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성장의 원리

2009.04.16 06:45

윤봉원 조회 수:1418 추천:50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구원도 이루어야 하겠고, 또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룬다는 것이 우리 자신만의 구원을 이룰 수가 있느냐? 그렇지 않고 다른 사람의 구원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그런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비유컨대 이 나무가 자랄 때에 아무리 나무 가지가 살아 있다 할지라도 그 가지에게 속한 다음 가지에게 모든 삶의 이 영양을 넘겨 주어야 제 자신이 자라지 넘겨 주지 안하면 자라지 않습니다. 암만 생명 있어도 안 자랍니다. 그것이 이 자연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잡목 나무 같은 그런 나무는 보면 위에 가지 있는 가지를 그만 잎이 나고 뭐 꽃이 핀다든지 하는 그런 움이 나는 그런 것을 가지에 잎이 피는 가지를 딱 잘라 버리면 그 자른 가지가 일 년 있어도 살아 있고 이 년 있어도 살아 있고 삼 년 사 년 오 년 있어도 살아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에 그 포구나무라는 그런 나무가 우리 마을 앞에 큰 게 있었는데 거게 자잔한 붉은 열매가 맺습니다. 이래서 그 나무에 열매 때가 되면 자주 가 가지고서 그 열매를 따먹기도 하고 이랬는데 저는 어릴 때 나무 재주를 잘했습니다. 이래서 뭐 양사방 돌아다니는데,
어떤 가지는 그 가지가 벌써 끊긴지가 제가 본대로 여러 해가 됐는데, 움이 납니다. 움이 나면은 또 사람들이 올라가면서 밟으니까 움이 다 떨어져 버립니다. 그러면 움이 나 가지고 자라지를 못하고 움이 났다가 떨어지고 움이 났다가 떨어지고 이라는데 그 가지가 뭐 여러 해가 돼도 아마 내 생각에 지금 한 십 년 돼도 살아 있지 않겠나? 그런데 크지는 않습니다. 자라지는 안해요. 항상 그대로요. 그대로인데 그때는 그런 걸 생각지 못하고 이거는 오래 동안 잎이 나는 것을 사람들이 다 그만 떼 버리고 이래서 잎이 자라지 못해도 살아 있다 하는 그것만 제가 그때 느꼈습니다.
그 뒤에 내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이 성경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 그 나뭇가지가 왜 그때 자라지 안했을까? 같은 가지인데, 같은 가지가 나왔는데 한 가지는 그다음에 자잔한 가지가 나서 자잔한 가지에게 영양을 자꾸 이렇게 보급해 주고 하나는 보급해 주지 못하고 딱 잘려 가지고서 주지 못하고 이런데, 보급해 준 가지는 같은 그 가지인데 나중에 몇 해 지나고 보니까 이렇게 커단하게 돼졌고 이거는 가지가, 그 나무가 여뭅니다. 요만해요. 요만한 게 항상 살아 있어도 그대로 있어요.
그래서, 이거 나무 이런 것도 자기에게 속한 자가 있어야 자신이 자란다. 또 자기에게 속한 것에게 자꾸 이걸 그 영양을 보급해 줘야 이게 자란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의 자신의 구원도 자기가 자꾸 곁가지 내는 것처럼 전도를 해서 다른 사람을 구원해야 자란다. 이 성경에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 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대로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하나님 앞에 받은 바의 사랑을 주고, 또 지혜를 주고, 진실을 주고, 또 거룩을 주고, 또 힘을 주고, 소망을 주고 뭐이든지 예수님 안에 있는 이런 것들을 자꾸 자기 다음 후배에게 줄수록 자신이 자라게 된다. 또 자기에게 관련된 자를 도와 줄수록 자라게 된다.
그러니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 있다 하는 이 이치를 나무 자라는 데서 이래 보니까 주는 것이 곧 자기가 받는 것이요, 다른 사람을 키우는 것이 자기를 키우는 것이요, 저만 욕심 내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안하고 저만 알고 자기 사욕으로, 이기주의로 자기만 아는 자로 있는 것은 자기를 키울 수 있고 자기를 실력 있게 존영하게 만들 수 있는 그 기회를 다 잃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남을 줄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놓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주님에게 받아서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놓치는 것이 된다.
그러니까, 나무를 보니까 받아 가지고 다른 가지에게 주니까 다른 가지도 자꾸 자라고 커지고 그것이 자라고 커지니까 자꾸 달라고 하고, 달라고 하는데 그 영양을 자꾸 주니까 주는 것만큼 그다음 가지들을 바람이 불어도 잘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대목 가지가 크게 된다. 만일 그게 자라지 안하면 그다음 가지들이 다 뿔라져서 못 쓸 것이기 때문에 그다음 가지가 자라기 위해서 대목 가지가 커지고 이게 든든하게 된다.
그것을 이래 생각하고,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많은 사람들을 자꾸 구원에 유익되도록 이렇게 하는 것은 마치 나무 가지와 같이 주님 앞에 ‘네 행실을 보면 내가 어떻게 하지만 지금 네게 달린 것이 많기 때문에 그들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너를 용서하고 보존하고 있다’ 하는 그런 꼴을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이거 다른 사람 같으면 그럴 것인데 이거 밑에 달려 있는 후배와 그 모든 전도해 놓은 곁가지와 같은 그런 형제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거 때문에 지금 이거 하나님이 보존해 주시고 강건을 주신다. 제가 설교는 하기는 했지만 자꾸 깨닫는 것이 더 깨달아지고 더 깨달아지고 확고해지고 달라집니다.
