나입니까? 그러나 거기에 답은 없었어요. 그러면서 원망하는 나를 꾸짖고 흔들리는 신앙심을 탓하고, 여전히 비틀비틀 걷는 겁니다. 아직도 한 인간은 흔들리고, 영성의 문지방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겁니다.

나의 기도…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린 다이내믹한 말 그림이 있어요. 화백이 귀가 먹먹하고 말이 끊기는 터라, 마음속에서 외치는 말을 그린 거예요. 그게 얼마나 간절하고 절박한 일입니까.
인간은 나약하고 결핍이 있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나약하고 결핍이 있는 존재입니다. 글 쓰는 이는 결핍이 많고, 그걸 현실에서 분석적으로 못 풀어내니 글을 쓰는 겁니다. 영성을 접하면서 냉철한 분석과 비판이 녹아 기도서나 시를 써보게 됩니다. 글쓰기는 영성의 세계로 얘기하면 고백과 기도가 될 것입니다.
한때 나의 글쓰기는 ‘나는 이만큼 안다. 너희들을 계몽하겠다’ 하며 그렇게 땅을 향했어요. 그러나 위를 향해 고백을 하면서 한없이 작아지는 거죠.

그렇다고 기도를 잘 드리느냐 하면, 바빠서 식사 기도도 빠트린단 말이에요. 집사람이 눈치를 주면 머리는 변명거리를 찾고 있어요. 식사 기도는 밥을 맛있고 배부르게 먹고 나서 올려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죠. 이게 위선이고 지적인 조작인 거죠.

선악과를 먹은 아담도 그랬잖아요. ‘저 여인(이브)이 사과를 먹어도 좋다고 했다’말이죠. 인간의 독자적인 운명은 그렇게 죄악과 불안전, 위선과 고독이 있는 겁니다. 그러다 인간은 어느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뭔가에 휩싸이곤 하잖아요. 위에서 오든, 밖에서 밀려오든, 지성과 분석을 넘는 영적인 갈구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바라보면서 나를 해체하는 과정을 거쳐왔고, 그런 과정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단 겁니다.

지성과 영성의 균형…

편한 예를 들까요. 지적으로 똘똘 뭉친 부부가 어떻게 살까요? 서로 분석하고 논리 싸움만 하면 계속 그럴 거 아녜요? 그러면 못 살겠죠. 그런데 어느 순간 송두리째 끌어안는 무엇, 안아주는 것, 이런 것들이 분석보다 인생을 더 넉넉히 만들어주지 않습니까. 포옹을 통해 지성 너머를 얻는 것. 그 느낌을 곱하고 또 곱하면 다다르는 게 영성의 세계와 가깝지 않겠어요?

포옹(허그)은 인간이 갖는 결핍감이 절박하기 때문에 효력을 발휘하는 겁니다. 기독교는 사막의 종교잖아요. 암사슴이 샘물을 갈구하는 것처럼 그 바탕에는 갈구가 있어요. 지성의 삶은 영성을 끝없이 방해하지만 그래서 갈구하는 마음이 커지는 겁니다.

어쩌면 내가 영성을 접하는 게 늦어진 건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기 때문일 수 있어요. 사랑을 충분히 못 받은 사람은 사랑을 늦게 깨닫잖아요. 내가 아는 사랑은 절대자가 아닌 어머니에게 향해 있었던 겁니다. 내 영역에 왜 침입하느냐며 섬처럼 살았고, 결핍이 있는 인간은 냉철한 글쓰기에 집착했던 거예요. 그러다 빛과 어둠을 동시에 거치면서 한 인간은, 나누고 넓어지고 사랑하는 다른 세계를 뒤늦게 발견해 가는 겁니다. 어느 시간, 공간에서 여전히 나약하고 결핍한 인간은 간절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취재_강승민 기자 사진_김연지(studio lamp)

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120/4130120.html?ctg=1502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04-2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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