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을 주시는 이유

2008.01.19 23:03

윤봉원 조회 수:1602 추천:74


환난이 없어지기 위해서 신앙을 가진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데 왜 그런 일을 만나는지 이유 없는 당하는 일들은 진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큰 사고 속에 기독교인들이 있다면 그것이 저주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인가?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환난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이다.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받아들인다면 그 환난은 꼭 필요한 사건인 것이다. 그런데 그 환난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항변을 하게 된다면 그 사건은 본인의 인생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출애급기 15장 22절에서부터 본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급한 뒤 사흘 동안 물을 찾다가 마라라는 샘물가에서 도착하였다. 그런데 그 물은 마시기에 곤란한 아주 쓴 물이었다. 그 물을 대한 백성들은 그들을 인도하는 모세를 원망하였다. 그들의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나무 가지를 꺾어서 마라의 물에다 던졌더니 그 백성들이 마시기가 아주 좋은 단물이 되었다.
그런데 마라의 물을 달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시험하시는 하나님은 그 마라의 물만이 아니라 다른 쓴 물을 만나게 하신 것이라는 것을 파악해야 한다. 그 뒤에 엘림이라는 곳에는 열두 샘물과 칠십 주 종려나무가 있는 곳을 준비해 두신 은총을 깨달아야 한다.
환난을 만났을 때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지만 환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안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항상 갖춰야 할 것이다.마크 트웨인이라는 선교사님이 선교 일을 하시다가 안식년이 되어 자기 고향에 가서 안식하는데 친구 목사님이 자기도 안식 차 유럽으로 가야 하는 상황에 자기 교회에 와서 임시 목사로 수고를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런데 그 교회에 출석을 별로 잘하지 않는 어느 교인이 급히 와달라는 전화를 받고 심방을 하였는데 아무리 찾아도 그 집이 보이지 않아 헤매다가 그 교인이 길가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만나서 대화를 하였다.
자기의 사업 처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들이 캠핑에 가서 수영을 하다가 익사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 집으로 와보니 화재로 인해 전소가 되었는데 그 집 안에 아내가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하루에 한꺼번 자기의 가족들이 죽음을 맛보게 되어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그에게 무슨 말로 위로해야 될지 몰랐다.
한꺼번 가족을 잃은 장례식 날에 설교를 해야 하는 선교사님께서 그 전날 밤에 밤새도록 기도하면서 얻은 말씀이 여호수아 24장 14절에서 18절까지를 중심으로 이렇게 초두의 말씀을 꺼냈다.
스미스 씨 당신은 지금 이 시간 이 장소에서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동시에 당신은 이 시간 이 장소에서 하나님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당신이 당한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향해 얼마든지 폭언을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당신은 하나님을 향해 얼마든지 찬양할 수 있습니다. 선택하십시오.라고 위대한 설교를 하여 스미스 교인이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모습으로 인하여 많은 조문객들이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환난을 만나는 사람들은 무너질 것만 같은 아픔과 고통을 갖게 된다.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으로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어려운 일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연결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줄은 어떤 도구로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마치 헤라클레스라는 월드디즈니 만화영화에서도 악마가 헤라클레스의 생명의 줄을 끊으려고 해도 끊어지지 않는 장면을 보면서 이 땅에 많은 성도들에게 시련과 역경을 주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항상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로마서 8: 35-39)
자료출처 / 창골산 봉서방 카페 칼  럼  필  자:이종남목사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1-19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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