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노를 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라

2007.02.22 19:28

윤봉원 조회 수:1341 추천:132

고후 5:8-102007021802날자: 2007년 2월 18일 주일오후
제목: 주님의 노를 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라
본문: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1. 세상에 대하여 담대하라
"우리가 담대하여" 담대는 세상을 상대한 담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했을 때에는 담대치 못한 것은 죽을까 봐 담대치 못하고 비겁했고, 행복에 방해가 될까, 땅에 있는 그 능력의 협조를 받아야 될 것으로 알았기 때문에 우리가 담대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는 어두움의 일을 벗고 모든 참된 이치를 우리가 알게 됐습니다. 우리의 죽고 사는 것은 주님 한 분에게 주권되어 있지 천 인 만 인이 죽는 그런 방편이라고 그런 세력이라고 우리를 죽일 수 없고 다만 우리를 죽이는 이도 살리는 이도 주님 한 분만 주권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생사에 대해서 주님이나 두려워할까 주님 외에는 아무것도 세상에 있는 것을 두려워 할 리가 없게 됐습니다.
과거에는 세상을 상대했던 것이 이제는 주님 한 분만을 상대해야 되는 이 진리를 우리가 깨달았기 때문에 두려운 것도 한 분, 또 노엽게 할까 염려되는 것도 한 분, 또 기쁘시게 해야 되겠다 하는 것도 한 분 간청할 분도 한 분, 또 의뢰할 분도 한 분, 지도받을 분도 한 분, 의논할 분도 한 분, 관계를 맺을 분도 한 분, 이분 한 분과 모든 것을 하고 그 외에 모든 것은 우리가 다 아닌 줄을 알았기 때문에 다 그런 것은 있으나 없는 것 같이 여겨서 한 분만을 상대해서 살게 된 것입니다. 바디매오, 다윗, 다니엘의 세 친구가 가졌던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2. 담대히 원하는 것
가.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우리가 이 영육이 하나가 돼 가지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이 중량보다도 우리가 다 벗을 몸들이요 버릴 몸들입니다. 이 몸은 누에가 꺼풀을 벗는 것과 같이 이런 것은 벗고 다 신령한 것으로 변화해 가지고 우리가 영원히 살 것입니다. 주님의 인성이 영육으로 계시고  눈에 보이지 않고, 자유로운 신령한 몸처럼 우리도 앞으로 거룩하게 변화될 사람인 것입니다.
"몸을 떠나" 그 말은 이 모든 시간과 공간과 이 모든 이런 저런 세력들에게 제재를 받고 있고 제한을 받고 있는 이 약한 몸 이것 어서 벗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서 주님과 함께,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어서 성화 돼 가지고 그리스도로 더불어 이 시공과 모든 생사를 초월한 이런 신령한 몸으로 그렇게 부활해 가지고 주님하고 같이 있기를 원하는 요것이 우리가 소원하는 소원의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변화받는 것은 성경 말씀을 자꾸 읽어보고 따져보고 따져보면 예수님의 피의 능력과 영감의 능력, 진리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성경을 자꾸 읽고 연구하고 하는 가운데에서 차차차차 모든 평가가 바로 됩니다.
 우리의 소원이 이 썩어질 것이 썩지 안할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변화되는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나.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원하노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원하노라’ 어쩌든지 그분 앞에 가서 그분과 영원히 같이 살아야 되겠고, 그분 모시고 살아야 되겠고 또 영원히 그분에게 얻어 가지고 살아야 되겠고, 그분의 보호를 받아야 되겠고, 또 그분의 사랑도 위로도 모든 은혜도 기쁨도 전부 그분에게 받아야 되겠고, 밤이고 낮이고 그분 한 분 외에 생각할 이도 없고, 바로 볼 이도 없고, 사모할 이도 없고, 위할 이도 없고, 기쁘게 할 이도 그분 하나뿐이요, 사귈 이도 그분 하나뿐이요, 비위 맞출 이도 그분 하나 비위 맞추고 그분을 존귀케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요 사람이 돼야 됩니다.
3. 주님의 노를 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라
가. 주님을 노엽게 하는 것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행한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의 행함은 그분을 노엽게 한 것을 주님의 노를 푸는 것이요, 또 하나 할 일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선입니다. 