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책망과 약속

2007.03.14 17:18

윤봉원 조회 수:1120 추천:114

계 3:1-62007031101

날자: 2007년 3월 11일 주일 오전

제목: 주님의 책망과 약속

본문 :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1. 나는 책망 받기를 좋아하는가?

하나님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 태어난 모순 투성이의 우리들을 말씀을 통하여 고치고 고쳐서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온전한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잘 못을 고치라는 책망을 받을 때에 감사함으로 달게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만약 우리가 고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짐승과 같은 수준의 사람인 것을 깨닫고 고치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감사하다고 맛 있는 것을 오히려 사 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몸에 암이나 병적 요소를 발견하게 해 달라고 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의사들에게 부탁을 하면서 우리 인격의 잘못을 고치는 것을 위해서는 왜 그렇게 인색한지요? 이것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나니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잠 12:1)

2. 신앙양심을 써서 들으라

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여기 귀 있는 자라고 하는 것은 신앙 양심을 써서 신앙 양심 생활을 하는 자를 말합니다. 신앙 양심 생활을 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고 여기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하는 말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다 영생할 수 있기는 있는 자인데 기본적으로 영생을 다 얻기는 얻은 자인데 성화적으로는 영생이 되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행위가 아무리 힘을 써서 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온전하다 인정받을 수 없는 그런 미달의 미비의 행위는 영생이 안 되고 그만 그것은 영원한 사망 둘째 사망의 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12)

나. 온전이 안된 것은 영생이 안된다

2절에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남은 바라 말은 죽고 아직까지 죽지 안하고 남아 있는 것을 말합니다. 남아 있는 것 아직까지 현실을 통과하지 안했기 때문에 그 심신의 기능이 앞으로 살아날 희망이 있고 아직까지 죽지 안하고 지금 산 데에 속해 가지고 있는 심신의 기능이 있으나 현실을 통해서 영원히 죽는 것으로 결정되고 영생하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은 바 죽게 된 것. 남은 바 죽게 된 것은 이제까지 네 심신의 기능이 다 살, 영생할 수 있는데 네가 게을리 해 가지고 영생하지 못하고 다 죽여버렸는데 아직까지 다 죽이지 안하고 남아 있는 것 있으니까 남아 있는 이것은 네가 굳게 해서 죽이지 말고 영생하도록 해라 하는 그 말입니다.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 말은 사람이 신앙 행위를 하기는 하지만 온전하다 인정이 될 때에 그때에 영생하는 생명으로 산것이 됩니다. 온전치 안하면 영생 안 됩니다. 이 온전한 것은 그 행위의 전체를 말하는 게 아니고 그 현실 현실마다 부분적 행위를 말하는 것인데 그 현실에 해당된 부분 행위가 온전해졌으면 전 시간까지는 다 죽었다 할지라도 요 시간 행위는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은 얼마 안 가지고 있고 젊은 사람들은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죄가 무엇이냐? 죄는 하나님 말씀을 어긴 것도 죄이지만 순종에 미달되는 것도 그것도 죄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순종에 부족한 것이 죄라. 그러기 때문에,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런고로 네가 일깨워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요 세 가지 하지 안하면. 받은 것은 생각하고 들은 것은 지키고 또 생각하고 지키다가 못 했으면 즉시 회개하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대속함을 받습니다.

오늘 말씀의 중요한 핵심 포인트는 백 점이돼야 되지 구십 구점이 돼도 안 된다, '너희 행위의 온전한 것을 내가 찾지 못했다' 온전해야 영생이 되지 온전치 않으면 영생이 안 뇐다 그 말입니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살았다는 이름만 가졌지 다 죽었다 그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다. 재림은 도적 같이 임한다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알지 못하리라' 주님이 도적같이 온다 그 말은 주님이 도적으로 온다 말이 아니고 주님이 오시는 그날에 네 행위는 완전히 다 너와는 상관 없이 다 도적맞고 만다. 한 시간 바로 살면 그 한 시간의 자기의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과 자기에게 속한 모든 소유 그것이 다 영생이 돼 가지고 영원한 구원이 되는 것인데 그것을 그만 도적 맞았다 그 말입니다.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눅 9:25) 그 말은, 자기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는 사람, 빼앗기는 것은 무얼 빼앗기는고 하니, 빼앗긴다 말은 자기의 영원한 마음의 기능, 영원한 몸의 기능, 영원 한 소유가 될 터인데 그만 현실에 세상 욕심 때문에 뺏겼다 그 말입니다. 자기를 잃는다 말은 무슨, 자기를 잃어 버렸다 말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사람을 그만 잃어 버렸습니다. 성령의 소욕 가지지 안하고 육체의 소욕으로. 하늘의 소욕을 가지지 안 하고 땅의 소욕을 가지고. 하나님 위주 중심하지 안하면 자기 위주 중심하는 그 놈은 자기를 망치는 원수요, 자기 일생 사는 생활이 전부 도적맞고 맞았다, 다 뺏기고 말았다.

도적같이 오리니 어느 때에 올란지 모른다. 노아 홍수 때에 사람들이 이럴 줄 알았으면 방주를 만들 걸 한 것과 같이 자기 죽을 것도 모르고 예수님 재림도 모르고 죽음이나 재림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도 없이 그만 일사천리로 그만 일생 동안 돈만 욕심 내다가 명예 욕심 내다가, 지위 욕심 내다가, 권세 욕심 내다가 직장 좋은 것 욕심 내다가, 가족 재미에, 뭐 이모든 이런 재미 저런 취미 어떤 자는 세상 과학이 성공 모두 그런 것 하다가. '아, 내가 일등 무엇이 돼야 되지' 이래 가지고 그 취미에 날뛰다 보니까 죽을 때가 떡 왔다 말입니다. 어리석은 자라.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 수고한 것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냐' 모든 게 헛돼 어리석지 말아야 돼요. 한 시간 자기의 심신의 기능과 소유를 뺏기는 것이 그것이 온 천하 얻은 것보다 손해입니다. 온 천하 얻고라도 뺏겼으면 손해요.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모든 것 뭐 다 뺏겼다 할지라도 자기가 심신의 기능과 소유를 뺏기지 안했으면 천하 얻은 것보다 유익이 더 큽니다.

