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하는 자의 복

2009.08.30 18:33

윤봉원 조회 수:1056 추천:49

레 26:1-132009083002

날자: 2009년 8월 30일 주일오후
제목: 순종하는 자의 복
본문: 레위기 26장 1절 - 13절
1. 말씀대로 가감(加減) 없이 순종하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
오늘날 믿는 성도 중에서도 성경대로 꼭 지켜 사는 것은 좀 시대에 뒤떨어진 행위이며, 어리석은 삶이다. 꼭 그렇게 살 필요가 있느냐?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주변 지체들을 보면 꼭 저렇게 살아야 하나? 하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교회 내에서 성경대로 정확히 구별해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오늘날의 상황에서 과연 그런가? 하나님도 그렇게 말씀하시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기를 하나님은 기대하시는가 하는 것을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도록 합시다.
2. 율법 전체의 근본원칙(1-2절)
레위기 26장은 성결법전(레 17-26장) 전체의 결론부이다. 1-2절에서 금지사항들을 복들 앞에 적절히 두고 있다(3-13). 가나안에서 당시 유행한 우상숭배를 엄격하게 금한다. 우상이란 레위기 19:4에 언급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인데 가나안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런 신성의 제사적 표현인 새긴 형상으로 십계명에서 반대하여 규정된 것이(출 20:4) 그것이다. 주상은 분명히 돌로 만들어졌고 가나안 종교의 중요한 두 신인 엘(El)과 바알(Baal)의 임재를 실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포함하고자 했던 것 같다. 조각한 석상은 천둥번개를 치는 바알을 묘사하는 그런 것으로 가나안신의 형상을 분명히 포함한 것으로 주전 1800년경의 것으로 라스 샴라(Ras shamra: 우가릿 지방)에서 발굴되었다. 따라서 1절의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은 레위기 19:4에서 선포된 것으로, 하나님만이 우리 삶의 절대적인 분이시며 이외의 어떤 것에도 절대적인 가치를 둬서는 안된다는 선포이다. 우상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숭배와 대립(對立)되는 것이다. 이 선포는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만이 진리이며, 이 길에 온전히 거하는 것이 축복의 길임을 선포한 것이다.
2절의 안식일 준수명령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려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쉼과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력을 재충전 받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안식일 준수와 성막 예배에 주기적인 참여는 가나안 종교의 오염을 예방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기에 말씀한 것으로 보인다.
2절에서 성소를 공경하라는 말은, 우리의 삶의 구심점이 성전이어야 하며 하나님이 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3. 하나님의 율법 순종에 대한 상급(3-13절)
3.1. 비와 땅의 풍성한 소출(3-5)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시내산 일치는 주전 2천년의 국제적 조약으로서 언약이기에 복들이 석기에 포함된 것은 자연스럽고 적절하다. 그것들은 세 가지로 구분되는데 (4, 6, 11절) 각각은 ‘내가 주리니’(I will give)라는 구절로 시작되어 있다. 언약 규정에 순종하면 3-5절에서는 하나님 율법에 순종했을 때 주어지는 상급에 관해 언급한다.
3절 ‘너희가 나의 계명을 준수하면’은 문자적으로는 “너희가 나의 법의 길을 걷는다면”이다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은 성서에서 빈번하게 삶의 “올바른 길”로써 이해된다.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4)
이스라엘 땅은 일년 중에서 특정한 기간에만 비가 왔다. 다른 때에는 몇 달 동안씩 비가 오지 않았다. 만약 기대되는 때 충분한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온화한 기후에서 보다도 더 해로웠다. 그런 까닭에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가 반복하여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땅은 그 산물을 내고’에서 ‘산물’로 번역된 히브리어 “예불”은 땅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예불”은 보통 “가져오다”로 표현된다.
‘너의 타작은‥‥배불리 먹고 너희 땅에 안전히 거하리라’(5) 우리말 ‘베불리’로 번역된 히브리어 “라소바”는 “포식”과 “풍부”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는 풍요로운 축복, 특히 풍부한 곡식에 대한 관용적인 표현이다. 우리 말 ‘안전히’로 번역된 히브리어 “베타흐”는 안전을 보장할 때 성서에서 많이 보이는 공통적인 축복이다. 25:18-19을 보면 안식년의 준수는 또한 국내적인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3-5절에서 약속한 축복은 언약인 말씀을 순종하면 풍부한 곡식과 안전을 책임 져 주시겠다는 축복의 말씀이다. 이 약속은 베드로 말씀에 의지하여 거물을 깊은 곳에 내렸을 때 만선의 축복을 경험한 것을 연상하게 해 준다.
3.2. 땅의 평화와 적(敵)에 대한 승리(勝利)(6-10)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언약을 순종하면 6-10절에서는 국가의 적(敵)들에 대한 승리를 약속한다.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6) 이 약속은 에스겔 34:25-28과 매우 밀접한 평행구를 이룬다.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우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서 잘지라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내 산 사면 모든 곳도 복되게 하여 때를 따라 비를 내리되 복된 장마비를 내리리라 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라 내가 그들의 멍엣목을 꺾고 그들로 종을 삼은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낸 후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겠고 그들이 다시는 이방의 노략거리가 되지 아니하며 땅의 짐승의 삼킨 바 되지 아니하고 평안히 거하리니 놀랠 사람이 없으리라’(겔 34:25-28)
‘칼이 너희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6) 칼이 두루 ‘행하다’(아바르)란 표현은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는 모습을 표현하는 데는 자주 사용되지 않는다. 단지 본문에서 사용되는 부분은 에스겔 14:17에서 나타나고 있다. ‘가령 내가 칼로 그 땅에 임하게 하고 명하기를 칼아 이 땅에 통행하라’.
