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誤解) 없는 신앙생활

2007.03.27 23:37

윤봉원 조회 수:1087 추천:119

막 12:18-272007032501

날자: 2007년 3월 25일 주일오전
제목: 오해(誤解) 없는 신앙생활
본문: 마가복음 12장 18절 -27절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거든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아내를 취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죽고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일곱이 다 후사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을 당하여 저희가 살아날 때에 그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을 의논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1. 귀찮아요! 그만 좀 하세요!
모태 신앙이나 믿음의 가정에서 종종 부모와 지식간에 말다툼 중에 종종 들을 수 있는 말 중에 하나가 ‘귀찮아요!   이제 그만 좀 하세요’라는 말일 것이다. 이러한 말은 부모 자식간이 아니더라도 불신자와 믿는 믿음의 식구 사이에서는 많이 일어나는 대화일 것이다. 또, 목회자나 셀리더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해 본 경험이 한 번 이상은 다 있을 것입니다. ‘또 설교 시간에 저런 잔소리를 하시는구먼!’하고 짜증을 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하신 말씀이 있고,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은 거름이 많으면 많을 수록자라는 데 최고급 환경이요, 영양가 만점인 환경이라고 하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하시건만 실제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고, 나에게 관련되면 ‘귀찮아요, 그만 좀 하세요’ 하고 짜증스런 반응을 보이는 순간, 짐승과 같은 단계로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런 일들이 자꾸 일어나게 될까요? 오해(誤解) 없는 신앙생활을 할 수는 없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 자신들의 신앙을 점검 받고, 이제부터는 이러한 불쌍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자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 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잠 10:17)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나니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잠 12:1)
2. 사두개인들의 오해
가. 그들의 실상
오늘 본문에서 사두개인들은 자식을 낳지 않고 아내와 결혼하여 일곱 형제가 살다가 죽고 난 다음에 부활 했을 때 그 아내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또, 27절에서도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라고 책망을 두 번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다시 풀어서 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사두개인들이 이스라엘 초기 왕정 시대에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의 후손들로서, 세습적인 제사장직을 수행해 왔다(삼하 8:17). 이들은 모세 오경에 부활의 교리가 명확히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활과 내세와 영생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당시 상당한 재력가들이었으며, 산헤드린 공회를 장악하였고 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러다 보니 제법 교만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본문의 질문을 한 것을 보면 아주 교만하게 행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나. 오해를 하게 된 원인
사두 개인들은 왜 그러면 부활에 대한 오해를 하게 되었을까요?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에 대한 답의 힌트를 우리는 본문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신 대목에서 그들은 성경 말씀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예수님은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모세 오경 중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출 3:6 인용하심)는 말씀을 그들은 지식적으로 이미 이해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들도 하나님 말씀을 지식적으로는 잘 아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실제로 실행에 옮기라고 하면 “됐습니다. 이제 그만하세요”라고 점잖게 뿌리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될까요? 지식으로 아는 것과 실제로 아는 것은 굉장한 거리감이 있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보아도, 정확한 맛을 알기 쉽지 않습니다. ‘맛을 봐야 맛을 아는 샘표 간장’이라는 선전 문구처럼 하나님도 우리 성도들이 실제적인 맛을 보는 경험의 신앙을 강조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4:8)
사두개인들은 자기들의 지식과 이성적 비판으로만 따져 볼 때에 사람이 죽으면 끝이지 무슨 부활이 있느냐 그런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지 말라고 예수님에게 보기 좋게 질문을 던졌던 것입니다.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을 이해 하지 못한 원인은 그들이 오랫동안 성경을 알고, 믿고, 때로는 가르쳤을지언정 그들이 실제적인 순종의 믿음을 통한 경험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실천을 했더라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하신 말씀의 체험의 주인공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유대인들에게 이 부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1-32)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실천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진리를 알지 못했고, 주님의 제자의 길을 가지 못하고, 반대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지식적으로 아는 것에서 그치면 평생을 예수 믿어도 사두개인들이나 바리새인들과 같이 진리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살아라고 하면 “됐습니다. 이제 그만하세요”라고 짜증스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오해 없는 신앙의 주인공들
가. 날 때부터 소경
요한복음 9장 1-23절에 보면 날 때부터 소경이 예수님 만나 눈에 침 뱉은 흙을 붙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할 때 순종함으로 눈이 띄어져서 보게 되었다. 그 때 그 소경의 눈을 띄워 준 사람이 누구냐라는 유대인들의 질문에 소경은 예수라고 분명히 답을 하였지만 그의 부모는 출교가 두려워 ‘우리는 알지 못하니 저에게 물어 보시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라’(요 9:21)고 아들에게 떠 넘겼다. 이런 비겁한 대답을 하는 아버지와 당당하게 답을 하는 아들과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함으로 말씀의 능력을 경험한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 것입니다.
나. 두 배에 고기를 가득 잡은 제자들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눅 5:1~11)
이 두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은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였을 때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의 말씀 앞에 자기를 부인하게 되었고, 어떤 주변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도의 길을 걷게된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4. 순종의 주인공이 되라
우리는 내일부터 사활대속기념 특별 새벽기도를 앞두고 있습니다. 참으로 사활대속의 은혜를 실상적으로 느끼면서 누리는 행복한 신앙생활의 주인공이 되려면 이제부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말씀 재독을 하세요.’ ‘밤 10시에 합심 기도를 합시다’ ‘매일 새벽기도에 힘씁시다’ ‘일인 일해 3명 전도 내가한다’ ‘중보기도학교’ ‘양육반, 제자대학’ 등등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랍시다 하는 주님의 애틋한 호소가 ‘됐습니다. 이제 그만 하세요’ 아니라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로 바뀌어 달고 오묘한 말씀으로 와 닺으려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에게 주신 적은 능력 가지고, 마음, 힘, 뜻, 목숨 다하여 순종하는 충성의 믿음 외에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순종의 주인공이 됩시다. 충성의 주인공이 됩시다.
내일부터 작정하고 특별 새벽기도를 시작합시다! 성경 읽기를 시작 합시다! 전도를 시작합시다! 합심기도에 힘을 씁시다! 다른 사람을 내몸같이 사랑하는 일을 시작 합시다!
현대판 마귀는 어떤 전술을 쓴다고 했습니까? 작정은 얼마든지 크게 많게 하도록 둡니다. 그러나 오늘 하지 말고 내일 하라고 하는 전술을 쓴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전술에 넘어가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할 자들이 마귀의 종이 되지 맙시다.
이 순종의 길만 걷는다면 일평생 오해(誤解) 없는 행복한 신앙생활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참고 성구: 막 12:28-34.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3-27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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