이래서, 다른 권찰님들을 볼 때도, 자기 그 사람이 지혜가 내가 처음 만날 때와 지금과는 비교 못 할 만큼 아주 유능하게 지혜 있어졌다. 이거는 무슨 연고인가? 거게 달려 있는 것이 많이 있고 이것을 바르게 해야 자꾸 거게 소속한 것들이 발라지고 살아질 터이니까 그 후배와 제가 전도해서 믿음으로 낳은 자녀들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게 많다.
이라고 보니까 저것은 저 개망나니 노릇을 하고 있는 것, 저거는 밥을 먹고 지낼 수가 없어 당장 죽든지 어떻든지 해야 되지 아무 살 가치가 없는데 왜 저거는 살려 두는가? 그거는 보니까 그다음에 거게서 난 자손이 지금 주일학생이 있고 뭐 이런 것이 또 중간반이 있고 있어서 저것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그것을 부득이 그래도 둬 두는구나. 저거는 출물꾼이다.
또 그라고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도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은 패역을 부려서 다 광야에서 몇 사람 말고는 다 죽어 버렸는데, 광야에서 멸망 받는다 하는 대로 멸망을 받았는데 멸망 받을 그 사람들을 광야에서 그래도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고 이렇게 한 이유가 뭐인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광야에 나와 가지고서 낳은 그 후손들 그걸 기르는 데에는 그 믿지 않는 광야에서 멸망받을 그런 선조들이라도 있어야 되지 그게 없으면 안 되겠구나.
이라니까, 저게ㅡ인제 자꾸 나온다 말이오ㅡ이 식물도 보면 젖잎이 있다. 젖잎이 있으면 젖잎이 그것이 젖잎을 미리 똑 잡아 떼 버리면 위에 새 잎이 자라지를 못하고, 충분하지를 못하고 젖잎 그것 두면 위에 새 잎이 장성해지게 되면 젖잎은 차차차차 양보를 해 가지고서 누러져서 그 젖잎은 떨어지고 위에 잎은 장성하게 자란다. 이거 보니까 전부 다 그거라 그거요.
이래서, 고동 같은 거는 참 그 고동이 강건하게 잘 자랐는데 그다음에 새끼가 나면은 새끼가 다 먹어 버리고, 다 갉아먹어 버리고 아무것도 없이 이제 떠나가니까 그말 하지 않습니까? 고동 껍데기가 떠나가니까 그 새끼들이 말하기를 우리 어머니 시집 간다 한다고서, 알맹이 다 빼이고. 이러니까 이 모든 이치가 하나다. 이러니까 주는 자가 복 있다 하는 그것이 뭐 별스러운 말이 아니라 이 만물이 다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 또 성경도 가르치고 있구나.
이래서, 이제 차차 살아나오니까 성경만 읽는 사람은 그 사람은 성경에 대한 뜻을 알지 못한다. 이 모든 자연 계시를 접함으로써 자연 계시에서 특별 계시인 성경을 깨달을 수가 있고 성경 계시에서 자연 계시를 깨달을 수가 있다. 그것을 자꾸 늘 말합니다.
이래서, 나는 도시 사람들이 복이 적다. 왜? 저 시골에, 농촌에 있는 사람들은 자연 만물을 많이 접하기 때문에 거게서 깨닫는 것이 많아. 그 깨달은 사람들은 성경의 도리를 말하면 척척 깨달아지지만 그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성경의 도리를 암만 말해야 잘 몰라요. 이런데 그라면 도시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시골 사람은 눈뜨면 만물이 보입니다. 들에 가도 보이고 집에 가도 보이고 전부 이거 자연 만물 보기 때문에 그렇지만 도시 사람들은 눈 뜨면 앞에 보이는 거는 앞집 지붕, 또 돌아보면 뒷집 지붕, 옆집 그거나 보이지 다른 거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다 말이오. 혹 뭐 푸른 부산 만든다고 해 가지고 이런 식물들을 놓기는 놓지만 그까짓 거 몇 가지 됩니까?
이러니까, 이제 시골 사람들이 이 자연 만물, 자연 계시를 자꾸 보고 있는 것처럼 이제 이 도시 사람은 자꾸 계속해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을 그려 내놓은 그 책들이 있으니까 그 책을 자꾸 읽어서, 하루 아침에 그만 들에 가서 보면 될 것을 책으로 읽을라 하면은 제가 아무리 재주가 있어도 적어도 며칠 읽어야 될 거라 말이오.
그러니까, 도시 사람들은 독서에서 그것들을 대략 좀 구경하고, 또 시골 사람들은 자연 만물에서 구경하고 해서 이 자연 계시에서 특별 계시를 깨닫고 특별 계시에서 자연 계시를 깨닫는 이 비밀이 있구나.
그러면, 하나님께서 특별 계시를 먼저 주셨느냐, 자연 계시를 먼저 주셨느냐, 하나님께서 자연 계시를 먼저 주시고 특별 계시를 그다음에 주셨는데 에덴 동산에 준 것은 벌써 자연 계시 받은 후에 에덴 동산에서 특별 계시를 주셨다.
주는 것이 복이 있다 하는 그런 것을 자꾸 보면 볼수록, 주는 것이 복이 있고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 알고, 자기만 좋게 하고, 자기만 유익되게 하려 하는 것 자기 위주로 사는 그것이 자멸 행위가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다. 모든 이치가 그래 보니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다 그러하다. 그것을 자꾸 깨달아지면 자꾸 깨달아진다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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