성취될 약속에 대한 재강조이다
‘너희가 대적을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이 구절은 진술보다 앞서서 성취될 약속들을 재강조(再强調) 한다. 즉, 너희는 전쟁에서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원수는 고통을 당할 것이다.
‘너의 다섯이 백을 쫓고…’(8) 신명기 32:29에 나타난 시를 보자 “자기들이 왜 패배를 당했는지를 깨달을 지혜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들의 종말이 어떻게 될지 깨닫기만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주께서 당신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이것은 여호수아 23:10에서도 되풀이된다.
‘너희 중 한 사람이 천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수 23:10)
‘나의 너희와 세운 언약을 이행하여…창대케 할 것이며’(9) 이 약속은 이미 체결된 계약을 강제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가리킨다.
‘너희는 오래 두었던 묵은 곡식을 먹다가’(10) 히브리어 “야산”은 문자적으로 “매우 오래된”이란 뜻이다. 유사한 표현이 안식년을 기념하는 25:22에서 나타나 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특별한 규정을 포함하여 이러한 법률(法律)의 준수(遵守)는 곡식의 풍성함을 낳게 될 것이다.
3.3.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거(居)하심(11-13)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12) 문자적으로는 “나는 너희 주위 둘레에서 걸을 것이다”이다. 종교적인 사회에서 하나님의 현존과 함께하심은 중요한 관심사이다. “…의 둘레에 하나님이 걷다”라는 개념은 다윗에 대한 나단 선지자의 신탁에서도 볼 수 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삼하 7:6-7)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12) 이 말씀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계약적 관계를 밝히는 것으로 택하심에 대한 법적인 용어들이다. 이 구절은 사무엘하 7:14의 나단의 신탁에 또다시 나와 있다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하나님께서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이 택하셨다는 약속과는 반대되는 말씀으로 호세아 1:9에 하셨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너희 멍에 빗장목을 깨뜨리고’(13) 멍에의 빗장목은 일하는 동물의 목에 메었다. 예레미야 28.10-13은 인간이 메는 멍에를 묘사하고 있다. 멍에를 깨뜨리는 행위는 해방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예레미야의 멍에는 부수어졌고 그는 해방되었다. 멍에는 오늘날에도 근동지방의 많은 지역에서 여전히 사용되며, 고대 이후로도 변하지 않았다. 성서의 은유적 경향은 명백하다. 멍에를 메어 복종토록 된 사람이 있다. 일단 멍에의 빗장목이 부러지면 그는 완전히 일어설 수 있고 ‘올바른 위치 안에서’(개역은 ‘바로 서서’)를 나타내는 “코마미우트”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따라서 11-13절의 약속은 언약을 순종하면 그 땅에 하나님의 임재(臨在)의 확신(11-12), 그리고 인간 자유의 존엄성(13절)을 보답 받을 것이다.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하나님을 언급함은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 이 위대한 왕께서 자신이 약속하신 모든 것을 수행하실 수 있는 분임을 보증한다.
그분은 존재하지 않는 신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함께하사 그들의 생명을 인도하며 모든 필요를 채우실 것이다. 이런 복들은 본질상 독특하며 개인의 안전, 계속적인 국가의 부,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 계시며 모든 권능(權能)이 충만(充滿)한 신의 임재(臨在)를 이스라엘에게 확실(確實)케 한다. 하나님의 임재의 확신은 강함의 원인과 신자들의 끝없는 관대함에 대한 복이 되었다(참조. 사 11:1-6; 겔 36:28, 37:24-27 등) 그리스도께서 승천(昇天)하시기 전에 자신의 제자들에게 위임식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하는 방법으로써 그들과 함께 하는 자신의 임재의 확신(確信)을 주셨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同一)하시기에(히 13:8) 이 약속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여전히 유효(有效)하다.
4. 하나님 말씀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고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약속은 비와 땅의 풍성한 소출(3-5), 땅의 평화와 적에 대한 온전한 승리(6-10),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심(11-13)이라는 엄청난 축복의 약속을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이 약속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유효하며, 우리 또한 순종의 삶을 살기만 하면 이 약속의 주인공이 되도록 해 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과 하나님의 명령을 우습게 여기고 무시하며 불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들에 대한 그들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14-39절까지 말씀 되어 있습니다. 한 번 집에 가셔서 살펴보십시오. 참으로 이러한 결과가 우리에게 닥친다고 가정을 해 볼 때 소름이 끼치고 잠이 이룰 수 없는 무섭고 놀라운 약속입니다.
이상에서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이 하는 삶입니까? 아니면 가장 지혜로운 자들이 살아가는 삶입니까? 우리는 확정을 지읍시다. 결코, 말씀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은 어리석은 자들이 하는 순종의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고, 약속을 믿고, 실상으로 누리는 복있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삶입니다. 이러한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인공 되세요.

참조. Harrison,「레위기」, p. 270. 박철우, ‘성결함으로 나아가라’,「레위기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p. 247. 왕대일,「레위기」, pp. 588-90.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8-3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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