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매오의 믿음

2007.02.22 19:27

윤봉원 조회 수:1095 추천:121

막 10:522007021801

날자: 2007년 2월 18일 주일오전
제목: 바디매오의 믿음
본문: 마가복음 10장 5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1. 부분적인 것과 영원한 것
금생과 내세에 사람을 구원하는 이 구주는 하나뿐인 것을 성경이 말씀하셨고,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행복의 길이 이것 저것이라고 그렇게 행복의 길을 여러 수천 수만이라고 할 만큼 그렇게 행복의 길이 많습니다. ‘나는 또 누구를 사귀어야, 무엇이 어찌 돼야, 또 무슨 기술을 배워야, 뭘 어떻게 해야, 나는 이 직장에서 한 다리 두 다리 밟아 올라가야,’ 그렇게 자기의 행복의 구주, 자기를 행복되게 해 줄 것이 너무도 종류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행복의 길이 천 가지인 줄 아는 사람이 모이면 천 가지 종류의 길을 걷고 만 가지 종류인 줄 아는 사람이 모이면 만 가지 종류의 길을 걷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이래 가지고 다 멸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 구름타고 오시면 싹 불태워 버립니다. 싹 불태워 버리고 무궁세계에는 모든 소망관도 지식도 비판도 전부 하나만 가지고 영원히 삽니다. 하나뿐입니다. 그때는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기르시는 하나님께서 당신과 맞은 것은 보존해서 영원히 행복되게 두고 당신과 틀린 것은 다 전멸을 시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8절 이하에는 사람들이 가치로 여기는 지식도 완전히 폐하고 주님의 말씀만 영원무궁토록 있다고 했습니다.
2. 바디매오의 믿음
가. 자기의 비참, 가난, 천대의 전부를 보지 못하는 까닭임을 믿음
모든 면을 바로 본다면 행복되지 못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바로 보지 못하고 다 마귀에게 속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헛일을 하고 있고 헛일을 마련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우리의 눈이 바로 뜨여서 모든 존재를 바로 보는 영적 소경을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바로 보아야 할 것은 창조주, 모든 피조물, 하나님의 심판, 나그네 세상, 영원무궁한 지옥, 영원무궁한 천국, 인생의 죽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바로 보고 모든 것을 바로 본다고 하면 그 사람은 영원한 행복된 그 길을 자기가 취하지 그 길 두고서 엉뚱한 딴 길 취하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첫째 바디매오는 참 불행스러운 사람이라 비참한 사람이라 하는 자기의 정체와 정상을 바로 본 사람입니다. 홍포 입은 부자는 왕들이 입는 홍포를 입고, 권세, 지위, 재물, 모든 가족들,  모든 복을 다 갖춘 사람이요 날마다 호화롭게 잔치했습니다. 자기가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 세상에서는 몰랐습니다. 죽고 난 다음에 자기가 제일 불쌍한 사람인 줄 알고 형제 다섯이 있으니까 이곳에 오지 않도록 좀 전달해 달라고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사람이 자기의 그 비참한 것을, 비참하고 불행하다는 것을 그것을 보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기의 비참하고 가련한 불행한 그것을 보는 믿음.
믿음의 눈으로 자기의 불행한 것을 봐야 된다 하는 것은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의 계약대로 모든 것을 논평하고 하나님의 지식대로 논평하고 보니까 자기가 불행하다 하는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지식 외에 땅위에는 전부 거짓말쟁이가 한 것이요 거짓말쟁이 애비가 말해 놨기 때문에 이 세상 지식은 전부 거짓말쟁이 만들고 거짓말쟁이 애비 만드는 거라 말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학문과 과학과 지식 이런 것이 행복되다고 자꾸 이래 가지고 ‘네가 새벽기도 못 나와도 공부해야 된다. 네가 주일을 범해도 공부해야 된다. 네가 믿음을 떠나서 믿음을 팔아먹어도 네가 서울대학 가야 된다!’ 그것이 다 행복되다고 그렇게 가르쳐 놨는데 그것이 행복되지 안하고 자기를 다 아무 소용 없고 자기 망치는 것이 됐다면, 자기를 행복되다고 했는데 과연 행복되니까 행복되다고 다 했는데 나중에 결과를 보니까 그것이 불행이 됐다고 하면은 그 말하는 사람은 자기를 속인 사람입니까 안 속인 사람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땅위에 있는 지식은 전부 거짓말 지식입니다.
결국은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이 조물주 이분의 뜻대로 이분의 법칙대로 결국은 되고야 맙니다. 우리가 성경 지식대로 비판하고 평가할 때에 성경 지식대로 말하면 불행스러운 그것, 성경의 지식이 말하는 그대로의 불행한 그 불행을 보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본디오 빌라도와 예수님과 같이 있을 때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이 영생하는 것으로 봤고, 본디오 빌라도는 ‘너 지금 그라면 가이사에 충성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 모가지 달아난다’ 하니까 그게 죽는 줄 알았기 때문에 그거 취했다 말입니다. 빌라도가 죽고 사는 것을 보는 것과 예수님이 생사를 보는 것이 달랐습니까 같앴습니까? 정반대였습니다.
성경 지식대로 다 만들 터이고 결국은 그대로 될 터이니까 성경 지식대로의 불행을 자기가 가졌다는 것을 아는 것이 제일 문제이기 때문에는 우리는 습관적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경건의 연습을 계속 힘써서 성경대로 정평 정가하는 영적인 눈이 뜨여져야 합니다.