3. "이기는 자"가 누릴 복

가.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복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네 눈에 봐라. 네가 이것을 볼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볼 줄 아는 것이 복 있은 사람이고 둘째로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복 있은 사람이고 셋째로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사는 사람(의인)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단점 보는 전문가가 있는데 그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흰옷 입고 다니리니'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그는 벗지 안하고 입고 다닌다. 아무리 큰 어려운 시험을 닥쳐도 예수님의 세 가지 공로는 그 사람이 벗지 안하더라. 사형을 준다는 사형틀 위에 예수님의 세 가지 공로는 벗지 안하더라 그런 사람을 보지 않느냐?

‘나와 함께 다니리니’ 주님과 함께 누리는 복 있는 자가 되리니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5절에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이기기만 하면 흰옷 입는다. 흰옷 입는다 말은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를 벗지 안하고 입고 살 수 있다 그 말입니다. 그것은 이는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입니다. '흰옷을 입고 다니리니' 흰옷을 입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벗지 안하고 입는 것은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되지 우리는 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사죄를, 언제든지 죄 안 짓고, 성령의 감화대로 살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하나 돼 가지고 산다는 이것은 인간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게 해 주셔야 된다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게 해 주셔야.

그러니까, 우리가 '아, 어쩌든지 털끝만큼이라도 죄 안 짓고 살아야지. 죄 안 짓고 살아야지,' 어리석은 자야 네까짓 게 죄 안 짓고 살아? 죄 안 짓고 살라 하는 그것은 우리 할 일 아닙니다.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살라 하는 그것은 우리 할 일 아니라. 그것은 우리가 못 해요. 아무리 할라 해 봤자 헛일이라.

이러기 때문에, 어제 아침에도 말했지만 사람들이 신앙생활 해 본 사람은 '뭐 결심만 하면 되지 작정만 하면 되지' 오늘날 마귀는 지혜로워서 결심을 실컨 하도록 한 후에 내일로 미루도록 합니다.

나. 언행심사가 하나님과 연결된 생활의 복

‘생명책에 반드시 흐리지 않는다’ 그 이름이라 말은 그 사람의 언행심사의 행위를 가리켜서 그 이름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그 사람의 언행심사를 하나님과 연결 생활에서 끊치지 안하도록 내가 해 주겠다 하는 그 말입니다.

다. 아버지께 받을 유업을 다 받게 됨

'아니하고 그 이름을' 또 그 사람의 언행심사를 '내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아버지 앞에서 시인한다는 말은 하나님 아버지라 말하는 것은 내가 언행심사 생활 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 유업으로 선물로 받을 게 많습니다. 아버지라고 말한 것은 언제든지 그것은 유업받을 것 선물 받을 것 말하는 것입니다. 내게 언행심사에 필요한 하나님의 그 온갖 유업으로 받는 그 은혜 그것을 받아야 되는데. '시인하겠다' 받도록 하나님께 '이것은 줘라' 이렇게 인정하게 하겠다.

라. 천군천사의 호위를 받게 됨

'그 이름을 천사들 앞에 시인하겠다' 이는 천사를 말한 것은 호위를 말합니다. 천군 천사의 보호. 천군 천사가, 이는 천군 천사의 보호를 받도록.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구비한 은혜를 주도록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것을 책임지고 다 그렇게 결재를 하겠다. 시인하겠다 말은 '이는 줘야 됩니다' 이렇게 결재를 하겠다. 뭐하는 자에게 줘시는 복입니까? 어떤 자에게? 이기는 자에게.

4. 세 가지만 힘써라

이기는 일은 우리가 해야 되지만 각오나 결심이나 뭐 한다는 그런 것은 다 소용 없습니다. "이기는 자"는 세 가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받은 것을 생각하고 지키고, 지금까지 하나님께 받은 온갖 은혜를 자꾸 생각하고 지키는 그것이  우리 할 일입니다.

어떻게 들은 것을 생각하고 지키고, 자기가 성경을 읽어도 선지 사도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이요, 또 설교 말씀을 들어도 그것은 사람 보기에는 사람이 말을 하지만 실은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살전 2:13). 기도를 하면서 성령님께 직접 들은 것을 생각하고 지키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셋째는 받고 들은 것을 생각하고 지키다가 중단 되었으면 회개하고 다시 계속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할 일은 요 세 가지는 우리가 할 수 있다 말입니다. 요 세 가지만 하면 다른 것 다 해 준다 이 말입니다. 들은 것을 지키어 행하다가 이거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 행하다가 그만 실패해 버리고 행하다가 실패하고 행하다가 실패. 천 번을 실패해도 천 번 실패한 것을 회개해라. 일어서라. 이거 세 가지가 한테 뭉쳤으니까 우리 사람으로 할 수 있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힘쓰는 사람은 다 성공합니다. 어떻게 실력가라도 그만 힘 안 쓰고 교만한 자는 다 헛일이오. 자꾸 벌벌 떨면서 힘을 쓰는 자는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 양심 생활이 없으면 신앙 영감 생활에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신앙 양심 생활은 무엇이냐? 자기가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자기야 어찌 됐든간에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그 마음이 신앙 양심 생활이라 그 말입니다.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3-14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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