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을 헐어라

2004.12.24 06:53

윤봉원 조회 수:938 추천:118

갈 5:1,132004122340

날자: 2004년 12월 23일 목새

 

제목: 담을 헐어라

 

본문: 갈라디아서 5장 1절, 13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 율법주의로부터 벗어나라

 

1) 갈라디아제 율법주의

 

갈라디아 교인들이 굴복할 위험에 처해 있던 율법주의는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이단을 반박하기 위해 편지를 쓴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가르침에 대해 너무나 분노를 느낀 나머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저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8)

 

바울은 이러한 형태의 율법주의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단호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리고 그는 이러한 율법주의로부터 그들을 불러 내고 있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2) 현대판 율법주의

 

우리는 오늘날 갈라디아제 율법주의로 부터는 벗어 났습니다. 그러나 현대판 율법주의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율법주의란 우리가 어떤 것을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은총을 얻어 내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얻어내야 할 보상 혹은 피해야 할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위가  자신들에게 강요하는 율법주의 입니다.

 

둘째로 율법주의는 인간이 만든 종교적인 규칙과 요구 사항들에 맞추어 살기를 강하게 요구합니다. 그러한 규칙과 요구 사항들은 흔히 누가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합니다. 예를들면 “해야 할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맞추어 살도록 요구 합니다. 성경의 가르침 대신에 다른 사람들의 가르침이나 기대에 맞추어 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공공연히 혹은 은연 중에 주어진 이러한 규칙들은 흔히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들에 우리 인간이 만든 규칙들을 첨가함으로 하나님을 “도와 드리려고” 해 왔습니다. 마가복음 7장 6절에서 8절에 기록되어 있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 됩니다.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오늘날에도 우리의 전통들과 규칙들이 실제로 하나님의 계명들보다 더 중요시되고 있는 실례들이 오늘날의 기독교계에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2. 인간이 만든 담

 

제리 브릿지즈 목사님의 사례를 몇 가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목사님께서 부인과 아이들을 데리고 해변에 휴가를 갔습니다. 그러나 그 해변에는 노출이 심한 여성들이 북적대고 있어서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욥 31:1)라고 말씀한 욥 처럼 20여분간 다른데로 눈을 돌리다가 결국 차로 돌아 왔답니다. 자기 자신이 계속 있으면 더욱 죄를 짓게 될 것 같아서였다고 합니다. 소위 말해서 시각간음(마 5:28)을 행치 않기 위해서였지요.

 

그리고는 ‘나는 해변에 가는 것은 언제나 죄에 이른다’고 결론을 내리고 아들들에게 “넌 다시는 해변에 가서는 안 돼”라고 말 할 것이라고, 그리고 해변에 가는 다른 사람들을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해변에 가지 말지니라”라는 담이 10계명의 수준에 도달 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예는 부모님께서 당구를 치지 말라고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아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당구장에 가는 것을 완전히 금하고 살아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수양관에 갔는데 당구장이 있어서 너무나 놀랐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에게는 그 충고의 말이 많은 유익을 주었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모든 담들을 다 헐어야 할까요?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종종 그것들은 도움을 주며, 때때로 필요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으나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적용 되는 것이 아닌 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담들로부터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백인 교회와 흑인 교회의 상황, 땅콩 버터를 먹지 말라.

 

우리는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롬 14:19)라고 말씀한 바울의 말씀과 같이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써야 합니다. 어떤 특정한 담을 받아 들이거나 혹은 거부하는 데 있어서 분별력을 갖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음식을 먹는 데에 있어서나 어떤 사고 방식들을 우리 자신들의 주관적인 담의 틀을 갖춰 놓고 거기에다가 다른 사람들을 다 맞추려는 누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바울은 단호하게 말 합니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롬 14:6)(고전 9:1-12 참고)

 

하나님을 우리 인간이 만든 사고의 틀과 담에 가두려고 힘써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우리 자신의, 하나님과 동행의 산물인 개인적인 확신 안에 속박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청교도 신학자인 존 오웬은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명령하신 것만 속박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고, 그 외의 모든 것에서는 행동의 자유가 있습니다”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고후 1:24)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양육하거나 훈련을 시킬 때에 상대방을 섬겨야 되지 주관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잘 자라도록 도와 주는 일은 할지라도 주관하는 자세는 버려야 합니다.

 

3.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에 대하여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 할까 두려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판단 받거나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무서워 어떤 것을 하거나 혹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에 굳게 선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두려워하는 것에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들을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요셉, 다윗,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등등을 얼마든지 꼽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사람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이냐, 누구의 뜻에 치중을 두느냐를 분명하게 구별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의 확신들을 무시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모두 그 몸의 지체들로서 서로 섬겨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개인적으로 다루시며, 특히 성장과 사역에 알맞도록 지어진 환경에 우리를 두시고 양육하시기에 거기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살전 5:21) 좋은 것, 하나님의 인도하심, 뜻을 취하며 살아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자유를 주어야 하는 것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4.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지금까지 살펴본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리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자유가 있는 데 그것은 어떤 관습이나 유전들, 다른 사람들의 의식과 주장에 의해서도 조금도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이제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육체의 기회(성령과 진리의 인도를 받지 않고 자기 중심적이 모든 삶)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여야 하겠는데 그 기초는 무엇에 두어야 할까요? 그 동기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 보존의 은혜, 섭리의 은혜에다가 두어야 합니다. 은혜를 경험하지 않고는 사랑을 발휘 할 수 없습니다. 즉 그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는 말씀처럼 계명을 지키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사랑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계명을 지키는 능력, 순종하는 능력은 성령을 통하여 공급 받을 수 있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하나님이 성경 말씀을 통하여 명시하지 아니한 온갖 인간이 만들어 놓은 담, 테두리를 지켜서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거나,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율법주의적인 잘못된 삶의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것도 구별하여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자신만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명중 시킬 수 있기까지 양심이 깨어 있어야 하겠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 사랑함으로 인간을 사랑하여 계명(자신에게 해당된 진리와영감)을 지킴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정상적인 신앙 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도록 합시다.

 

그럴 때에 그 사람과 하나님은 항상 동행 해 주실 수 있고, 그 사람을 붙들고 역사의 주인공으로 사역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 시대의 주인공이 됩시다. 승리 하십시요.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2-24 07:35)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6 요셉의 형통 윤봉원 2005.01.28 1230
185 너무너무 소중한 당신 윤봉원 2005.01.25 1072
184 순종하는 삶 윤봉원 2005.01.25 1835
183 고장난 부속(지체) 윤봉원 2005.01.21 931
182 기도를 결단하라 윤봉원 2005.01.20 1022
181 자신의 존재 가치(회개하라) 윤봉원 2005.01.19 918
180 좋으신 하나님 윤봉원 2005.01.09 1080
179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윤봉원 2005.01.09 1350
178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1] 윤봉원 2005.01.07 975
177 형통의 약속 [2] 윤봉원 2005.01.03 1180
176 그리스도인의 자유 [1] 윤봉원 2004.12.27 980
175 다윗의 실력 준비 비결 윤봉원 2004.12.27 1664
174 올바른 처세법 윤봉원 2004.12.27 872
» 담을 헐어라 윤봉원 2004.12.24 938
172 구원 확신의 근거 윤봉원 2004.12.22 835
171 구원 확신의 축복 윤봉원 2004.12.22 1005
170 성경 공부 단계 윤봉원 2004.12.22 921
169 성경을 공부하라 윤봉원 2004.12.12 1165
168 삶의 기초인 성경 윤봉원 2004.12.12 1021
167 미련한 인간 윤봉원 2004.12.12 1363
XE Login