주님을 노엽게 하는 것이 악입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산 것이 노엽게 한 것이요, 주님을 위주로 중심으로 사는 것이 기쁘시게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님의 피를 업신여기는 그것을 주님이 노여워하십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죄 인해서 그 죄의 형벌을 주님이 어떻게 당하셨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항상 가르치는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죄의 형벌을 대신하기 위해서 부요도 다 냈고 존귀도 다 내놨고 권세도 다 냈고 영광도 다 내놨고 이렇게 천해지고 마지막에는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우리의 죄의 형벌을 다 해 가지고서 우리를 사죄를 입혀 주셨는데 도무지 여게 대해서 아무 감각이 없이 무시하고 지내는 그것이 주님을 노엽게 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순종하지 못한 게 얼마나 있으며 전지자가 입법해 놓은 입법이니까 그 입법이 우리에게 명령하고 요구하는 그 요구와 명령이 어떻게 되는가, 그 요구와 명령을 우리가 하나도 행하지 못했는데 주님이 지성 지공법의 요구와 명령한 그것을 대신 주님이 다 순종했으니까 주님이 내 대신 무엇을 순종했으며 얼마나 순종하느라고 힘들었는가, 고통을 당했는가, 그 형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잊어 버리고 사는 것입니다.
또, 내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원수가 되어서, 피조물이 조물주와 원수 됐으니까 영원 멸망 아닙니까? 영원 멸망인데, 이렇게 주님이 나와 지극히 크신 하나님과의 이 천한 것이 이렇게 아주 영원히 밀접해서 주님 동하면 나 동하고 주님 정하면 나도 정하도록 주님이 책임지시고 화목하기 위해서 어떻게 어려움을 당해 가지고 화목 했는가 요것을 모르고 무시하는 것이 주님을 노엽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처음에 믿는 사람은 주님을 노엽게 하는 사람 아닙니다. 예수를 처음에 믿는 사람은 주님을 노엽게 하지 않
나. 주님의 노를 푸는 것
노를 푸는 것은 주님의 세 가지 이 대속을 내가 성경을 보고서 깨달으면서 이 대속하기 위해서 주님이 얼마나 사랑을 가지고 얼마나 참고 견디고 얼마나 고난을 받아 가지고서 나에게 이 세 가지 대속을 주신 것이지 그냥 말로만 준 것 아니고, 전지하신 하나님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지만 말만 가지고 안 되고 친히 당신이 이 형벌을 받아 가지고, 친히 고난을 당해 가지고 우리에게 이제 이 세 가지 대속을 주셨습니다.
이 세 가지 대속을 주신 것을 생각하고 간직하고 살려고 하면 반드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때에 주님이 나를 대속하기 위해서 고난받은 것을 그것을 생각하고 어떤 그와같은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그보다 더 큰 어려움이 있어도 주님의 어려움의 백분지 일도 안 되고 천분지 일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자기가 이런 어려움을 당해도 주님이 주신 이 대속을 내가 이제는 벗을 수가 없고 내줄 수가 없다. 옥에 갇혀도 가난하게 돼져도, 박대를 당해도 배척을 당해도 외로와져도 요 대속을 안 내주고 마지막에는 죽어도 요 대속을 내주지 안하고 벌벌 떨면서 가지는 요것으로써 주님의 노는 다 풀어집니다. 이거 외에는 주님 노를 푸는 길이 없습니다.
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주님이 큰 힘 들여 가지고 주신 이 대속을 다른 형제에게도 내가 전해 가지고서 그 형제도 이 대속을 입어서 이렇게 인간 영원 문제를 해결 받고 구원 얻는, 이제 주님의 사랑에 감격해 가지고 나도 이 대속을 형제에게 전해 주기 위해서, 전해 줄라고 하니까 좀 괴롭고 힘이 듭니다. 새벽 잠을 못 자고 새벽에 오늘 아침에도 일찌거니 지금 심방 가고 뭐 전도 가야 됩니다. 그것도 하고 이러는데 힘이 들어도, 어려워도 전할라고 애를 쓰고, 괴로와도 전할라고 애를 쓰고, 나중에는 자기 직장에 좀 손해가도 전할라고 애를 쓰고, 손해 가도 전할라고 애쓰고, 나중에는 밥을 굶어도 전할라고 애를 쓰고, 마지막에는 감옥에 가도 전할라고 애를 쓰고, 마지막에는 죽어도 이거 전하는 것을 전하는 이제 여기에서 주님은 만족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 15:13~15)
4. 행한대로 심판을 받는다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난다 말은 제사장 심판대 앞에 드러납니다. 제사장 선지자 왕의 심판대 앞에 드러난다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관계에 잘못 얽혀 가지고 있는 것을 해결지우는 것이 그게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축복을 인간에게 전달해 가지고서 인간들이 그 축복과 은혜로 부강해지게 하는 것이 그게 선지자요, 왕은 하나님이 옳게 통치하는 그 통치를 인간들에게 전달해서 인간들이 바른 그 통치대로 살도록 하는 그것이 이것이 왕의 직책이라 그 말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대속하기 위하여  어떤 형벌 받은 것 알고, 주님에게 감사할 것이고, 주님이 나에게 입혀 주신 이 세 가지 대속은 나는 놓지 않겠다. 여기에 대해서 눈물 흘려야 되고, 결심해야 되고, 우리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투자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우리의 전 노력은 주님의 노를 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남은 생애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승리하세요.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2-22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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