나. 불행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예수님 뿐임을 믿음
둘째로는, 성경 지식대로의 알지 못해서 보지 못해서 불행한 이 불행을 해결해 줄 이는 예수님뿐이라는 믿음. 예수님뿐이라는 믿음. 성경이 보여 주는 것이 예수님이 보여 주는 것이요, 영감이 보여 주는 것이 예수님이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밖에는 나에게 모든 금생 내세, 창조주  피조물, 모든 영계 물질계 모든 것을 바로 보여 주고, 바로 가르쳐 주실 이는 예수님뿐이다. 예수님이 지금은 무엇으로 영감과 진리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밖에는 가르쳐 줄 이가 없다. 요 두 가지 있는 믿음.
다. 수많은 방해물에 눌리지 않고 더욱 호소한 믿음
셋째는 예수님에게 배워서 바로 알라고 애를 쓰니까 ‘잠잠하라’ 야단을 치는 방해들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성경대로의 지식을 가져야 되고 그대로의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해야 된다. 이러니까 요렇게 해 주는 데는 예수님밖에는 없다.’ 해서 예수님에게 달라붙으니까 ‘새벽기도 가지 마라. 이놈아 예배당에 가면은 공부 못 한다. 가지 말아라. 돈 못 번다. 건강을 해친다.’ 다 예수님 만나서 해결할라 하니까 못 하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디매오는 이러한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더욱 호소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불행의 원인인 보지 못함의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하여 주님께 나아가는 데 방해하는 모든 방해물에도 눌리지 않고 주님께 더욱 힘써 나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일을 방해하는 자들은 우리의 원수인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진리와 영감을 따라서 살아가는데 그것은 하지 말라고 방해하는 모든 자들은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 나의 원수입니다.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미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미 7:5-6)
라. 예수님의 ‘오라’ 말씀에 모든 것 다 버리고 즉시 달려 간 믿음
넷째로는 예수님이 “저를 부르라” 하시니 다른 사람들이 소경을 부르기를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지 그만 겉옷을 내던지고 뛰어서 일어나 가지고 예수님께로 달려갑니다. 요 믿음 있어야 됩니다. 모든 진상을 바로 보게 해 주실 이는 예수님밖에 없는데 예수님이 오라고 하는 이 소리 듣고서 예수님에게 달려가는 데에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버리고 미친듯이 달려가야 됩니다. 모든 것 다 침 챙겨 가지고 가는 게 아니고, 미친듯이 훌떡 일어서 가지고 따르는 이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마. 예수님께 보기를 소원한 믿음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라고 물었을 때, 이것 저것 소원하면 예수님이 줄 수 있어요, 없어요? 모든 소원 다 버려 버리고 “보기를 원하나이다” 라는 단일 소원을 가졌습니다. 이 믿음을 가졌을 때 예수님께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하셨고, 저가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았다고 하였습니다. 보기를 원하는 단일 소원의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어도 이 다섯 가지 믿음을 가지지 안하기 때문에 항상 소경 놀음하고 있습니다. ‘나를 출세를 시켜 주십시오. 나를 뭘 주십시오. 뭐 잠을 주십시오. 재산을 주십시오. 뭐 주십시오.’ 이라고 이렇지 ‘이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이 사실을 보게 하는 이 진리의 눈을 띄우고 영감으로 눈을 띄워 주시옵소서. 이거 모든 진상을 바로 보게 해 주옵소서.’ 요것을 원하는 요 믿음이라야 눈이 떠지지 그리 안 하면 눈이 안 떨어 집니다.
3.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바디매오의 믿음을 가져라
우리는 주님을 따라서 좇음으로 주님을 배워서 주님을 닮는 것보다 더 큰 소원은 없습니다. 우리의 남은 여생 전부를 주님 좇는 것만 전공했다면 뒤에 죽고 난 다음에 후회가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무궁세계 가면 후회될까요? 후회 안 됩니다. 이보다 더 행복된 길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다섯 가지를 자꾸 새기고 새겨 가지고 “겉옷을 버리고 뛰어 일어나” 자기 재산 다 버려도, 사업을 다 버려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거지가 돼서 이와같이 뭐 거지가 돼도 다섯 가지 겸한 믿음가지면 그 사람의 생애는 금생 내생에 성공된 인생걸음을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이 다섯 가지 믿음을 항상 가지도록 합시다.
자기의 비참, 가난, 천대의 전부를 보지 못하는 까닭임을 믿음!
불행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예수님 뿐임을 믿음!
수많은 방해물에 눌리지 않고 더욱 호소한 믿음!
예수님의 ‘오라’ 말씀에 모든 것 다 버리고 즉시 달려 간 믿음!
예수님께 보기를 소원한 믿음!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2-22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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